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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 外編 14篇 天運篇 第3章(장자 외편 14편 천운편 제3장)
황제黃帝의 신하 북문성北門成이 황제黃帝에게 이렇게 물었다.
“임금께서는 함지咸池의 음악을 저 광원막대廣遠莫大한 동정洞庭의 들판에서 악기를 늘어놓고 연주하셨는데, 저는 처음에 첫 번째 연주를 듣고서는 두려움에 빠졌고 다시 두 번째 연주를 듣고서는 두려움이 사라져 나른해지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연주를 들었을 때는 어지러워져 마음이 흔들리고 할 말조차 잊고서 마침내 스스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황제黃帝가 이렇게 말했다.
“너는 아마도 그랬겠지. 나는 먼저 인간 세상의 규율에 따라 연주하고, 자연의 흐름에 따라 소리가 울리게 하고, 예의의 질서를 갖추고 연주를 진행했으며, 태청太淸의 맑고 맑은 무위자연의 경지에 맞게 그것을 맺어 나갔다. 그리하여 사계절이 교대로 일어나면 만물이 그에 따라 생겨나듯이 혹은 성대해지고 혹은 쇠퇴하는 가운데 문文의 부드러운 음색音色과 무武의 강직한 음색이 차례대로 정돈整頓되며, 소리가 맑아졌다 탁해졌다 하는 가운데 마치 음양陰陽의 기氣처럼 잘 조화調和된다. 그리하여 잘 조화된 음악 소리가 널리 흘러 퍼지면서 동면하고 있던 벌레가 비로소 일어나면 나는 또 뢰정雷霆의 울림으로 이들을 놀라게 했다. 이 음악은 마침이 어디인지 알 수 없으며 시작이 어딘지도 알 수 없어서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기도 하며 엎어졌다가 다시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일정함이 끝이 없어서 하나도 예측할 수 없으니 너는 그 때문에 두려워했을 것이다.”
“나는 또 음양의 조화에 따라 연주하고, 해와 달의 밝음을 따라 음악을 화려하게 연주하였더니, 그 소리를 짧게 끊어지게 할 수도 있고 길게 늘어지게 할 수도 있으며 부드럽게 할 수도 있고 굳세게 할 수도 있게 되어 일제히 변화하여 옛 가락에 구애받지 않아서 골짜기를 만나면 골짜기를 채우고 작은 구덩이를 만나면 구덩이를 채우다가 욕망의 틈을 막고 정신을 지켜서 대상對象 사물의 있는 그대로에 순응順應해 나가니 그 소리는 맑게 울리고 그 〈함지악咸池樂이라는〉 이름도 높고 밝게 빛났다.
그 때문에 귀신도 어두운 곳을 지켜 떠나지 않고 일월성신도 제 길을 따라 움직이는데 나는 〈연주演奏를〉 어느 때는 유한有限의 세계에 그치기도 하고 어느 때는 그침이 없는 무한의 세계에까지 흘려보내기도 한다네. 자네가 아무리 헤아려 보아도 알 수 없으며, 아무리 바라보아도 볼 수 없으며 아무리 쫓아가도 미칠 수 없다. 그러다 자네는 흐리멍덩 넋이 나간 채 사방으로 끝없이 터진 대도大道 가운데 서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말라 버린 오동나무 책상에 기대어 신음 소리만 낼 것일세. 그 까닭은 눈의 지각 능력은 보고자 하는 데서 다하고 힘은 쫓아가고자 하는 데서 다하기 때문이다. 나도 이미 거기에 미칠 수 없다. 인간의 육체에 공허함이 가득 차서 마침내 힘이 빠져 흐느적 흐느적 종잡을 수 없게 되니 너도 이처럼 종잡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느슨해졌던 것이다.”
