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2-23 주일설교
본문: 누가복음 14:25-33
제목: 주의 참된 제자
1. 망대를 준공하고 전쟁에 승리하는 길이다
주의 참된 제자가 되는 것은 망대를 세우는 것과 같다.
“너희 중의 누가 망대를 세우고자 할질대 자기의 가진 것이 준공하기까지에 족할는지 먼저 앉아 그 비용을 계산하지 아니하겠느냐 그렇게 아니하여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하면
보는 자가 다 비웃어 이르되 이 사람이 공사를 시작하고 능히 이루지 못하였다 하리라”(28-30)
준공하기까지 그 비용을 촘촘히 계산하지도 않고 무모하게 뛰어 드는 자는
그 기초만 쌓고 능히 이루지 못할 것이다.
보는 자가 다 비웃으며, 입술로만 제자훈련이지, 참된 제자는 되지 못했다고 할 것이다.
주님의 제자가 되는 것이 십자가의 길인 것을 깊이 생각도 해보지 않고
거짓 선생들의 사탕발림에 속아 제자가 된 줄로 여기고 있다가는
지옥 불 앞에 가서야 제자가 아닌 악인이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주의 참된 제자가 되는 것은 전쟁에 승리하는 임금과 같다.
“또 어떤 임금이 다른 임금과 싸우러 갈 때에 먼저 앉아 일만 명으로써
저 이만 명을 거느리고 오는 자를 대적할 수 있을까 헤아리지 아니하겠느냐
만일 못할 터이면 그가 아직 멀리 있을 때에 사신을 보내어 화친을 청할지니라”(31-32)
전쟁을 하기 전에 적진의 상황을 알지도 못하고 무모하게 뛰어들었다가는 패망하고 만다.
수많은 무리들은 이와 같이 망대도 세우지 못하고 전쟁에 이기지도 못하고 패망하고 만다.
그 말은 ‘능히 주의 제자’가 되지 못하는 것은 ‘구원’도 ‘천국’도 없다는 말이다.
제자 수준 따로 있고, 보통 수준 따로 있다고 안심하고 있는 사람들은
적그리스도와 거짓 선지자들의 사탕발림과 미혹에 넘어가고 있는 사람들이다.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멸망으로 인도하는 문은 크고 그 길이 넓어 그리로 들어가는 자가 많고
생명으로 인도하는 문은 좁고 그 길이 협착하여 찾는 이가 적음이라
거짓 선지자들을 삼가라 양의 옷을 입고 너희에게 나아오나 속에는 노략질하는 이리라
그들의 열매로 그들을 알지니”(마7:13-16)
그들의 성품과 삶의 열매를 보면 그들의 정체를 알 수 있다고 하시는데도,
사람들은 그들이 입은 ‘양의 옷’ 곧 외모와 외식, 학력과 경력만 보고
‘노략질하는 이리’의 실체를 보지 못하고 속아 넘어가고 있다.
16세기 종교개혁 이후 오늘날까지 교회를 채우고 있는 ‘수많은 무리들’은
구약 이스라엘을 채우고 있던 수많은 무리들과
중세 카톨릭을 채우고 있던 수많은 무리들과 다를 바가 전혀 없다.
그들의 운명은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의 다수의 운명과 같을 수 밖에 없다.
“그러나 그들의 다수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아니하셨으므로
그들이 광야에서 멸망을 받았느니라”(고전10:5)
그들의 다수는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았고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었으며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신 자들이었다.
나라의 본 자손들인데, 그들이 바깥 어두운 데 쫓겨나 슬피 울며 이를 간다고 하셨다.
홍해를 건넌 다수들이여, 나라의 본 자손들이여, 주의 말씀을 들으라!
“너희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모든 선지자는 하나님 나라에 있고
오직 너희는 밖에 쫓겨난 것을 볼 때에 거기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눅13:28)
사도 바울은 제자는 곧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라고 한다.
“우리가 그를 전파하여 각 사람을 권하고 모든 지혜로 각 사람을 가르침은
각 사람을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로 세우려 함이니”(골1:28)
그리스도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완전한 자가 되는 것이다.
다윗과 같이 마음의 완전함과 손의 능숙함을 갖추는 것이다.
성경에서 교훈과 책망을 받아, 온전한 사람과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는 것이다.
산상수훈의 팔복을 사는 사람이 주의 참된 제자이다.
특히 발도인들의 기록을 보면 그들은 산상수훈의 말씀을 암송하고 그대로 살기를 힘썼다.
심령이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 긍휼히 여기는 자,
마음이 청결한 자, 화평케 하는 자, 의를 위하여 박해를 받는 자는 복이 있고 상이 크다.
2. 혈연에 매이지 않아야 한다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고”(26)
마태복음에서는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하셨다.(10:37)
주의 제자가 된다는 것은 부모형제 혈연 사랑에다가 악세사리 하나 더 차는 것이 아니다.
주를 따른다고 하는 ‘수많은 무리들’, ‘나라의 본 자손들’은 악세사리 하나 더 차는 것이다.
주님은 그들의 마음 속 어디에도 들어갈 자리가 없다.
먹으로 돌판에 쓰는 그리스도의 편지일 뿐이다.
부모 처자 형제를 버리라는 말이 아니다. 인연을 끊으라는 말이 아니다.
혈연에 매여 안달박달하는 사람은,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할 수 없고 마음으로 따를 수 없다.
