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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요물나라 원문보기 글쓴이: 요물
금북정맥이 백두대간 속리산 천황봉에서 서쪽으로 분기하여 한남금북정맥으로 흐르다 안성 칠장산에서 다시 두줄기로 분기하여 한줄기는 한강의 온전한 남쪽 줄기를 이루면서 김포벌로 이어가고 다른 한줄기를 남으로 분기하여 충청남도 땅을 휘저으며 가다 예산의 진산인 덕숭산(수덕산)과 가야산을 품고 있는 덕산도립공원을 지나가며 가야산부터 예산과 서산의 경계를 따라 북진하여 암산인 石門봉(653)에 이르러 금북정맥은 잠깐 서쪽으로 가다 북진하며 일락산 방향으로 뻗어 나가고 동북 방향으로 한줄기를 분기하여 서산시 운산면과 예산군 덕산면의 경계를 따라간다 玉洋봉(621.4, 1.6)-등고선상610봉(0.4/2)에서 북쪽으로 수정봉(453, 여맥)을 떨구고 서산과 예산의 경계를 벗어나 순수한 예산군 덕산면의 북단면을 남북으로 나누며 동쪽으로 내려가 의현동임도(270, 1.2/3.2)- 書院산(△472.7)어깨(410, 0.8/4)에서 동남방향으로 서원단맥을 떨구고 다시 먹색파선을 따라 북동진하여 실티재(150, 2.5/6.5)로 내려선다 △272.2봉어깨(230, 1.2/7.7)에서 동남방향으로 鳳鳴산(238.8, 단맥)을 떨구고 북진하여 금치리십자안부 삼거리(170, 1.2/8.9)- 등고선상 250봉어깨(230, 2.1/11)에서 동쪽으로 屯軍봉(△136.1, 단맥)을 떨구고 북진하여 우현도로(190, 0.4/11.4)로 내려선다 五峰산(△224.1)어깨(190, 0.8/12.2)에서 서쪽으로 부엉산(△158.3, 여맥)을 떨구고 북진하여 이계도로(90, 1.7/13.9)에 이르고 서북진으로 올라 등고선상190봉(1.1/15)에서 서북방향으로 雄산(△253.5, 여맥)을 떨구고 북동진하여 양지말마을을 거쳐 70번국지도 나무고개 도로(90, 2.7/17.7)에 이른다 테뫼산(110)-몽산(290, 2.2/19.9)에서 북쪽으로 峨嵋산(△349.5, 단맥)을 떨구고 동진하여 구절산(210, 1.1/21)을 지나 차나물안부(90)를 거쳐 615번지방도로 성북고개(다람쥐고개, 70, 2.6/23.6)로 내려선다 國賜봉(150, 1.5/25.1)-△131.7봉(1.5/26.6)에서 서쪽으로 泰白山(90, 여맥)을 떨구고 북진하여 구32번국도 틀무시고개 도로(70, 3/29.6)에 이르고 동네 도로를 반원형으로 돌아 기지시(70, 0.5/30.1)에서 북쪽으로 송산면 가곡리 두포마을을 지나 간척사업으로 섬이 육지가 된 아산만 성구미마을로 가는 두포단맥을 하나 떨구고 동진한다 물론 그 성구미마을로 가는 산줄기 약13km를 더하여 지맥이라 해도 아무런 할말은 없으나 최장길이로 뻗은 산줄기를 가늠하다보니 오룡산으로 동진을 하게 된 것이다 國守봉(90)어깨-△80.0봉-五龍산(110, 1.9/32)에서 남쪽으로 鐵馬산(△89.8, 단맥)을 떨구고 북동진하여 당고개 도로(50, 2/34)- △70.7봉-장내골도로(50,1/35)-630번지방도로 느랭이고개(50, 1.7/36.7)에 이른다 松嶽산(△150.0, 0.8/37.5)-제비골임도(30, 1.2/38.7)를 지나 비산비야를 