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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양암
안양암의 창건과 내력에 대해서는 1958년 안진호(安震湖)가 편찬한 『안양암지(安養庵誌)』에 자세히 전한다. 이 기록에 따르면 안양암(安養庵)은 1889년 청신사 이창진(李昌鎭:성월대사)이 환옹(幻翁)스님으로부터 거사계를 받고 절 이름을 칠성각이라 하고, 건물을 지은 것이 시초라고 한다. 그리고 7월에는 아미타삼존상을 봉안하고, 후불탱, 신중탱, 산신탱을 함께 봉안하였다.
1899년에는 삼존상에 개금하고 독성각을 새로 짓고, 독성탱과 산신탱을 조성하였는데 이때 절 이름을 안양암으로 바꾸었다. 1901년에는 성월거사가 환옹스님에게 선주(善住)라는 법명을 받고 정식으로 승려가 되었다. 이로써 창건 이래 13년간 재가신도들에 의한 신앙결사로 유지되던 사찰이 변화를 하게 된다.
이후의 사찰 연혁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909년에는 절 왼쪽 절벽에 관음상을 조각하고, 대웅전에 문고산(文古山) 스님이 조성한 감로탱을 봉안하였다. 1911년에는 관음상 예배를 위한 공간인 관음전과 염불당을 건립하였다. 1914년 2월에는 대웅전 10칸을 새로 짓고, 4월에는 신중탱과 산신탱을 개조(改造)하여 봉안하였다. 1915년에는 3월에 대웅전을 단청하고, 7월에 명부전 6칸을 지었다.
1916년 5월 27일에는 성월대사(性月大師)가 주지에서 물러나고 양학(養鶴) 스님이 주지에 부임하였다. 또한 조선 사찰령에 의해 봉은사 말사로 등록되었다.
1917년 4월에는 대웅전에 팔상탱을 조성하였고, 1919년 7월에 아미타괘불탱을 조성하였다. 1922년 6월에는 명부전에 시왕탱을 조성하였고, 1924년에는 칠성탱을 조성하고 신중탱, 관음탱을 개조 봉안하였다. 또한 문고산(文古山)이 조성한 대웅전 신중탱, 명부전 지장시왕탱, 시왕상을 봉안하였다.
1926년에는 영각을 짓고 아미타삼존탱을 봉안하였고, 1930년 6월에 지장시왕괘불탱을 조성하였다. 1934년 12월에는 천오백불상 조성을 시작하였고, 1936년에는 천오백불전 건립 공사를 시작하였다. 1937년 4월에는 천오백불전을 완공하고 천오백불상과 신중탱을 봉안하였다. 1939년에는 강당 15칸을 건립하였고, 1941년에는 화경(和鏡)이 조성한 지장삼존과 판관 등 권속들을 명부전에 봉안하였다. 1942년에는 염불당 중건을 시작하여, 이듬해 8월에 완공하였다. 이로써 안양암은 오늘날과 같은 도량을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안양암 입구문
안양암 대웅전
대웅전은 정면 3칸 측면 3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5단으로 쌓은 축대위에 세워졌다. 지붕 용마루의 양끝에는 용두가 각각 하나씩 놓여 있으며, 정면과 측면 두 개의 기둥 위에는 구슬을 물고 있는 용두가 장식되었다. 문은 사분합문으로 창살은 띠창살이며, 서까래 끝에는 문을 들어 올려 걸 수 있는 걸쇠가 고정되어 있다.
정면 중앙에는 대웅전이라는 편액이 걸려있는데 “팔십옹해정당(八十翁海貞堂)”이라는 글과 관지(款識)가 찍혀있다. 그리고 기둥에는 『석문의범(釋門儀範)』 「대장전청(大藏殿請)」에 나오는 내용을 해사(海士) 김성근(金聲根)이 쓴 주련이 걸려있는데, 그 내용과 뜻은 다음과 같다.
불신보편시방중(佛身普徧十方中)부처님의 법신은 시방에 두루 하시니
삼세여래일체동(三世如來一體同)삼세여래도 모두 한결 같으시네.
광대원운항부진(廣大願雲恒不盡)광대한 서원의 구름 항상 다함이 없으시고
왕양각해묘난궁(汪洋覺海渺難窮)드넓은 깨달음의 바다는 아득하여 헤아리기 어려워라.
정면을 제외한 3면 벽에는 돌아가면서 십우도가 그려져 있으며, 특히 오른쪽 벽면 아래쪽에 “상락아정 천우사화(常樂我淨 天雨四花)”라고 글씨를 도안화 하여 써 놓았다.
