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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 미제라블] Chapter 1 팡틴
몰락(3)
광장을 지나려니 많은 사람들이 기묘하게 생긴 마차를 둘러싸고 있었다. 마차 위에서는 빨간 옷을 입은 사람이 서서 사람들을 향해 무어라 지껄이고 있었다. 그는 떠돌아다니는 돌팔이 치과 의사로 틀니, 치약, 가루 치약, 물약 등을 군중에게 팔고 있었다.
팡틴은 인파에 섞여 저속한 은어와 점잖은 술어가 한꺼번에 튀어나오는 장광설을 들으며 군중들과 함께 웃었다. 돌팔이 치과 의사는 웃고 있는 미인을 보자 갑자기 소리쳤다.
“예쁜 이로군요. 거기서 웃고 있는 아가씨, 당신의 전치를 두 개 팔겠다면 한 개에 나폴레옹 금화 한 닢씩을 드리겠소!”
“뭐예요, 전치란 게?”
팡틴이 물었다.
“전치란.”
치과의사가 이어 말했다.
“앞 니 두 개를 말하지요.”
팡틴이 소리쳤다.
“어머, 끔찍해라!”
“나폴레옹 금화 두 닢.”
곁에 있는 이빠진 노파가 중얼거렸다.
“얼마나 좋을까!”
팡틴은 도망쳤다. 그녀는 다음과 같이 소리치는 사나이의 목쉰 소리를 듣지 않으려고 애썼다.
“잘 생각해 봐요, 미인 아가씨! 나폴레옹 금화 두 닢이면 꽤 쓸모가 있을 걸요. 만일 생각이 있다면 오늘 밤 틸라크다르쟁 여관으로 오세요. 내가 거기 있을 테니까.”
팡틴은 집에 돌아와서도 개운치 않아 이웃의 노파 마르그리트에게 사정을 이야기했다.
“세상에 그런 사람도 다 있나요? 어째서 그런 사람을 자유롭게 활보하도록 놓아두는지 모르겠어요. 내 앞니를 두 개나 빼겠다니! 정말 끔찍스러워요! 머리라면 다시 자라겠지만, 이라니 어디! 아아, 기분 나쁜 남자에요! 차라리 6층에서 거꾸로 뛰어내리는 것이 나아요! 오늘 밤 여관에 있겠다면서 글쎄…..”
마르그리트가 물었다.
“그래 얼마를 주겠대요?”
“나폴레옹 금화 두 닢이요.”
“그러니까 40프랑이군요.”
팡틴은 말했다.
“그래요. 40프랑이 되지요.”
여자는 생각에 잠기다가 다시 일을 시작했다. 15분쯤 지나 팡틴은 바느질을 멈추고 계단 있는 데로 가서 테나르디에 부부의 편지를 꺼내 들었다. 그녀는 돌아오면서 곁에서 일하고 있는 마르크리트에게 물었다.
“도대체 발진열이란 뭐예요? 알고 있나요?”
노파가 대답했다.
“그것은 열병이에요.”
“약이 많이 필요한가요?”
“네, 아주 많이.”
“어떻게 해서 걸리나요?”
“전염이 잘 돼요.”
“아이들에게도 걸려요?”
“더 잘 걸리죠.”
“죽는 일도 있겠네요.”
“그럼요, 많이 죽어요.”
마르그리트의 대답에 팡틴은 밖으로 나갔다. 그녀는 다시 한 번 그 편지를 읽기 위해 계단을 올라갔다.
그날 밤 여자는 외출했다. 그녀가 여관이 많은 파리의 거리 쪽으로 걸어가는 것이 보였다.
이튿날 아침, 마르그리트는 채 날이 밝기도 전에 팡틴의 방으로 들어갔다. 둘은 언제나 같이 일을 하며 초 한 자루를 함께 사용했기 때문이다. 팡틴은 창백한 얼굴로 얼음처럼 굳어져 의자에 앉아 있었다. 모자는 무릎에 떨어져 있었다. 촛불은 밤새도록 켜져 있어 다 닳아 가고 있었다. 마르그리트는 어수선한 광경에 깜짝 놀라 문턱에 들어서면서 소리쳤다.
“어머! 초가 거의 타 버렸네! 무슨 일이 있었나요?”
