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만수 / 베트남에서(신중현 작편곡 제1집) 2월 8일 입고예정 가격/40,000원
Side. A
1. 놀랬지요
2. 그대를 두고 갈때
3. 떠나는 사나이
4. 언췌인 멜로듸
5. 울리 불리
6. 그다방
Side. B
1. 베트남에서(록색 유니폼)
2. 왜 안오시나요!
3. 그대품에 안길 때
4. 물망초
5. 모르겠네!
6. 고독한 신세, 고독氏
180g Virgin Vinyl
日本 東洋化成 Pressing
브로마이드, 인서트, 스티커 포함
700매 한정반
한국 록의 대부 신중현의 첫 작편곡집
구하기 힘든 희귀음반을 품에 안게 될 때마다 전율을 느낀다. 음반을 수집해 본 사람이라면 공감이 가는 이야기일 것이다. ‘신중현’이란 이름 석 자가 들어간 앨범은 가요음반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콜렉터스 아이템으로 정평이 나 있다. 실제로 60년대에 발매된 신중현 음반들은 개체수가 워낙 극소수라 대부분 실물을 직접 보기가 너무나 힘들다.
대중가요 LP수집의 화두인 신중현 음반 중 딱 한 번 실물을 보았지만 엄청난 고가라 구입을 포기해 마음이 쓰렸던 음반이 있다. 최근 그 음반을 한 근현대관련 오프 경매에서 발견하고 호흡곤란이 왔다. 아무도 그 음반의 존재를 모를 것이기에 저렴하게 낙찰 받을 생각에 전율이 밀려왔다. 착각이었다. 한 젊은 친구가 핸드폰으로 검색한 후에 마구 덤벼들었다. 결국, 엄청난 대가를 치르고 나서야 그 음반을 품에 안았다.
그 음반은 바로 이번에 180g 한정본 LP와 CD로 재발매된 송만수의 유일한 독집「베트남에서」이다. 만약 가수 송만수의 이름을 기억한다면 신중현사단에 대해 꽤나 관심이 있는 음악애호가일 것이다. 송만수는 한국 소울의 대부 박인수, 연세대 응원단장 출신의 가수 겸 방송 진행자 임성훈과 더불어 신중현이 리드했던 밴드 퀘션스의 객원보컬로 활동했던 가수로만 그동안 알려져 있다. 송만수가 밴드 퀘션스 첫 앨범과 라이브 음반에 객원보컬로 참여하게 된 것은 바로 자신의 첫 독집을 신중현이 작편곡을 해준 인연 때문이었다.
가수 송만수에 대한 구체적 정보는 그 정도가 전부이다. 이 앨범의 재발매 소식과 라이너노트를 의뢰받은 이후, 그에 대한 티끌만한 정보라도 찾기 위해 백방으로 노력했지만 인터뷰 기사 하나조차 찾지 못했다. 그의 이름이 등장하는 기사 한 개를 찾았을 뿐이다. 어쩌면 이 앨범의 발매하게 된 계기에 대한 실마리가 될지도 모른다. “송만수는 1966년 11월 30일 오전 8시 군용기 편으로 파월장병위문 종군연예인단의 일원으로 25일간 베트남으로 떠났다. 단장 박시춘. 현인, 도미, 서영춘, 한명숙, 권혜경, 박재란 등.”
한국은 베트남전쟁이 치열해지기 시작한 1964년부터 휴전협정이 조인된 1973년까지 8년간에 걸쳐 국군을 현지에 파견하였다. 우리는 그들을 파월장병이라 부른다. 우리의 젊은이들이 베트남전쟁에 참전하기 시작하면서 한집 건너 ‘파월장병’을 두게 된 이 땅에서 ‘베트남’은 최대 화두로 떠오르기 시작했다. 당시 베트남과 파월장병을 소재로 한 대중가요들이 무수하게 발표된 사실이 그것을 증명한다.
