|
죽은자의 마을 #3
쏴아아아아
한적한 시골마을, 빌라드.
이곳에는 로이스트 세이단 백작의 별장과 세이단 백작에게 영지를 하사받은 마법사의 성이 있다는 것 외에는 별다른 특징이 없다.
이렇다할 길드가 없는 것은 물론이고 상점이라고 해봐야 평민들이 사는 집을 개량한 것 정도가 전부이다.
그저 평범한 마을.
이 곳은 프로비던스 제국의 여느 다른 마을들과 마찬가지로 장마의 시작을 알리는 평범한 장대비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적하던 마을은 쏟아지는 비에 너도나도 하던 일을 멈추고 집으로 돌아가는 바람에 인적을 찾아볼 수 없었다.
어두웠다.
구름 너머로 분명 아직은 해가 떠있었을테지만, 햇빛은 전혀 땅으로 도달하지 못 했다.
집집마다 희미하게 새어나오는 불빛만이 거리를 비추고 있었다.
역시나 평범한 아니, 오히려 왜소한 빌라드의 여관은 식당 가운데에 걸려있는 등불 하나가 안을 어둡게나마 비추고 있었다.
식사를 제외하곤 정말로 보기 드문 손님이, 그것도 30명 가량 단체로 몰려와 있다는 것은 평소와는 사뭇 달랐으나 축축한 습기가 사람들의 마음속까지 짓누르고 있었기에 분위기는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조용했다.
때때로 들리는 식기구 부딪히는 소리가 적막감을 더해주고 있었다.
"조용하군요."
축 쳐진 분위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는지 화염 기사단 단장 윌리엄이 방긋 웃으며 마로니크에게 말을 걸었다.
끄덕.
원래 말수가 적은 마로니크는 그나마 말을 주고받던 체르니까지 잠을 자겠다며 위층으로 올라갔기에 대답조차 간단히 고개를 끄덕이는 것으로 대신했다.
하지만 그렇다고 포기할 윌리엄이 아니다.
"체르니님 말이예요,"
"뭐지?"
빠른 반응을 보여주는 마로니크.
"저녁도 안드시고 주무셔도 괜찮을까요?"
"그녀석이 먹는 것을 마다한다는건 그만큼 졸렸다는 뜻이겠지."
신경 끄고 식사에 열중하는 마로니크.
"체르니님 말이예요,"
"뭐지?"
다시 한번 빠른 반응을 보여주는 마로니크.
"귀엽죠?"
"!!"
"아아~ 체르니님은 어쩜 그리도..."
"안돼."
마로니크는 윌리엄의 말을 끊었다.
그러고는 나이프를 소리나게 내려놓은 뒤, 넵킨으로 입을 닦으며 윌리엄을 살벌하게 노려보았다.
"난 허락 못 해."
씨익.
눈동자조차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작은 윌리엄의 눈이 더 작아진다는 것은 상상도 하기 어렵지만, 어쨋든 윌리엄의 눈이 포물선을 그리며 가늘게 찢어졌다.
장난기 넘치는, 마로니크의 입장에서는 사악한 미소.
"그럼요. 여부가 있겠습니까? 다만,"
"?"
"재미있군요. 후후후.."
"..."
태어난 이래 처음으로 천적을 만난 마로니크였다.
...
쏴아아아
"...둠 사르카 에르딤 그라뭄..."
앞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쏟아지는 비 속에 검은 로브를 뒤집어 쓴 사내들이 어딘가로 향하고 있다.
빗소리에 숨어 중저음의 남성 목소리가 울린다.
후드를 타고 흘러 내린 빗물이 입 안으로 들어갔지만 그들은 중얼거림을 멈추지 않았다.
사내들의 무리에서 한명씩 다른 곳으로 떨어져 나간다.
이내 마을의 중앙에 한 사내, 마뉴스만이 남아 홀로 섰다.
그의 사악한 미소가 극에 달했다.
"...카르디엠 쿠슬라 둠!"
쏴아아아
마뉴스의 주문이 끝맺음과 동시에 빗줄기가 더욱 거세졌다.
그리고 마뉴스의 등 뒤로 무엇인가 솟아나기 시작했다.
하나, 둘, 셋.....
점점 숫자를 불려나가며 '그것'들이 솟아올랐다.
방금 지옥에서 튀어나온 듯한 그것들은 끊임없이 피를 갈구하고 있었다.
살아있는 존재들에 대한 증오로 가득한 그것들은 자신들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시뻘겋게 눈에 핏대를 세우며 고이 잠든 사람들의 숨통을 끊으려 사람들의 집으로 닥치는 대로 달려들어갔다.
...
'아~ 행복해~~'
체르니는 초콜렛으로 만든 집에 있었다.
비스킷으로 만든 식탁, 와플로 만든 접시와 방 안을 가득 채운 케잌들..
체르니는 포크를 집었다.
사탕으로 만든 포크였다.
체르니는 고민에 빠졌다.
케잌을 먼저 먹을까,
사탕 포크를 먼저 먹을까,
와플 접시를 먹을까,
초콜렛 벽을 뜯어먹을까.
쿠웅!