노파가 팡틴을 보자, 그녀는 머리털이 짧은 머리를 이쪽으로 돌렸다. 팡틴은 어젯밤보다 10년은 더 늙어 보였다. 마르그리트가 말했다.
“어머! 어찌 된 일이에요, 팡틴?”
“아무것도 아니에요. 우리 아기는 이제 무서운 병으로 죽지 않아도 될거예요. 나는 기뻐요.”
이렇게 말하며넛 그녀는 탁자 위에 빛나고 있는 두 개의 나폴레옹 금화를 가리켜 보였다. 마르그리트가 물었다.
“원, 저런! 이 금화 어디서 났어요?”
“생겼어요.”
팡틴의 대답이었다. 동시에 그녀가 빙그레 웃었다. 핏빛이 어린 미소였다. 입술 가장자리가 붉은 피로 물들어 있고 입안에는 검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이 두 개가 빠져 있던 것이다. 그녀는 40프랑을 몽페르메유에 보냈다. 이것은 돈을 빼앗기 위한 테나르디에 부부의 계략이었다. 코제트는 병에 걸린 것이 아니었다.
팡틴은 자기 거울을 창밖으로 내던졌다. 그녀는 훨씬 이전부터 3층의 작은 방에서 걸쇠만으로 잠가 놓는 다락방으로 옮겼었다. 그곳은 천장과 마루가 각을 지고 있어 노상 머리를 부딪히곤 하는 그러한 다락방의 하나였다. 그녀에게 남아 있는 것은 스스로 담요라고 부르는 누더기와 마루에 깔아 놓은 요 그리고 짚이 빠져 나간 의자뿐이었다. 그녀가 가지고 있던 작은 화분도 말라 버린 채 한구석에 버려져 있었다. 반대쪽 구석에는 물을 담기 위한 버터 통이 있었는데 이것은 겨울에 얼었다가 녹아 가장자리에 얼음 테가 둘려 있었다. 그녀는 부끄러움을 잊은 지 오래였으며 이제는 멋 부릴 마음마저 잊어버렸다. 이렇게 되면 끝장이다.
그녀는 구겨진 모자를 쓰고 외출했다. 시간이 없어서 그런 건지 무관심해서 그런지 알 수 없으나 이미 속옷도 기워 입으려 하지 않았다. 양말 뒤꿈치는 닳아 없어짐에 따라 차차 밑으로 내려 신었다. 세로로 줄이 쳐 있었기에 그것이 눈에 잘 띄었다. 낡고 떨어진 코르셋이 헤어지면 조금만 움직여도 찢어지는 무명천으로 기웠다. 빚쟁이들은 그녀를 못살게 굴어 조금의 휴식도 주지 않았다. 한길에서도 만나고 층계에서도 만났다.
팡틴은 매일 밤 울거나 생각에 잠겨 밤을 새웠다. 눈은 이상하게 반짝거리고 왼쪽 어깨뼈가 언제나 쑤셨다. 그리고 심하게 기침을 했다. 그녀는 마들렌을 몸시 증오했으나 이것을 입 밖에 내지는 않았다.
팡틴은 하루에 17시간이나 바느질을 했지만, 교도소의 작업 청부업자가 여죄수들에게 싼 삯으로 일을 시켰기 때문에 임금은 내려가고만 있었다. 그리하여 일급제 여공들의 품삯은 하루에 9수가 되고 말았다. 17시간 노동에 9수!
채권자들은 더욱 무자비해졌다. 벌써 대부분의 가구를 가져갔으면서도 고물상은 노상 이렇게 윽박질렀다.
“언제 돈을 갚을 테냐 이년아!”
도대체 어쩌라는 것이었을까? 그녀는 항상 쫓기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차츰 그녀의 마음속에는 알 수 없는 독기가 싹텄다. 이 무렵 테나르디에가 다시 편지를 보내 왔다. 지금까지는 친절하게 기다려 주었으나 더 이상 그럴 수가 없다. 곧 10프랑을 보내라. 그렇지 않으면 코제트를 이 추위 속에 밖으로 내쫓겠다. 그 다음에야 어찌 되든 알 바 아니라는 내용이었다.
‘10프랑이라!’
팡틴은 생각했다. 하루에 10수를 벌기도 어려운 일이었다.
