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에서 글과 인연을 만나다. 115
[소설 진상리2]
지난 호에 이어, 그러니 만일 지금도 그 상태라면 우리는 강원도 양양 위의 지역인 고성, 대진항,
속초와 대포항 또는 인제를 지나 한계령, 미시령 등과. 고석정, 산정호수, 명성산의 억새밭, 적성
의 황포돛대 감악산 그리고 연천의 한탄강 래프팅, 제인폭포, 구석기축제, 한탄강 주상절리, 임진
강등을 만나지 못하고 있을 것이며, 더불어 하조대와 산성호수에 있는 김일성 별장, 속초공항, 등
도 만날 수 없었을 것이다.
또한 속초의 손 두부, 속초공항 앞 막국수, 닭 강정, 인제의 황태구이, 이동갈비, 화천의 빙어축제,
임진강 민물 매운탕, 등을 맛 볼 수도 없었을 것이며, 또한 유명한 철원 오대 쌀도 우리의 식탁에 오
르지 못했을 것이다. 철원 평야를 빼앗긴 김일성이 삼일을 한탄하면서 울었다는 말도 들었던 것을
보면 말이다. 다행이라고 하면 어설픈 표현이겠지만 그래도 6.25 전쟁으로 그 땅들을 회복한 후 그
지역을 당시에는 수복지구라고 불렀고, 덕분에 지금은 그 지역을 자유롭게 다니게 되었고 따라서
다른 지역은 논하지 않더라도 연천의 한탄강 유원지, 구석기 축제, 경순왕릉 그리고 수많은 유적지
를 만나게 되었다는 사실이 현재의 그 지역인 것이다.
그 시절에 우리는 타 지역의 아이들처럼 놀이를 즐겼으니 다들 하는 놀이, 곧 제기차기, 자치기,
비석치기, 등이었으나 또 다른 놀이가 있는데 그것인 전쟁놀이였다. 공산군과 국군으로, 또는 공비
(무장간첩)와 방첩대원으로 나뉘어 전투를 벌이는 놀이인데, 남자 아이들은 그 놀이를 가장 즐겨 했
으니, 주변에서 보는 것들이 군인들의 전투 훈련과 공비 남침 수색작전 같은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우리 주변에는 수많은 지뢰 등의 폭발물이 있었다, 홍수에 북에서 내려 보내는 것과, 전쟁 후
제거되지 못한 지뢰들, 그리고 불발탄들, 그 지뢰들로 그 지역은 적지 않은 사람들이, 내 친구와 내 선
배와 마을 어른들이 죽거나 다쳤고, 따라서 나는 어려서부터 사람이 몸을 다치면 얼마나 불편하고 흉측
한지 눈으로 보고 자란 것이다. 그런 사고로 얻은 몸의 상태는 우리가 일반적으로 아는 사고에서 얻은
장애와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드러나곤 했다. 그래서 어른들은 아이들에게 “길 아닌 곳은 다니지 말라!”
는 말씀을 버릇처럼 하셨으나 그 말은 곧 명령이었고 훈계였고 부탁이었으니, 지금 우리가 아는 그런
길이 아니라 길 아닌 곳은 곧 죽음이 기다리는 곳이라는 말이었던 것이다.
그 시절 나와 내 주변의 마을 사람들은 일 년에 몇 번씩 지뢰 사고로 다치거나 죽는 일들을 보았고,
때로는 눈으로 보기에 너무 처참한, 그래서 글로 표현하기도 두려운, 혹 영화에서 조차 그럴 정도로는
표현할 수 없는 그런 일들도 보면서 자란 것이다.
이 소설책의 출간 일정을 정하면서 이 글을 쓰는 동안 뉴스에서는 계속되는 우크라이나와 러시아의
전쟁 소식을 전해 주고 있는데, 그 전쟁이 끝나면 그 지역의 아이들은 어떤 현장을 경험하면서 자라게
될까? 어쩌면 하는 걱정과 함께 제발! 이라는 바람을 함께 얹어보는 것은 그 전쟁 후의 처참한 환경을
대하는 어린이들의 트라우마 때문이다. 결국 전쟁은 잘못 판단한 전쟁광들의 몫이고 그 전쟁의 수행은
어른들의 몫이지만 그 결과의 계산은 현재의 어린이들이 성장하면서 감당해야 할 몫이 되는 것인데,
어떤 역사가들은 역사에서 전쟁을 빼면 논 할 것이 없다 라거나 역사는 전쟁이라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결코 우리의 후세를 위해서 전쟁이란 있어서 안 될 것이라는 사실을 이 글의 말미에 적으면서 그들의
평화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