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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똥고집 똥배짱 똥바가지.....3똥 갖춰야"
농단(壟斷)이란 말이 있다.
한 상인이 남보다 높은 언덕에 위치한 자리를 차지하니
시장 돌아가는 판세가 한눈에 파악돼
이익이나 권력을 독점할 수 있었다는 데서 유래했다.
대개 자기 권력을 독단적으로 이용한다는,
다소 비난하는 뉘앙스로 쓰인다.
하지만 뒤집어 생각해 보면 남보다 높은 자리에 있으면
돌아가는 전체 판세를 읽을 수 있다는 이야기이기도 하다.
논리는 밑바닥 현장에서 더 잘 보이지만
일이 돌아가는 이치는 높으면 높을수록 잘 보인다.
윗돌 빼서 아랫돌 괴고, 아랫돌 빼서 윗돌 괴는 일은
`농단`의 위치에 선 리더만이 할 수 있다.
책임과 담당을 헷갈리지 마라.
담당은 경계가 정해져 있지만, 책임에는 경계가 없다.
담당은 실무자가 할 수 있지만 책임은 리더 몫이다.
리더가 어려운 이유는 일이 어려워서가
아니다.
책임을 질 태세와 마음의 오지랖이 커야 하기 때문이다.
정수기 업계 H사장은 `3똥`이란 말로 사장의 책임에 대한 부연설명을 했다.
"사장에겐 3가지 똥이 필요합니다. 똥바가지를 쓸 각오, 똥고집, 똥배짱이지요.
직원들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기 신념을 관철하는 똥고집,
불필요한 사람을 내보내거나 반대하는 사람을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똥배짱,
책임에 대한 독박은 내가 진다는 똥바가지가 그것이지요."
중소무역업을 하는 L사장은 회사
임원에게 주요 고객사에서
제품 클레임이 들어왔다는 보고를 받았다.
납품한 기계가 오작동을 일으켰다는 것이었다.
알고 보니 고객사 계약 책임자는 코앞으로 다가온 사장 승진 후보자였다.
당연히 자기 경력에 한 치도 흠결을 남기고 싶어하지 않았다.
데이터 등 사실을 조사하기보다 모두 제품상 결함으로 몰고 가며
보상을 가열하게 요구했다. `네가 잘못했느니, 잘했느니`
실무자들 간에 공방전이 3주일 이상 이어졌다.
L사장은 연장전을 더 이상 계속할 수는
없다고 판단해 전면에 나섰다.
"사장은 논리로 치고받으며, 제품의 우수성을 설명하는 일을 하는 자리가 아닙니다.
무엇을 주고 무엇을 받을 것인지 협상하는 자리지요.
부장과 같은 논리적 차원에서 이야기하려면 뭐하러 가겠습니까.
고객을 놓칠 것인지, 말 것인지 결전을 벌이러 가는 것이지요."
L사장은 협상 자리에서
"당신네들이 진정으로 원하는 것이 무엇인가?"라고 단도직입적으로 질문을 했다.
고객을 얻기 위해 한발 물러설 것인가, 고객을 잃더라도 맞서 싸울 것인가.
여기에 대한 정답은 없다. 이때 사장이 해야 할 것은 기회비용이다.
논리적 설명과 당장의 이불리 계산은 실무자가 더 잘할지 모르지만
종합적이고 거시적 관점에서 최종 협상은 사장밖에 할 수 없다.
통합적 안목은 사장 눈에만 보이기 때문이다.
당신은 어떤가.
똥고집, 똥배짱, 똥바가지를 뒤집어쓸 `3똥`을 갖추고 있는가.
3똥이라는 패를 갖기 위해 자문해 보라.
결정하는 일을 회피하고 있지는 않은가.
어렵거나 불편한 결정을 다른 누구에게 떠넘긴 적은 없는가.
혹시 혼자서 결정할 일을 민주적 의사결정 과정이란 명목으로
다 같이 결정하는 회의 형식에 부쳐 책임을 회피하려 하고 있지는 않은가.