안에는 아미타삼존상(서울시유형문화재 제190호)이 모셔져 있으며 19세기 말~20세기 초를 대표하는 화승들이 조성한 아미타후불도(서울시유형문화재 제185호), 팔상도(서울시유형문화재 제187호), 감로도(서울시유형문화재 제186호), 신중도(서울시문화재자료 제15호) 등이 봉안되어 있다.
안양암 전경
안양암 대웅전 신중탱
대웅전 내부 왼쪽에 봉안되어 있는 불화로 1924년 고산축연(古山竺演), 보응문성(普應文性), 학송(鶴松) 등 당대 최고의 화승이 그린 것이다. 화면은 세 개의 얼굴과 여덟 개의 팔을 가진 대예적금강(大穢跡金剛)을 중심으로 왼쪽에 범천, 제석천, 오른쪽에 위태천을 위시한 여러 신장이 배치된 모습이다. 이 신중탱은 화면 전체적으로 음영법이 사용되었는데, 이러한 경향의 불화로는 전등사 신중탱, 용주사 신중탱 등에서 같은 기법을 찾을 수 있다. 현재 서울특별시문화재자료 제15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양암 대웅전 팔상도
팔상도는 부처님의 일대기를 여덟 장면으로 나누어 그린 것이다. 안양암 대웅전의 팔상도는 1917년 화암(華庵) 등이 한 폭에 두 개의 장면씩, 총 4폭에 여덟 개의 장면을 나누어 그렸다. 각 화면의 상단에는 화제가 한자와 한글로 병기되어 있으며, 하단에는 화기를 기록하였다. 색채는 진채와 금니를 많이 사용하였으며, 18세기에 그려진 팔상도에 비해 도상들이 조금씩 생략되어 있다. 그러나 19세기와 20세기에 그려진 다른 팔상도에 비해 화면의 구도나 형태가 밀도 있고, 선이나 색채가 아름다운 편이다. 특히 나무나 물결, 구름, 언덕, 물고기 등의 장식적인 도상들에서 당대 민화와의 관련성을 찾아볼 수 있다. 또한 인물표현에 가해진 음영법을 통해 서양화풍을 엿볼 수 있다. 현재 서울특별시 유형문화재 제187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양암 대웅전 아미타삼존불상
대웅전에는 전각의 이름에 걸맞게 석가삼존상이 봉안되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러나 안양암 대웅전에는 이름과 다르게 아미타삼존이 봉안되어 있다. 삼존상 가운데 목조아미타여래좌상은 강원도 고성 건봉사에서 모셔왔다고 하는데 크기는 60cm정도이다. 머리는 나발이 표현되었으며, 육계는 원형의 중간계주와 정상계주가 표현되어 있다. 방형의 얼굴에는 백호가 있고, 눈은 양 미간에서 조금 떨어져 있으며,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있다. 두툼한 코와 넓적한 인중, 입꼬리가 조금 올라간 듯 표현된 입술이나 원만한 모습이다. 수인은 오른손은 무릎에 대고 왼손은 가슴 높이로 들고 있는 모습이며, U자형의 대의, 상단이 직선적이고 가슴까지 올라가 군의(裙衣), 결가부좌한 다리를 감싸고 있는 부채꼴 모양의 법의 등의 세부적인 모습에서 17세기 경에 조성된 불상임을 알 수 있다.
관음보살좌상은 57cm 크기로 화불 표현이 없는 보관을 쓰고 반가상의 자세로 시선을 아래로 향하고 있다 코는 두툼하고 인중이 넓적하며 입은 웃고 있는 듯하다. 목에는 삼도가 표현되었으며, 가슴 위까지 올라와 있는 U자형의 대의가 밑으로 늘어져 있고, 양 팔뚝에 완(玩)이 장식되어 있다. 양 손은 손가락을 일렬로 붙인 채 구부려 앞쪽을 향하고 있는데, 손목에 천의를 걸친 오른손은 오른쪽 무릎에 올려놓고, 왼손은 대좌위에 올려놓았다. 그런데 대좌의 오른편에 연꽃을 든 동자가, 왼쪽에는 인왕상이 조각된 점이 특이하다.
지장보살좌상은 48.5cm 크기로 민머리에 약간 길쭉한 방형의 얼굴로 눈은 정면을 바라보고 있다. 오른손은 무릎에 대고 왼손에는 보주를 들고 있다. 이 존상은 『안양암지(安養庵誌)』에 의하면 1889년 경성(慶惺)이 조성한 것이라고 한다.
현재 이 아미타삼존상은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190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양암 관음전
관음전은 커다란 암벽에 붙여 1911년 지은 정면 한 칸 규모의 맞배지붕 건물로 대웅전 향좌측에 위치해 있다. 건물의 정면 양 기둥과 상단에는 근대에 유행하던 당초무늬의 장식물인 낙양각이 달려 있어 돋보인다.