달려 한터도로(2/40.7)-△111.2봉어깨(110)를 지나 송악면 고대리 고잔마을(10, 2.1/42.8)에서 끝이나야 하지만 그 이후로 인위적으로 바닷물을 막아 간척사업을 하면서 생긴 예전에는 섬이었으나 지금은 육지가 된 內島 노란이마을을 지나 △40.4봉도 지나 아산만 바닷가(0, 3.2/46) 바위벼랑에서 끝이나는 약46km의 산줄기를 그 산줄기 중 제일 높은 옥양봉의 이름을 빌어 금북정맥에서 분기했으므로 금북옥양지맥이라고 부르기로 한다 여기서 문제가 하나 있는데 오룡산에서 철마산으로 가는 산줄기가 조금 더 긴편이나 그 산줄기는 송악산으로 가는 산줄기보다 그 세가 약하고 또한 그 동네 이름이 바로 당진군 송악면인데 그 면이름을 있게 한 송악산을 높이 평가해서 그리로 산줄기를 이어간 것이다 물론 철마산으로 이어가도 나는 아무런 이의가 없음은 물론이다 [신경수님 글] |
○산행코스 : 상가저수지 - 석문봉(653) - 옥양봉(621.4) - 서원산갈림길 - 수창봉(237) -실티재-양지말임도- 베다니기도원임도
[산행지도]
열흘넘게 끝나지 않는 집을 수리하랴 마음의 여유가 없었는데 전날 개구락지 친구한테 연락을 받고 오랫만에 얼굴이라도 볼겸 베낭
을 챙겨 늦은 오후 집을 나섰다. 영등포역에서 예산행 기차가 없어 천안 친구가 아직 떠나지 않았다기에 천안서 만나 덕산으로 가
잔다.
천안에 도착했는데 아직 시간이 남아 있어 온양행 버스를 타고 돌고돌다 나보다 먼저 와 있는 친구를 만나 덕산으로 갔다. 수동리
의 리솜스파캐슬에서 유숙하게 될 관광지에 도착,
정말 오랫만에 보는 개구락지 친구도 있었다. 마음먹으면 쉽다고 할까. 그리 어렵지만은 않은 것을,
[실물이 더 잘 생겼지요]
미리 와 있는 친구들과 저녁을 먹고 친구가 정해놓은 숙소로 이동하여 마시고 놀다 친구가 그려온 정성의 그림을 감상하며 한 점씩
배당받고 노래방으로 가고 나는 친구덕에 나팔분다고 너른 숙소에서 혼자 덩그라니 잠을 청했다.
그 다음 날,
일찍 출발하려 했으나 그럴 수 없었고 아침을 먹고 친구가 데려다 준 상가저수지 위에 내려야 했다. 남연군 묘를 거쳐 산으로 오
르려 했는데 그 위에 내렸으니 그냥 산으로 입산하였다. 사면으로 돌아 석문봉의 산줄기를 직등하기로 했다. 다른 산에서도 그
렇듯 사람들은 석문봉에서도 늘 남들이 갔던 길을 따라 가게 된다.
그래서 직등하여 오른다.
길은 낙엽에 덮혀 보이지 않으나 더듬더듬 오를 수 있었다. 작은 암자같이 보이는 곳을 지나 암릉의 옥양봉을 보면서 올랐다. 별
무리없이 경사진 곳도 작은 바위가 있었지만 잠시였고 오르다 보면 석문봉 길따라 이어지는 곳, 이 아래 등산로의 두런두런 사람 소리도 들렸다.
200고지에서 450고지를 올라야 하는 석문봉 오르는 길, 550고지쯤 올랐을까. 석문봉의 산님들이 보였고 옥양봉은 더 가까이 큰 암봉
으로 다가왔다. 600고지쯤 올랐을까 길은 확 트여 사람들이 이곳으로도 오르내리는 것을 알았고 석문봉의 전위봉에 산님들이 가
득 점심을 먹고 있다. 산악회에서 온 것 같았다.
산릉에 오르자 지나온 상가저수지와 마을을 둘러싸은 산들이 포근히 안아주는 것 같은 느낌으로 다가왔다. 한쪽으로는 서원산의
산줄기가. 한쪽으로는 가야산의 산줄기가 발 아래 있는 것 같고 덕산은 짙은 안개에 덮혀 빼곡해 내민 이름모를 산들이 섬같아 보
였다.
