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영진 모세 신부
<연중 제6주간 월요일 강론>
(2025. 2. 17. 월)(마르 8,11-13)
<“믿음이란,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바리사이들이 와서 예수님과 논쟁하기 시작하였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하였던
것이다. 예수님께서는 마음속으로 깊이 탄식하며
말씀하셨다.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말한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그러고 나서 그들을 버려두신 채
다시 배를 타고 건너편으로 가셨다(마르 8,11-13).”
1) 바리사이들이 예수님께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요구했다는 말은, 메시아라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어떤 놀라운 기적을 일으켜 보라고 요구했다는 뜻입니다.
‘그분을 시험하려고’ 라는 말은,
예수님을 믿고 싶어서 표징을 요구한 것이 아니라,
믿기 싫어서, 또는 안 믿었기 때문에
요구했음을 나타냅니다(루카 11,16).
<진짜 메시아가 아니니까 ‘하늘에서 오는 표징’을
보여 줄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안 믿으려고 작정한 자들이었기 때문에
예수님께서 기적을 일으키시더라도
그것을 기적으로(표징으로)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2) 요한복음 9장에 그런 상황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바리사이들 가운데에서 몇몇은 ‘그는 안식일을 지키지
않으므로 하느님에게서 온 사람이 아니오.’ 하고,
어떤 이들은 ‘죄인이 어떻게 그런 표징을 일으킬 수
있겠소?’ 하여, 그들 사이에 논란이 일어났다.
그리하여 그들이 눈이 멀었던 이에게 다시 물었다.
‘그가 당신 눈을 뜨게 해 주었는데, 당신은 그를
어떻게 생각하오?’ 그러자 그가 대답하였다.
‘그분은 예언자이십니다.’ 유다인들은 그가 눈이 멀었었는데
이제는 보게 되었다는 사실을 믿으려고 하지 않았다.
그리하여 앞을 볼 수 있게 된 그 사람의 부모를
불러, 그들에게 물었다. ‘이 사람이 태어날 때부터
눈이 멀었다는 당신네 아들이오?
그런데 지금은 어떻게 보게 되었소?’(요한 9,16-19)”
믿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정말로 놀라운 기적을
직접 보아도 믿으려고 하지 않고,
어떻게든 그것이 기적이 아니라는 것을 증명하려고,
또는 설명하려고 애를 씁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모습을 자주 보는데,
그렇게 설명하려고 애를 써도 안 되면,
‘미스터리’ 라고 그냥 덮어버리고,
기적이라는 것을 끝끝내 믿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깊이 탄식하신 것은,
바리사이들의 고집과 어리석음을 안타까워하신 것입니다.
하느님의 일을 믿기를 거부하고, 자꾸만 하느님에게서
멀어져 가기만 하는 고집과 어리석음을......
3) “어찌하여 이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는가?” 라는
말씀은, “이들은 왜 믿기를 거부하는가?” 라는 뜻입니다.
“이 세대는 어떠한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 라는 말씀은,
그들을 믿게 만들기 위한 기적은 일으키지 않겠다는 뜻으로
하신 말씀이기도 하고, 끝까지 믿기를 거부하는 자들은
구원받지 못하게 된다는 경고 말씀이기도 합니다.
마태오복음 16장을 보면, “악하고 절개 없는 세대가 표징을
요구하지만, 요나의 표징밖에는 아무런 표징도 받지 못할
것이다(마태 16,4).” 라는 말씀이 더 있습니다.
‘요나의 표징’은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래서 이 말씀은, “나의 부활 외에는 너희에게 보여 줄
표징이 없다.”, 또는 “내가 죽었다가 부활하는 것을
보게 되면, 너희가 나를 믿게 될 것이다.” 라는 뜻입니다.
실제로 사도들이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을 증언했을 때,
그 증언을 믿고 신자가 된 사람들이 많았습니다(사도 2,41).
<부활 자체를 안 믿은 사람들도 많았고......(사도 4,2).>
4) ‘표징’은 원래, 안 믿는 사람을 믿게 만들기 위한 일이
아니라, 믿는 사람들의 믿음을 확증해 주는 일입니다.
<표징보다 믿음이 먼저라는 것입니다.>
‘카나의 혼인 잔치’ 이야기에,
표징과 믿음이 동시에 언급되어 있습니다.
“이렇게 예수님께서는 처음으로 갈릴래아 카나에서 표징을
일으키시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셨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요한 2,11).”
‘카나의 혼인 잔치’에서 예수님께서 물을 포도주로 바꾸신
일은, 당신이 어떤 분인지를 드러내신 ‘표징’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제자들은 예수님을 믿게 되었다.” 라는 말은,
예수님을 안 믿고 있다가 믿게 되었다는 뜻이 아니라,
‘표징’을 보고서 자신들이 예수님을 믿고 제자가 된 것이
옳은 일이었다는 것을 확신하게 되었다는 뜻입니다.
마르코복음의 끝부분에, ‘표징’의 역할이 무엇인지를
나타내는 말이 나옵니다.
“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말씀하신 다음
승천하시어 하느님 오른쪽에 앉으셨다.
제자들은 떠나가서 곳곳에 복음을 선포하였다.
주님께서는 그들과 함께 일하시면서
표징들이 뒤따르게 하시어,
그들이 전하는 말씀을 확증해 주셨다(마르 16,19-20).”
5) 그런데 예수님을 안 믿었던 사람이 어떤 놀라운 체험을
한 뒤에 믿게 되는 경우가 실제로 많이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표징이 먼저 있었고 믿음이 나중이라고
말할 수 있는 경우 같기는 한데, 사실은 그런 사람은,
본인은 의식하지 못하고 있었더라도,
마음속으로는 믿고 싶어 했고,
믿으려고 노력한 사람이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사실 많은 경우에, “믿음이란, 믿으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전주교구 송영진 모세 신부
[출처] 연중 제6주간 월요일 강론|작성자 송영진 모세 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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