“좋다! 마지막 남은 것을 팔자.”
이 불쌍한 여자는 창녀가 되었다.
1823년 정월 초, 눈이 내리던 날 밤이었다. 한량 하나가 겨울철에 유행하는 큰 외투를 걸치고 한 여자를 희롱하였다. 그 여자는 장교들이 모이는 카페의 유리창 앞에서 야회복을 입고 머리에 꽃을 꽂은 채 돌아다니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이 여자가 앞으로 지나갈 때마다 담배 연기를 내뿜으며 재미난 듯 농지거리를 던졌다.
“보기도 싫은 계집아, 어서 꺼져! 이빨도 없는 주제에!”
예컨대 이런 등등의 말을 내뱉는 이 한량의 이름은 바마타부아였다. 화장은 했으나 유령과 같아 보이는 이 여자는 눈 위를 왔다 갔다 하면서도 이에 대꾸하지 않았고 돌아보지도 않았다. 그러면서도 여전히 규칙적으로 쓸쓸한 산보를 계속했다. 그녀는 마치 태형을 받는 병사처럼 5분 간격으로 조롱을 당하는 것이었다. 한량은 자기의 조롱이 효과가 없자 화를 냈던 것 같다. 여자가 저쪽으로 돌아서서 걷는 기회를 틈탔다. 그는 웃으면서 몰래 뒤를 밟았다. 그러다가 몸을 굽혀 눈을 한 움큼 집어 가지고는 갑자기 여자의 벌거벗은 두 어깨 사이의 등 속에 밀어 넣었다. 여자는 아우성을 치며 뒤돌아서 표범처럼 그에게 덤벼들었다. 이어 입에 담을 수 없는 악담을 퍼부으며 사내의 얼굴을 손톱으로 할퀴었다. 브랜디로 복이 쉰 그 악담은, 두 개의 앞니가 빠진 입에서 서슴없이 튀어나왔다. 그 여자는 코제트의 어머니 팡틴이었다.
이 법석으로 카페에 있던 장교들이 뛰어나왔다. 통행인들도 모여들었다. 그들은 웃고 지껄이며 갈채를 보냈다. 그 한가운데서 겨우 남녀를 구별할 수 있는 두 사람이 회오리바람처럼 뒤얽혀 엎치락뒤치락했다. 남자는 모자를 떨어뜨린 채 몸부림쳤고 여자는 모자도 머리칼도 이도 없었다. 그녀는 분노에 가득 찬 무서운 형상으로 아우성치며 발과 주먹으로 싸우고 있었다.
갑자기 키 큰 사나이 하나가 군중 속에서 뛰어나와 흙투성이가 된 여자의 옷을 낚아채며 말했다.
“따라 와.”
여자는 고개를 들었다. 앙칼진 그녀의 음성이 뚝 그쳤다. 그 눈은 흐려지고 얼굴은 새파래졌으며 공포에 떨려 왔다. 그녀는 자베르를 알고 있었다. 한량은 이 틈을 이용해 도망쳐 버렸다.
자베르는 그곳에 있던 인파를 헤치고 가련한 여자를 앞세웠다. 그가 광장 한구석에 있는 경찰서 쪽으로 성큼성큼 걸어갔다. 여자는 기계적으로 그의 명령에 따랐다. 그도 여자도 말이 없었다. 군중들은 재미있다는 듯 악담을 하며 따라갔다. 가장 큰 비극은 저열한 행위의 계기가 된다.
경찰서에 도착하자 거기엔 천장이 낮은 방이 있었다. 난롯가에서 경관 하나가 당직을 서고 있었다. 한길 쪽으로는 덧문이 달린 유리창이 있었다. 자베르는 팡틴을 데리고 들어가 뒷문을 닫아버렸다. 그곳은 대기실 비슷한 더러운 유리문 앞이어서, 안을 들여다보고자 발돋움을 하고 목을 길게 뺐던 구경꾼들에게는 큰 실망이었다. 호기심이란 굶주림과 같은 것이었다. 팡틴은 안으로 들어가자 한쪽 구석에 서서 겁먹은 개처럼 웅크렸다.