그녀가 행복한 고민에 빠져있을 때, 갑자기 초콜렛 집의 한쪽 벽이 무너져 내렸다.
'멀쩡한 문을 놔두고 도대체 어떤 녀석이야?'
정중히 부탁을 했더라면 충분히 먹을 것을 나눠줄 의향이 있었지만 먹지도 못하게 초콜렛을 산산조각 내버리며 쳐들어온 것들은 당장 쫓아내도 시원찮았다.
체르니는 즐거운 식사 시간에 끼어든 방해꾼의 얼굴을 보기 위해 휙 고개를 돌렸다.
"꺄악!"
체르니는 짧은 비명과 함께 벌떡 일어나고 말았다.
방금 전은 꿈이였을까?
무너진 벽 너머로 보인 것은 이곳저곳이 썩어 문드러진 좀비들이였다.
그것들은 시커멓게 썩어 눈동자도 보이지 않는 눈에 핏대(이상하게도 씨뻘건게 그래보였다.)를 세우며 그녀에게 달려들었다.
체르니의 온 몸에 불안감이 엄습해왔다.
어릴적, 악몽을 꾸고 아빠와 엄마 방에 찾아가 둘 사이를 비집고 들어갔을 때와는 확연히 다른 불안감이였고, 공포였다.
신성력을 끊임없이 자극하는 검은 마력...
'꿈이 아니야!!'
...
타다다닥.
체르니는 검만 챙겨들고는 후다닥 내려왔다.
옷을 갈아입을 시간 따윈 없었다.
너무 피곤한 나머지 옷도 갈아입지 않고 바로 잠들었던 것이 다행이였다.
갑옷보다는 못하겠지만 잠옷보다는 낫겠지.
다행히 기사들은 아직 식사 중이였고 마로니크는 이제 막 일어선 참이였다.
"저녁부터 쿵쾅쿵쾅, 괴물."
여느때와 마찬가지로 마로니크가 태클을 걸어왔지만 그를 상대할 시간은 없었다.
아직까지 다른 사람들은 아무것도 느끼지 못 한 듯 하다.
소리없이 다가온 그것은 어느새 우리들의 목을 조르고 있었는데도 말이다.
"모두... 모두 대피시켜!"
...
장난이라고 치부하기엔 체르니의 표정이 너무나도 심각했다.
기사들은 영문도 모른채 밖으로 나와 주변의 집집마다 문을 두드렸다.
다행이 몇몇 집은 노크소리를 듣고 나왔지만, 대부분은 소식이 없었다.
"저기.. 다들 자는 모양인데요?"
"부숴!"
쾅!
체르니는 검을 검집채로 휘둘러 문을 산산조각 내었다.
평소와는 달리 과격한 체르니의 모습에 그제서야 기사들도 문을 부수고 자고 있는 사람들을 억지로 끌어내기 시작했다.
윌리엄이 능숙하게 기사들을 지휘하자 얼마 지나지 않아 사람들이 거리를 가득 채웠고 끌려 나온 사람들 또한 윌리엄의 명령에 따라 다른 집에 사는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 달려야 했다.
마을 사람들은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는데 우산도 없이 밖으로 나와 이게 무슨 짓인지 불만이 가득해 보였지만 무장한 기사들과 귀족처럼 보이는 체르니와 마로니크 때문에 불만을 토로해내지는 못 했다.
잠든 사람들을 깨우기 위해 멀리까지 나갔던 기사 한 명이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돌아온 것은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어.. 언데드입니다! 그것들이 마을을 포위하고 있어요!!"
웅성웅성.
"모두 조용!"
언데드라는 말에 마을 사람들이 동요하기 시작했다.
사실 대부분의 언데드들은 흑마법사의 지시를 따르기 때문에 흑마법사가 악의를 품고 있지 않는 한, 사람을 죽이는 경우가 매우 드물었다.
하지만 언데드들은 그들의 흉측한 외모와 지독한 시체 썩는 냄새, 그리고 살기로 번뜩이는 눈을 통해 사람들에게 죽음의 공포심을 심어주는 존재였다.
처음 맞딱뜨리는 언데드에 대한 공포와 사람들의 웅성거리는 소리로 머리가 어지러워졌지만 체르니는 침착함을 잃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요?"
"... 지금 다른 기사들이 언데드들과 싸우며 사람들을 구출하고 있습니다."
"심각하군요. 그란체이스 경!"
"하명하십시요."
체르니의 부름에 윌리엄은 그녀에게 다가가 고개를 숙이며 명령을 기다렸다.
"지금 당장 다섯 명만 남겨놓고 마을 사람들을 구하러 가세요."
"하지만.."
"당장요!"
어찌된 일인지 체르니가 윌리엄에게 하던 하대는 존대로 바뀌었지만 그녀에게서는 이전에는 없던 박력이 느껴졌다.
"명을.. 따르겠습니다."
어쩔 수 없이 최소한의 호위 기사를 제외한 다른 기사들은 모두 마을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달려야만 했다.
...
"제기랄! 도대체 얼마나 있는거지?"
한 기사의 입에서 욕지껄이가 튀어나왔다.
