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이를 먹어도 아프지는 말자
박정열
아프다는 것은 서러운 일이다. 손톱 밑에 가시가 들어도 못 견딜 노릇이다. 하물며 몸이 아프다면 말해 무엇 하리. 나이를 먹고 보니 어디가 한 번 아프면 쉽게 낫지 않는다. 통증의 괴로움은 아픈 사람만 안다. 누구에게 하소연도 못한다. 누가 대신 아파줄 수도 없다. 지켜보는 이도 아픈 사람처럼 답답하긴 마찬가지다. 아픔에는 당할 장사가 없다. 우리 세대에 주어진 공통된 숙제는 어찌하든 아프지 않을 방도를 찾아야 한다.
이가 아파서 재작년부터 병원엘 다녔다. 내가 찾은 병원은 이 동네로 이사 온 후 줄곧 다니던 단골(?)병원이다. 그때까지 미루어 두었던 치아관리를 위해 다닌 치과다. 1년에 한 번 스케일링도 하고 구강검진도 했다. 치아중간이 패여 자그마치 26개를 때우기도 했다. 그랬던 만큼 믿거니 하고 갔었다. 증상을 예기했더니 먼저 X레이부터 찍는다고 부산을 떨었다. 사진은 바로 모니터에 나타났다. 의사는 마우스로 아픈 치아를 가리키며
“보시다시피 여기 치근주위에 염증이 있습니다.”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요?”
“이를 뽑고 새로 하는 게 좋겠지요? 아니면 인플랜트를 하시던가요?”
“인플랜트는 얼마인대요?”
“최소 110에서 150만원 사이입니다.”
왼쪽 아래 두 번째 어금니가 고장이 났다. 음식물을 씹으면 마치 돌을 씹은 듯 ‘딱딱’ 마쳐서 혼 줄이 나야했다. 통증을 생각하면 뽑는 게 상수다. 그런데 이 나이에 이를 뽑는다는 것을 쉽게 생각할 일이 아니었다. 이를 뽑는 것은 내 이를 포기하는 것이다. 발치를 해야 할 경우는 앞으로도 얼마든지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신경치료를 하고 씌우면 안 될까요?”
“그것도 가능합니다만 내구성은 보장할 수 없습니다.”
지금부터 한 35년 전에 충북옥천에 소문난 치과가 있었다. 거기서 앞니 두 개와 어금니를 씌운 적이 있다. 앞니 두 개는 떨어져서 새로 했지만 어금니는 아직 멀쩡하게 잘 쓰고 있다. 그때 그 의사는 될 수 있으면 치아를 살리려 애를 썼다. 그렇다고 보면 그 때보다 의술이 훨씬 더 발전을 했으리라는 짐작은 결코 어렵지 않다. 그런 지금, 아픈 이를 살릴까 버릴까하는 중대한 결정을 하라고 한다. 내 이를 버린다는 것이 한편에서는 영 내키지가 않는다.
고심 끝에 내린 결론은 신경치료를 하고 씌우기로 결정했다. ‘내 치아를 살리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서다. 빼고 씌운다 해도 양쪽 옆에 이를 기둥으로 써야 한다. 그러자면 두 개의 이마져 신경을 죽이고 깎아내야 한다. 그렇게 되면 멀쩡한 이, 두 개가 또 손상을 입게 된다. 내 단순한 생각에는 아픈 이의 신경을 죽이면 통증이 가라앉을 거라 생각했다.
잇몸에 마취를 하고 드릴로 구멍을 뚫었다. 입안에 물이 쏟아지고 쇠 갈리는 소리가 귀청을 때렸다. 이렇게 3주에 걸쳐서 신경치료를 받았다. 마지막 날 간호사와 의사가 주고받는 말이 심상치 않았다. 어금니는 네 개의 신경이 있다. ‘X레이 상에는 신경관이 분명 네 개가 있는데 육안으로는 나머지 하나를 찾을 수가 없다’고 두런거렸다. 결국 의사는
“남은 한 개 신경을 찾으려면 대학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이대로 신경치료를 마무리해야 합니다.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대학병원을 가신다면 소견서를 써 드리겠습니다.”
어떻게 할 것인지를 날보고 결정을 하라한다. 신경치료를 끝내겠다고 하는 치아는 며칠을 지내봐도 통증이 여전했다. 신경치료를 받기 이전과 비교해서 별로 달라진 게 없었다.
“신경치료는 마무리했으니 씌울 준비를 해야 합니다. 다음에 오실 때는 결정하고 오세요.”
이런 말을 듣고 왔으니 다시 병원에 갈 수도 없게 되었다. 참 난감한 일이었다. 물론 그 이는 여전히 사용할 수가 없었다. 그래서 근 1년이 되도록 줄곧 오른 쪽으로만 씹어야 했다. 그렇게 지내던 중에 얼마 전 동네에 새로 개업한 치과가 있어 찾아갔다. 전후 사정을 얘기했더니 또 사진을 찍었다. 역시 죽인 신경 선 3개가 선명하게 찍혀 나왔다.
