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창완의 노래 '청춘'이 '정둘곳 없어라 허전한 마음은 정답던 옛동산 찾는가'라고 끝내듯이,
'옛'은 뜻을 얻지 못한 청춘에게 위안을 주는 '달콤한' 단어이다.
그때 서점에서 안치운의 책 '옛길'을 뽑아든 건 단순히 이런 연고이다.
1999년작 안치운의 옛길 표지. 이 표지에 얽힌 이야기는 -> 여기를 <-
나는 안치운에게 앞뒤없이 빠져들었다.
* 평소 책을 정리할 줄 몰라 이참에 책꽂이 여기저기서 뽑아 그의 책 일부를 모아 보았다.
연극의 '연'도 몰랐지만, 그가 쓰고 번역한 연극관련한 책들까지 거의 모두 샀다.
(물론 읽었다는 건 아니고)
이런 경향은 2010년 '시냇물에 책이 있다'를 구입할 때까지 지속되었던 것 같다.
'가스통 레뷔파가 기획한 산 총서, 아르토(Arthaud)출판사에서 나오는 산과 자연에 관한 아름다운 책들은 지금도 그 서점에 가면 그대로 있을 것 같다.'
안치운의 책들과 함께 나를 설레이게 한건 박인식의 '사람의 산'이었다.
나는 평범한 등산애호가이던 시절에도 수문출판사와 평화출판사 책들의 애독자였다.
두 출판사는 주로 외국의 산서들을 번역소개하는 출판사라,
그러다보니 한국인에 의해 씌여진 산서에 대해 내심 평가절하하고 있던 터였다.
'사람의 산'이 어떤 책이길래 이러지?
등산서적은 새책으로 샀지만,
동네 헌책방에야 내가 좋아하는 문인들의 초판본 책들을 구입하려 들러곤 했다.
그러나 오래전 발행된 '사람의 산'은 서점에도 헌책방에도 없어 동네 바깥으로 진출했다.
사당동에 책창고라는 메이저급 헌책방이 있음을 인터넷에서 검색해서 알아냈다.
그곳에 가보았더니 없더라.
일하시는 분에게서 한번씩 들어오는 책이라는 말을 듣고 잊지않고 들러다가 결국 손에 넣고 말았다.
안치운의 고백처럼 나 역시 늦가을 해질무렵 관악산 자락에서 곱은 손을 호호 불어가면서까지
'사람의 산'을 읽고 또 읽었다.
그리고 그의 책으로 세례를 받은 이들이 모두 그러했듯 피가 끓어 올랐다.
헌책방의 룰같은 게 있다. '한번 눈에 뜬 책은 계속 눈에 띈다고.'
'고고북'이라고 인터넷으로 헌책을 검색할 수 있는 사이트가 있음을 알았다.
나는 그 바다에 아니 늪에 그만 빠져버렸다.
'사람의 산' 역시 일이십권 넘게 사서 주변에 선물을 했고,
그래도 부족해서 책을 제본해서까지 나와 산행을 함께 하는 이들의 손에 넘겨졌다.
이는 '사람의 산'이 양장본으로 재출판될 때까지 몇년동안 이어졌다.
아뿔싸,
내맘이 식었다고 해야 하나, 평정을 되찾았다고 해야 하나.
매끈한 장정에 깨끗한 글씨체의 새책은 마치 오래전 연인이 허영의 옷을 걸치고 돌아온 느낌이었다.
'사람의 산'을 읽고서 안치운은 산으로 더 몰입을 했다고 했다.
나는 현실적 제약으로 그럴 수 없어, '끓어오른 피'가 책으로 빠지게 되었다.
"옛길"에서 그가 드러내는 강원도의 옛길은 매혹적이되 돈과 시간이 없어 갈 수 없고,
책의 마지막 챕터 '산에 관한 책읽기'란의 책들은 다행히 지금 여기에서 푼돈으로 가능했기에 말이다
'한국인이 쓴 산서'를 찾아 헌책방 순례를 하게 되었다.
리더(Reader)의 길에서 컬렉터(Collecter ?)의 길로 방향전환이 되었다.
그러니까 나를 지금 이모습으로 이끈 건 안치운의 옛길이라 하겠다.
그의 찾던 옛길이 나의 미래길- 별 대단할 것도 아닌 - 이 되었음은 돌이켜보면 좀 애잔하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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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안치운을 세번 만날 기회가 있었다.
첫번째는 헌책방 순례 때다.
그가 신촌쪽에 살고 있다는 걸 알게 되었고,
홍제동에 대양서적, 신촌의 숨어있는 책'이라는 헌책방이 나름 단골이렷겠다.
갈 때마다 혹시 안치운교수 최근 들렀나요?라고 묻곤했다.