내부에는 1909년에 벽면에 조성한 마애관음보살상이 봉안되어 있다.
안양암 석감마애관음보살좌상
마애관음보살좌상은 안양암 경내의 커다란 화강암 바위의 동쪽 면을 파서 얕게 조각한 것이다. 전체적으로 반원형의 석감(石龕)을 얕게 부조하고 그 안에 보살상이 새겨져 있다. 마애보살상 앞에는 팔각형의 석조 기둥이 좌우에 세워져 있고 기둥을 잇는 돌에 '觀音殿' 이라고 새겨져 있다.
전각의 왼쪽 편에는 마애불과 관련된 100여자의 명문이 새겨져 있는데 불상을 조성하는데 관련된 사람들의 이름이 적혀있다. 명문은 얕은 음각선으로 새겨져 있기 때문에 정확한 판독이 어려우나, 그중 “□□삼년기유년(□□三年己酉年)”이란 내용으로 보아 1909년에 조각된 것으로 추정된다. 이 명문에 의하면, 이 보살상을 조각한 사람은 석공(石工)으로 되어 있고 명문을 새긴 사람인 김천보(金天輔)는 각수(刻手)라 하였다.
마애보살상은 크기가 커서 전각 전체를 꽉 채우고 있는 것으로 일정한 두께의 얕은 부조에 드러나는 밋밋한 형태감은 조선 말기의 조각 솜씨를 보여준다. 머리에는 원통형의 보관(寶冠)을 쓰고 있는데 보관 중앙에 좌상의 화불(化佛)이 간략하게 표현되었으며 관대(冠帶) 좌우에는 수술 장식이 늘어져 있다. 이러한 특징으로 보아 관음보살을 형상화한 것으로 보이나 여래가 입는 법의를 입고 있으며 손에는 아무런 지물도 쥐고 있지 않다. 넓은 얼굴에는 백호(白毫)와 눈ㆍ입만 채색되어 있으며 코는 낮고 뭉툭하여 전반적으로 보살상의 인상이 무뚝뚝해 보인다. 대의(大衣)는 양어깨를 모두 감싸고 있는 통견(通肩)으로 걸쳤으며 어깨선은 이중으로 표현되어 팔꿈치 아래까지 내려와 있다. 두 손은 각각 가슴 앞과 배 부분에 두고 있는데 왼손은 엄지와 둘째손가락을 맞대고 있고 오른손은 다섯 손가락을 다 펴고 있다. 광배는 두광(頭光)과 신광(身光)이 연결된 키 모양으로 네 줄의 선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두광 바깥쪽에는 산스크리트어로 '옴'자를 양각하였다.
감실너비 275cm, 전체높이 353cm, 무릎너비 210cm로 현재 서울특별시유형문화재 제122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양암 금륜전
안양암 요사 의신당
안양암 치성광여래좌상및 궈속들
금륜전의 주존으로 봉안되어 있는 소조치성광여래좌상은 1889년 조성되었다고 추정되고 있다. 둥근 얼굴에는 이목구비가 작게 표현되었으며, 육계가 낮은 편이다. 오른손은 손바닥을 무릎위에 올려놓았고, 유난히 큰 왼손은 펴서 위를 향하게 하고 그 위에 보주형의 금륜을 올려놓았다.
치성광여래좌상의 좌우에는 월광보살입상과 칠원성군, 동자, 동녀 등이 일렬로 배치되었다. 현재 이 존상들은 일괄로 서울특별시문화재자료 제24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양암 금륜전내 산신상과 산신탱
안양암 독성탱과 금륜전 칠성탱
이 칠성탱은 1930년 고산축연(古山竺演), 보응문성(普應文性), 학송(鶴松) 등 당대 최고의 화승이 그린 것이다. 화면은 중앙에 흰 소가 끄는 수레를 타고 있는 치성광여래와 좌우에 일광보살, 월광보살, 칠원성군 등이 빼곡히 들어선 구도를 보여주고 있다. 치성광여래는 항마촉지인의 수인을 하고 왼손에 금륜을 들고 있는데 주변으로는 오색 서운이 퍼져나가는 듯한 광배와 서운이 자연스럽게 주변 협시중과 구분을 짓고 있다.
현재 서울특별시문화재자료 제21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양암 염불당
염불당은 대문 옆에 위치하고 있는 정면 4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1943년에 지은 것이다. 정면에는 ‘만일회(萬日會)’라는 편액이 걸려 있고, 내부에는 관음보살반가상과 삼불회도(서울시문화재자료 제20호)가 봉안되어 있다.
