실크로드의 부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고립된' 이란이 중국의 안보에서 가장 중요한 사안이라는 것이다. 중국은 이미 눈 한 번 깜박이지 않고 미국의 이란 제재를 거부한다고 밝혔다. 서방에서는 중국 왕조와 페르시아가 지난 2000년 동안 '실크로드'를 통해 사업을 해왔음을 잊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중국은 이란의 가장 큰 유전 지역인 야다바란 개발에 관한 협상을 이미 이란과 마쳤다. 또 이란의 카스피해 연안 지역에서 생산된 원유가 카자흐스탄을 가로지르는 송유관을 통해 중국 서부로 들어간다는 문제도 있다. 이란은 중국의 원유 및 천연가스 수요의 15% 이상을 공급하고 있다. 때문에 중국에 있어서 이란의 중요성은 미국이 사우디를 중시하는 것 이상이다. 사우디는 미국의 원유 수입량 중 11%만을 대고 있다.
사실 중국은 미국의 새 이란 제재안으로 인해 어부지리를 얻을 가능성이 높다. 이란산 원유의 다른 수출 판로가 막히면 이란의 대중 원유 수출 의존도가 심화되고 이에 따라 더 싼 값에 원유와 가스를 들여올 수 있기 때문이다.
새 이란 제재안이 중국에 미칠 영향은 크지 않다. 중국은 이란에서 자동차와 광섬유 네트워크를 생산하고 있고 테헤란의 지하철 확장 공사도 맡아 하고 있다. 양국 간 무역 규모는 현재 300억 달러이며 2015년이면 500억 달러를 넘어설 전망이다. 중국 기업들은 미국의 제재안으로 인해 발생하는 금융 거래 문제도 해결할 방법을 찾아낼 것이다.
러시아 또한 '고립된' 이란의 핵심적인 버팀목 중 하나다. 러시아는 유엔을 통한 것이든 미국이 단독 추진한 것이든 이란에 대한 제재 강화에 강력히 반대해 왔다. 러시아는 현재 가해진 유엔의 제재도 철회시키고 대신 모든 관련국들이 체면을 차릴 수 있는 새로운 핵 협상을 추진하는 방안을 더 선호하고 있다.
핵 문제에 있어서 이란은 미국과 타협하려는 의지를 보이고 있다. 이는 지난 2010년 터키와 브라질이 제안했으나 미국이 거부한 방식의 해법이다. 그러나 미국 정부는 명확히 (의회는 물론이다) 핵 이슈를 이란 정권의 교체 다음에 오는 2차적 사안으로 취급하고 있어 어떤 협상도 지극히 어려울 것이다.
이는 유럽연합(EU) 지도자들이 자국의 이해를 배반하면서까지 이란과 협상하지 않으려고 하고 있는 것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들은 이란산 원유 금수 조처에 대해 미국을 고분고분 따르고 있다. EU 고위관계자가 트리타 파르시 전미이란계미국인협회(NIAC) 회장에게 한 말이나 한 외교관이 필자에게 해준 얘기를 종합해 보면, 유럽은 이같은 조치가 전쟁 직전의 단계가 될까 두려워하고 있다.
실제로 국제원자력기구(IAEA)의 팀이 얼마 전 이란을 찾았을 때, 최근 이뤄진 우라늄 농축을 포함해 이란 내 모든 핵물질이 IAEA의 감시 하에 놓여 있다고 밝혔다. IAEA의 결론은 긍정적이었다. 이란이 핵폭탄 제조에 손을 대고 있지 않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미국은 (이스라엘도) 이란의 핵폭탄 제조가 단지 시간문제인 양 행동하고 있다.
문제는 '돈'
이란 고립이라는 테제는 이란이 러시아와의 무역에서 달러화(貨) 대신 자국 통화인 리알과 러시아의 루블로 결제하기로 한 것을 봐도 설득력이 약해지고 있다. 인도 또한 이란산 원유 수입을 중단하지 않겠다고 했는데, 장기적으로 보면 인도의 이란산 원유 수입도 달러가 아닌 다른 화폐로 이뤄질 것이다. 이미 인도는 중국과의 무역에서는 달러 대신 위안을 쓰고 있다. 중국-러시아 간 무역에서도 1년여 전부터 위안과 리알이 쓰이듯, 중국과 이란 간의 교역도 위안과 리알로 이뤄지게 될 것이다.
이는 머잖은 장래에 유럽으로 가는 것을 제외한 거의 모든 이란산 원유가 달러가 아닌 다른 화폐로 거래되리라는 뜻이다.
게다가 브릭스 국가 중 세 나라가(중국, 인도, 러시아) 이란과 손잡고 있고 이들은 주요 금 보유국이며 생산국이다. 이들 간의 무역은 미국 의회의 변덕 따위에 휘둘리지 않을 것이다. 사실 대서양 연안의 서방국들을 바라보는 개발도상국들의 입장에서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막대한 미국의 국가 부채, '내일은 없다'는 식으로 돈을 찍어내는 미 연방준비제도(Fed), 빈번한 '양적 완화', 뿌리부터 흔들리고 있는 유로존 등이다.
이란 제재 건은 잠깐 제쳐두고 돈 문제를 추적해볼 필요가 있다. 호르무즈 해협을 봉쇄하겠다는 이란의 위협도 잠시 제쳐두자. (호르무즈 해협이 이란의 주 원유 수출로라는 점을 감안하면 봉쇄 가능성도 별로 없어 보인다) 페르시아만 일대에 위기가 고조되는 핵심적 이유 중 하나는 '만능통화'로서의 달러, 즉 페트로달러 시스템의 침몰이다.