“잇몸에 염증이 있습니다. 신경치료는 마무리가 되어 있으니 신경치료는 더 이상 안 해도 됩니다. 이를 뽑을 건지 씌울 건지만 결정하시면 됩니다.”
씌우는 거나 새로 해 넣는 것이나 먼저 병원에서 했던 말과 다를 바가 없었다. 또다시 어려운 결정을 내려야 할 시간이다. 망설이고 있자니 젊은 의사는 모니터를 가리키며
“이 어금니들은 다 치석이 파고들어 들떠 있어요. 빨리 치료를 하시는 게 좋겠습니다.”
“치료를 하면 잇몸이 다시 살아 올라오나요?”
“그렇지는 않습니다. 현재 상태를 그대로 유지시켜 주는 거지요.”
그래서 또 어쩔 수 없이 치료를 결정했다. 아픈 이는 제쳐놓고 치석제거에 들어갔다. 잇몸에 마취를 했다. 느낌에 호미로 자갈밭은 파는 것처럼 ‘벅벅’거리는 소리가 났다. 통증을 동반 한 공포가 온몸이 쪼그라드는 긴장으로 몰려들었다. 마취는 쉽게 풀리지 않았다. 입술까지 얼얼하니 물이 술술 새어나왔다. 처방전을 받아서 약국엘 갔다. 젊은 약사는 약을 먹기 시작하면 중간에 중단하지 말고 꼭 다 먹으라고 당부를 했다.
3일분의 약을 다 먹고 난 뒤였다. 아프던 이가 통증이 말끔히 가라앉았다. 문제는 치아가 아니라 잇몸이었다. 한주에 한번 씩 4주에 걸쳐 치석제거작업이 계속 되었다. 약도 계속 먹었다. 이 작업이 끝나는 마지막 날은 이, 본을 떴다. 그리고 가치假齒를 끼웠다. 음식을 씹어 봐도 별 불편함이 없다. 그 뒤 씌울 이를 임시로 붙이고 한 주를 지냈다. 그 때도 별 이상은 나타나지 않았다. 씌울 이를 완전하게 붙여 주며 6개월 후에 정기검진을 받으러오라고 했다.
환자는 치료하고자 병원을 간다. 의사는 환자가 호소하는 병의 원인을 찾아서 치료를 해야 합당하다. 가만 생각해 보니 치료보다 매출(진료비) 띄우기에만 급급한 것 같았다. 정말 그랬다면 의사도 좌판을 벌린 장사치와 별반 다를 게 없었다. 애초 염증치료를 했으면 신경을 죽일 일도 없었다. 씌우는 비용도 들지 않았다. 체계적으로 고도의 상술을 습득한 장사치였다.
나이가 먹어도 아프지는 말아야 한다. 젊어도 마찬가지다. 아프다는 것은 서러운 일이다. 누가 무엇으로 어떻게 신병을 위로하겠는가?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돈은 돈대로 버린다. 또 많은 시간을 허비하고 스트레스를 감당해야만 한다. ‘치아는 양치질만 잘 해도 하루 만원을 번다.’고 한다. 병원경영자나 의사는 환자를 돈 나오는 구멍으로 보지 말았으면 좋겠다. 의학적 지식이 없는 환자도 시간이 지나면 진실을 알게 된다.
가장 기본적인 처치를 외면하는 것은 환자를 기만하는 행위이다. ‘의사가 고의로 진료비를 부풀린다.’는 오해는 불식되어야 한다. 이거야말로 의사가 걸어야 할 자존심이다. 또 혹시 있을지도 모를 과실의 모면책으로 미리 방어망을 치는 것도 보기 좋은 꼴은 아니다. 환자는 의사를 100% 믿고 몸을 맡긴다. 물론 좋아진 점도 있다. 그들 주변에 같은 진료과목을 내건 경쟁자들 득에 친절한 건 사실이다. 진료를 편히 받을 수 있게 하는 배려도 고마운 일이다.
오진과 과잉진료도 없어져야 한다. 의대생일 때 이미 ‘히포크라테스의 선서’를 공부했고 의사면허증을 받으면서 ‘제네바선언의 히포크라테스선서’를 한다. “의업에 종사하는 일원으로서 인정받는 이 순간에, 나의 일생을 인류봉사에 바칠 것을 엄숙히 서약한다.” 선서 맨 앞줄에 있는 이 문장만이라도 잊지 말았으면 좋겠다. 환자가 의사에게 거는 신뢰가 무너져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아픈 것만도 서러운 일이다. 환자 가슴에다 못 박는 일은 없어야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