“나는 또 나른함을 없애는 소리를 연주하고, 자연自然의 명령에 따라 조절하였다네. 그랬더니 만물이 떨기로 자라는 것처럼 이리저리 뒤섞여서 서로 쫓아다니며 모두 크게 즐거워하면서도 그렇게 만든 음악의 모습은 보이지 않으며 널리 울려 퍼지는데도 끌고 다니지 않으며, 그윽하고 어두운 가운데 아무 소리도 없다. 일정한 방향 없이 움직이고 그윽하고 어두운 근원의 세계에 조용히 머물러 있으니 어떤 사람은 죽었다 하고 어떤 사람은 살아 있다 하고 어떤 사람은 충실하다 하고 어떤 사람은 열매 없이 꽃만 무성하다 한다. 자유자재로 유전流轉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녀서 일정한 소리에 얽매이지 않으니 세상 사람들이 의심하여 성인聖人에게 물어본다. 성인聖人이란 자기自己의 정성情性을 남김없이 실현하고 주어진 명령을 완수하는 존재이다. 자연의 조화造化(천기天機)를 인위적으로 펼치지 않아도 오관五官의 기능이 갖추어져 있으니 이것을 일러 천악天樂이라 하니 말없이 마음으로 기뻐할 따름이다.
그 때문에 그 옛날 유혁씨有焱氏도 이 함지악咸池樂을 기리는 글을 지어 이렇게 말했다. ‘들으려 해도 그 소리가 들리지 않으며 보려 해도 그 모습이 보이지 않고 천지 사이에 충만하며 육극六極을 감싸 안는다.’ 그러니 너는 이 음악을 들으려 해도 접할 수 없다. 네가 그래서 어지러워진 것일 게다.
이 함지咸池의 음악은 처음에는 듣는 자에게 두려움의 감정을 갖게 하나니, 두려워하게 되기에 불안감이 생긴다. 나는 다음으로 또 듣는 자를 나른하게 하는 음악을 연주하니 나른해지기에 멀리 도망치게 된다. 마지막으로 듣는 자를 어지럽게 하는 음악을 연주하니 어지러워지기에 어리석게 된다. 어리석어지기에 도道와 하나가 될 수 있으니 〈이렇게 되면〉 도道에 내 몸을 싣고 도와 함께할 수 있는 것이다.”
北門成問於黃帝曰 帝張咸池之樂於洞庭之野
吾始聞之懼 復聞之怠 卒聞之而惑 蕩蕩黙黙 乃不自得
(북문성이 문어황제하야 왈 제 장함지지락어동정지야이어시늘
오 시문지구하고 복문지태하고 졸문지이혹하야 탕탕묵묵하야 내부자득호이다)
황제黃帝의 신하 북문성北門成이 황제黃帝에게 이렇게 물었다.
“임금께서는 함지咸池의 음악을 저 광원막대廣遠莫大한 동정洞庭의 들판에서 악기를 늘어놓고 연주하셨는데, 저는 처음에 첫 번째 연주를 듣고서는 두려움에 빠졌고 다시 두 번째 연주를 듣고서는 두려움이 사라져 나른해지고 마지막으로 세 번째 연주를 들었을 때는 어지러워져 마음이 흔들리고 할 말조차 잊고서 마침내 스스로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말았습니다.”
☞ 북문성北門成 : 인명. 작자作者가 창작한 가공의 인물.
☞ 황제黃帝 : 고대 전설상의 임금으로 삼황오제의 한 사람. 여기서는 음악의 작곡자이자 연주가로 등장
☞ 장함지지락어동정지야張咸池之樂於洞庭之野 : 황제가 함지咸池의 음악을 하늘과 땅의 사이 광원막대廣遠莫大한 허무虛無의 들판(즉, 우주宇宙의 동정洞庭의 들판)에서 악기를 늘어놓고 연주하였다는 뜻. 함지咸池는 악곡의 명칭이다. “황제가 작곡한 음악의 명칭이다. 요가 증수해서 연주했다. 함咸은 모두라는 뜻이고 지池라는 말의 뜻은 베푼다는 뜻이니 덕이 베풀어지지 않음이 없음을 말한 것이다.”(정현鄭玄)
☞ 문지구聞之懼 : 듣고 두려워 불안不安에 긴장한다는 뜻.
