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2023.11.19. 마흔일곱 번째 주. 설교문
묵상 우리는 하나님 앞에 모두 장님입니다.(1장)
신앙고백
찬송 14 구세주를 아는 이들
기도 조용림 권사
성경말씀 에베소서 3:1~13
찬양 샤론 중창단
설교 낙심치 말자
찬송 188 만세 반석 열리니
광고 -. 추수감사절(다음 주) 성찬 예배- 코로나 집단(일부) 양성반응으로
-. 코로나 집단(일부) 양성반응으로 보호자 방문 금지
-. 매월 20일 휴무인데도, 열흘 근무까지 변경하면 사고 위험.
-. 21일(화) 전, 노회장 김춘식 목사(김제중앙장로교회 원로), 노회 서기 김효은 목사- 점심(광명)
가족방문 조용림 권사 큰 아들(인천), 임명화 권사 가족(서울)
찬송 411 예수 사랑하심은
축도 아프니까 그만하세요. 주님도 아프고, 나도 아프잖아요.
펄펄 눈이 옵니다
바람 타고 눈이 옵니다
하늘나라 선녀님들이
송이송이 하얀 솜을
자꾸자꾸 뿌려 줍니다
자꾸자꾸 뿌려 줍니다
엊그제 첫눈이 내렸습니다.
마치 옛 친구를 만난 듯 참 반가웠습니다.
1절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2절,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3절, 곧 계시로
네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4절,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5절,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6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7절,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8절,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절,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10절, 이는 이에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11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12절,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13절,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성경에는 살인, 전쟁, 심지어 근친상간 등 시시콜콜한 이야기들이 많습니다.
그렇지만 테마는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의 설교도 사적이고 시시콜콜합니다.
그래서 남의 교회 이야기가 아니고
옛날이야기도 아니고
바로 우리 교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사랑 이야기를
사도행전에 낫낫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때론 착한 성도 이야기도,
때론 악한 성도 이름까지 사도행전에 기록하게 됩니다.
지난주에 목사님 마음이 아팠습니다.
우리 박영수 집사님 때문입니다.
열 분이 넘는 우리 선생님들을 괴롭혀서 쫓아냈습니다.
그러고도 우리 남성자 집사님을 계속 괴롭히고 있습니다.
남 집사도 어렵게 사는 분입니다.
남편 부도 때문에 하루아침에 살림이 쪼그라들어
식당에서 10여 년을 아르바이트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느라 암 투병까지 했습니다.
가엽고 불쌍하잖습니까?
이렇게 아프게 사는 남 집사를 도와주어도 모자랄 것입니다.
그래서 목사님이 박영수 집사를 꾸중하며 나가라고 호통쳤습니다.
그런데도 여기가 내 집인데 왜? 나가냐고 반문합니다.
그러면 우리가 한 가족이니 외롭고 아픈 사람들끼리
서로 껴안아 주며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그래도 25일 손녀 결혼식이 있다기에
축하금 2십만원을 보내드려야겠다고 신우회와 상의도 했습니다.
물론, 목사님이 다 챙겨 드릴 수 있겠지만
우리가 함께 사랑하며 살아가는 가족이란 것을 느끼게 하고 싶습니다.
1절입니다.
이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로 너희 이방인을 위하여 갇힌 자 된
나 바울이 말하거니와
2절, 너희를 위하여
내게 주신
하나님의 그 은혜의 경륜을
너희가 들었을 터이라
이때 사도 바울이 로마 감옥에 있었습니다.
그러니 얼마나 불편하고 괴로웠겠습니까?
이렇게 예수 그리스도 복음 증거를 위해서 환란을 당하고 있으면서도
에베소 교인들을 향하여 기도할 수 있는
바울 사도의 모습에 경의를 표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가 어느 곳에 있을지라도
심지어 감옥일지라도
우리 마음의 중심이 예수 그리스도에 있다면
어떤 고난 어떤 고통까지도 은혜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신 직분과 사명을
사도 바울처럼 잘 감당해야만 합니다.