1968년 이전에 발매된 대중가요 음반들이 그렇듯 이 앨범에도 발매 년도가 표기되어 있지 않다. 그래서 1966년, 1967년으로 제작시기에 대한 혼동이 있지만 음악저작권협회에는 1965년으로 등록이 되어있다. 1965년이라면 신중현이 결성한 에드포가 미8군을 벗어나 일반무대에서 활발한 활동을 벌였지만 큰 반응을 얻지 못하고 해체를 고민했던 해이다. 이 음반의 세션을 에드포가 아닌 당시 미8군 무대에서 활동했던 ‘이동기와 그 악단’이 맡은 이유와도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1965년 발매된 송만수의 첫 독집은 베트남전쟁에 대한 관심을 뜨거웠던 사회적 분위기에서 발매된 음반 중에 하나이다. 타이틀곡이 ‘록색유니폼’이란 부제를 단 행진곡풍의 <베트남에서>이기 때문이다.
수록된 총 16곡 중 <베트남에서>등 신중현의 창작곡은 7곡이고 나머지는 외국 팝송을 개사한 번안 곡들로 구성되어 있다. 모든 곡에 영어로 ‘Rock Twist', 'Hill Billy', 'Blues', 'Swing March', 'Jazz Samba' 등으로 다양한 서구의 음악 장르를 표기해 한 것이 시선을 잡아끈다. 앨범은 당시 유행했던 트위스트 열풍을 말해주듯 Rock Twist인 신중현의 창작곡 <놀랬지요>로 문을 연다. 송만수는 맑은 미성으로 개성 넘치는 가창력을 들려주는 가사 전달이 명징한 장점이 있다. 이어지는 신중현의 창작곡 <그대를 두고 갈때>는 느릿하게 끈적거리는 분위기와 유려한 멜로리가 귀에 감겨 온다.
귀에 익숙한 팝송의 번안 곡들에서도 송만수는 진성과 가성을 넘나드는 수준급의 가창력을 들려준다. 이처럼 송만수는 질감이 다른 다양한 노래를 자신의 스타일로 자유자재로 풀어낸 이 앨범은 ‘이동기와 그 악단’의 수준급 연주와 더불어 시종일관 기분 좋은 감상을 안겨준다. 하지만 팝송 를 번안한 <그대 품에 안길때>가 가사내용이 저속하다는 이유로 금지되며 이 앨범은 당대 대중과의 소통에 실패한다.
송만수는 이 음반을 발매한 이후 파월장병위문 종군연예인단의 일원으로 베트남 현지에서 위문공연을 벌였다. 월남에서 돌아온 송만수는 1970년 신중현의 새로운 밴드 퀘션스에 객원가수로 참여하며 의기투합했다. 퀘션스 정규 1집에서 송만수는 신중현이 작곡한 <그대는 바보>,< 명동거리>와 그리고 이미 자신의 첫 독집에서 불렀던 <베트남에서>를 퀘션스의 연주로 다시 녹음해 수록했다. 또한 퀘션스의 시민회관 공연 실황을 담은 라이브앨범에서도 펄시스터즈, 트윈폴리오, 김선이 불렀던 <떠나야할 그 사람>을 다시 불렀다.
송만수는 어떤 경로로 데뷔했는지 조차 알려진 바가 없는 베일에 가려진 가수이다. 그의 유일한 독집도 실물을 직접 본 사람이 거의 없기에 발굴에 가깝다. 이 앨범의 가치는 맛깔난 노래와 어마어마한 가격에 거래되는 희귀음반이라는 점도 있지만 신중현선생이 다른 가수에게 곡을 주고 편곡 작업을 한 최초의 작편곡집이라는 점에서 광채를 발한다. 비록 대중적으로 각광을 받지 못한 비운의 앨범이지만 1970년대에 흥행보증수표로 통했던 신중현 브랜드의 가치는 이 앨범으로부터 시작되었다는 점에서 너무나 중요한 앨범이다.
