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105 살림교회 주일공동예배(성탄 후 둘째 주)
바람이 불고 물이 흐르는
렘31:7-14; 엡1:3-14; 요1:10-18
영화나 드라마에서나 있을법한 일들이 한꺼번에 벌어지고 있는 요즘입니다. 지난 주, 갑작스런 항공사고로 엄청나게 많은 사람들이 안타깝게 목숨을 잃었습니다. 밀려오는 고통과 슬픔에 가슴을 쓸어내릴 사이도 없이, 암울한 뉴스들이 연일 쏟아지고 있습니다. 새해가 되었지만 갈등과 혼란이 고조되면서, 새로운 시작의 희망보다 분노와 불안, 긴장감이 끝없이 밀려오고 있습니다.
세상의 혼란이 극심해질수록, 자기 마음의 중심을 잘 잡고 있는 것이 중요합니다. 보이는 세계와 보이지 않는 세계를 알아차리고, 그 두 세계에 닿아있는 의무를 받아들여서 소박한 방식으로 자기가 할 수 있는 작은 일들을 실천하는 것이 영적인 삶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영적인 삶에 시간과 관심을 쏟는 것은 자기 삶의 주변부에서 그 중심으로 천천히, 아주 조금씩 들어가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토마스 아퀴나스가 기도한대로 자기 삶의 질서를 세우는 일입니다.
구체적으로는 현세에 골몰하느라 자기를 소외시키고 있지는 않은지, 하나님과 소원해진 것은 아닌지 잘 살피는 것입니다. 자신의 마음이 어느 자리에 있는지, 자신이 어떤 상태인지 가장 잘 알려주는 지표는 몸입니다. 이 몸에서 느껴지는 감각과 감정을 알아차리는 것이 영적인 삶의 시작이고, 자기를 소외시키지 않는 길입니다. 자기 자신과 잘 연결되어 있는 사람은 현실이 절망스러울지라도 쉽게 좌절하지 않습니다. 경직된 몸을 알아차릴 때마다 긴장을 털어내고, 자기 안에 고인 생각들을 떠나보내면서, 물처럼 끊임없이 자신을 흘러가게 합니다. 즉, 흐름의 리듬 안에 머무는 것입니다.
흐름은 물처럼 유동적이고, 부드러우며, 얽매여있던 것에서 풀려나 자유롭고 유연한 상태입니다. 흐름의 리듬은 우리 존재의 근저에 흐르고 있는 사랑의 에너지와 우리를 연결합니다. 이 내면의 리듬이 우리 안에 퍼져나갈 때, 우리가 정말로 어떤 존재인지, 우리의 잠재력이 얼마나 큰지를 실제로 감각하기 시작합니다. 흐름 안에서는 어떤 분리나 구별도 없습니다. 계속적인 변화만 있을 뿐입니다. 예측 가능하고 안전한 삶을 선호하는 우리들에게 자유로운 흐름은 저항감을 일으킬 수 있습니다. 우리가 어디로 가닿을지, 무엇을 발견하게 될지 알 수 없기에 변화무쌍한 흐름은 위험해 보이기도 합니다.
흐름의 자유로운 움직임과 변화는 처음에 우리 안에서 저항감을 일으킬 수 있지만, 내면의 불안과 두려움을 직면하는 장이 또한 될 수 있습니다. 자신을 든든하게 떠받치고 있는 땅을 딛고 있는 발바닥을 의식하면서, 존재의 근저로부터 나오는 사랑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가만히 바라보는 것입니다. 가장 깊은 곳으로부터 나오는 사랑은 자신의 기대와 예상과는 다르게 흘러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여기서 오는 긴장감을 거부하지 않고 느끼면서, 흐름을 그대로 따라가는 겁니다. 성스러운 힘과 사랑이 어디로 흘러들어갈지 알 수 없지만, 이 거대한 흐름은 우리를 온전한 하나로 이어줍니다.
흐름의 리듬 안에서 우리는 겸손을 배우고, 우리 신앙은 깊어집니다. 감상적이거나 피상적이 아닌, 실제적이고 아주 깊은 자기와의 근원적인 만남이 여기서 일어납니다. 우리에게 예측할 수 없고,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 닥쳤을 때, 불안에 함몰되지 않고, 존재의 근저에서 나오는 사랑이 어디로 흘러가는지를 고요히 바라볼 수 있는 믿음의 눈과 마음의 근력을 키워줍니다. 우리의 신앙이 어린아이와 같지 않고, 성숙한 어른이 되도록 어머니 같은 흐름은 우리를 단단하게 만들어줍니다.
오늘 시편 말씀은 이런 흐름의 특징을 하나의 상징적 이미지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을 보내셔서 그것들을 녹이시고, 바람을 불게 하시니, 얼음이 녹아서, 물이 되어 흐른다.”(147:18) 지금 이 순간에도, 우리의 내면에서는 하나의 거대한 흐름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주님은 말씀으로 우리 마음에 꽁꽁 얼어붙어 있는 눈과 우박을 녹이시고, 따뜻한 바람을 일으키셔서, 그 얼음이 녹아 물이 되어 흘러가게 하십니다.
여기서 바람은 히브리어로 바람, 호흡, 영을 뜻하는 ‘루아흐’입니다. 하나님의 숨결은 따뜻한 바람이 되어 우리의 얼어붙은 마음에 불어옵니다. 그 얼음이 상처이든, 자기방어기제이든, 고집이든, 혹은 그 무엇이든, 하나님은 꽁꽁 얼어붙어 있는 것들 사이사이로 당신의 따뜻한 숨결을 불어넣으십니다. 이전에 우리를 얼어붙게 만들던 것들이 이제는 녹아서 우리를 살리는 생수가 되어 우리 몸 곳곳으로 흘러들어가 삶의 활력과 생기가 됩니다.