☞ 복문지태復聞之怠 : 마음이 느슨해져 두려움이 사라지고 나른해진다는 뜻.
☞ 졸문지이혹卒聞之而惑 : 마지막으로 세 번째 연주를 들었을 때는 어지러워져 사려분별思慮分別을 잃고 무어가 무언지 알지 못하게 되었다는 뜻이며, 懼와 怠의 상반된 감정이 교차했기 때문에 혼란스러워졌다는 뜻.
☞ 탕탕묵묵蕩蕩黙黙 : 북문성北門成의 심리心理를 묘사한 말. 탕탕蕩蕩은 마음이 동요하는 모습. 정신이 흩어짐. 묵묵黙黙은 말 없는 모양. 무지한 모양 또는 입을 다묾.
☞ 내불자득乃不自得 : 망연자실하게 되었다는 뜻. 좌망(郭象), 스스로 편안하지 못함.(林希逸), 대상 사물과 나를 모두 잃어버려서 스스로 정신을 차리지 못함(沈一貫)
帝曰 汝殆其然哉 吾奏之以人 徽之以天 行之以禮義 建之以太淸
四時迭起 萬物循生 一盛一衰 文武倫經 一淸一濁 陰陽調和
流光其聲 蟄蟲始作 吾驚之以雷霆 其卒無尾 其始無首
一死一生 一僨一起 所常無窮 而一不可待 汝故懼也
(제왈 여 태기연재인저 오 주지이인하며 휘지이천하고 행지이예의하며 건지이태청호니
사시질기어든 만물이 순생하야 일성일쇠에 문무윤경하며 일청일탁에 음양조화하야
유광기성하며 집충이 시작이어든 오 경지이뢰정이라 기졸이 무미하며 기시 무수하야
일사일생하며 일분일기라 소상이 무궁하야 이일을 불가대하니 여고로 구야로다)
황제黃帝가 이렇게 말했다.
“너는 아마도 그랬겠지. 나는 먼저 인간 세상의 규율에 따라 연주하고, 자연의 흐름에 따라 소리가 울리게 하고, 예의의 질서를 갖추고 연주를 진행했으며, 태청太淸의 맑고 맑은 무위자연의 경지에 맞게 그것을 맺어 나갔다.
그리하여 사계절이 교대로 일어나면 만물이 그에 따라 생겨나듯이 혹은 성대해지고 혹은 쇠퇴하는 가운데 문文의 부드러운 음색音色과 무武의 강직한 음색이 차례대로 정돈整頓되며, 소리가 맑아졌다 탁해졌다 하는 가운데 마치 음양陰陽의 기氣처럼 잘 조화調和된다.
그리하여 잘 조화된 음악 소리가 널리 흘러 퍼지면서 동면하고 있던 벌레가 비로소 일어나면 나는 또 뢰정雷霆의 울림으로 이들을 놀라게 했다. 이 음악은 마침이 어디인지 알 수 없으며 시작이 어딘지도 알 수 없어서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기도 하며 엎어졌다가 다시 일어나기도 한다. 그래서 일정함이 끝이 없어서 하나도 예측할 수 없으니 너는 그 때문에 두려워했을 것이다.”
☞ 여태기연재汝殆其然哉 : 태殆는 아마도. 나의 음악을 네가 들었다면 의당 이같이 세 차례 변화했을 것이다.
☞ 오주지이인吾奏之以人 : 인人은 인간 세상의 음률.
☞ 휘지이천徽之以天 : 휘徽는 소리를 울리게 한다거나 악기樂記를 연주演奏한다는 뜻.
☞ 행지이예의行之以禮義 : 行은 연주를 진행함을 말한다. 절도와 조리의 정신에 따라 질서 있게 연주를 진행시켜 나갔다는 뜻.
