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호와이레. 인류의 구원을 위해 예수께서 약속을 따라오셔서 그의 순종으로 십자가의 사역을 이루셨다. 그에 앞서 하나님께선 바벨론의 포로기로부터 400년 신구약 중간기 동안 세 가지를 준비하셨다. 첫째는 회당이라는 교회의 전신을 준비하셨고, 두 번째는 헬라어라는 언어의 통일을 이루어서 성경을 읽고 전도하기에 유용하게 만드셨으며, 세 번째가 '팍스 로마나'로 정치적인 안정을 이루어 지중해 전체가 한 나라가 되게 하셔서 여권 없이도 안전하게 다닐 수 있게 하셨다.
로마 사람들은 지중해를 '땅 사이의 바다' 라고 부르지 않고 '우리 바다'(마래 노스트룸) 라고 불렀다. 당시 지배는 로마가 했지만, 문화는 그리스 문화였다. 그래서 그리스와 로마는 경쟁 관계였다. 로마는 전쟁에서 그리스를 이겨 자부심이 있었고, 그리스인들은 모든 문화는 다 우리 것이라는 자부심이 있었다. 여기서 나온 것이 '그레코로만'.
로마가 문화적으로 앞선 것이 법률과 도로다. 로마의 법률은 탁월하게 발달해 있고, 또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고 말할 정도로 도로를 잘 닦았다. 이것들을 로마가 만들었지만, 교회가 잘 이용한 것이다. 하나님은 로마의 정치적인 안정을 통해서 법률의 지원을 받고 도로의 지원을 받아서 안전하고 빠르게 복음을 증언하는 데 사용하셨다.
복음의 조력자가 된 것이 로마법이다. 로마는 제국이라 다양한 나라를 다스려야 되는데 풍습이 다르니까 관습법으로는 온전하게 다스릴 수 없었다. 그래서 법이 발달 된 것이다. 모든 나라와 민족이 법에 맞추는 것이다.
우리나라는 법치국가지만 법이 약하다. 패거리로 달려가서 떼쓰면 법관들도 흔들린다. 이게 다민족 국가라면 말이 안 된다. 우리나라는 관습법의 영향이 크고 민심이 영향을 미친다.
그런데 로마는 법이 아니면 운영이 안 된다. 법이 지배하는 사회다.
AD 6세기에 만든 유스티아니우스 법전은 근대법의 시초다. 우리나라 법률도 이 법전에 뿌리를 두고 있다. 그 정도로 법률이 잘 발달 돼 있다. 사도 바울이 법률을 유용하게 사용했던 곳이 두 군데인데 본문과 예루살렘에서다(21, 22장).
바울이 기도하고 찬송하는 중에 옥문이 열렸음에도 도망가지 않았고, 이에 간수가 그를 영접하여 그의 집에 복음을 전했다. 간수가 '이제는 평안히 가십시오'(36) 했더니, '로마 사람인 우리를 죄도 정하지 아니하고 사람들 앞에서 때리고 가둔 후에 그냥 가라고 하다니. 그냥 못 가니까 상관이 와서 사과하게 하라' 그래서 그사과를 받고 옥에서 나와서 루디아 집으로 가서 형제들을 위로하고 갔다(40).
바울이 처음부터 로마 시민권자임을 주장하지 않은 것은 이방인의 전도를 위해서다. 감옥에 들어가서 기도하고 찬송했을 때 죄수들도 듣고 간수도 변화되고 온 집이 구원받는 역사가 있었다. 그런데 떠날 때 권리를 사용한 것은 남아 있는 성도들을 위한 것. 예수 믿는다고 성도들을 함부로 대했다가는 다시 와서 문제를 일으킬 수도 있다는 경고일 수 있다. 바울은 이 권리를 잘 활용했다.
반면 예루살렘에 갔더니 “가죽줄로 바울을 매니 바울이 곁에 섰는 백부장더러 이르되 너희가 로마 사람 된 자를 죄도 정치 아니하고 채찍질할 수 있느냐 하니”(행22:25) 바울이 이렇게 처음부터 주장했던 이유는 전도할 상황이 아니기에 쓸데없이 고난을 겪지 않은 것이다.
우리는 고행주의자가 아니다. 복음과 함께 고난이 오면 받겠지만 바울이 법률을 활용해서 피할 수 있는 상황은 피하며 잘 쓰임 받는 종이 되었다.
이 로마법은 예수님도 잘 활용하셨다. 예수님을 죽이려 했을 때 유대인들의 사형법은 돌로 쳐 죽이는 것. 그럼 구약의 예언과 맞지 않는다.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신21:23). 이 말씀을 이루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로마법을 활용하신 것이다(갈3:13). 중간기에 법률을 만들어 초대교회 때 제대로 사용할 수 있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 도로가 주는 힘이 컸다. 로마가 도로를 만든 이유는 세금을 다양하게 걷으려는 것인데 도둑들이 도로를 노리니까 도로마다 주둔군을 두었다. 그래서 안전했다. 사도 바울이 전도 여행을 다녔던 길이다. 길에서는 강도들을 만날 일이 없었다. 강의 위험, 바다의 위험, 강도의 위험은 도로 밖에서의 일들이다. 로마의 도로는 마차 두 대가 크로스 할 수 있을 정도의 넓이다. 로마의 도로는 돌로 깔려 있어서 지금도 사용되고 있다. 로마가 만든 도로가 복음을 전파하는 길이 됐다.
교회는 성 쌓는 곳이 아닌 길 닦는 곳이다. 예루살렘 교회는 성 쌓는 교회와 비슷하다. 우리끼리 모이자고 하는 것. 그러나 교회는 세상의 소금으로 녹아 흩어지는 구조다. 그래서 엄청난 역사가 있었던 것. “정녕히 내가 광야에 길과 사막에 강을 내리니”(사43:19). 하나님이 행하시는 새 일은 길을 만드시는 것이다.
스가랴엔 성곽이 없는 성. 하나님이 불로 막아 주신다. 개방하고 턱을 낮추어 얼마든지 들어가고 나오며 세상에 강한 영향을 미치라는 것이다. 증인 된 교회는 절대로 성을 쌓을 수 없다. 여기 머물 시간이 많이 없으니까 이동하기 좋은 구조와 조직을 만들어야 한다. 성령이 하시는 일이다. 많이 가는 곳이 길이 된다. 누군가 길을 닦겠다고 하는 사람을 통해서 길이 열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