이것이 은혜의 경륜이고 은혜의 선물입니다.
3절입니다.
곧 계시로
네게 비밀을 알게 하신 것은
내가 먼저 간단히 기록함과 같으니
4절, 이것을 읽으면
그리스도의 비밀을
내가 깨달은 것을 너희가 알 수 있으리라
목사님은 인생이란 무엇일까?
인생 비밀에 대해서 늘 생각합니다.
그래서 매일 목사님 자신이 미천함을 깨닫습니다.
그런데도 목사입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된 것이 참 큰 축복입니다.
사도 바울도 깨달은 비밀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1장 15절입니다.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 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16절, 그의 아들을 이방에 전하기 위하여 그를 내 속에 나타내시기를 기뻐하셨을 때에
내가 곧 혈육과 의논하지 아니하고
17절, 또 나보다 먼저 사도 된 자들을 만나려고 예루살렘으로 가지 아니하고
아라비아로 갔다가 다시 다메섹으로 돌아갔노라.
참 아이러니하게도 바울이 예수를 잡아 죽이고자 헤매고 다닐 때에
드디어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를 만났지만
전혀 죽일 수 있는 예수가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엄청난 충격을 받았고
이로 인하여 인생 반전이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곧 아라비아 사막으로 들어갔습니다.
아라비아 사막에서 3년 동안 처절한 고독과 깨달음을 통해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냥, 하루아침에 바울 사도가 된 것이 아닙니다.
목사님도 하루아침에 목사가 된 것이 아닙니다.
피눈물 나는 깨달음이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부족하기만 합니다.
그래서 예수 그리스도의 비밀을 깨달았습니다.
이런 의미에서 여기에 계시는
우리 김복순, 조용림 권사님, 심재례 집사님 등 모두가
사도 바울입니다.
왜냐하면 우리 모두 외롭고 고독한 인생이기 때문입니다.
어제 인천에 사시는 우리 조용림 권사님 큰아들께서 오셨습니다.
그런데 우리 요양원에 코로나 집단 양성반응 때문에 만남을 불허했습니다.
그래요? 전혀 짜증 내지도 않고 그냥 돌아서는
큰아들님의 쓸쓸한 뒷모습을 보면서
그럼, 유리창 너머라도 어머니를 뵙지요.
그리고 어머니, 우리 조용림 권사께서도 얼마나 목이 빠지도록 기다렸겠습니까?
그러나 어머니, 조용림 권사께서 큰아들을 알아보시겠습니까?
이렇듯 우리 인생이 슬프고 슬프기만 합니다.
그러나 그 먼 인천에서 어머니 얼굴 한번 뵙고 싶어서 달려왔는데
어머니께서 큰아들을 보고도 멀뚱멀뚱 거리면 얼마나 쓸쓸하겠습니까?
그래, 5분도 못 뵙고 손도 못 잡아 보고 돌아서는 것입니다.
그리고 돌아가는 자동차 안에서 전화가 왔습니다.
목사님, 우리 어머니 예쁜 사진 좀 찍어 보내 주세요.
그 순간
목사님과 큰아들은 말을 잇지 못하고 목 메였습니다.
이것이 사내 아들들의 깊은 고독입니다.
우린 서로 목메어
서로 인사조차 못하고 전화를 황급히 끊었습니다.
이제, 우리 조용림 권사님 아드님도 나이가 드니
인생이 허망하지 않겠습니까?
그래서 방금 어머니를 뵈었는데도 또 보고 싶어서
목사님, 우리 어머니 예쁘게 사진 찍어서 보내 주세요.
5절입니다.
이제
그의 거룩한 사도들과 선지자들에게 성령으로 나타내신 것 같이
다른 세대에서는
사람의 아들들에게 알리지 아니하셨으니
6절, 이는 이방인들이 복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함께 후사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
참 아름다운 복음입니다.