사장의 결정, 최종 마지막 한걸음은 혼자서 가야 한다.
최종 독박은 당신이 짊어질 각오를 하라.
"노예 이솝의 충고"
고대 이집트에서 파라오 사후레의 명령을 받은 원정대가
현재 아프리카 남부 수단 지역에서 사냥 또는 무역을 한 기록이 있다.
“우리는 이번엔 남자와 여자 노예 134명과
황소와 송아지 114마리, 물소 305마리 등을 가져왔다.”
그다음 번 원정 보고서엔 왕의 명령이 담겨 있다.
“난쟁이를 살려서 건강한 모습으로 데려오라.
유령의 나라에서 온 그 난쟁이 말이다.
왕을 기쁘게 해줄 신의 춤을 추도록…”이란 내용이다.
이 원정 보고서가 작성된 것이 기원전 2450년이니,
기원전 6세기쯤엔 지중해와 에게해 어디에서든
흑인 노예를 보는 게 드물진 않았을 것이다.
이솝도 그렇게 사냥당한 아프리카 노예였거나
그런 노예의 자손이었을 것이다.
이솝은 에티오피아란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에티오피아는 아프리카 북부 수단 바로 옆 나라다.
이솝에 대한 기록을 보면 그는 검은 난쟁이에
곱사등이에 배불뚝이에 말더듬이였다고 한다.
그 이솝이 노예로 팔려 와 살았던 곳이 사모스섬이다.
그리스 본토와는 아주 멀고, 현재 터키와 배로 두 시간 거리에 있는 섬이다.
그리스 여행 때 본 사모스는 강화도 정도의 크기였는데,
망망대해에 떠 있는 한 송이 꽃 같은 섬이다.
이 작은 섬에서 피타고라스와 에피쿠로스가 태어나고, 이솝이 활동했다.
그래서 아리스토텔레스가 <사모스 연구>란
책을 쓸 정도로 특별한 관심의 대상지였다.
누구나 탐냈던 사모스섬은 이솝 당대에 국가적 위기를 맞았다.
소아시아의 강국인 리디아의 크로이소스왕이 세금과
조공과 추징금을 보내라고 협박한 것이다.
그러자 사모스 시민들은 “달라는 대로 주지 않으면 무슨 행패를 부릴지 모른다”며
“그냥 원하는 대로 해줘버리자”고 한다.
시민들이 두려움에 사로잡혀 신민의 삶을 택하려 하자
이솝이 사모스 시민들 앞에서 연설을 한다.
“운명은 이생에서 인간에게 두 가지 길을 제시해 주었다.
하나는 자유의 길로, 시작은 고되고 견디기 힘들지만 끝은 아주 평평하고 견디기 쉽다.
그리고 다른 길은 노예의 길로, 처음은 들판처럼 가볍고 평평하지만
끝은 매우 혹독하고 크나큰 고통 없이는 걸을 수 없다.”
이솝이 지은 사자의 우화를 보면 사자는 암소, 염소, 양과 사냥감을
공평하게 분배하기로 해놓고 막상 염소가 수사슴을 잡아 오자 말한다.
“나는 이 고기를 네 덩이로 나누겠다.
한 덩이는 정당하게 내 것이다.
두번째 덩이는 내가 가장 강하기 때문에 내 것이다.
세번째 덩이는 내가 가장 용감하기 때문에 내 것이다.
네번째 덩이는 누구든지 손대는 자는
내게 잡아먹힐 것이기 때문에 아무도 손댈 수 없으니 내 것이다.”
아무리 두렵더라도 위험에 맞서지 못하면
결국 소유와 자유를 다 빼앗기고 고통은 더욱 커져간다는 것이었다.
주인 눈치를 살피면서 언제 죽임을 당할지 모르는 노예 신분인 이솝이
주인이면서도 주인 행세를 못 하고 노예로 전락하려는 사모스 시민들을 깨운 것이다.
그리스가 우리에게 준 최고의 선물은 참정권이다.
그러나 아무리 위대해도 노예는 투표권이 없었다.