어쩌다 주인에게서 '사인을 받아서 제게 선물로 드릴까요?'라는 말을 듣기도 했는데,
남자가 너무 살살맞는 것 같아서 '괜찮다며 언제 만나겠죠라고 하고 말았다.
두번째는 작년인가 재작년인가 강승* 선배의 초대로 집을 찾을 때였다.
서재에서 안치운의 책들이 많이 꼽혀 있길래 화제로 꺼냈더니,
연극계에 있는 선배의 형수가 나보고 어떻게 안치운을 아냐고 더 놀란다.
전후의 이야기를 했더니, '한번 자리를 만들어볼까요?' 하길래
20대 청춘도 아니고 가리늦게 그런 것도 체신머리 없는 듯 하여 괜찮다고 말하고 말았다.
세번째는 산서회의 인문 산행때였다.
참으로 세상 좁다는게, 안치운도 여기에 참석하겠다면서 몇번 댓글을 다는 걸 보았다.
그때 자연스럽게 동참하면서 내가 품었던 연정^^을 표할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그동안 2000년에서 2010년대 후반으로 흐르며 모든게 무상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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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석전에 올해 두번째로 신촌의 헌책방 '숨어있는 책'을 찾았다.
이제 나의 열정의 과녁이 책에서 조금 바뀌어 발걸음이 이정도로 줄어들었다.
지하로 내려가는 계단에 월간 산 1980년대 본들이 노끈에 묶여 있는 걸 보고,
불현듯 나를 무턱대고 산서로 빠져들게 했던 그때 그 시절의 안치운을 떠올렸다.
안치운은 책에서 '산'과 '사람과 산'을 거의 모두 소장하게 되었다고 적고 있다.
나 역시 이 문장을 따라 맹목적으로(! - 이 잡지들을 제대로 펴 본적도 없다.)
결국 70년대 월간 산을 창간호부터 거의 모두 소장하게 되었다.
그리고 89년 발행되기 시작한 '사람과 산'의 90년대 판본을 창간호부터 거의 소장하기에 이르렀다.
(이 역시 그와 달리 추종자의 운명이라고 해야할까, 제대로 펴본적도 없다.ㅜㅜ)
숨어있는 헌책방 계단에 80년대 월간 산 판본들을 보면서 나는 다시...
이 구절을 떠올릴 수 밖에 없었다.
아뿔싸....아직도 나는 그의 마법의 자장에 있었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하필이면 나에게 1980년대본은 빠져있던 터에...
숨어있는 책방에서 내게 없는 정확히 10년치를 보고서는 도저히 그냥 두고 올 수는 없었다.
안치운의 이 마법을 '핑계^^'삼아, 추석 끝나자마자 다시 찾아 결국 나의 품으로 들어 올 수 밖에 없다.
아쉽게도 80년이 빠졌고, 도중도중 몇권이 빠진게 아쉽기는 하지만...
80년대 산악계의 열기를 담은 103권이 겨우 두박스에 불과하다는 생각에 약간 처연하기도 했지만,
한권의 책도 상재하지 못한 나로서는 지난 80년대 '산'지가 떠맡았던 위업에 감사를 올린다.
이렇게 해서 이제 나는 월간 산과 사람과 산 2000년까지 거의 전권을 갖게 되었다.
(*집정리할 때 정리 1순위가 잡지라고 하죠.
혹시 '나에게 잡지가 있어 그냥 줄 수 있었는데라고 후탄식을 하실 회원님들이 계실지 모르는데요.
지금도 늦지 않습니다.^^ 그 잡지들이 되살아나게 할 기회를 제게 주세요.
그에 상응하는 귀중본(^^) 단행본들을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이제까지는 월간 산 잡지가 펴보는 게 아니라 그냥 컬렉팅의 대상일 뿐이었다.
'등산박물관' 을 운영하면서 그런데 이 잡지들만큼 좋은 자료가 없다는 걸 새삼 알게 되었다.
나에게 이런 잡지가 온 건 아마 어떤 이유가 있을거라 믿는다.
이상 안치운과의 인연에 대한 이야기와, 월간 산지 구입담이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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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으로)
숨어있는 책 주인은 안치운 교수를 언급하면서 조광희 선생과 함께 오곤 했다라고 말한다.
책에서도 안치운이 산서의 선생이라고 하면서 조광희 선생을 언급하고 있다.
누구일까. 산서회 회원들 중에 이분이 어떤 분인지 아는 이가 있을까.
첫댓글 모두 귀한 자료입니다. 잘 보관하삽시오!
항상 격려의 말씀 감사드립니다...~
글쿤. 80년대 초 박인식의 송준호 전기는 피를 끓게 했슴.ㅋㅋ
안교수님께서 너무도 감사하게 인문산행팀 자문교수로 수락해주셔서 앞으로 많은 가르침이 있을 터이니 진덕군은 그만 빼고 언능 인문산행팀에 합류하길 바라네.