구별이 없고
차별이 없는 세상은 아름답습니다.
우리 모두 함께 사는 세상은 천국입니다.
유대인이니 이방인이니 이게 뭡니까?
배우고 못 배우고 이게 뭐겠습니까?
유전무죄 무전유죄有錢無罪 無錢有罪라.
쩐이 있으면 죄도 없습니까?
무고한 사람을 살인죄 누명을 씌워 20여 년을 옥살이시키지 않았습니까?
유검무죄 무검유죄라.
얼마 전 뉴스에
차장검사 처남이라고 마약 신고를 받고도, 석 달 후 시료 채취하고
불기소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런 차별이 없는 세상을 만들자고
검찰개혁에 목숨을 거는 것입니다.
8절입니다.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절,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역시 사도 바울입니다.
사도 바울이 이렇게 작아지기까지
아라비아 사막에서 꼬박 3년을 수행했습니다.
그래서 우리도 성숙해지기 위해서는
사도 바울처럼 아라비아 사막에서와 같은
고독한 시간이 있어야겠습니다.
사실, 사도 바울은 동시대 예수를 만난 적이 없습니다.
그런데도 소문만 듣고서 예수를 죽이고자 쫓아다녔습니다.
얼마나 무모합니까?
요즘도 악플 때문에 자살도 합니다.
노무현 대통령도, 노회찬 국회의원도, 그리고 탤런트 최진실 님도
자살했습니다.
얼마나 괴로웠으면 죽기까지 했겠습니까?
그러니 우리도
이 못 된 세 치 혀로 사람을 욕하지 말아야겠습니다.
목사님도 조심조심하고 있지만
이 건방진 혀 때문에 곤욕을 치르기도 합니다.
이 자리를 빌려 용서를 구합니다.
그런데 바울(사울)은 다메섹 도상에서 부활의 예수를 만나고서
사람을 미워하고 증오한다는 것이
얼마나 큰 죄악인지를 깨달은 것입니다.
그때 얼마나 큰 충격을 받았는지
그 생생함을 사도행전에 낫낫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 9장 3절입니다.
사울이 길을 가다가 다메섹에 가까이 이르더니
홀연히 하늘로부터 빛이 그를 둘러 비추는지라
4절, 땅에 엎드러져 들으매 소리가 있어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하시거늘
5절, 대답하되 주여 누구시니이까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6절, 너는 일어나 시내로 들어가라
네가 행할 것을 네게 이를 자가 있느니라 하시니
7절, 같이 가던 사람들은 소리만 듣고 아무도 보지 못하여
말을 못 하고 서 있더라
8절, 사울이 땅에서 일어나 눈은 떴으나
아무것도 보지 못하고
사람의 손에 끌려 다메섹으로 들어가서
9절, 사흘 동안 보지 못하고 먹지도 마시지도 아니하니라
10절, 그때에 다메섹에 아나니아라 하는 제자가 있더니
주께서 환상 중에 불러 이르시되 아나니아야 하시거늘
대답하되 주여 내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1절, 주께서 이르시되 일어나 직가라 하는 거리로 가서
유다의 집에서 다소 사울이라 하는 사람을 찾으라
그가 기도하는 중이니라
12절, 그가 아나니아라 하는 사람이 들어와서 자기에게 안수하여
다시 보게 하는 것을 보았느니라 하시거늘
13절, 아나니아가 대답하되 주여 이 사람에 대하여
내가 여러 사람에게 듣사온즉
그가 예루살렘에서 주의 성도에게 적지 않은 해를 끼쳤다 하더니.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남을 괴롭히면 반드시 천벌을 받습니다.
놀부가 여우꼬리에 휘발유를 뿌리고 불을 붙였습니다.
놀부는 왜? 무엇 때문에
이렇게 못된 짓들을 하는지 도대체 모를 일입니다.
꼬리에 불이 붙은 여우는 폴짝폴짝 난리가 났습니다.