내부에 봉안된 관음보살반가상은 전체적으로 백색으로 칠해져 있으며, 머리에는 불꼴 모양과 새 모양이 달린 금색보관을 쓰고 있다. 까만 머리카락은 양어깨 위로 흘러내렸으며, 얼굴은 계란같은 모습을 하고 있다. 허리는 잘록하며 복부 위에서 천의가 X자형으로 감겨져 있다. 오른손은 손등이 위로 보이게 펴서 오른 무릎에 올렸으며, 왼손은 손바닥을 펴서 위로 향하게 하여 왼쪽 무릎에 올려 놓았다. 그리고 오른쪽 다리는 결가부좌 한 상태에서 아래로 내려 반가좌의 모습을 하고 있다.
안양암 괘불 걸이
안양암 명부전
명부전은 정면 3칸, 측면 2칸 규모의 팔작지붕 건물로 1915년 지은 것이다. 건물의 정면 기둥은 사각이며, 좌우측면과 뒷면은 벽돌로 마감을 하였다. 그런데 좌우 측 벽면에는 단조로움을 피하기 위한 노력인지, 오른쪽 벽면에는 “안양정토(安養淨土)” 글자를, 왼쪽 벽면에는 “극락세계(極樂世界)”글자를 도안화하고 다람쥐와 포도, 연꽃과 새를 그려 장식하였다.
정면에는 명부전 편액과 더불어 4개의 주련이 걸려 있는데 모두 이태형(李泰亨)이라는 사람이 쓴 것이다.
모언지장득한유(莫言地藏得閑遊) 지장보살님이 한가로이 놀고 계시다고 함부로 말하지 말라
지옥문전루불수(地獄門前淚不收) 지옥문전에서 눈물을 거두지 못하시도다.
조악인다수선소(造惡人多修善少) 악을 짓는 이는 많고 선을 행하는 이는 적구나
남방교화기시휴(南方敎化幾時休) 남방교화를 언제나 쉬실꼬.
안에는 지장삼존상(서울시문화재자료 제22호)과 시왕상(서울시문화재자료 제23호), 2구의 판관상, 2구의 금강역사상, 4구의 동자 · 동녀상이 봉안되어 있다. 불화로는 1924년에 조성된 지장시왕도(서울시문화재자료 제17호)와 1922년에 제작된 시왕도(서울시문화재자료 제18호), 사자도, 금강역사도 등이 봉안되어 있다.
안양암 명부전 시왕상
명부전 시왕상은 1941년에는 화경(和鏡)이 조성한 것으로 지장삼존상 좌우에 각 5위씩 봉안되어 있다. 일반적으로 시왕상을 보면 모두 의자에 앉아 있는 모습인데 안양암의 존상은 모두 좌상의 형식으로 각기 홀이나 경전, 명부를 들고 있는 모습이다. 현재 일괄로 서울특별시문화재자료 제23호로 지정되어 있다.
안양암 명부전내
안양암 사적비
안양암 정문을 들어서 바로 왼쪽에 있는 넓적한 바위 끝에는 4기의 비석이 세워져 있다. 이곳에는 안양암사적비와 중건주이태준공덕비, 거사이선행정골사리비가 나란히 서 있다. 안양암사적비는 1932년 권상로(權相老)가 지은 것이고, 중건주이태준공덕비는 1963년 한법용의 찬문을 한글로 새겨 놓은 것이다. 거사이선행정골사리비는 1923년 입적한 이선행거사의 사리비를 1963년에 세운 것이다.
이외에 정면에 나무아미타불이라고 음각된 비석이 하나있다. 이 비석에는 1939년 삼화부인회 10주년과 중건을 기념하여 세우고, 1943년 삼화부인회의 재설치 및 염불당 중건을 기념하여 새겼다고 적혀있다.
안양암 찾아가는 길
종로에서 동대문을 지나면 동묘앞역사거리이다. 여기서 좌회전하여 창신역방향으로 100m 정도가면 왼쪽으로 GS25 편의점이 보인다.(청량리 쪽에서 올 경우에는 동묘앞역사거리에서 우회전, 신당역 쪽에서 올 경우 동묘앞역사거리에서 직진)
여기서 좌회전하여 50m 정도 가면 두산아파트이다. 그러면 아파트 단지 쪽으로 들어가지 말고 오른쪽 길로 조금가면 유료주차장이 나온다. 절 주변에는 주차할 공간이 없기 때문에 이곳에 주차를 해야 한다. 주차 후 두산아파트 담장을 끼고 왼쪽 길을 따라 100m 정도 가면 안양암에 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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