당직 경관이 촛불을 켜서 탁자에 갖다 놓았다. 자베르는 의자에 걸터앉아 인장이 찍힌 종이 한 장을 호주머니에서 꺼내더니 무언가 쓰기 시작했다. 쓰기가 끝나자 서명을 한 다음 종이를 접어 당직 경관에게 주며 말했다.
“동료 셋을 불러 이 여자를 교도소로 데려가게.”
그러고는 팡틴 쪽을 돌아보며 말했다.
“당신은 여섯 달 징역이야,”
가련한 여자는 몸을 떨면서 외쳤다.
“6개월! 교도소에서 6개월! 하루에 7수씩 벌며 6개월이라니! 코제트는 어떡하고요? 내 딸! 내 딸! 저는 아직 테나르디에에게 백프랑 이상이나 빚이 있어요. 경감님, 알고 계세요?”
여자는 경관들의 구두로 더러워진 마룻바닥에서 일어서지도 않고 두 손을 합장하고 무릎으로 기면서 그에게 다가갔다. 그녀가 애원했다.
“자베르 나리.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제가 나쁜 게 아니었어요. 처음 부터 보았으면 아실 거예요! 하느님께 맹세코 제가 잘못하지 않았어요. 낯모르는 신사가 제 등에 눈을 쑤셔 넣은 거예요. 아무 나쁜 짓도 하지않고 길을 걷고 잇는 제 등에 느닷없이 눈을 쑤셔 넣을 권리가 어디 있겠어요? 그래서 화가 났던 거예요. 저는 몸도 성치 않아요. 자비를 베풀어 주세요, 자베르 나리. “
여자는 몸을 둘로 꺾고 흐느끼며 오열했다. 얼굴은 눈물로 얼룩지고 앞가슴이 드러나는 것도 모른 채 두 손을 모아 빌었다. 그녀는 잦은 기침과 단말마와 같은 신음 소리르 내며 애원했다. 심한 고통이란 가련한 사람을 변모시키는 신성하고도 가공할 빛을 지닌다.
팡틴은 다시 아름다워져 있었다. 가끔 말을 끊고는 경관의 코트 자락에 입을 맞추었다. 아마 화강암 같은 마음이라도 녹였으리라. 그러나 나무 같은 마음은 움직일 수 없는 법이다. 자베르가 말했다.
“알았다. 자, 할 말은 다한 거냐? 그럼 어서 나가! 여섯 달 징역이라고 했다! 하느님도 그 결정을 바꿔 놓지 못해!”
‘하느님도 그 결정을 바꿔 놓지 못해’라는 엄숙한 말을 듣자 여자는 판결이 내려졌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녀는 중얼거리면서 쓰러졌다.
“자비를.”
그때, 그 방에는 팡틴의 절망적인 호소를 처음부터 끝까지 듣고 있던 사람이 있었다. 그 남자는 끌려가지 않으려고 몸부림치는 팡틴을 경관들이 끌어내려는 순간 어두운 구석에서 나와 입을 열었다.
“잠깐!”
자베르가 눈을 들고 보니 마들렌 시장이었다. 자베르는 모자를 벗고 공손히 인사했다.
“실례했습니다, 시장님.”
시장이라는 말에 팡틴은 눈을 부릅뜨고 노려보았다. 그녀는 벌떡 일어나 경관들의 팔을 뿌리치고는 마들렌 시장에게로 곧장 달려들었다. 그녀는 미친 듯한 눈으로 그를 노려보며 소리쳤다.
“아! 시장님이라는 게 당신이란 놈이구나!”
갑자기 그녀는 깔깔 웃으며 그의 얼굴에 침을 뱉었다. 마들렌은 얼굴을 닦으며 말햇다.
“자베르 경감, 이 여자를 석방하시오.”
자베르는 시장이 미치지 않았는가 생각되었다. 그는 이 순간에 평생에 경험한 그 무엇보다도 더 강렬한 충격을 잇달아 받았다. 매춘부가 시장에게 침을 뱉다니! 이것은 상상만 해도 모독이 될 것 같은 기괴하고도 무서운 일이었다. 한편으로 그는 이 여자와 시장 사이에 있었을지도 모를 더러운 관계를 막연하게 그려 보았다. 그리고 이 가공할 모욕 속에서 지극히 간단한 일을 상상하며 몸을 떨었다.