이란은 달러 기반 체제에 도전하는 선봉에 섰었고, 미국 정부는 지역 내 강국인 이란 뿐 아니라 주된 전략적 경쟁자인 중국과 러시아까지 위협할 만큼 이를 매우 우려했다. 따라서 지금 (미국의) 모든 항공모함들이 페르시아만으로 향하고 있다 해도 놀랄 일이 아니다. 이는 군사력으로 경제력에 맞서려 하는 사례가 될 것이다.
이런 맥락에서 2000년 9월 사담 후세인이 이라크산 원유 결제 수단을 달러가 아닌 유로로 바꾸면서 페트로달러 시스템을 거부했던 역사를 상기할 필요가 있다. 2003년 3월, 이라크는 침공당했고 정권 교체를 당했다. 리비아의 무아마르 카다피는 자국의 에너지 수출대금 결제 수단과 '아프리카 연합'의 공용 통화로서 디나르 금화를 제안했다. 그러자 또다른 군사적 개입과 정권 교체가 뒤따랐다.
그러나 미국과 나토, 이스라엘은 다르게 설명한다. 이란의 "위협"이 현재 위기의 근원이라는 것이다. 이란의 행동이 미국과 이스라엘의 '비밀 전쟁'과 '경제 전쟁'에 대응한 결과라 해도 마찬가지다. 이들의 설명은 이렇다. 이란의 행동은 '위협'이며 이 때문에 국제 유가는 올라가고 통화 가치가 폭락했다. 월스트리트의 '카지노 자본주의'나 미국과 유럽의 막대한 국가 부채는 이와는 큰 상관이 없는 일이다. '1%'의 행동은 유가 상승과는 무관한 일이며 대중의 분노는 1%가 아닌 이란을 향해야 한다.
에너지 전문가인 마이클 클레어 햄프셔대 교수가 최근 지적했듯이(☞관련기사 바로보기) 2012년 새로운 '새로운 에너지 시대'가 열렸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2012년은 달러 기반 체제로부터의 대규모 이반이 일어날 시작점이 될 수도 있다. 이 가정이 현실이 된다면 세계(특히 남반구의 세계)는 점차 달러가 아닌 자국 통화로 각종 사업을 하기 시작할 것이고 미 국채에 대한 투자는 어느 때보다도 적어지게 될 것이다.
물론 걸프협력회의(GCC)는 언제나 미국의 편에 설 것이다. 사우디, 카타르, 오만, 바레인, 쿠웨이트, 아랍에미리트(UAE) 같은 나라들 말이다. '아랍의 봄'을 맞아 한 행동을 보면 이들에게는 '걸프 반(反, counter)혁명 클럽'(GCC)이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린다. 이들 걸프 지역 왕정국가들은 실제적·지정학적 이유에서 미국의 속주(屬州)다.
오직 페트로달러 시스템만을 인정하자는 그들과 미국의 수십 년 된 오랜 약속은 이들이 미국의 대(對)중동 군사력 투사에 들러리를 서고 있음을 뜻한다. 미군 중부사령부(CENTCOM)는 카타르에 있으며 미 해군 5함대는 바레인에 주둔해 있다. 엄청난 에너지 부국인 '파이프라인 지대' 또는 미군이 '불안정한 초승달 지대'라고 부르는 지역을(중앙아시아-남아시아-동아시아로 이어지는 유라시아 대륙 : 옮긴이) 눈앞에 두고서도 GCC 국가들은 쇠퇴하는 미국의 헤게모니를 지키는 핵심 세력으로 남고 있다.
이란은 미국의 달러 시스템을 붕괴시키려 하는 요소이면서 동시에 미국이 주시하고 있는 목표물이기도 하다. 미국은 정권 교체를 염두에 두고 있고 조그만한 불씨만 튀어도 곧 전쟁의 불길이 타오를 것이다. 1962년 미국 중앙정보국(CIA)의 '노스우드 작전'이나 1964년 통킹만 사건의 재판(再版)이 나오지 말란 법이 없다.
(노스우드 작전이란 CIA가 미 국내에서 몇 건의 테러 행위를 저지른 후 이를 쿠바 카스트로 정권의 소행으로 선전하려 했던 거짓 공작 계획이지만 존 F. 케네디 당시 대통령에 의해 기각됐다. 통킹만 사건은 전쟁 전 월맹이 미 군함을 공격했다는 사건으로, 미국의 베트남전 참전 근거가 됐으나 나중에 조작으로 밝혀졌다 : 옮긴이)
미국의 '전방위 지배'를 추구하는 국방부 내 극단주의자가 페르시아만 근처에서 이같은 위장 공작을 펼칠 수 있다는 상상은 완전히 허황된 것만은 아니다. 이는 이란에 대한 공격의 빌미가 되거나 이란으로 하여금 판단 착오를 일으키게 할 수 있다. 오바마 행정부는 새로운 국방전략에 따라 초점을 중동에서 태평양, 즉 중국으로 옮겼다. 이란은 서남아시아의 정중앙에 있고 이란산 원유는 미군이 지키는 바다를 통해 에너지에 목마른 중국으로 향하고 있다.
따라서 우리가 '이란 사태'라고 부르는 이 과장된 드라마는 사실 페르시아만 인근의 국제정치 구도나 존재하지도 않는 이란의 핵폭탄에 대한 것인 만큼이나, 미국의 달러 체제와 중국에 대한 것이기도 하다. 마지막 질문은 다음과 같다. '어떤 난폭한 짐승이, 자기 시간이 드디어 와 / 태어나려고, 베이징을 향해 휘청휘청 걷고 있는가?'
(마지막 '질문'은 윌리엄 B. 예이츠의 시 '재림' 또는 'The Second Coming'의 마지막 두 행에서, 필자가 '베들레헴'을 '베이징'으로 바꿔 놓은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