☞ 건지이태청建之以太淸 : 태청太淸(광대廣大한 청허淸虛)의 맑고 맑은 무위의 경지에 맞게 음악을 맺어 나갔다는 뜻. 建은 근본을 세운다, 연주를 맺어 나간다는 뜻.
☞ 사시질기四時迭起 만물순생萬物循生 : 사시질기四時迭起는 “사계절이 추이하는 리드미컬한 움직임에 따라 음율音律을 전환轉換시키면.”의 뜻이고, 만물순생萬物循生은 “만물이 그에 따라 생겨나듯 천변만화千變萬化하는 소리의 세계가 전개된다.”는 뜻.
☞ 일성일쇠一盛一衰 문무윤경文武倫經 : 혹은 성대해지고 혹은 쇠퇴한다는 것은 만물萬物에 성쇠盛衰가 있듯 음악에도 앙양昻揚되었다가 조락凋落되는 성쇠가 있음을 말하며, 문文과 무武는 평화로운 북소리[문文]와 전투적인 종鐘소리를 의미하기도 하며, 윤경倫經은 차례대로 펼쳐진다는 뜻.
☞ 유광기성流光其聲 : 광光은 廣의 가차자假借字.
☞ 집충蟄蟲 : 겨울철에 활동活動하지 않고 땅 속에 가만히 엎드려 겨울잠을 자는 벌레.
☞ 기졸무미其卒無尾 기시무수其始無首 : 졸卒은 음악의 마침이고 시始는 음악의 시작이다. 어디가 시작이고 어디가 끝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장대한 음악이라는 뜻. 소리가 가늘고 길게 이어져서 어디서 끝나는지 알 수 없고, 조용히 일어나서 어디서 시작하는 지도 알 수 없다는 뜻으로 볼 수도 있다.
☞ 일사일생一死一生 일분일기一僨一起 : 끊어질 듯 끊어질 듯하면서 계속 이어지는 음악의 연속성을 표현한 것이기도 하지만, 끝났나 싶으면 다시 시작하는 식으로 끊임없이 동정이 반복되는 도의 모습을 음악으로 형용한 것이다. 僨은 엎어짐.
☞ 소상무궁所常無窮 : 소상所常은 일정함, 변함이 없는 바. “변화를 일정한 모습으로 삼기 때문에 일정함이 끝이 없다.”(郭象) 이에의하면 ᄌᆞᆼ자莊子의 도道의 불변不變의 모습은 변화이다. 변화의 흐름이 바로 도道인 것이다.
☞ 一不可待 : 전혀 알 수 없다는 뜻. 일一은 모두, 전혀의 뜻. 불가대不可待는 기다릴 수 없다, 예측이 불가不可하다는 뜻.
☞ 여고구야汝故懼也 : 끝없이 변화하여 어떻게 변할지 전연 예측이 불가하니, 너는 그 때문에 불안不安하고 긴장聚張하여 두려워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뜻.
吾又奏之以陰陽之和 燭之以日月之明 其聲能短能長 能柔能剛
變化齊一 不主故常 在谷滿谷 在阬滿阬 塗卻守神 以物爲量
其聲揮綽 其名高明
(오 우주지이음양지화하고 촉지이일월지명호니 기성이 능단능장하며 능유능강하야
변화 제일하야 불주고상하야 재곡만곡하고 재갱만갱타가 도극수신하야 이물로 위량호니
기성이 휘작하야 기명이 고명이리라)
“나는 또 음양의 조화에 따라 연주하고, 해와 달의 밝음을 따라 음악을 화려하게 연주하였더니, 그 소리를 짧게 끊어지게 할 수도 있고 길게 늘어지게 할 수도 있으며 부드럽게 할 수도 있고 굳세게 할 수도 있게 되어 일제히 변화하여 옛 가락에 구애받지 않아서 골짜기를 만나면 골짜기를 채우고 작은 구덩이를 만나면 구덩이를 채우다가 욕망의 틈을 막고 정신을 지켜서 대상對象 사물의 있는 그대로에 순응順應해 나가니 그 소리는 맑게 울리고 그 〈함지악咸池樂이라는〉 이름도 높고 밝게 빛났다.