투표권은 소수의 시민에게만 주어졌다.
우리는 시민이다.
그 사자에 대한 권력여탈권을 시민이 쥐고 있다.
"국가란 무엇인가"
기원전 5세기 무렵 아테네 인구는 고작 30만명이었다.
서울로 치자면 한개 동 정도의 마을이다.
아이, 여성, 노예를 제외하고 시민은 3만명뿐이었다.
인류는 근현대까지 그 작은 마을에서 만든 ‘생각의 지도’를 나침반 삼았다.
테미스토클레스는 현대 미국 같은 유일 초강대국 페르시아의 침략을 무찌르고
아테네를 경제대국으로 키워 지중해 전역을 장악하게 했고,
페리클레스는 민주주의를 열었다.
소크라테스, 플라톤, 아리스토텔레스는 철학과 학문을 꽃피웠다.
신화의 시대를 끝내고, 그들이 인간의 이성으로
정치·철학·문화·예술에서 창조한 경지는 경이롭다.
당대 아테네와 쌍벽을 이룬 적대국가가 스파르타다.
아테네가 민주주의의 상징이라면 스파르타는 독재의 상징이다.
그 아테네와 스파르타가 싸운 펠로폰네소스전쟁 초기
아테네의 전몰장병 추모식장에 인류의 두 스타가 동시에 출연한다.
아테네 황금기를 연 정치가 페리클레스와 철학자 소크라테스다.
먼저 나선 것은 아들뻘인 소크라테스였다.
“아테네인들은 스파르타처럼 약자이거나 가난하거나
부모가 유명하지 못하다고 해서 쫓겨나는 사람은 없다.
그 반대라고 해서 존경받지도 않는다.
권력을 가질 만큼 현명하거나 훌륭한지 여부만 기준이 된다.
이는 출생의 평등함에서 비롯된다.
우리는 평등하게 태어났기에 법률에 따른 법적 평등을 추구하도록 강제하고 있고,
덕과 사려에서 나오는 명성 이외의 다른 어떤 것 때문에
서로에게 복종하는 그런 일이 없게끔 만들어놓았다.”
그러자 60대 노지도자 페리클레스가 나선다.
“우리에게 부는 행동을 위한 수단이지 자랑거리가 아니다.
우리는 약자들을 보호하는 법을 어기는 것을 치욕으로 여긴다.
생업에 종사하는 사람들도 정치에 무식하지 않다.
그뿐인가. 스파르타인들은 어려서부터 혹독한 훈련을 받지만,
우리는 얽매이지 않는 삶을 살면서도 그들 못지않게 위험에 맞설각오가 되어 있다.
시민 개개인은 인생의 다양한 분야에서 유희하듯
우아하게 자신만의 특질을 개발할 수 있다.
그래서 아테네가 ‘그리스(지중해권)의 학교’인 것이다.”
아테네는 지금까지도 인류의 학교가 되었다.
아테네인들은 그런 나라를 지키기 위해 목숨을 내놓는 걸 아까워하지 않았다.
아테네는 귀족 시민들이 사비를 들여 전쟁장비를 마련해 전투에 나섰다.
아테네는 자신의 목숨을 내놓고라도 지키고 싶은 나라였다.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조차 한때 수차례 전투에서 전사로 이름을 날렸다.
아테네 시민들에게 죽음보다 가장 수치스럽고 두려운 것은
아테네 밖으로 쫓겨나는 것이었다.
테미스토클레스는 추방당해 자살했고,
페리클레스는 추방 위기 때 시민들에게 읍소해 위기를 모면했다.
소크라테스는 추방을 선택할 수 있었지만
차라리 아테네 안에서 죽는 것을 택했다.
세월호 참사 이후 많은 이들이 ‘국가란 무엇인가’ 하고 묻는다.
아테네에서 지도자는 살기 어려운 나라였다.
시민의 눈 밖에 나면 추방 당하기 일쑤였다. 그
러나 누구도 스스로는 떠나고 싶지않은 나라였다.