그 모습을 본 목사님께서
여우야, 얼른 놀부의 논으로 달려가 때굴때굴 뒹굴 거라.
그때가 가을 추수기였습니다.
놀부 논에는 무르익은 곡식이 가득했습니다.
여우가 그 황금 곡식이 가득한 놀부 논으로 달려가 때굴때굴 뒹굴었으니
곡식이 가득 무르익은 논에 불길이 활활 타올랐습니다.
그때 서야 놀부가 엉엉 울면서 땅을 치며 후회했습니다.
내가 왜? 여우 꼬리에 불을 붙였을까?
이렇듯 남을 괴롭히면
결국 놀부 꼴이 되는 것입니다.
요양원을 운영하다 보면 별의별 일들이 벌어집니다.
오늘 이 자리를 빌려
박영수 집사를 대신해서
우리 남성자 집사께 사과드립니다.
어제도 80이 넘은 박영수 집사께서 혈기를 부리며
환갑이 넘은 남성자 집사께 무릎 꿇으라 할 때에
목사님이 화도 나고 슬펐습니다.
박영수 집사가 무어라고? 어찌 무섭겠습니까?
그냥 추접스러운 것입니다.
그러니 이제, 박영수 집사는
우리 남성자 집사 괴롭히는 것을 그만 멈춰야 합니다.
어제 경찰까지 출동해서 박영수 집사 아들과 통화했는데
아들이 경찰에게 말하기를 아버지와 상관없으니
그냥 내쫓으라는 것입니다.
우리 성도들도 지혜를 모아 주기 바랍니다.
바울도 예수를 한 번도 만난 적도 없었는데도 소문만 듣고서
죽이려 하지 않았습니까?
남을 미워한다는 것은
결국, 내 자신을 망치는 것입니다.
10절입니다.
이는 이에 교회로 말미암아
하늘에서 정사와 권세들에게 하나님의 각종 지혜를 알게 하려 하심이니
11절, 곧 영원부터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예정하신 뜻대로 하신 것이라.
새끼 염소가 늑대에게 잡혀 죽을 까봐 덜덜 떨고 있었습니다.
네 이놈 너를 잡아먹겠다.
그러자 새끼 염소가 잡아먹으려는 늑대에게 말했습니다.
늑대님, 죽은 자식 소원도 들어준다는데
죽기 전에 제 소원 하나만 들어주세요.
그래 말해봐라.
늑대님께서 잘 부는 피리 소리에 제가 춤을 추면서 죽고 싶습니다.
그래, 그러면 그렇게 하자꾸나.
그리고 늑대는 뽐내듯 피리를 불어댔습니다.
그 피리 소리에 새끼 염소가 신나게 춤을 추었습니다.
그러자 사냥개들이 웡웡웡 짖어대며 달려들었습니다.
신나게 피리를 불던 늑대가 사냥개가 달려드는 소리를 듣자
아이고~ 늑대 살려~ 도망치다가 결국 사냥개에게 잡혀 죽었습니다.
그래서 피리를 불더라도 때와 장소를 가리자는 것입니다.
적절한 예는 아니지만
하나님의 비밀을 알리는 곳이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몸입니다.
그러니 교회를 더럽혀서야 되겠습니까?
12절입니다.
우리가 그 안에서 그를 믿음으로 말미암아
담대함과 확신을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감을 얻느니라.
지금, 이 말씀이 천국의 계단입니다.
바로 하나님께 이르는 통로입니다.
바로 이것이 우리들의 신앙고백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13절입니다.
그러므로 너희에게 구하노니
너희를 위한 나의 여러 환난에 대하여
낙심치 말라
이는 너희의 영광이니라.
눈물이 납니다.
사도 바울도 수많은 환란을 당하였습니다.
예수께서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지 않았습니까?
그러니 지금 우리가 당하는 환란에 대해서
낙심치 말라는 것입니다.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있게 될 것입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