그러나 자베르는 이 시장이 침착하게 얼굴을 닦으며 “이 여자를 석방하시오”하는 말을 들었을 때 너무도 놀랐다.
자베르는 아무 생각도 아무 말도 정리할 수가 없었다. 놀람의 한계를 벗어났던 것이다. 그는 잠자코 가만히 있을 수밖에 없었다. 시장의 말은 팡틴에게는 그 이상의 충격을 주었다. 그녀는 마치 비틀거리는 사람처럼 벌거벗은 한쪽 팔로 난로막이를 붙잡았다. 그녀가 주위를 둘러보며 혼자 중얼거리듯 나직이 말하기 시작했다.
“석방! 돌아가도 좋다! 6개월간 옥살이를 하지 않아도 된다! 도대체 누가 그런 말을 했을까? 그런 말을 했을 까닭이 ㅇ벗지. 내가 잘못 들었을거야! 시장이 그런 말을 했을 리가 없어! 당신입니까, 친절하신 자베르 나리. 나를 석방하라고 말한 사람이? 아아! 말을 한 테니 놓아주세요. 이 시장이란 자는 나빠요. 생각해 보세요, 자베르 나리. 이 사내가 나를 내쫓은 거예요! 직장에서 온갖 말을 다 지껄여 대는 계집들 때문에요. 너무 심하지 않아요? 열심히 일하고 잇는 가련한 여자를 쫓아내다니! 그래서 나는 변변히 돈벌이도 못하고 불행해졌어요.
경찰관 양반들도 고쳐야 할 점이 하나 있어요. 교도소의 청부업자들이 가난한 우리에게 피해를 입히지 못하게 하는 거예요. 우리는 셔츠를 기워 일당으로 12수를 받았는데, 그들 때문에 9수로 내려갔어요. 그래서 살 수가 없어지니까 무슨 일이든 하려고 덤비는 거예요. 나에게는 어린 코제트가 있어요. 나쁜 여자가 되는 도리밖에 없었어요. 불행의 근원이 뻔뻔스런 시장에게 있다는 것을 아셨죠? 아까 그 사람은 제 옷을 눈으로 못쓰게 만들어 버렸어요. 우리에게는 밤에 입을 비단옷이 한 벌밖에 없어요. 정말이지 일부러 나쁜 짓을 한 게 아닙니다. 정말이에요, 자베르 나리. 그리고 나보다 더 못됐는데도 훨씬 더 잘사는 여자가 얼마든지 있어요. 아아, 자베르 나리. 저를 석방하겠다고 한 것은 당신이죠? 조사해 보세요. 집주인에게 물어보세요. 지금은 집세도 꼬박꼬박 물고 있었요. 누구나 다 저를 정직하다고 할 거예요.”
마들렌은 귀 기울여 그녀의 말을 듣고 있었다. 그녀가 말을 하고 있는 동안 그는 조끼에서 지갑을 꺼내 안을 들여다보았다. 그 속은 비어 있었다. 그는 지갑을 도로 집어넣으면서 팡틴에게 물었다.
“빚이 있겠군요.”
자베르 쪽만 바라보고 있던 팡틴이 고개를 돌려 마들렌을 노려보았다.
“나는 당신 같은 인간과 말하고 싶지 않아요.”
그녀가 경관들을 향해 말했다.
“여러분도 내가 저놈에게 침을 뱉는 것을 보셨죠? 이 악당 같은 인간! 나를 겁주려고 여기 온 걸 나도 알고 있어. 하지만 너 따위는 무섭지 않아. 나는 자베르 나리가 무서워. 친절하신 자베르 나리가 더 무섭단 말이야!”
여자는 다시 경감 쪽으로 돌아섰다.