살고 싶고, 지키고 싶은 그런 나라였다
"전자산업 핵심 부품 콘덴서 시장 50% 장악한 '무라타 제작소' "
삼성·애플도 반했다… 0.2㎜ 세계의 거인
日 전자산업의 자존심 '부품 7인방' 중 최고
단가
3원이지만 스마트폰 1대에 600여개 들어가
작년 매출 24% 성장, 순이익은 2배 이상 늘어
시장 변화에 빠른 대응 위해
조직 혁신
부서별 채산제로 경쟁시키는 예전 방식 버려
부서 이익 아닌 고객 요구만 생각하게 만들어
"우린 '내가 다
한다(지마에(自前) 주의) 主義'버려… 내부에 없는 기술, M&A로 얻어"
한국 스피드 경영까지 흡수
갑작스러운 최신부품
주문… 당일 신속대응팀 만들어
휴일 반납하고 공장 가동, 납기일·물량 약속 지켜
고객이 원하는 것 미리 파악
매출
7%를 R&D에 투자… 20년 앞의 기술 연구
고객의 고민을 먼저 읽고 풀어주는 것이 중요
실패의 사례 연구…
부서별로 실패사례 연구
축적된 자료로 직원 교육, 적어도 같은 실수 반복 안해
일본에서 이른바 '전자 부품 7인방'이 있는데 그 가운데 네 곳이 교토 기업이다.
특히 순이익 1~3위는 전부 교토 기업 차지다.
소니나 샤프 같은 일본 대표 가전기업들은 쇠락하고 있지만,
교토 기업을 중심으로 한 부품 회사들은 일본 전자 산업의 자존심을 지키고 있다.
그런 교토
기업 중에서도 최근 몇 년 사이 '원톱'으로 떠오른 곳이 있다.
성장률과 이익 규모가 단연 돋보이는 무라타(村田)제작소다.
무라타의 작년 매출은 8467억엔(약 8조5000억원)으로 전년보다 24% 성장했다.
순이익은 931억엔으로 7인방 중 1위를 기록했다.
이 회사 주력 제품의 기본 단가는 3원에 불과하다.
크기도 매우 작은데, 직경 0.2㎜ 정도라 육안으로 보면 모래알 같다.
'적층(積層) 세라믹 콘덴서'라는 제품으로, 스마트폰 1대에 600~700개씩 들어간다.
무라타의 이 제품 세계 시장 점유율은 50%에 이르며, 영업이익률은 25%에 달한다.
애플·삼성·LG는 물론 전 세계 거의 모든 스마트폰·태블릿PC 제품에 무라타 부품이 들어간다.
아이폰엔 절반 이상, 갤럭시엔 3분의 1 이상이 들어간다.
하네다공항에서 열차를 두 번
갈아타고 3시간 만에 나가오카교(長岡京)역에 도착했다.
일본 간무왕이 수도를 나라(奈良)에서 교토로 옮기기 직전
784년부터 794년까지 일본 수도였던 곳이다. 교토 시내에서 3㎞ 정도 떨어져
있다.
1200여년 전 일본 정치의 중심지는 이제 세계 스마트폰 부품업계의 중심지다.
역을 나와 왼쪽으로 50m쯤 가니 18층짜리 건물이 솟아 있다. 무라타 본사다.
1층
로비로 들어가니, 입구 오른쪽 전시 공간에 큼직한 와인잔이 세 개 놓여 있다.
안을 들여다보니 와인이 아니라 모래 같은 게 잔뜩 들어 있다.
"무라타의 주력 제품인 적층
세라믹 콘덴서(이하 콘덴서)입니다.
모래알처럼 작지만, 하나하나가 전류의 흐름을 제어하는 역할을 합니다."
와인잔 안을 보는
사이, 뒤에서 나타난 노무라 요시히로(野村佳弘) 홍보실장이 웃으면서 말을 건넨다.
"전력을 덜 소모하면서도 더 작게 저렴하게 고장이 안 나는 제품을
고객이 원하는 양만큼 제때 공급하는 것이 핵심이죠."