☞ 변화제일變化齊一 불주고상不主故常 : 제일齊一은 일제히, 나란히, 똑같이의 뜻. “뭇 생명들의 길고 짧음을 따르고 만물의 강유에 따라 맡기며 변화의 한결같은 이치를 가지런히 하는데 어찌 옛것을 지켜 일정함을 고집하겠는가.”(成玄英)
☞ 재곡만곡在谷滿谷 재갱만갱在阬滿阬 : 갱阬은 갱坑과 같이 구덩이. “지락至樂의 도리는 두루 미치지 않음이 없다.”(郭象), “큰 것도 채우지 않음이 없고 작은 것도 들어가지 않음이 없다.”(王敔)
☞ 도극수신塗卻守神 : 감각적 욕망의 틈[각卻]을 막고 순수한 정신을 지킨다는 뜻. 도塗는 막는다[새塞]는 뜻. 극卻은 틈.
☞ 이물위량以物爲量 : 물物로서 대소大小를 삼는다고 축자역逐字譯이 되는데, 물物에 그대로 따른다, 대상 사물의 있는 그대로에 순응順應한다는 뜻이다. 음악론音樂論으로서 “스스로 사물의 분수와 함량이 받아들일 수 있는 것을 따라 소리를 크게 하기도 하고 작게 하기도 한다.”(羅勉道)
☞ 기성휘작其聲揮綽 : 그 소리가 맑게 울림. 휘揮는 빛난다는 뜻으로 ‘휘暉’와 같고 작綽(너그러울 작)은 밝다는 뜻으로 작焯(밝을 작)과 같다. 여기서는 소리를 나타내기 때문에 ‘맑다’로 번역하였다.
☞ 기명고명其名高明 : 명名은 곡조, 또는 곡조의 이름을 말하는데 여기서는 함지악咸池樂이라는 음악의 이름을 말한다. 고명高明은 수준이 높다는 뜻.
是故鬼神守其幽 日月星辰行其紀 吾止之於有窮 流之於無止
子欲慮之而不能知也 望之而不能見也 逐之而不能及也
(시고로 귀신이 수기유하고 일월성진이 행기기어늘 오 지지어유궁하며 유지어무지라
자 욕려지이불능지야하며 망지이불능견야하며 축지이불능급야하니라)
그 때문에 귀신도 어두운 곳을 지켜 떠나지 않고 일월성신도 제 길을 따라 움직이는데 나는 〈연주演奏를〉 어느 때는 유한有限의 세계에 그치기도 하고 어느 때는 그침이 없는 무한의 세계에까지 흘려보내기도 한다네.
자네가 아무리 헤아려 보아도 알 수 없으며, 아무리 바라보아도 볼 수 없으며 아무리 쫓아가도 미칠 수 없다.
☞ 귀신수기유鬼神守其幽 : 〈이 음악의 영향으로〉 귀신도 차분히 유명계幽冥界에 그대로 머물러, 세상 사람들에게 재앙災殃을 입히려고 나돌아 다니지 않는다는 뜻.
☞ 지지어유궁止之於有窮 유지어무지流之於無止 : 유궁有窮은 유한의 세계이고 무지無止는 무한의 세계로 무궁無窮과 같다.
儻然立於四虛之道 倚於槁梧而吟 目知窮乎所欲見 力屈乎所欲逐
吾旣不及已夫 形充空虛 乃至委蛇 汝委蛇故怠
(당연입어사허지도하야 의어고오이음혼댄 목지 궁호소욕견하며 역이 굴호소욕축이라
오기불급이부오 형충공허하야 내지위이하나니 여도 위이고로 태하도다)
그러다 자네는 흐리멍덩 넋이 나간 채 사방으로 끝없이 터진 대도大道 가운데 서 있거나, 그렇지 않으면 말라 버린 오동나무 책상에 기대어 신음 소리만 낼 것일세. 그 까닭은 눈의 지각 능력은 보고자 하는 데서 다하고 힘은 쫓아가고자 하는 데서 다하기 때문이다.