“경감님, 만사는 공평해야 해요. 저는 당신이 공평하다는 것을 알고 있어요. 한 사나이가 여자의 등에 눈을 쑤셔 넣고 좋아했다, 이것이 장교들을 웃겼다. 그런 장난을 하는 것도 무리가 아니죠. 우리는 남자를 위안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니까요! 그때 당신이 오셨어요. 당신은 질서를 유지할 의무를 가졌죠. 그래서 나쁜 여자를 끌고 온 거예요. 하지만 당신은 친절한 분이니까, 곰곰이 생각한 끝에 저를 석방하겠다고 말씀했어요. 그것은 제 아이를 위해서겠죠? 6개월이나 교도소에 들어가 있으면 아이를 키울 수 없으니까. 당신은 두 번 다시 그런 짓을 하지 말아라, 바보 같은 여자야! 하고 말씀하실 테죠. 네, 결코 다시는 그러지 않겠어요. 자베르 나리, 이번에는 어떤 일을 당하건 몸 하나 까딱 않겠어요. 하지만 오늘은 정말 분통이 터졌어요. 그 신사가 눈으로 장난칠 줄은 몰랐거든요. 아까도 말씀드렸지만 저는 몸이 성치 못해요. 기침이 나고 불덩어리 같은 것이 뱃속에 있어요. 의사는 휴양을 하라고 하더군요. 어디 한번 만져 보세요. 손을 이리 주세요. 괜찮아요, 여기예요.”
그녀는 이제 울고 있지 않았다. 목소리는 부드러웠다. 그녀는 자베르의 거칠고 굵은 손을 희고 부드러운 자기 가슴에 갖다 대었다. 그리고 웃으면서 그를 쳐다보았다.
갑자기 그녀가 옷매무새를 고치고 무릎까지 추켜올라 갔던 치맛자락을 내렸다. 그녀는 다정스레 경관들에게 이런 말을 던지며 문가로 걸어갔다.
“여러분, 경감님이 석방한다 하셨으니 나는 돌아가겠어요.”
그녀가 문고리에 손을 댔다. 한 걸음이면 문 밖으로 나갈 수 있었다. 자베르는 이때까지 몸 하나 까딱 않고 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그 장면은 마치 어디로 실려 가기를 기다리는 조각과도 같았다.
문 여는 소리가 그를 제정신으로 돌아오게 했다. 그는 가장 엄숙한 표정으로 머리를 들었다. 그것은 권능이 낮으면 낮을수록 더욱 무서워지는 표정으로써 야수에게 있어서는 흉악하고 야비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잔학한 표정이었다.
자베르가 경관들에게 소리쳤다.
“뭣들 하는 거야? 저 여자가 나가는 게 눈에 안 보이나?”
마들렌 시장이 대답했다.
“내가 그랬소.”
팡틴은 자베르의 목소리를 듣자 몸서리를 쳤다. 마치 도둑이 훔친 물건을 떨어뜨리듯이 문고리를 놓았다. 이어 마들렌의 목소리에 그녀는 뒤를 돌아보았다. 이 순간부터 그녀는 한마디 말도 못 하고 숨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그녀는 두 사람의 이야기가 오가는 데 따라 시선을 마들렌에게서 자베르에게로, 자베르에게서 마들렌에게로 움직였다.
시장이 팡틴을 석방하라고 명령했음에도, 자베르가 감히 검찰관에게 그 같은 말을 했다는 것은 상식을 벗어난 일임에 틀림없다. 시장이 곁에 있다는 것을 잊었기 때문이었을까? 권위 있는 사람이 이런 명령을 내릴 까닭은 없는 것이므로, 시장이 무슨 착각을 하여 불쑥 그런 명령을 내렸을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일까? 아니면 2시간 전부터 목격한 이 범상치 않은 사건을 앞에 두고 최후의 결단을 내려야 한다, 말단 관리도 고관이 되고 형사도 사법관이 되며 경찰관도 재판관이 될 필요가 있다, 이같은 위기에 처해서는 법과 도덕과 사회 전체도 자베르 그 자신에 의해 대표된다고 생각한 때문이었을까?
자베르는 절망적인 눈초리로 몸을 떨면서 시장 쪽으로 돌아섰다. 그는 놀랍게도 눈을 부라리며 단호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건 안 됩니다. 시장님.”
마들렌이 물었다.
“어째서요? 자베르 경감.”
마들렌 시장은 협조를 구하는 듯한 온화한 태도로 말했다.
“이것 봐요. 당신은 정직한 사람이오. 그러니 내가 당신에게 이해를 구한다는 것은 결코 어려운 일이 아니리라 생각하오. 사실은 이렇게 되었소. 당신이 여자를 연행할 때 나는 광장을 지나고 있었소. 아직 많은 사람이 남아 있더군요. 나는 그들에게 사정을 듣고 모든 것을 알았소. 잘못한 것은 그 남자로, 당연히 그가 체포되어야 했을 것이오.”