시편 147편에서 바람이 불어 얼음이 녹아 물이 되고, 흐름이 되는 상징적 이미지는 요한복음 1장에서 매우 구체적이고 실제적인 모습으로 확장됩니다. “태초에 ‘말씀’이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과 함께 계셨다. 그 ‘말씀’은 하나님이셨다.”(요1:1) ‘태초에’라는 말은 천지창조가 되던 때를 연상시킵니다. 땅은 텅 비어있고, 어둠으로 가득했던, 하나님의 영(루아흐)만이 물 위로 흐르던 그때에 ‘말씀’(로고스)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습니다.
우리의 시작에 주님이 계십니다. 우리 존재의 본질은 말씀이고, 빛이며, 생명입니다. 말씀과 빛, 생명은 우리 안에 분명 실재하지만, 눈에 보이진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 자신이 빛보다 어둠으로 여겨질 때가 더 많습니다. 마음이 열려있고, 의식이 깨어있지 않다면, 우리 안에 말씀, 빛, 생명이 정말로 있다는 것을 알 방법이 없습니다. 머리로, 생각으로 아는 것은 진리를 온전히 아는 것은 아닙니다. 진리는 경험을 통해서 온전히 알게 됩니다.
참 빛이 세상에 왔고, 세상이 그로 말미암아 생겨났는데도, 세상은 알아보지 못했다(1:9,10)는 말씀은 사실 우리에게 해당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참된 신원을 알아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우리 안의 신성함을, 우리 안에 정말로 존재하는 말씀, 빛, 생명을 우리는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합니다. 이것은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자기 자신으로부터 소외된 인간이 처한 현실이자 한계입니다. 우리가 여기에만 머물러 있다면, 우리는 주님을 알아보지 못할 뿐 아니라, 주님을 맞아들이지 않고 있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의 자녀이고, 본질이 말씀이고 빛이고 생명인 우리는 주님을 맞아들이길 갈망합니다. 본문에서는 주님을 맞아들인다는 것을 주님의 이름을 믿는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하지만 주님을 믿는다는 말은 추상적으로 들립니다. 하나님의 자녀로서 우리가 말씀이고 빛이고 생명이라는 것을 온전히 알고 경험하길 갈망한다면, 우리는 주님을 받아들여야 합니다. 이것이 믿음입니다. 주님을 받아들인다는 말은, 바꾸어 말하면, 주님께서 보여주시는 우리 자신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수용하는 것입니다. 우리 안에서 바람이 불어 얼음이 녹아 물이 되어 흐르도록, 흐름의 리듬에 저항 없이 흘러가는 것입니다.
흐름의 리듬 안에 있는 일은 고도의 철학적 사유나, 엄청난 신학적 지식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우리 안에 따뜻한 바람이 일어날 수 있도록, 우리의 가슴에 아주 작은 공간을 주님께 내어드리는 것이 흐름 안에서 흘러가는 것입니다. 아주 평범하고 특별할 것 없는 것이 이 작은 틈 안에서 우리를 생생하게 살아 있도록 만드는 삶의 에너지로 변형됩니다. 예수 안에서 나타났던 로고스는 이제 우리 안에서 빛과 생명으로 펼쳐지고 흘러나옵니다. 이것은 우리가 아름답게 반짝이는 빛이고, 충만한 생명력 그 자체임을 드러냅니다.
14절에 “그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사셨다. 우리는 그의 영광을 보았다.” 말씀합니다. 영광을 바라보는 일은 관상(contemplari)과 관련이 있습니다. 존재의 본질과 접촉하고, 마음에 주님이 흐르실 수 있는 작은 틈을 내기 위해 우리는 주님의 현존을 침묵과 고요 속에서 바라봅니다. 주님을 바라볼 때, 영원하신 주님은 만물을 창조하는 사랑의 힘으로 평범한 우리 삶 속에 들어오십니다. 무한하신 주님은 우리 안에 있는 어둠을 끌어안으십니다. 어둠은 결코 빛을 이기지 못합니다. 마음을 열어 우리 안에 현존하시는 주님의 영광을 바라보십시오.
영적인 삶에 시간과 관심을 쏟는 것은 삶의 주변부에서 삶의 중심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날마다 우리 안에서 좋은 생각이 흘러나오도록, 그리스도의 말씀이 풍성히 살아있도록, 주님의 사랑이 우리를 빛과 생명으로 이끌도록, 주님의 흐름 안에서 흘러가십시오. 이 거대한 흐름의 리듬을 타기 위해서는 침묵과 고요 속에 기도하면서, 말씀을 나침반 삼아 정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송구영신 예배 때 각자 받은 말씀을 깊이 묵상하고, 2025년 새해맞이 침묵기도회에 함께 참여하는 것으로 기도의 마중물을 삼으시길 바랍니다. 주님의 말씀과 기도는 우리 마음이 바람이 불고, 물이 흐르는 은총의 자리가 되도록 우리를 도울 것입니다.
다함께 기도드리겠습니다.
사랑이신 하나님, 우리는 빛이며, 생명입니다. 우리의 열망을 담은 기도가 당신의 말씀에 가닿도록, 바람이 불고 물이 흐르는 자리로 우리를 이끌어 주십시오. 살아계셔서 우리와 함께 계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