나도 이미 거기에 미칠 수 없다. 인간의 육체에 공허함이 가득 차서 마침내 힘이 빠져 흐느적 흐느적 종잡을 수 없게 되니 너도 이처럼 종잡을 수 없게 되었기 때문에 느슨해졌던 것이다.”
☞ 당연입어사허지도儻然立於四虛之道 : 당儻은 창惝의 가차자로 보고 멍한 모습으로 풀이, 말하자면 자기상실自己喪失의 모양이다. 사허四虛는 사방이 텅 빔.
☞ 의어고오이음倚於槁梧而吟 : 〈음악을 논리적으로 분석한답시고〉 잔재주를 부리는 분석적 학문이 도道라는 음악音樂 앞에서는 전혀 무력無力하기만 함을 풍자한 표현.
☞ 목지目知 궁호소욕견窮乎所欲見 : 보고자 하는 것 때문에 눈과 지知의 능력이 다 없어진다는 뜻.
☞ 역굴호소욕축力屈乎所欲逐 : 힘은 발의 힘을 말하는데 이 뜻은 쫓고자 하는 것 때문에 발의 힘이 다 없어지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굴屈은 갈竭과 같은 뜻이고, ‘역굴호소욕축고야力屈乎所欲逐故也’의 ‘고야故也’ 두 글자가 생략된 것. 함지咸池의 음악에 대하여 목지目知나 역力이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이라는 뜻이다.
☞ 오기불급이부吾旣不及已夫 : 나도 이제는 도저히 그 함지咸池의 음악의 경지에 미칠 수 없다는 뜻이다. 오吾는 황제黃帝.
☞ 형충공허形充空虛 : 〈이 함지악咸池樂의 연주를 듣고 나면〉 인간의 육체가 안으로 공허함이 가득하다는 뜻이 되는데, 이는 곧 마음을 비우게 된다는 뜻.
☞ 내지위이乃至委蛇 : 위이委蛇는 힘이 빠져 흐느적거리는 모양.
吾又奏之以無怠之聲 調之以自然之命
故若混逐叢生 林樂而無形 布揮而不曳 幽昏而無聲
(오 우주지이무태지성하고 조지이자연지명호니
고로 약혼축총생하야 임악이무형하며 포휘이불예하며 유혼이무성하니라)
“나는 또 나른함을 없애는 소리를 연주하고, 자연自然의 명령에 따라 조절하였다네.
그랬더니 만물이 떨기로 자라는 것처럼 이리저리 뒤섞여서 서로 쫓아다니며 모두 크게 즐거워하면서도 그렇게 만든 음악의 모습은 보이지 않으며 널리 울려 퍼지는데도 끌고 다니지 않으며, 그윽하고 어두운 가운데 아무 소리도 없다.
☞ 오우주지이무태지성吾又奏之以無怠之聲 : 무태지성無怠之聲은 나른함이 없는 소리, 즉 나른한 느낌을 일소一掃하는 곡조曲調라는 뜻이다.
역주43 조지이자연지명調之以自然之命 : 자연지명自然之命은, “명命에 있는 것은 인위人爲가 아니라 모두 자연自然일 뿐이다.”(郭象). 자연의 명령에 따라 곡조를 조절하였다고 하는 것은 자연自然의 정주節奏로 음악을 잘 정비하였다는 뜻.
