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수지 [박완호]
저수지는 커다란 구멍으로 구름을 삼켜댔다. 저수지가
입을 벌렸다 다물 때마다 수면에 맺힌 그림자들이 한꺼번
에 지워졌다. 구름에 가려 있던 새들까지 삼켜버린 걸까?
허공을 흔들어대던 새 울음소리가 갑자기 들리지 않을 때
도 있었다. 날개 없는 것들은 잔물결을 타고 물가를 끊임
없이 떠돌았다. 모로 드러누운 산 그림자를 삼키다 말고 게
워내는 물빛이 역류성식도염처럼 검푸르게 반짝였다. 저
녁이면 고무 탄내를 풍기며 비포장길을 돌아가는 바퀴 소
리가 산 그림자 속을 파고들었다. 젊은 부부가 나란히 누운
산등성이 쪽으로 부는 바람은 자주 노을빛을 띠었지만 깊
은 밤 저수지를 서성이는 사람의 속내까지는 물들이지 못
했다. 물 위에 뜬 그림자들을 삼켜댈수록 저수지 가를 떠도
는 그림자들은 점점 늘어만 갔다. 저수지의 큰 구멍이 입이
아닌 자궁일지도 모른다는 말이 들려온 것은 그것 때문이
었을지도 모른다.
- 문득 세상 전부가 되는 누군가처럼, 북인, 2022
* 호수 또는 저수지는 낚시꾼들에게나 필요한 장소였지만 지금은 카페가 들어서고부터는
많은 사람들이 찰랑거리는 물과 햇빛에 반짝이는 윤슬을 보기 위해 가는 장소가 되었다.
카페 하나가 들어서면 또 하나가 들어서고 줄줄이 들어서도 많은 사람들이 찾는다.
맛있는 빵과 커피를 먹으려고 온다기보다 함께하는 시간을 갖고자 온다고 봐야 한다.
물뱀이 헤엄치고 가오리가 왼발 들고 물속의 고기를 잡고 오리가 궁둥이 내밀고 물속에 머리를 처박는다.
보너스로 수면에 뛰어드는 하늘과 구름과 물가에 심어진 나무는 미장센이다.
내가 자주 가는 신정호에는 맛있는 빵을 파는 카페가 있고 맛있는 커피를 파는 카페가 있다.
빵도 맛있고 커피도 맛있는 카페가 없어서 아쉽지만 윤슬이 보고싶거나 풍만한 하트가 그려진 라떼가 보고 싶으면 가보곤 한다.
맑은 날은 맑은대로, 흐린 날은 흐린대로 찰랑거리는 물빛을 보러 호수 또는 저수지를 간다.
모든 이들이 찰랑거리는 물을 바라보면서 넉넉한 마음이 되었으면 좋겠다.
** 22년 시와편견 여름호에 실린 주페의 '시와 감상글'입니다. 일명, '파란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