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월봉의 전설
제주 여행 셋째 날 오후, 수월봉을 찾았다. 주차장 주변에 안내판이 있다.
“천연기념물 제513호 수월봉은 해발 77m 높이의 제주 서부지역의 조망봉으로 정상에서 바라보는 풍광은 가슴을 시원하게 해준다. 특히 깎아지른 듯한 수월봉 해안 절벽은 동쪽으로 약 2km까지 이어진다. 이 절벽을 ‘엉알’이라 부르며 벼랑 곳곳에는 샘물이 솟아올라 ‘녹고물’이라는 약수터로 널리 알려져 있다”
‘수월봉 해안 절벽’에 목책을 들러 놓았다. 목책에서 내려다본 절벽이 아찔하게 느껴진다. 이 절벽에는 슬픈 전설이 있었다.
“옛날 수월이와 녹고 남매가 홀어머니의 병구완을 위해 수월봉에 오갈피라는 약초를 캐러 왔다가, 누이인 수월이가 절벽에서 떨어져 죽자 녹고는 슬픔을 못 이겨 17일 동안을 울었다고 한다.”
오갈피는 오가피라고도 하는데, 두릅나뭇과의 오갈피나무 또는 같은 속 식물의 뿌리줄기 및 껍질을 말한다. 오가피의 특징은 특이한 냄새가 나며 쓰고 맵다. 한약재로 쓰는데 힘줄과 뼈를 강하게 하는 데 쓴다.
‘오갈피라는 약초’라고 했는데 오갈피나무는 키가 2m 정도 자라는 잎사귀가 넓고 큰 활엽의 관목이다. ‘관목’이란 나무의 키가 작고, 원줄기와 가지의 구별이 분명하지 아니하며 밑동에서 가지를 많이 치는 나무로 진달래·앵두나무 따위가 해당한다. 반대로 키가 큰 나무를 교목(喬木)이라 한다.
전설의 주인공은 수월이와 녹고 남매, 이들은 홀어머니의 병구완을 위해 약초를 캐러 가는 착한 남매이다. 권선징악의 원리에 따라 착한 사람에게는 복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수월이와 녹고 남매에게는 불행이 닥친다.
수월이가 오갈피를 발견하고 그것을 구하려다 깎아지른 절벽에서 떨어져 죽었다. 녹고는 누나를 부르며 울었다. 17일 동안이나 울었다.
“이 녹고의 눈물을 녹고물이라고 전하며, 수월봉은 "녹고물 오름" 이라고도 한다.”
녹고가 흘린 눈물은 ‘녹고물’이고, 수월이 떨어져 죽은 이 봉우리는 ‘녹고물오름’이다. 그 이름을 통해 슬픈 전설이 전해지고 있다.
머리에 쓴 모자가 날아갈 듯 바람이 세차게 불어온다. 그 바람을 타고 울음소리가 들린다. 수월이 누나를 부르는 녹고의 울음소리다. 가슴이 먹먹하여 더 이상 서 있을 수 없다. 그냥 내려왔다.
“이곳 수월봉 정상에서 바라보면 차귀도, 누운섬, 당산봉을 비롯하여 광활한 고산평야와 산방산, 한라산이 두루 보이고 날씨가 맑은 날에는 가파도와 마라도까지 보일 정도로 경관이 뛰어나다.”
‘차귀도, 누운섬, 당산봉’은 잘 모른다. ‘가파도와 마라도’ 역시 잘 모르지만 이름은 들었다. 가파도나 마라도에 가려면 서귀포시 대정읍에 있는 운진항(모슬포 남항)에서 배를 타고 간다. 지도에서 보면 두 섬이 운진항 남쪽으로 거의 일직 선상에 있다. 운진항에서 가파도까지의 거리는 약 5Km로 소요 시간은 10분, 그 남쪽 마라도까지의 거리는 10km 정도이다.
언젠가 마라도에 간 적이 있다. 그때도 바람이 세차게 불었다. 키 작은 나무가 널려 있었던 마라도, 서귀포에서 까마득하게 먼 곳인 주 알았었는데, 의외로 가깝다.
‘엉알’ 절벽을 보기 위해 내려왔다. 자동차를 도로변에 주차해 놓고 해안으로 갔다. 해안의 오른쪽 입구에 휘어진 지층이 보인다. 거기에 ‘수월봉 화산쇄설층 낙석 발생에 주의하세요’하는 현수막이 걸려 있고 관광객의 출입을 막는 테이프도 설치되어 있다. ‘화산쇄설층’에서 ‘쇄설’은 ‘자질구레한 부스러기’를 말한다. 쇄설 퇴적임이란 말도 있다.
수월봉은 수성 화산으로 태어났으며 화산이 폭발했을 당시 화산 분출물이 어떻게 흘러가며 어떻게 쌓였는지 알 수 있는 ‘화산쇄설층’이 있다고 하지만 엉알 절벽의 지층은 사계리 용머리 해안에서 보았던 지층과 비슷하지만, 그 규모가 작고 형상의 다양성도 떨어진다.
절벽 아래 해안에는 커다란 바위가 널려 있는데, 파도가 성난 사자처럼 밀려와 사정없이 부딪힌다. 그럴 때마다 포말이 일어 하늘 높이 치솟는다.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니 바위에 부딪히는 파도가 수월이 누나를 그리는 녹고의 몸부림처럼 느껴진다. 포말이 솟구치는 광경을 보는 내내 마음이 편치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