반도체가 인체의 두뇌 역할을 한다면,
콘덴서는 인체의 혈류(血流)와 같은
전류 흐름을 조절해 기기 내 각종 부품이 제대로 작동할 수 있게 해준다.
거의 모든 전자 기기에 쓰이며, 반도체와 더불어 '전자 산업의 쌀'이라고
한다.
엘리베이터로 17층 사장실 옆 접견실로 향했다.
삼성전자나 LG전자 사람들도 이곳에 오느냐고 물었더니 "물론"이라고 답했다.
"고객사 중역들이 와서 자사 신제품에 넣을
부품의 개발·공급 같은 전략을 논의할 때는 사장이 직접 만납니다.
삼성전자, LG전자, 애플은 물론, 화웨이·ZTE·샤오미 같은
중국 기업 사람들도 자주 방문합니다."
최근 애플의 한 고위 경영진은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무라타 공장이 멈추면, 전 세계 스마트폰 생산이 멈춘다."
한국식 스피드 경영으로
한국을 제치다
나가오카교 시내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접견실로
무라타 쓰네오(村田恒夫·62) 사장이 들어왔다.
1950년 무라타를 창업한 무라타 아키라 초대 사장의 셋째 아들이다.
아버지와 장남인 형에 이어 2007년 3대 사장에 취임했다.
조용조용한 목소리였는데, 시작부터 예상과 전혀 다른 대답을 내놓았다.
―무라타의 성공 비결
중 하나로 치열한 내부 경쟁을 꼽습니다.
회사가 3000개 넘는 작은 사업 부서로 분리돼
서로 필요한 부품과 서비스를 사고팔고 한다든지….
"그건 예전 일인데…. 지금은 그런
시스템을 운영하지 않습니다.
콘덴서 사업부를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예전에는 콘덴서의 재료부터 제조 공정을 거쳐 완성 부품이 되기까지
수십 단위로 나눠 원가를 따지고 독립 채산제로 관리했습니다.
즉 사업부 단위로도 이익을 정산하지만, 사업부 내의 공정별로 세부 정산하는 식이었지요.
하지만 그런 방식을 의식하지 않은 지 10년쯤 되고,
제가 사장이 된 2007년부터는 완전히 버렸습니다.
지금은 3개 사업 축을 중심으로 전체가 움직이는 '연결 경영'을 추구하고 있습니다.
즉 콘덴서, 센서, 통신 모듈 등 3개 사업부를 축으로 움직입니다."
―왜
바꿨나요?
"예전처럼 공정별로 채산을 따지는 식은 외부 환경 변화에
아주 빨리 대응해야 하는 지금의 경영 환경에 맞지 않습니다.
단위마다 개별적으로 최적화하다 보면, 전부 연결해서 봤을 때
고객에게 최선의 것을 제공하지 못하게 되거든요.
물론 그런 방식이 조직에 긴장감을 불어넣는 장점은 있습니다.
하지만 조직 간의 벽 같은 것이 생겨버리지요.
나뉘면 모두가 자기 쪽 것만 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결국 고객을 중심으로 생각하지 못하게 됩니다.
저는 직원들에게 자기 부서의 이익보다는 고객이 무엇을 원하는지 항상 생각해 달라,
가치 사슬 전체를 생각해 달라고 항상 얘기합니다."
그가 취임한 2007년 무렵부터
무라타는 급격한 외부 환경 변화에 직면한다.
스마트폰 시장이 열리면서 그 시장에 빨리 올라타야 했고,
한국의 삼성전기가 무라타를 맹렬히 공격해 오기 시작했다.
삼성전기는 2001년 시장 점유율이 3%로 8위에 불과했지만, 2010년엔 2위로
올라왔다.
무라타 사장은 "삼성전기와는 '시노기(鎬)가 깎여나갈 정도'로 치열한 경쟁 관계"라고 표현했다.