언제 인문산행에서 박인식씨도 한번 함께 할 기회를 마련하는 것도 뜻깊을 것 같습니다.
산서회 회원들 중에도 그를 보고 싶어하는 이들이 많을테니까요....~~~
@등산박물관(김진덕) 산서회원으로 인문산행을 이끈다면 월매나 좋을꼬. 생각은 했었는데..
말 나온김에 산이형님 귀국하면 상의해보겠슴다.
@조장빈 그러고보니 형님에게 그런 마음이 진작부터 있었겠네요...
그래도 박인식씨가 팀을 이끄는 건 좀^^ 거시기할 듯 한데요...~
@등산박물관(김진덕) 그런가. 그럼 강의 요청만 해보지.ㅎㅎ
인문산행을 통해 등산박물관의 진가을 발휘하시길~~
선배님, 어제 대화 즐거웠습니다...~~~
트위터나 밴드 카톡 등 SNS에 어쩌다 의무적으로 이야기는 해야 하는데,
할이야기 없을 때^^가 있잖아요~ 그때 심심파적으로 등산박물관 한번 소개해 주세요...~~~
책 제목은 왜 지웠나요? ㅋㅋ
그걸 알아차리시네요...~
사진을 찍을 땐 생각못했는데, 막상 올리고 보니 산 밖의 책들이라서...~~
하하! 그대로 두십시오! 뭐 든지 자연스런 상태가 가장 좋습니다.^^
저도 월간산, 사람과 산....1976년부터 2010년까지 몇번의 이사로 끈에 묶여 있다가 불과 2년전 모친의 손에 의해 고물상으로 보내졌네요..아깝기도 하고..아쉽기도 하지만 누군가 새로운 주인을 만나기를 빌었습니다...
다시 기회가 있고, 공간이 준비되길 마음속으로 기대하고 있습니다~~~
잘 처분했습니다. 나도 이사 하기 전에 한 200권 정도 버렸습니다.
참 아쉬운 이야기이네요.
추진하고 계시는 여행도서관(박물관)을 만드는 데도 꼭 있어야 할 자료일텐데 말이죠...
그래도 2년 전이면 다시 대구권역의 헌책방에 나왔을텐데...~~~
아, 조장빈 샘에게 사진전 답글을 적어놓고, 최신 글을 찾아 읽다가 이 글을 읽게 되었습니다. 아 살면서, 이렇게 주목받기는 처음입니다. 고맙고, 등산 박물관에 열정이 부럽습니다. 젊은 날, 적지않은 사회적 도망자들을 산으로 이끌었던 탓에 그런 오지들을 찾아다녔더랬습니다. 게중에는 전향을 해서 세속적 부와 명예를 얻은 이도 있고, 아니꼬운 세속을 떠나 곱게 늙어가는, 처음부터 아름다웠던 이들도 있답니다. 뭐, 어때요, 곧 만나요. 귀국하면 제가 자리를 마련하지요. 서재 한 구석에 산서들을 캐른처럼 쌓아놓고 왔는데, 쓰러지지 않았는지.... 걱정이 되기도 해요. 조광희 선생은 이대 불문학과 교수였고, 산악부 지도교수
이셨지요. 은퇴하신 후에도 산행은 계속하셨습니다. 영어와 불어 그리고 한문에 조예가 깊어 대단한 독해력과 광범위한 관심분야을 지니고 계셨지요. 남 앞에 드러내는 것을 매우 싫어하셨고, 글쓰기도 조심스럽게 하셨어요. 숨은 책의 단골이기도 하세요. 은퇴 후에는 네팔 산행을 여러번 하셨습니다. 일산에서 지내고 계십니다. 전에는 산서 뿐만 아니라 오래된 등반장비도 제게 많이 주시곤 하셨습니다. 저는 그동안 모은 등산 잡지는 모두 위도에 사는 제 친구에게 주었습니다. 전에는 인제 산골에서 오랫동안 지냈던 친구인데, 지금은 섬에서 섬처럼 너른 바다를 바라보면서 살고 있답니다. 이렇게 인사드립니다. 안치운 드림
교수님.. 이렇게 일년 가까이 지나 댓글을 달게 되어 진심으로 죄송합니다.
등산박물관에 하도 많은 글을 끄적이고 댓글을 달고 하는 와중에 깜빡하며 잊어버리고는 내처 이렇게 시간이 흘렀네요.
'옛길'의 후일담 같은 이 댓글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언제 산에서 또는 산아랫동네에서 뵙겠습니다~
@등산박물관(김진덕) 금방 검색하다보니 조광희 교수님의 책을 카메라 루시다』『엄마의 마지막 산 K2『꽃도 십자가도 없는 무덤』세권 갖고 있었네요. 카메라 루시다는 사놓기만 했지만, 엄마의 마지막 산 K2는 나름 탐독했는데, 역자를 살피는데까지 미치지는 못했던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