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무를 찾아서] '만물일체설'이 살아 숨쉬는 선비마을을 지켜온 큰 나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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푸른 보랏빛으로 피어 있던 사촌리 향나무 그늘의 제비꽃. |
[2012. 5. 29]
잔뜩 흐린 사흘 연휴, 잘 쉬셨지요! 산으로 들로 즐거운 여행 다녀오신 분들도 많으리라 짐작됩니다. 오락가락한 비로 살짝 젖어든 여행 길이 더 상큼하지 않으셨나 모르겠습니다. 비 오고 산과 들의 풍경은 이제 여름으로 접어들겠지요. 오월도 다 지나갔으니까요. 우리 들녘에 봄을 알리며 지천으로 피었던 푸른 제비꽃도 모두 사라지고, 오가는 길가 철제 울타리 사이로 삐죽이 고운 얼굴 내밀던 하얀 찔레꽃도 더위에 지쳐 떨어졌습니다.
경북 의성의 선비마을 사촌리를 찾아간 건, 옛 사람의 손길을 타고 자라난 향나무를 만나기 위해서였지요. 고택의 풍경을 더 고풍스럽게 지켜주는 한 그루의 뜸직한 나무 앞의 작은 공터에서 발길을 붙잡은 건 무더기로 피어난 파란 제비꽃과 노란 꽃다지 꽃이었습니다. 낮은 곳에서 피어난 자디잔 꽃들은 나무에 더 가까이 다가서려는 발길을 당당하게 막아 세웠습니다. 도도하게 울려오는 작은 꽃의 생명 노래 앞에서는 언제나 걸음을 멈추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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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릴없이 먼저 작은 풀꽃 동무들과 인사를 나누었습니다. 의성 사촌리는 서애 유성룡이 태어난 유서 깊은 선비 마을로, 몇몇 고택을 원형 그대로 보존한 근사한 마을이지만, 사람의 자취는 드뭅니다. 그래서 풀꽃들에게 마음을 빼앗긴 짧지 않은 시간 동안 나무 곁으로는 낯선 적막만이 감돌았습니다. 덕분에 가녀린 몸의 풀꽃들이 외장쳐 부르는 생명 노래는 여느 큰 나무보다 우렁찼습니다.
무수히 피어난 여린 풀꽃들과 차례차례 눈맞춤을 나눈 뒤, 그 여린 몸들을 다치지 않도록 조심조심 발을 내디디며 나무 곁으로 다가섰습니다. 오백 년 전 이 마을에 은거하던 문인 김광수(金光粹, 1468-1563)가 손수 심고 키운 나무입니다. 유성룡의 외조부이기도 한 김광수는 연산군 때 진사 시험에 합격했으나, 벼슬 자리에 나가지 않고, 가난한 살림살이에 안분자족하며 이 마을에서 평생을 살았던 시인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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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를 심은 김광수는 마을의 길가에 있던 커다란 소나무를 매우 좋아했다고 합니다. 그는 이제는 찾아볼 수 없는 그 소나무 그늘에 들어서 시를 짓고 살며 '소나무 그늘에 숨어 사는 사람'이라는 뜻에서 스스로를 송은(松隱)처사라 했어요. 자연에 묻혀 사는 시인으로서 그가 어디 소나무만 좋아했겠어요? 그는 자신의 집 앞에 한 그루의 향나무를 손수 심고, 만년 동안 푸르게 살기를 바란다는 희망으로 '만년송'이라고 이름붙였습니다.
나무는 향나무였지만, 그에게 나무의 식물학적 이름이야 그리 중요하지 않았던 게지요. 바로 경상북도 지방기념물 제107호링 의성 사촌리 향나무입니다. 나무는 지금 키가 8m 쯤 자랐습니다. 나뭇가지의 펼친 폭은 사방으로 3m 정도 됩니다. 큰 나무라 하기에는 분명 모자람이 있지요. 하지만 자주 올리는 말씀입니다만, 우리가 '큰 나무'라고 부르는 건 반드시 규모만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아니잖아요. 나무에 담긴 큰 뜻과 바른 기품이 나무의 참 크기를 결정하는 거겠지요. 사촌리 향나무는 작지만 큰 나무라는 말씀을 올리려는 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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큰 나무, 사촌리 향나무는 사촌리의 상징이라 할 고택 '만취당' 앞 골목 맞은 편의 작은 공터 가장자리에 홀로 서 있습니다. 공터 뒤편으로는 아담한 초등학교 운동장이 이어집니다. 그리고 거의 나무에 기대어 지은 듯, 나무 바로 곁으로 살림집의 낮은 지붕이 이어져 있습니다. 이 집의 주인장은 나무를 심은 김광수의 방계 13대손인 김재열 노인입니다. 올해 일흔아홉이신 김노인은 걸음이 불편하시지만, 그래도 건강하신 편입니다.
멀리서 한 그루의 나무를 찾아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나그네를 반가이 맞이한 김 노인은 "우리 13대 할아버지가 심은 나무"라고 운을 떼신 뒤, "내가 향나무를 많이 본 건 아니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이만큼 잘 생긴 향나무는 드물 거야"라고 나무를 가만가만 자랑하셨습니다. 그건 곧 선조에 대한 자부심이기도 하고, 선비마을에 살아가는 촌로의 자존심이기도 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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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상의 손길이 담긴 나무 곁에서 한 평생을 살아온 김 노인은 여러 말씀을 하셨습니다. '나무를 바라보면서 스스로 나무가 되고, 나무가 아프면 사람도 아프며, 나무가 쓰러지면, 사람도 덩달아 무너앉게 된다'는 온 생명의 살림살이가 가벼이 내놓는 말씀에 가득 담겨 있었습니다. 식물과 동물, 심지어 주변의 모든 무생물까지를 하나로 아우러서 '천지만물이 본디 사람과 한 몸'이라는 양명학(陽明學)의 만물일체설이 떠오른 건 그래서였습니다.
한 그루의 나무를 선조의 자연주의 정신과 하나로 생각하는 후손들이 있기에 사촌리 향나무는 지금까지 이처럼 아름다운 모습으로 살아남을 수 있었습니다. 나무 줄기에 바짝 다가서서 나무 줄기 안쪽을 살펴보면 곳곳에 죽은 가지들을 잘라낸 흔적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지방기념물인 까닭에 지자체에서 정성 들여 보호하고 있기도 하겠지만, 그보다 먼저 이 마을에서 살아가는 후손들이 나무를 잘 지키기 위해 애쓴 자취라 생각하게 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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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와 사람 이야기 (78) - 의성 사촌리 향나무] 신문 칼럼 원문 보기
위의 링크를 클릭하시면 옛 시인의 만물일체 정신이 잠긴 의성 사촌리 향나무 이야기를 조금 더 보실 수 있습니다.
화들짝 다가왔던 봄이 다시 또 성급하게 꼬리를 감추고 사라지는 즈음입니다. 대학은 벌써 학기말을 준비해야 하는 시기이기도 하네요. 이 편지를 띄운 뒤에는 마감해야 할 원고가 뒤꼭지를 잡아 채더라도, 짬을 내서 길가에 아무렇게나 피어있는 씀바귀도 바라보고, 관공서 건물 쇠울타리 사이로 비집고 예쁜 얼굴을 내민 찔레꽃의 하얀 향기를 한참 바라보겠습니다. 그래야 오는 여름을 더 기쁘게 맞이할 수 있을테니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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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홀씨를 멀리 날려 보내고 내년을 기악한 하얀 민들레 꽃.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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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맙습니다.
고규홍(gohkh@solsup.com) 올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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