어느새 언데드들이 여관 주위까지 몰려왔다.
체르니가 언데드들을 빠르게 알아채고 대응했던 덕분에 많은 마을 사람들을 구할 수 있었지만, 30명도 안되는 소수 인원으로 꾸역꾸역 밀려오는 언데드들을 상대하며 그들을 지키려니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게다가 그들의 핏발선 눈과 끔찍한 악취는 전의를 상실시켰다.
아마 그들이 화염 기사단에서도 뛰어난 자들로만 구성된 실력자들이 아니였다면 진작에 방어선이 무너졌을 것이다.
하지만 점점 방어선이 뒤로 밀려나는 것은 그들도 어찌할 수 없었다.
"조그만 버티세요! 다른 기사들이 모두 돌아오면 좀더 안전한 곳으로 대피할 겁니다."
언데드들은 죽음에 대한 두려움이나 고통을 가지고 있지 않다.
그들은 오히려 극도로 호전적이고 살아있는 것을 죽이기 위해서라면 물불 가리지 않고 뛰어든다.
지금도 예외는 아니였다.
이들은 산 사람의 목을 물어 뜯기 위해 주변에 쌓여있는 동료 언데드들의 시체를 밟고 달려들었으며 다리가 잘리자 팔로, 팔도 잘리면 몸통으로 꿈틀대며 다가왔다.
강하게 밀어내도 뒤에 벌떼같이 몰려있는 언데드들 때문에 1미터도 밀려나지 않았다.
한 때는 이들도 생명이였고 같은 사람이였다는 사실조차 무색해진다.
"으윽!"
어느덧 한 기사가 마을 사람들이 몰려 있는 곳까지 밀려났다.
어떤 젊은(?) 좀비가 죽어라 달라붙는 것을 처리하지 못 한 것이다.
그 좀비는 왼팔이 완전히 잘려나가 어깨죽지가 완전히 드러났고 목이 반쯤 베여 머리가 달랑달랑했음에도 눈에 핏줄이 튀어나올 정도로 악을 쓰며 달려 들었다.
방금 전까지만해도 살.아.있.었.던.것.처럼 부폐되어 있지 않았던 탓인지 힘도 다른 좀비들 보다 쎘다.
고전하던 기사가 달랑거리는 좀비의 목을 완전히 떨구기 위해 검을 고쳐잡았을 때였다.
"잠시만요!"
뒤에서 벌벌 떨며 지켜보던 마을 사람 중 한 명이 공포로 실성한 것인지 기사에게 달라붙어 그의 팔을 잡고 들어졌다.
기사는 덕분에 검은 휘두르지 못하고 발로 좀비의 복부를 차 넘어뜨렸다.
"꾸어억!"
"저.. 저... 저..."
기사가 정당한 이유로 휘두르는 검을 막으면 평민은 그 자리에서 목이 달아나도 할 말이 없다.
그렇지 않아도 힘든 싸움인데도, 오히려 지켜주는 상황인데도 도와주지는 못 할 망정 나서서 방해하던 남자는 지금 목이 달아나도 이상하지 않은 처지인 것도 잊고 크게 소리치고 말았다.
"크.. 크랙!!"
크랙.
그것은 어릴적 부터 남자와 함께 자라온 둘도 없는 친한 친구의 이름이였다.
하지만 남자에게 슬퍼할 틈 따위는 없었다.
남자가 계속 팔을 잡고 늘어지가 화가난 기사가 그를 거세게 떨쳐 낸 것이다.
남자가 좀비의 친구였다는 것은 기사에게도 놀라운 일이였지만, 친구를 잃은 남자의 슬픔을 같이 해주기엔 기사, 자신의 목숨이 너무나도 아까웠다.
그는 더 볼 것도 없다는 듯이 크랙이라 불리운 좀비의 목을 날렸다.
크랙의 목은 시커멓게 응고된 핏덩이를 튀기며 높게 떠올랐다.
그의 얼굴에선 어릴적 도랑에서 같이 뛰놀던 모습도, 한 여자를 두고 주먹 다툼을 하던 추억도 찾아볼 수 없었다.
--------------------------------------------------------
후아- 이제야 본격적으로 세번째 에피소드가 시작되었습다. ㅎㅎ
이제 벌써 #3인데.. 몇 편이나 잡아 먹을지는 저도 잘 모르겠네요.. ㅋㅋㅋ
그리고.. 지금 제가 뭐하는 짓인지 모르겠네요..
과제는 사정 안봐주고 밀어 닥치는데
계속 소설만 썼.. ㅋㅋㅋ
덕분에 다음 편은 좀 늦어질 듯 합니다.
죄송해요.. ㅠㅠ
질문, 의견, 오타 지적은 코멘트로 남겨주세요~
첫댓글 다음 편 기대할게요^^
감사합니다~ 되도록이면 빨리 올릴게요 ~ ^^
담편이 기대되요
감사합니다~ ㅎㅎ 열심히 쓸게요 ㅋㅋ
하악 너무 재밌어서 전편 댓글 다는것을 깜빡했넹...
아녜요 ㅋㅋ 재밌게 읽어주시는 것만해도 감사드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