역주44 고약혼축총생故若混逐叢生 : 총생叢生은 떨기로 자라는 모양. 혼축混逐은 뒤섞여서 이리저리 뛰면서 쫓아다니는 모양. “만물이 떨기로 자라는 것처럼 이리저리 뒤섞여서 서로 쫓아다님이다.”(林希逸), 고약故若 두 자字는 “그랬더니[고故로] 조수鳥獸가 섞여 살고[혼混] 희롱하며 서로 쫓고[축逐], 초목草木이 뒤엉켜 생겨나서[총생叢生]……같다[약若].”로 번역할 수도 있다.
☞ 임악이무형林樂而無形 : 임악林樂은 수풀이 무성한 것처럼 모두 크게 즐거워하여 즐거워하지 않는 존재가 없다는 뜻. 무형無形은 “만물로 하여금 성난 목소리를 내게 하는 것은 찾아도 찾을 수 없다.”(褚伯秀)
☞ 포휘이불예布揮而不曳 유혼이무성幽昏而無聲 : 끌고 다니지 않는다는 것은 자취를 남기지 않는다는 뜻이고 그윽하고 어두운 가운데 아무 소리도 없음은 소리가 꺼져 감을 말한다. 포휘布揮는 널리 퍼지는 모양. 휘揮자는 흩어진다[산散]는 뜻. 예曳는 질질 끌고 다님.
動於無方 居於窈冥 或謂之死 或謂之生 或謂之實 或謂之榮
行流散徙 不主常聲 世疑之稽於聖人
(동어무방하고 거어요명혼댄 혹위지사라하며 혹위지생이라하며 혹위지실이라하며 혹위지영이라하나다
행류산사하야 불주상성혼댄 세 의지하야 계어성인하나니)
일정한 방향 없이 움직이고 그윽하고 어두운 근원의 세계에 조용히 머물러 있으니 어떤 사람은 죽었다 하고 어떤 사람은 살아 있다 하고 어떤 사람은 충실하다 하고 어떤 사람은 열매 없이 꽃만 무성하다 한다.
자유자재로 유전流轉하고 이리저리 옮겨 다녀서 일정한 소리에 얽매이지 않으니 세상 사람들이 의심하여 성인聖人에게 물어본다.
☞ 동어무방動於無方 거어요명居於窈冥 : 무한정한 경지에 움직여 다니다가 근원의 세계에 조용히 휴식한다는 뜻. 동動과 거居는 상반된 표현으로 ‘동어무방動於無方’은 어디에나 나타나지 않음이 없다는 뜻. 곧 음악이 어디에든 울려 퍼진다는 뜻. 요명窈冥은 이치理致가 헤아릴 수 없이 깊은 근원의 세계를 말함.
☞ 혹위지사或謂之死 혹위지생或謂之生 혹위지실或謂之實 혹위지영或謂之榮 : 영榮은 화華의 뜻. 어떤 사람은 소리가 끊겼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소리가 이어지고 있다고 하고, 어떤 사람은 소리가 충실하다 하고, 어떤 사람은 소리가 열매 없이 꽃만 무성하여 허무하다고 한다는 뜻이다.
☞ 행류산도行流散徙 불주상성不主常聲 : 행류行流는 자유자재로 유전한다는 뜻. 산사散徙는 이리저리 옮겨 다님. 불주상성不主常聲은 위 문장의 불주고상不主故常과 같은 의미.
☞ 계어성인稽於聖人 : 계稽는 물어본다는 뜻이다. “세상 사람들이 이에 이르러 의심하여 깨우치지 못하자 마침내 그것을 성인에게 물어보기에 이른 것이다. 계稽는 깊이 생각함이니 묻는다는 뜻이다.”(林希逸)
聖也者達於情而遂於命也
天機不張而五官皆備 此之謂天樂 無言而心說
(성야자는 달어정이수어명야라
천기 불장이오관이 개비하니 차지위천락이라하나니 무언이심열이니라)
성인聖人이란 자기自己의 정성情性을 남김없이 실현하고 주어진 명령을 완수하는 존재이다.
자연의 조화造化(천기天機)를 인위적으로 펼치지 않아도 오관五官의 기능이 갖추어져 있으니 이것을 일러 천악天樂이라 하니 말없이 마음으로 기뻐할 따름이다.