시설물이 있는 금북정맥의 가야산이 우뚝하였고
지맥분기봉인 석문봉과 돌탑과 산님들까지 풍경이 되는 굵은 바윗덩이가 뭉친듯한 석문봉을 눈요기 하였다.
이 지맥의 이름을 빌은 옥양봉까지 사진에 담아 굽이굽이 흐르는 산줄기가 북쪽 당진으로 이어지는 것을 가늠하면서 발길을 석문봉
으로 향했다.
[사자바위]
사자바위의 안내판을 보면서 알 수 있었다. 두 번째 오르는 산인데 많이 어색했다. 아니 와 본 듯 사자바위를 보았고 저 석문봉
을 바라 보면서 작년보다 작아 보이는 것은 왜일까.
휴일이라 석문봉에 손님 맞이가 한창이었다. 혼자인 난 정상석 한 장 찍을 수 없어 돌아서야 했고
정상석아래 세운 돌탑에서 내려다 보이는 비산비야의 서산시의 풍경으로 대신하였다.
일락사로 내려가는 길과 옥양봉으로 가는 이정목에서 분기되는 산따라 가게 된다. 그 땐 이곳에서 아이스크림을 사 먹었던 기억이
아스라이 밀려왔다.
옥양봉으로 가는 길은 대체로 등산로가 잘 되어 있는 산릉으로 산님들이 많이 오가는 길이라 편히 갈 수 있는 곳이다. 한무데기씩
앉아 휴식공간을 채우고 바람을 막아주는 비닐로 집을 지어 밥을 먹는 풍경도 보게된다.
가야산 노선도가 그려진 안내판과 산림청의 무선중계기 시설물을 지난다.
석문봉과 옥양봉의 이정목을 지나
덕산도립공원의 이정목은 주차장으로 내려가는 길을 안내한다. 옥양봉으로 가는 길은 0.7km과 0.51km. 0.36km로 점점 가까이
옥양봉이 보이자
늠름한 가야산이 저 산위에 우뚝하여 주름치마 두른듯 추위를 잊고 서늘한 산속을 걸어 오르는 재미에 빠져 시간 가는 줄 모르게 쳐
다 보았다.
올라온 산줄기와 상가저수지와 상가리는 품에 안겨 아늑하고 산은 산대로 하늘의 경계를 긋고 안개는 아직도 벗겨 질줄 몰라하고
있다.
머문 안개와 바람과 추위가 멈춘것 같다.
목책계단을 터벅터벅 올라 맞이한 옥양봉의 정상석에 선다. 지날 때 보았던 그 느낌은 여전히 산과 마을이 어우러진 산골의 풍경
에 잠시 머문다.
가야산에 비치는 겨울햇빛에 눈이 부시다. 그래도 이곳에선 꽤 높은 산으로 100대 명산에 속해 있는 걸 보면 등산객이 매년 손가
락으로 꼽힐 정도라고 하는 산이다.
주차장 갈림 길의 이정목을 지나
아주 오래된 이정목을 사진에 담고
전망바위에 앉아 곱디고운 산줄기를 그려 보았다. 언제 이곳에 다시 오게 될 날 있으련지 주변을 죽 훓어보니 영락없는 산이다.
북진하여 가던 산행은 동진하게 되며
하늘을 덮은 나무들이 겨울채비를 하였다. 바스락거리는 내 발자욱에 낙엽은 부스럼떨고 오솔길같은 산책로를 따라 내려선다.
[의현동임도]였다. 내포문화숲길의 원효깨달음길 서산 76의 이정목은 휴양림 2.9km. 남연군묘 1.5km의 고개로 길게 뻗는 낙엽
송이 반겨준다.
'태극을 닮은 사람들'의 충달사 표지기도 보인다. 어떤 이유를 달고 이곳을 다녀 갔을까하는 궁금증이 생기고 아직도 그 해답을
찾지는 못했다.
밤나무가 숲을 이룬 너른 길따라 올랐다.
[서원산] 갈림 길의 산릉에 서면 이정목이 그 산길을 대변하고 있었다.