머리 돌판에서 먹물의 그리스도만 맴돌 뿐이다.
모세는 참된 레위 지파가 곧 주의 제자인 것을 말씀하고 있다.
“그는 자기 부모에게 대하여 이르기를 내가 그들을 보지 못하였다 하며 그의 형제들을
인정하지 아니하며 그의 자녀를 알지 아니한 것은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킴으로 말미암음으로다 주의 법도를 야곱에게, 주의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가르치며 주 앞에 분향하고 온전한 번제를 주의 제단 위에 드리리로다”(9-10)
주의 말씀을 준행하고 주의 언약을 지킨다면, 혈연 관계가 하나님보다 우선일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럴 수 있는 사람만이 주의 법도와 율법을 제대로 가르칠 수 있고,
예배도 제사도 제대로 드릴 수 있다는 것이다.
혈연 관계가 중심이고 우선인 사람은 주의 말씀과 언약을 지킬 수도 없고
그 말씀을 제대로 가르칠 수도 없고 예배도 제대로 드릴 수 없다는 말씀이다.
능히 주의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상담학 가르침처럼 가정 행복이 최우선인 사람들은 주의 제자가 능히 될 수 없고,
오직 능히 혈연의 제자가 될 뿐이다.
그런데, 그런 사람이 정말 혈연을 사랑하는 사람이냐? 그렇지 않다.
마음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이웃도, 혈연도 자신 같이 사랑할 수가 없다.
자기 마음을 비우지 못하는 사람은 자기가 왕이고 주인이고 선장이고 하나님일 수밖에 없다.
혈연도 말뿐이지 오직 이기적이고 자기 중심적인 자기 사랑일 뿐이다.
3.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라야 한다
주의 참된 제자가 되는 길은 주님이 지고 가신 십자가의 길을 따라 가는 것이다.
자기 십자가는 자기가 죽은 십자가이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혀서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다.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것이, 주의 참된 제자의 길이다.
내 지혜와 의지와 노력만으로는 능히 될 수가 없는 것이, 제자의 길이다.
물과 성령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능히 따를 수 없는 길이다.
살아 있고 항상 있는 말씀으로 거듭나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길이다.
이전 것은 지나가고 새 것이 되는 새로운 피조물이 되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길이다.
회개하고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지 않고서는 갈 수 없는 길이다.
내 의지와 결단으로는 작심3일로 끝날 뿐이다.
제자임을 알 수 있는 그들의 열매가 없다면, 다 헛수고이고, 위선과 외식일 뿐이다.
선지자와 사도들은, 발도인들과 위그노들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랐다.
능히 주의 제자가 되었다.
그들에게 주의 말씀은 영이고 생명이었다.
어떤 환경과 처지, 어떤 박해와 처형에도, 그들은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랐다.
마음판에 영으로 쓴 주의 말씀이 영이 되고 생명이 되어
주의 피로 세운 새 언약의 말씀이 마음에 생각에 기록되어 행함으로 살았다.
주의 말씀을 듣고 행함으로 반석 위에 집을 지었다.
망대를 세웠고 마귀와의 전쟁에서 믿음으로 선한 싸움을 싸워 주로 말미암아 넉넉히 이겼다.
사망도 생명도 그리스도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음을 확신하였다.
자기가 죽지 않는 사람의 사랑은 하나님 사랑도 이웃 사랑도
형식적이고 외식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마음을 다해 목숨을 다해 뜻을 다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랑이 그 마음을 차지하지 않으면,
혈연 사랑 이웃 사랑 다 자기 사랑의 포장이요 겉치레일 수밖에 없다.
첫째 계명 없이 둘째 계명 있을 수 없고, 두 계명은 하나이지 둘이 아니다.
순서가 있을 뿐이지 하나로 전체인 것이다.
그래서 이웃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라고, 율법을 다 이루었다고 하는 것이다.
자기 십자가는 내가 나를 죽이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자살의 살인일 뿐이다.
자기 십자가를 지는 것은 예수의 죽음을 항상 내 몸에 짊어짐이요
예수를 위하여 자기가 항상 죽음에 넘겨지는 것이다.
“우리가 항상 예수의 죽음을 몸에 짊어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몸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
우리 살아 있는 자가 항상 예수를 위하여 죽음에 넘겨짐은
예수의 생명이 또한 우리 죽을 육체에 나타나게 하려 함이라”(고후4:10-11)
예수의 십자가 죽음이 속량과 승천과 영광을 낳았고,
순교자들의 죽음이 예수의 생명을 더욱 나타나게 했고,
그로 인하여 참교회들을 세웠고, 참된 개혁과 르네상스를 낳았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 되었고, 참된 부흥과, 세상의 변화, 곧 르네상스를, 낳았다.
4.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려야 한다
“이와 같이 너희 중의 누구든지 자기의 모든 소유를 버리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하리라”(33)
베드로와 안드레, 요한과 야고보는 그물과 모든 것을 버리고 주님을 따랐다.
사도 바울은 자기에게 유익하던 모든 것을 해로 배설물로 여기고 다 버렸다.
버리지 못하는 자기의 모든 소유가 곧 우상이고 하나님과 원수가 되게 한다.
‘지극히 작은 자 하나에게 한 것’(마 25장)으로,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사 58장)으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약 1장)으로 돌아가야 한다.
망대를 준공하고, 전쟁에 승리하는, 자기 십자가를 지고 주님을 따르는 주의 참된 제자가 되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