☞ 달어정이수어명야達於情而遂於命也 : 자기의 정성情性을 남김없이 실현한다고 하는 것은 성인聖人이 본성本性을 남김없이 다 실현하는 생生을 완수함을 말하고, 주어진 명령을 완수함이란 성인이 주어진 천명天命을 남김없이 완수하는 존재임을 말하는 것이다.
☞ 무언이심열無言而心說 : 심열心說은 천락天樂의 또 다른 표현이다. 무언無言은 ‘계어성인稽於聖人’을 이어받은 것이고 심열心說은 ‘천락天樂’을 이어받은 것.
故有焱氏爲之頌 曰聽之不聞其聲 視之不見其形 充滿天地 苞裹六極
汝欲聽之而無接焉 而故惑也 樂也者始於懼 懼故祟
吾又次之以怠 怠故遁 卒之於惑 惑故愚 愚故道 道可載而與之俱也
(고로 유염씨 위지송하야 왈청지불문기성하며 시지불견기형이오 충만천지하며 포과육극이
여 욕청지이무접언이라 이 고로 혹야로다 악야자는 시어구니 구론 고로 수하나니라
오 우차지이태호니 태론 고로 둔하나니라 졸지어혹호니 혹이론 고로 우하나니라 우론 고로 도니 도는 가재이여지구야니라)
그 때문에 그 옛날 유염씨有焱氏도 이 함지악咸池樂을 기리는 글을 지어 이렇게 말했다. ‘들으려 해도 그 소리가 들리지 않으며 보려 해도 그 모습이 보이지 않고 천지 사이에 충만하며 육극六極을 감싸 안는다.’
그러니 너는 이 음악을 들으려 해도 접할 수 없다. 네가 그래서 어지러워진 것일 게다. 이 함지咸池의 음악은 처음에는 듣는 자에게 두려움의 감정을 갖게 하나니, 두려워하게 되기에 불안감이 생긴다.
나는 다음으로 또 듣는 자를 나른하게 하는 음악을 연주하니 나른해지기에 멀리 도망치게 된다. 마지막으로 듣는 자를 어지럽게 하는 음악을 연주하니 어지러워지기에 어리석게 된다. 어리석어지기에 도道와 하나가 될 수 있으니 〈이렇게 되면〉 도道에 내 몸을 싣고 도와 함께할 수 있는 것이다.”
☞ 유염씨有焱氏 : 신농神農의 별칭. 황제黃帝 이전의 제왕帝王을 말하는 것.
☞ 포과육극苞裹六極 : 육극六極은 상하사방上下四方의 극極. 육합六合과 같은 뜻.
☞ 고혹야故惑也 : 사려분별思慮分別을 잃고 어지러워져 뭐가 뭔지 알지 못하게 되는, 방심放心 상태가 곧 ‘혹惑’이다. 그런데 이 구懼‧태怠‧혹惑의 세 과정이 바로 도道와 하나가 되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 시어구始於懼 구어수懼故祟 : 〈함지咸池의 음악은〉 음악을 듣는 자에게 두려움을 느끼게 하는 것으로 시작하니 그 때문에 불안감不安感이 환기喚起된다는 뜻이다.
☞ 태고둔怠故遁 : 둔遁은 “나른해지면 심력心力이 지치고 다해서 그것을 버리고 떠나고자 하게 된다. 그래서 달아난다고 말하는 것이다[故曰遁].”(羅勉道)라고 한 것을 따라 “멀리 도망치게 된다.”라고 번역.
☞ 우고도愚故道 : 어리석기에 도道와 하나가 될 수 있음. 역설덕逆說的인 말인데, “知가 없는 것을 어리석음이라 한 것이니 어리석음이 바로 가장 지극한 경지이다.”(郭象)
☞ 도가재이여지구야道可載而與之俱也 : 내 몸과 도道가 일체가 된 경지를 말하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