시노기는 칼날과 칼등 사이 볼록 나온 부분을 가리키는데,
칼끼리 너무 많이 부딪쳐 칼날뿐 아니라 시노기도 깎여나갈 정도로 치열한 쟁투를 벌였다는 의미다.
삼성전자는 무라타의 주요 고객이지만, 삼성전기는 무라타의 최대 경쟁자다.
삼성이 고객이자 적(敵)인 셈이다.
삼성전기의 콘덴서 세계시장 점유율은 작년 1분기
26%를 정점으로 현재 22% 수준까지 떨어졌다.
반면 무라타의 점유율은 40%대 초반을 유지해오다 최근 들어 50%에 근접하고 있다.
물론 엔저 덕도 봤겠지만, 적장(敵將)인 한국 기업의
스피드 경영의 장점까지 흡수해 천하제패를 노리는 형국이다.
무라타가 얼마나 기민하게
움직이는 조직인지 보여주는 일화가 있다.
작년 5월 한 스마트폰 제조 대기업 임원이 거의 울상이 돼 무라타 본사를 찾았다.
자사가 곧 출시할 제품에 들어갈 부품을 무라타가 아닌 다른 업체에 맡겼는데,
그만 문제가 생겨버린 것. 출시 날짜가 임박하자 어쩔 수 없이
무라타에 대신 납품해줄 수 있는지 타진하러 온 것이었다.
과거 일본 부품기업 같으면, 예정에 없던 최신 부품을
그것도 대량으로 갑자기 납품하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러나 무라타는 고객사가 찾아온 바로 그날 신속대응팀을 가동,
휴일까지 반납하며 공장을 완전 가동시켜 고객사가
원하는 날짜에 원하는 양을 납품하는 데 성공했다.
경쟁력의 원천은 고객과의 대화
능력
무라타는 시장 정보를 남보다 먼저 포착해 빨리 대응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2년 전 당시로선 존재감이 적었던 중국 스마트폰업체 샤오미의 납품선을 뚫었던 게 좋은 예다.
담당 본부장이 베이징으로 날아가 레이준 CEO를 만나 담판을 지었다.
현재 샤오미 스마트폰 1대에는 500개의 무라타 콘덴서가 들어간다.
샤오미의 올해 예상 판매 대수는 6000만대다.
무라타는 작년 1월 일본 전자업계를 뒤흔든
'아이폰 쇼크' 때에도
타격을 받기는커녕 오히려 매출이 늘어났다.
아이폰5가 판매 부진으로 감산(減産)에 들어가자,
부품 기업들이 위기를 맞았는데도
무라타는 삼성전자의 갤럭시폰 판매가 크게 는 덕에
아이폰5의 부진을 만회하고도 남는 매출을 올릴 수 있었다.
다른 부품업체의 경우 아이폰 의존도가 너무 높아 타격이 컸다.
반면 무라타는 중국 스마트폰 업체들까지 고객으로 확보해
어느 한 시장에 종속될 우려가 적다는 강점이 있다.
인터뷰에서는 아주 완곡하게 얘기했지만,
무라타는 3~4년 전부터
시장 변화의 방향을 읽고 적극적으로 중국 고객 발굴에 나섰다.
무라타는 중국 스마트폰 업체를 위한 휴대폰 설계 외주 회사인
대만의 미디어텍과 10년 전부터 긴밀한 관계를 맺고 있다.
무라타는 미디어텍 같은 회사를 통해 앞으로
어떤 스마트폰 업체가 뜨고 질 건지를 미리 파악한다.
전 세계에 10만개에 이르는 거래 기업으로부터
들어오는 정보도 귀중한 판단자료가 된다.
―무라타의 경쟁력의 원천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장 중요한 것은 고객과의 대화 능력입니다.
고객이 요구할 때 시제품을 최대한 빨리 내놓을 수 있는 능력,
고객이 원하는 양을 안심하고 주문할 수 있는 생산 능력도 중요합니다.
