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이라면 박경리(朴景利) 선생의 <土地>를 모르는 이가 거의 없을 듯 하다. 나는 <토지>를 읽기 전에는 박경리 선생의 소설을 읽어 본 적이 없었다. 내 옆지기 백작부인은 고등학교 시절에 <파시> 를 읽고 너무 깊은 감명을 받았었다고 고백한 적이 있다.
그녀의 소설에서 중요한 주제 가운데 하나는 여성의 비극적인 운명 이다. 대표작 〈토지〉에서 최씨 집안의 중심인물이 두 여성인 것과 마찬가지로 장편 〈김약국의 딸들〉·〈시장과 전장〉·〈파시 波市〉 의 주요인물도 여성이다. 〈김약국의 딸들〉에는 한 가정에서 운명과 성격이 다른 딸들이 나오는 반면에 〈파시〉에는 6·25전쟁 직후에 부산과 통영을 무대로 살아가는 여성들의 다양한 모습이 드러나 있다. 그래서 한편에서는 주로 전쟁 미망인을 등장시켜 악몽과 같은 전쟁 으로 강박관념에 시달리는 모습을 그린 초기의 작품들을 작가 경험을 바탕으로 한 자전적 소설 또는 사소설(私小說)이 라고 평가 하기도 한다.
그녀의 대표작이라 할 수 있는〈토지>는 1969년부터 1994년까지 25년간 집필된 대하소설로서 1890년대 부터 일제강점기까지를 배경으로 했으나 역사소설로 굳어진 것은 아니다. 이 작품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들은 과거에 실존했던 인물이 아니라 작가의 상상력이 빚어낸 인물들이다. 유방암 선고와 사위 김지하의 투옥 등 어려움을 겪으면서도 〈토지〉의 집필을 계속하여 그녀는 윤씨부인-별당아씨-서희, 그리고 그 자식들의 세대에 이르기까지 4대에 걸친 인물들을 통해 민중의 삶과 한(恨)을 새로이 부각시켰고, 이로써 한국문학사에 큰 획을 그었다.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 하다
- 박경리 그 세월 옛날의 집 나를 지켜주는것은 오로지 적막 뿐이었다,
그랬지 그랬었지 대문 밖에서는 늘 짐승들이 으르렁 거렸다 늑대도 있었고 여우도 있었고 까치독사 하이애나도 있었지
모진 세월가고 아~ 아 편안하다 늙어서 이리 편안한걸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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