등산로는 편히 걸을 수 있어 좋다. 마음편할 것도 같지만 그럴 수는 없다. 이곳만 해도 가야산과 떨어져 있어 인척이 드문
길이었다.
철탑과 철탑은 계속 이어지고 저 아래 보이는 신사동마을만 해도 오지인듯 해 보였다. 의현동고개에서 내려간 임도는 신사동
으로 이어지는가 보다. 개짖는 소리가 산에 울리고 가끔씩 이어지는 푸른 소나무숲은 등산로를 따라 가고 잠시 완만하다 싶더
니 봉우리와 봉우리를 잇는다.
몇 개의 철탑을 지났을까. 낮익은 태달사 표지기가 또 반기며
[수창봉]이다.
'석문지맥'이라 부르기도 하는 선답자 분의 이름표를 달고 있는 그리 높지 않은 봉우리같지 않은 봉우리였다. 다녀가신 분들의
이름표가 달리고
가까이 지도에 없는 삼각점이 판독불명이다. 수창봉아래 묘가 그 봉우리를 대신하고 있는 것 같았다.
[실티재]로 내려선다.
쉼터가 있고 집이 있는 실티재에 cctv가 설치되어 있는 고개였으며 서산가면 언제 볼수 있으려나 기다려지는 용현리 마애여래삼
존상이 코앞에 있다. 바로 수정봉 아래인데, 하는 저절로 나의 입에 맴돌고 서산시 운산면과 예산군 봉산면의 경계가 실티재를
건너게 된다.
실티재를 올라 시설물 옆으로 선답자분들의 꼬리표를 따라 너른 길로 이어진다. 노란줄의 표지기가 안내하기도 한다.
대추나무밭 같았다.
주인은 거름을 주며 이 산을 지키고 혼자인 나를 쳐다본다. 잘 다듬어진 묘를 지나 대추나무밭을 돌아 소나무와 경계를 이루는
산릉은 그 밭끝을 지난다.
아마 서산사시는 것 같은 느낌 '괜차뉴'님의 표지기가 길을 안내한다.
x241.4봉을 그냥 칠 수 없어 밟아보자 했는데 혼자 덩그라니 남아 있는 것 같이 아시는 분의 노란 표지기가 봉우리를 대신하고 있다.
그 아래 철탑사이를 지나 작은 소나무밭 사이로 진행하게 된다.
양지말마을로 이어지는 도로와 밭에는 아직 남아있는 배추가 철을 잃었다.
[양지말 밭]사진처럼 밭가를 돌아 올라야 하는 산릉으로
와우단군전을 모신 양지말 마을이 잠시 보인다. 포장된 도로를 따라 내려가면 양지말마을이다. 고양이가 묘지옆에 앉아 있다
나를 피해 달아난다. 개는 짖어대며 부릅뜨고 무서움에 발걸음을 재촉한다.
양지말을 반바퀴이상 돌아 나오게 되는 산길은 박달나무밭으로 또 오르게 된다. 쭉 뻣지 못한 소나무가 길을 잇고
'서산 괜차뉴'님이 괜찬뉴~ 하는 것 같아 웃었다.
69번의 철탑을 지나
가는 길 잘 자라는 듯 소나무가 도열한다.
베다니기도원에 서니 짖어대는 개 때문에 그곳에 멈춘다. 와우현이다. 길이 멀기에 여기서 산행은 끝이나고 길따라 원평리까지
걸어 나오면 마을회관이다. 마침 480번 버스가 바쁜 시간을 아는지 마을회관앞에서 돌아 나간단다.. 서산시외버스터미널까지
편히 갈 수 있으니 횡재한 기분이 든다.
기사님 잠시 쉬는 시간에 마을회관에 들어가 따뜻한 커피 한 잔 얻어먹고 한기가 가신다. 바로 480번 버스가 있어 서산으로
나올 수 있었다.
생각해 보면 조금 더 진행했어야 했는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고 서산터미널에서 저녁 6시 45분차에 올랐다.
이번 산행은 개구락지 친구들을 볼 수 있었음에 무엇보다 좋았다. 화가친구를 둔 덕에 그림 한 점 얻어 짊어진 베낭이 보드라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