글 /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장현 and The Men / 석양,안개속의여인,아름다운강산(신중현 작곡집) 2월 8일 입고예정 가격/40,000원
Side. A 1. 석양 2. 안개 속의 여인 3. 미련 4. 너를 사랑하네 5. 마음의 소리 Side. B 1. 아름다운 강산(THE MEN) 2. 잔디(THE MEN
180g Virgin Vinyl
日本 東洋化成 Pressing
게이트 폴더 쟈켓, 브로마이드, 스티커 포함
700매 한정반
한국록의 명곡 ‘아름다운 강산’의 오리지널 버전이 수록된 명반
신중현이 결성한 많은 밴드 중 가장 음악적으로나 대중적으로 최고의 성과를 이뤄낸 밴드는 ‘한국적 록 음악의 완성을 이뤘다’고 평가받는 ‘신중현과 엽전들’이다. 하지만, 더 맨을 신중현 음악의 정점이라 평가하는 음악전문가들과 록 애호가들도 상당하다. 이는 더 맨이 더 없이 풍성하고 세련된 한국적 록 사운드를 구현했기 때문일 것이다. 또한 신중현 사단의 전설적인 싸이키델릭 여성보컬리스트 김정미의 발굴과 무엇보다 한국 록의 명곡 <아름다운 강산>이 더 맨 시절에 탄생했음도 중요한 이유일 것이다.
신중현이 리드했던 더 맨은 리드 기타 신중현, 베이스 기타 이태현, 드럼 문영배, 오르간 김기표, 오보에와 색소폰 손학래, 리드 보컬리스트 박광수의 6인조 라인업으로 구성된 록밴드였다. 더 맨의 첫 앨범 제작이 끝나가던 1972년 10월 17일에 군사정권은 비상계엄령을 선포하며 유신정권을 출범했다. 이는 전성기를 내달리던 신중현에게 좌절의 시간이 다가왔음을 예고하는 것이기도 했다. 1972년 10월 29일 유니버샬레코드는 총 7곡을 수록한 더 맨의 첫 독집「장현 and THE Men」을 발매했다.
타이틀곡은 석양을 배경으로 한 앨범 재킷과 어울리는 장현의 히트곡 <석양>이다. 느리게 흐르는 이 노래에서 저음 가수 장현(본명 장준기)이 가성으로 부른 음색은 매력적이다. 1970년 신중현의 창작곡 <기다리겠소>로 데뷔한 장현은 이 앨범 발표 당시 신중현 사단의 가장 인기 있는 남자가수였다. 그는 1975년 활동 금지된 이후에도 베스트 앨범을 양산할 만큼 대중적인 인지도가 높았다.
앨범 타이틀「장현 And The Men」을 보면 1면에 수록한 <석양>,< 안개속의 여인>, <미련>등 전곡을 노래한 장현을 더 맨의 리더나 리드보컬로 오해할 수 있다. 앨범 타이틀은 장현의 인지도를 이용한 음반사의 판매 전략이었을 뿐, 당시 더 맨의 리드보컬은 한국 블루스 보컬의 선구자인 박광수였다. 인기가수 장현을 앞세운 판매 전략 덕분에 이 앨범은 상업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하지만 상업적 성공여부와 상관없이 이 음반이 한국 록의 명반으로 평가받는 이유는 따로 있다. 2면을 꽉 채운 더 맨의 <아름다운 강산>오리지널 버전과 금지곡 <잔디>가 수록되어 있기 때문이다.
<아름다운 강산>의 오리지널 버전
유신정권이 가동되었던 1972년에 신중현은 “박정희 대통령의 노래를 만들라”는 청와대의 전화 청탁을 거절한 후 온갖 통제에 시달렸다고 전해진다. 그로 인해 유신정권에 강한 거부감을 갖게 된 신중현은 자신이 생각하는 애국가를 만들어보았다. 그 노래가 바로 러닝타임 10분의 대곡 <아름다운 강산>이다. 이 음반을 통해 발표된 <아름다운 강산>의 오리지널 버전은 박광수의 저음 보컬에 신중현 등 멤버들의 코러스가 가미되어 구성했다.
