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하나님의 선물이지만 삶이 살아있기 위해선 삶 속에 무엇이 있어야 한다.
생명이다.
마을에 빵집이 하나 있다. 제빵사가 새벽에 일어나 오븐을 예열하며 밀가루 반죽을 하면서부터
밤에 잠자리에 눕기까지 제빵사에겐 그를 움직이게 하는 어떤 핵이 있을 것이다.
"내가 만든 빵을 먹는 사람들을 행복하게 하자." 또는 "돈을 많이 벌어 제빵회사를 차리자."
"이 분야의 최고가 되자." 또는 "나는 빵 만드는 일이 행복하다." 들 중 하나일 것이다.
아무 생각 아무 목표도 없이 배운 게 그 일이니까 그냥 하는 사람도 혹 있을 수 있겠지만.
우리가 제빵사라면 어떤 명분을 품고 일을 하고 싶으며,
우리가 소비자라면 당신은 어느 빵집에 들어가고 싶은가?
제빵사들이 같은 밀가루를 묻히고 같은 기계로 같은 빵을 만들어 같은 돈을 벌어도 제빵에 담긴 의미도 같을까?
빵에 들어간 이스트 소금 계란 등의 성분을 말함이 아니라 제빵 작업에 깃든 정신을 말함이다.
한 인간 안에는 그 사람의 삶을 움직이게 하는 어떤 정신이 있다.
어찌 보면 인간이 인간의 생을 영위한다는 것 자체보다 귀한 명분이 없을 것 같기도 하다.
인간으로 산다는 것은 쉽지 않다. 인간은 피곤하다. 인간은 여유가 없다.
우리는 살아야 한다. 먹어야 하고 입어야 하고 자야 하고 벌어야 한다.
궁리해야 하고 만나야 하고 가야 하고 지불해야 하고 병과 싸워야 한다.
꿀벌도 그 조그만 생명체를 영위하기 위해선 먹어야 하고 날개짓을 해야 하고 찾아야 하고
천적을 피해야 하고 집을 만들어야 하고 교미해야 한다.
그러나 꿀벌이 꽃 속에 들어가 꿀을 채취할 때 꿀벌은 남의 것을 도둑질 하는 게 아니라
꽃가루를 묻혀 다른 꽃에 수정시켜준다.
기업체가 개인적 야망 성취만을 목적으로 기업을 운영한다면 망하는 길로 가는 것이겠지만,
기업 내외의 사람들의 삶의 증진을 목적으로 움직인다면 건강할 것이다.
자기 권력을 위해 남의 생존을 파괴하는 개인이나 국가는 멸망을 면치 못하고,
자기의 망상을 위해 남의 행복을 희생시키는 개인이나 국가는 쇠락한다.
나이팅게일이 크림 전쟁터의 간호사가 된 것은 돈 벌기 위함이 아니라 부상당한 젊은이들을 돕기 위한 목적이었다.
세종대왕은 민족의 문맹을 깨뜨리기 위해 1446년 세계적인 문자 한글을 발명했다.
구텐베르크는 성경을 효과적으로 인쇄해내기 위해 1453년 금속활자를 발명했다.
하그리브스는 자기 아내인 제니를 위해 1764년 제니방적기를 발명하여 1차산업혁명의 신호탄을 올렸다.
그런데 이 세상에는 그의 가슴 그의 삶 내부에 특별한 향낭(향기주머니)이 존재하는 사람들이 있다.
"나의 사랑하는 자는 내 품 가운데 몰약 향 주머니요(아1:13)"
어거스틴, 파스칼, 존 위클리프, 얀 후스, 마틴 루터, 요한네스 케플러, 윌버포스, 언더우드, 아펜젤러...
그리고 이 땅에 예수 그리스도를 사랑하는 수많은 사람들.
그 향낭은 지식이 아니요 예술성이 아니요 정치 감각이 아니요 돈버는 기술이 아니다.
이 세상 오직 하나의 향 주머니의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요 생명이요 복음이다.
그들은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입고 하나님을 향하여 서있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기 전의 자기와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온 후의 자기가 다르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그 다름이 자기에게서 연유한 것이 아니요 향낭으로부터 연유했다는 것을 안다.
그들은 그 향낭이 자기 안에 계신 예수 그리스도라는 것을 안다.
그들은 그 향낭을 사랑하고 그 향기를 무한히 행복해하며 감사한다.
나아가 그들은 이 향 주머니의 향이 자기 내부를 적시고는 외부로 뚫고 흘러나가기를 원한다.
남들도 이 향낭을 가지고 살기를 원하는 마음 때문인데 이것을 기독교적 용어로 복음 전도라고 한다.
삶 속의 향낭, 향 속의 삶, 그것이 신앙이요 사랑이요 영광이요 기쁨인 것이다.
2024. 3. 19
이 호 혁
첫댓글 아멘!
아멘! 내 안에 계신 주님으로 오늘도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