자베르가 대답했다.
“하지만 이 여자는 시장님 얼굴에 침을 뱉었어요.”
마들렌이 말했다.
“그건 나 개인의 문제요. 내가 받은 모독은 내 개인에 관한 것이니 내 마음대로 처리할 수가 있어요.”
“시장님의 말씀을 거역하는 것이 됩니다만, 모독은 개인적인 것이 아니라 정의에 대해 가해진 것입니다.”
“자베르 경감, 최고의 정의는 양심이란 것이오. 나는 이 여자가 한 말을 들었소. 내가 할 일은 내가 알고 있소.”
“저는 시장님의 심중을 알지 못하겠습니다.”
“그렇다면 내게 복종하시오!”
“저는 제 의무에 복종할 것입니다. 제 의무는 이 여자를 6개월간 투옥시키라고 명하고 있습니다.”
마들렌이 부드럽게 말했다.
“내 말 잘 들어요. 저 여자를 하루라도 투옥시켜서는 안 되오.”
자베르는 시장의 이 결정적인 명령을 듣자 그를 노려보며, 그러나 극히 공손한 어조로 말했다.
“시장님 뜻을 거역하게 된 점은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이것은 제 생애에 처음 있는 일입니다. 그러나 제가 제 권한을 넘어서 행동하지 않고 있다는 점은 부디 알아주십시오. 시장님의 의견에 따라 이야기를 그 시민에게 국한시키겠습니다. 저는 현장에 있었습니다. 이 여자가 먼저 바마타부아 씨에게 덤벼들었습니다. 바마타부아 씨는 선거권을 가졌으며 저 광장 모퉁이에 있는 발코니가 달린 대저택, 4층짜리 석조 건물의 소유자이기도 합니다. 세상에는 여러 가지 사건이 있습니다! 시장님, 특히 이번 일은 제가 관계하는 거리 질서에 관한 일이므로 제 직권으로 이 팡틴이라는 여자를 가두겠습니다.”
그러자 마들렌은 팔짱을 끼고, 지금까지 아무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단호한 음성으로 말했다.
“당신이 하고 있는 말은 도시 내의 치안 유지에 관한 것이오. 형사 소송법 제 9, 11, 15조 및 제 66조에 따르면 내가 그 판사가 되는 것이오. 나는 이 여자를 석방하라고 명령하겠소.”
자베르는 마지막 저항을 시도했다.
“하지만 시장님……”
“당신은 불법 감금에 관한 1799년 11월 13일의 법률 제 81조를 알고 있소?”
“시장님, 말씀은 그렇지만…..”
“더 이상 아무 말 마시오.”
“하지만…..”
“물러가시오!”
마들렌의 말에 자베르는 큰 타격을 받고 꼿꼿이 섰다가 시장에게 경례를 한 다음 밖으로 나갔다. 팡틴은 문가에 서서 자기 앞을 지나가는 경감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팡틴 역시 미묘한 혼란에 빠져 있었다. 그녀는 자신이 서로 대립되는 두 권력에 의해 쟁탈전의 대상이 되어 있음을 본 것이다. 그녀에게는 이 두 사나이가 거인처럼 보였다. 한 사람은 악마와 같은 말을 했고, 또 한 사람은 착한 천사와 같이 말햇다. 천사는 악마를 이겼다. 그리고 이 천사, 이 해방자가 바로 그녀가 저주하던 사나이, 그토록 오랫동안 불행의 원인이라 믿어 왔던 시장, 마들렌이라는 사실을 알자 그녀는 사지가 떨렸던 것이다. 더구나 그녀가 심한 모독을 가한 그 순간에 그는 여자를 구하였다! 그렇다면 생각을 잘못해 왔던 것일까? 그렇다면 마음을 완전히 바꾸어야 한다는 말인가. 그녀로서는 알 수가 없었다.
그녀는 떨고 있었다. 넋을 잃고 듣고 있었다. 어리둥절해하며 보고 있었다. 그리고 마들렌 시장이 한마디식 말을 할 때마다 증오의 가공할 암흑이 무너져 내리고 무어라 말할 수 없는 훈훈한 것, 기쁨과 신뢰와 애정이 움트는 것을 느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