앨범발매 후 박광수는 당시 정부의 장발 단속에 대한 항의 표시로 삭발을 단행했고, 나머지 멤버들은 장발에 머리핀을 꽂아 귀만 드러낸 모습으로 한 지상파 TV 쇼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도발을 감행했다. 이들은 태극기가 휘날리는 엄숙한 장면에서 현란한 사이키 조명으로 정권을 조롱하며, 앨범에 수록한 버전보다 훨씬 긴 18분 동안 <아름다운 강산>을 연주했다. 일종의 음악적 시위였다. 방송 출연 이후 더 맨의 멤버들은 요주의 대상으로 낙인찍혔다. 리드 보컬 박광수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아름다운 강산>은 원래 신중현씨가 통기타로 만든 곡입니다. 처음 이 노래를 선보였던 무대는 청평 페스티벌이었는데 관객들의 반응이 대단했죠.”라고 당시를 회고했다.
<아름다운 강산>과 함께 이 앨범의 대표적인 금지곡인 <잔디>의 제목은 대마초를 상징하는 경상도 지방의 은어이다. 이 곡은 묵직한 박광수의 보컬, 가성으로 부른 신중현의 코러스, 더 맨의 사이키델릭 사운드 연주가 어우러진 한국 록의 숨은 명곡이다. 박광수는 인터뷰에서 “솔직히 저는 <아름다운 강산>보다 <잔디>에 더 애착이 갑니다. 그 노래 때문에 대마초 사건 때 기관에 끌려가 호되게 당했지만요.”라며 노래에 대한 강력한 애정을 드러냈다.
한국 록 음악 최고의 명곡 <아름다운 강산>
<아름다운 강산>은 이후 김정미, 신중현과 엽전들 등 많은 신중현사단 가수의 음반에 재 수록되며 대중 속으로 파고들었다. 하지만 1975년 대마초 파동으로 활동이 금지된 신중현과 운명을 함께했다. 이 앨범은 1972년 10월 발매한 초반이 조기 매진되면서 이듬해인 1973년에 여러 차례 추가 제작되었을 정도의 히트앨범이다. 하지만 판매금지처분이 내려지면서 상당량이 폐기되었고 공개적으로 들을 수 없는 불온(?)한 음반으로 낙인찍히면서 이제는 쉽게 구할 수 없는 희귀 고가음반으로 둔갑했다.
해금 조치 후 컴백한 신중현은 1980년 신중현과 뮤직파워를 결성해 <아름다운 강산>을 다시 불렀다. 이후 이 노래는 이문세, 노브레인 등 수많은 가수들이 리메이크했다. 특히 1988년 이선희가 부른 버전은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며 국민가요로 사랑받는 계기를 마련했다. 그동안 신중현 음반들이 무수하게 재 발매된 점을 생각하면 신중현 음악의 정점인 이 앨범의 재발매는 너무 늦은 감이 있다. 소량의 한정반이긴 해도 180g 중량반으로 제작된 LP와 CD까지 동시에 이뤄진 이 앨범의 재발매는 그 자체만으로 큰 의미가 있다.
글 / 최규성 대중문화평론가. 한국대중가요연구소 대표
|
첫댓글 장현 두조 예약합니다
각1장예약요
예약이요
장현과 더맨 1장 예약이요~이미 받은 cd 정말 좋네요^^;
장현 예약. 입고되면 뵈야겠네요.
입고되엇습니다.
송만수의 베트남에서와 장현과 The Men 각 1장 예약합니다.
네~입고되면 연락 드리겠습니다.
장현 and The Men 예약 합니다.
3월 이후로 연기되었습니다,
장현 1장 예약 합니다.
장현더맨 1장 구매가능한가요?
죄송합니다.,품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