예전에는 좋은 제품을 만들면 그것으로 됐다는 생각이 일본에 있었지만,
이제는 고객의 고민을 먼저 읽고 풀어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경박단소(輕薄短小)'란 말이
있는데, 세라믹콘덴서 분야에서
그걸 가장 잘하는 회사의 하나가 무라타일 것이다.
특히 스마트폰에 들어가는 것은 아주 작아야 한다.
대표 제품인 0.2㎜ 콘덴서의 경우, 한 개에 100억개 이상 세라믹 입자가 들어 있는데,
이 중 하나만 잘못돼도 회로가 끊어질 수 있다.
세라믹과 다른 재료를 겹겹이 쌓을 때 2~3㎚(10억분의 1미터)만 잘못돼도 다른 층이 형성돼
버린다.
―무라타는 미래를 내다보는 차세대 제품 개발도 잘하는 것 같습니다.
"매출에서 업그레이드 제품이나 신제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40% 정도입니다.
이를 위해 매출의 7% 정도를 R&D에 투자하고 있습니다.
3년 전부터 선행(先行) 연구를 강화하고 있습니다.
10년, 20년 앞의 기술을 연구하는 것입니다.
사업부는 지금 당장 손익을 보며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장기적 기술 개발엔 제대로 투자를 할 수 없으니까요."
내가 전부 다 한다는 생각을
버려야
무라타는 1950년대말부터 미국에 진출할 만큼 처음부터 글로벌 마인드가 아주 강했다.
또한 내부에 없는 기술은 M&A를 통해 외부에서 적극적으로 들여왔다.
최근 10년간에만 14개 기업을 인수했다.
현재 무라타의 사원 4만8000명 중 절반이 넘는 2만5000명이 해외에 있다.
무라타 사장은 "내가 전부 하려고 하지 말고, 바깥의 다양한 아이디어와 기술을
적극적으로 받아들이는, 밖을 향하는 의식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무라타도 한 때는 '지마에(自前)주의', 즉 뭐든 스스로
다 한다는 생각이 있었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고 덧붙였다.
인수 기업 중엔
미세전자제어기술 업체인 핀란드 VTI도 포함된다.
무라타는 VTI의 기술에 무라타의 기술력을 합해 자동차의 자세 제어 센서 사업을 강화하고 있다.
무라타 사장은 "보쉬(세계 최대 자동차 부품업체)에도
밀리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현대자동차에서도 사용한다"고 전했다.
"작년에는 수정 발진자
업체인 도쿄전파와 인덕터코일 업체인 도코를 인수했습니다.
우리가 안 가진 기술을 가진 회사를 매수해서 더 좋은 물건을 만드는 것이 우리의 장기입니다.
필요한 것은 외부에서 가져와 무라타 방식으로 수준을 높이는 것입니다."
무라타의 인수 기업
리스트를 보면, 무라타의 강점인 세라믹 기술로
대응하지 못하는 부분을 보완해 나간다는 방향성이 명확히 보인다.
뛰어난 재료·생산 기술에 통신·센서 기술을 접목해 스마트카,
웨어러블, IOT(사물인터넷) 등의 시장에 빠르게 대응해 나가겠다는 전략이다.
―매출에서
통신 분야 비중이 절반이나 됩니다.
스마트폰 성장률이 둔화하고 있는데 대책은 무엇입니까?
"스마트폰 성장률이 떨어진다 해도
매년 20% 이상씩 성장하고 있으니까 여전히 유망한 시장입니다.
빠른 변화에 맞춰 필요한 제품을 빨리 공급할 수 있다면,
급성장은 아니더라도 지속 성장은 충분히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통신 쪽 비중이 너무 커지는 것은 위험합니다. 변화가 너무 심하니까요.
그래서 자동차, 환경·에너지, 헬스케어의 세 분야에 초점을 두고 씨를 뿌려가고
있습니다."
수십 년의 실패 사례 축적해 교육 자료로 사용
―실패 사례도 성공 사례 못지않게 중요시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부서마다 실패 사례 연구회가 정기적으로 열립니다.
어떤 문제 때문에 실패했는지, 거기에서 무엇을 배울 것인지 공유하는 모임입니다.
