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굽이굽이 돌아 흐르는 강을 감싸 안은 경북 영주시 문수면 수도리 ‘무섬마을’. 영주에서 흘러온 서천과 예천을 비껴 흐르는 내성천이 마을 앞에서 만나 350도 정도 휘돌아 나가는 물돌이동이다. 풍수적으로는 매화가지에 꽃이 핀다는 매화낙지라고 하고,물 위에 연꽃이 피었다는 연화복수라고도 하는 명당에 터를 잡은 마을이다.
영주 일대에서 알아주는 반촌(班村)의 고즈넉한 고샅길을 걸으면 선조들의 체취와 삶의 정취를 흠뻑 느낀다. 세월의 덧게비가 고스란히 묻어 있는 고가들,카랑카랑한 목소리로 한시를 읊던 선비의 목소리가 토담 넘어 들리는 듯하다. 한가롭게 되새김질하고 있는 누렁이 소,찾아온 손님을 빈 입으로 돌려보낼 수 없다며 차를 권하는 노인의 인정도 푸근하다. 시간이 멈춘 듯한 아스라한 옛날을 만날 수 있다.
‘물섬’을 뜻하는 수도리(水島里)가 생긴 것은 1250년께. 반남 박씨 입향조인 박수 선비(1641∼1699년)가 강 건너 무럼에서 이곳으로 옮겨와 터를 잡았다. 마을에서 가장 오래된 만죽재(晩竹齋)의 기와에 연대기가 새겨져 있다. 최근 보수를 끝냈다. 반남 박씨에 이어 250여년 전 박씨 문중과 혼인한 예안 김씨도 뿌리를 내렸다.
11대째 이 마을에서 살고 있다는 박윤우씨(74)는 “무섬마을 가옥 48동 가운데 38동이 전통가옥이다”고 한다. 100년 이상된 고옥만 16동. 도 민속자료·문화재자료 등으로 지정된 것만도 9동이나 된다. 농토가 전혀 없는 수도리도 젊은이들이 떠나가기는 마찬가지. 주민 56명 가운데 49명이 환갑을 넘긴 노인들뿐이라고 한다. 빈집이 18동이나 된다.
고종 때 의금부도사를 지낸 해우당 김낙풍이 1879년에 지은 ‘해우당’(海愚堂)은 수도리에서 가장 큰 규모의 집이다. 현판은 그와 교분이 두터웠던 흥선대원군의 글씨다. 박재연의 고가 대청마루에는 당시 교분을 나눴던 박규수의 글씨 ‘오헌’(吾軒) 현판이 걸려 있다. ‘아는 듯 모르는 듯,유하지도 않고 강하지도 아니한’ 박규수는 농투성이들과도 스스럼없이 술잔을 나눴다는 실학자.
영양 주실마을 출신인 시인 조지훈(1920∼1968)은 혜화전문학교 시절 이 마을 김난희와 결혼,처가마을의 경치에 반해 이곳을 무대로 시 ‘별리’를 쓰기도 했다. ‘…십리라 푸른 강물은 휘돌아 가는 데/밟고간 자취는 바람이 밀어가고…’ 조지훈이 시심을 일구던 처가(민속자료 제118호·김뇌진 가옥)는 텅 빈 채 낡아 지붕을 천막으로 덮어 놓았다.
섶다리를 건너 학교에 다녔다는 최수복 이장(34)은 마을 앞에 콘크리트 다리가 놓인 것은 83년이었으나 홍수로 쓸려 내려간 뒤 92년에 다시 놓았다고 한다. 질화로에 묻어 놓은 군고구마처럼 강마을의 겨울은 깊어가고 어린 시절의 하얀 추억이 떠오른다.
가는 길 : 영동고속도로∼남원주IC∼서제천∼5번 국도∼단양을 거쳐 죽령을 넘으면 풍기. 풍기를 지나 영주시에서 안동 방향으로 3㎞쯤 가면 문수면으로 가는 갈림길 이정표가 나온다. 좌회전하면 된다. 무섬마을은 영주시에서 14㎞. 문수면사무소에서 7.3㎞.
■풍기 ‘찬샘된장’
우리 식탁에서 빠뜨릴 수 없는 된장은 어머니의 정성과 손맛에서 나온다. 조미료가 없던 시절 장맛은 한 집안의 품격을 가늠하는 잣대로 여겼다. 장을 담글 때는 길일을 택했고 장독대에 금줄을 치고 고추나 숯을 띄워 살균과 흡착의 효과까지 신경썼다.
된장에도 품성이 있다. 다른 맛과 섞여도 제맛을 잃지 않는 단심(丹心),변질되지 않는 항심(恒心),비린 냄새를 없애주는 불심(佛心),매운 맛을 부드럽게 해주는 선심(善心),어떤 음식과도 잘 어울리는 화심(和心) 등 다섯가지 덕(德)이 오랜 세월 동안 우리의 입맛을 지켜왔다.
인삼과 사과의 고장 영주시 풍기읍. 중앙고속도로 풍기IC 부근 한천(寒泉)리에 위치한 ‘찬샘된장’은 정성으로 우려내 맛이 깊고 담백하여 ‘어머니의 손맛’을 느끼게 한다. 된장 맛의 비결은 토종 콩과 맑은 물,간수를 뺀 천일염,숨쉬는 옹기 등이다. 주인 최인규씨(48)가 직접 재배한 토종 콩과 지하 210m 화강암반에서 뽑아올린 지하수로 메주를 만들어 황토방에서 말린다. 방안 가득 메주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다. 된장은 숨쉬는 옹기에 담아 2년간 숙성시킨다.
최씨는 토속 된장에 그치지 않고 풍기 특산품인 인삼을 이용한 ‘인삼된장’ 제조에 심혈을 쏟고 있다. 풍기 인삼은 삼국사기의 기록에 나올 만큼 약성(藥性)이 뛰어나다. 2년간 숙성시켰다는 인삼 된장은 혀끝에 인삼 향기가 은근하게 묻어난다. 인삼고추장은 부드러운 맛이 특색. 최씨는 “영양 분석과 특허 출원 등을 거친 뒤 출시하겠다”고 밝힌다. 그는 이곳 골짜기에 사과꽃이 피어 은빛 물결을 이루는 4월 하순 쯤 된장 만들기 무료강좌와 함께 인삼된장 시식회도 가질 계획이라고 한다. 메주 8㎏(1상자) 68,000원,된장 3㎏ 16,000원,간장 900ℓ 2개 12,000원.(054-636-39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