일본말로는 '가코토라(과거의 트러블)'라고 하는데,
이런 사례를 수십 년간 축적해서 직원 교육용 자료로 사용하고 있습니다.
적어도 같은 실수를 반복하지 않는다는 것만으로도,
과거의 실패 사례가 새 고객에게 대응할 때 큰 도움을 줄 수 있습니다."
―창업 가문이
계속 경영을 맡아오고 있는데 오너 기업에 대한 비판은 없습니까?
"오너 기업의 기준이 무엇인가요?
물론 교토 기업 중에 전문경영인 체제가 많긴 합니다.
교세라의 현재 사장은 창업 가문이 아닙니다.
옴론과 롬도 그렇고요.
저는 물론 창업자의 아들이지만, 무라타는 상장기업이고
제 가족 지분은 2%가 안 됩니다. 오너 기업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그렇다면 어떻게
사장이 되셨나요?
"무라타의 주식은 금융기관이 36%, 외국 법인이 40%를 갖고 있습니다.
최대 주주는 JP모건체이스은행(9.6%)입니다.
전임 사장(형)이 추천했지만, 이사회와 주주총회에서
적임자라고 판단해 동의해 주었다고 생각합니다.
경영을 잘못하면 언제든 경영권을 내놓을 각오가 돼 있습니다."
―4대 사장도 무라타
가문에서 나올까요?
"정해진 게 없습니다.
우선 제 자식은 무라타에 입사하지 않았습니다.
형의 아들이 무라타에서 일하고 있지만,
4대 사장이 창업자 가문이 될지 전문경영인이 될지는 모릅니다."
―기업 경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경영 이념을 잘 따르는 것입니다. 우리 회사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세상에 어떤 가치를 줄 수 있는지를 모든 직원이 마음으로 느끼도록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걸 못하면 아무리 대단한 시스템과 자원을 갖췄다고 해도 소용없습니다.
무라타의 사시(社是)에 다 나와 있습니다.
'기술을 연마해 과학적 관리를 실천하고, 독자적인 제품을 공급해 문화 발전에 공헌하고,
신용 축적에 힘써 회사의 발전과 협력자의 공영을 꾀하고,
이것을 기뻐하는 사람들과 함께 운영한다'입니다."
―큰 회사라면 전부 사시가 있고,
근사한 말들이 가득 써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모두 성공하는 것은 아닙니다.
"왜 성공하지 못할까요?
그 멋진 내용이 담긴 사시를 직원들이 항상 의식하고,
한 사람 한 사람의 행동지침으로 받아들여지느냐의 문제입니다."
교토식 경영의 특징
업계 전체의 이익 우선… 특정 대기업과 독점거래
안해
스에마쓰 지히로 교토대 교수가 쓴 책 '교토식 경영'에 따르면,
교토 기업은 '일본식 경영의 신봉자라기보다 파괴자'이다.
교토식 기업은 부품업체가 많고 최종 제품을 거의 생산하지 않기 때문에
대중에게 잘 노출되지 않지만 발군의 실력을 발휘한다.
스에마쓰 교수가 교토 기업의 가장 큰 특성으로 꼽는 것은 '네트워크 외부성(network externality)'이다.
아무리 큰 대기업 고객이라 해도 독점거래는 하지 않고 업계 전체 이익을 우선시 한다.
그 결과 전체 이익의 파이를 키우고, 그것이 내 이익을 증가시키는 상생(win-win)의 관계다.
무라타의 주력제품인 적층세라믹콘덴서, 호리바제작소의 엔진 배기가스 계측기,
일본전산의 하드디스크용 모터 등은 세계시장 점유율이 50% 혹은 그 이상이다.
이런 점유율은 특정 고객에게 묶이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스에마쓰 교수는 지금까지 일본 기업은 내부 관계에만 초점을 맞춰왔고 그것이 문제였다고 지적한다.
M&A와 같은 사업과 인재의 교류가 잘 안되는 것도 네트워크 외부성을 부정한 결과라고 그는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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