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임브라 여행2 - 산타 크루즈 수도원을 보고는 코임브라 대학교로 가다!

10월 17일 아침에 리스본 에서 트램으로 벨렘지구를 다녀와서는 산타 아폴로니아역 에서
오후 2시에 포르투행 기차를 타고 북상하여 3시 47분에 포르투갈 중부 코임브라B 역에
도착해 기차로 시내로 들어가 컴포트 인 호텔에 체크인 하고 눈물의 성관 을 구경합니다.

그러고는 다시 시내로 돌아와 몬데고 강변 의 아담한 포르타젱 광장 에서 페레이라
보르게세 Rua Ferreira Borges 번화가 거리를 걷습니다.

페레이라 보르게세 거리는 오래된 길 이라 옛스러운 운치 가 있는데 도중에 오른쪽
대학 언덕으로 올라가는.....
알메디나 문 이 보이지만 그냥 지나쳐서 내려가니 바로 산타 크루즈 수도원 입니다.


스페인의 원주민을 이베리아인 이라고 하는데 기원전에 카르타고인 들이 이베리아반도를
차지했으나 BC 209년 로마인 들이 점령해 로마제국의 속주로 번영하다가 게르만민족의
대 이동으로 서고트족 이 수에비족과 반달족을 누르고 414년 서고트왕국 이 탄생합니다.


왕위계승 분쟁 을 틈타 711년 아랍의 우마이야 칼리파 가 모로코로 부터 바다를 건너오니
이슬람왕조 인데 피레네 산맥을 넘어 프랑스 로 쳐들어 갔다가 파리 남쪽에서 프랑크족 에
패하고 이베리아 반도 로 후퇴하니 기독교도들은 북쪽에 아스투리아스 왕국 을 세웁니다.

750년에 압바스 왕조에 본국을 잃은 우마이야 왕조 잔당이 건너와 후 우마이야 왕국 을
세우니 코르도바와 세르비야 는 당시 유럽 4대도시(인구 5만) 로 번영을 누렸는데 북쪽
피레네 산맥 아래 기독교 소왕국 들이 국토회복 전쟁 인 레콩키스타 를 벌여 남하합니다.

코임브라 Coimbra 는 로마 시대 15KM 외곽에 조성된 옛 도시를 코닝브라가 라고 불렀다고
하며 9세기말 가톨릭 주교좌 가 이곳으로 옮겨오면서 코임브라 라는 이름을 얻었다고
하는데... 1.064년 카스티야 의 알폰소 6세 가 이슬람 세력을 몰아내고 도시를 수복합니다.

이 무렵 프랑스 동부 부르고뉴 공작 의 손자 엔히크 드 보르고냐 (프랑스어로는 앙리 드
보르고뉴)는 5번째 아들 이라 공작은 물론 유산을 받기 어려우니 카스티야~ 레온왕국의
알폰소 6세의 호소에 원군을 이끌고 오니 1085년에 이슬람의 도시 톨레도를 수복 합니다.


그는 갈리시아와 포르투갈 북부에서 이슬람세력을 축출 하는 큰 전공을 세우고는 1093년에
알폰소 6세의 딸 테레사 공주와 결혼 하는데 1112년에 죽자 아들 엔히크 는 아버지 유산을
계승해 남쪽으로 진격해 어머니의 반대를 무릅쓰고 독립해 1139년 포르투갈을 건국 합니다.


엔히크 는 1139년에 코임브라를 수도로 포르투갈 을 세우니 보르고냐 왕조 초대 국왕
아폰수 1세 가 되는데... 1,260년에 남쪽 리스본 으로
수도가 옮겨 갈 때 까지 이 도시 코임브라는 포르투갈의 수도 였다고 합니다.


5월 8일 광장 Praca 8 de Maio 의 분수 를 지나 수도원 으로 들어가니 여긴 차라리
성당 이라고 부르는게 알맞다는 느낌을 받는데 붉은색 파이프 오르간 이 또 예쁘네요?


1,131년 초대왕 아폰수 엔리케스 가 건축한 산타크루즈 수도원 Mosteiro de Santa
Cruz 은 이후 16세기에 개축된.....
설교단 이 르네상스 양식 으로 만들어졌는데 보는 것 처럼 가히 걸작 입니다!

하지만 내 눈에는 오히려 성당 벽에 아줄레주 양식의 타일 이 먼저 눈에 들어옵니다.
원래 아줄레주 Azulejo 란....

“윤을 낸 돌 Al-Zuleiq (광택나는 돌) ” 이란 뜻의 아랍어 로 큰 타일에 그림을
그려서는 조각을 내서 구워 다시 짜맞춘 것 처럼 보이는데... 타일 을 뜻합니다.

아줄레주 Azulejo 타일 은 교회와 궁전, 역과 카페 및 집의 천장 에 이르기 까지.....
아주 다양한 무늬와 색 을 가진다고 하네요!!!

그러고는 길을 되짚어 걸어오다가 고개에서 왼쪽으로 언덕 으로 오르는 알메디나 문
Arco e Torre de Almedina 을 지나 계단 을 오릅니다.

여기 코임브라 Coimbra 는 리스본, 포르투 와 더불어 포르투갈 3대 도시로... 전형적인
대학도시 이자 학술, 문화의 중심지 인데..... 구시가지는 여기 언덕 위 에 있습니다.


이리구불 저리 구불 가파른 골목길 을 걸어 올라 가노라니.... 얼핏 우리나라 달동네
를 연상시키게 됩니다. 예전에 외국인들이 밤에 배를 타고 부산항 에 들어오면...
초량과 수정동 산 언덕에 판자촌 불빛 을 보고 수십층 빌딩 이 늘어섰다고 놀랬다나요?

예전에는 차량 도 없었지만 한 겨울 추위 때문이었을까요? 동서양을 막론하고 어느
나라 할 것 없이 예전에 골목길은 이처럼 좁았던 것이지요?


언덕 골목길 곳곳에는 모퉁이 를 돌 때 마다 대학생 들의 치기어린 장난 인지......
어김없이 낙서 가 보입니다?

그래도 여기 언덕이 관광지 임을 나타내는 것은 길가 자그만 가게에 엽서며 기념품 들이
진열되어 있는 것이 보이기 때문이지요.


로마식 인지 아님 아랍식 인지 모를 항아리 를 지닌 청동 여인상 옆에서 울 마눌의
사진을 찍고는.....

계단을 더 올라 골목을 몇구비 도니..... 견고한 성채 가 나오는데, 그럼 이게 바로
구 성당 이라고 부르는가 보네요?

구성당 즉 구 카테뜨랄 Se Velha de Coimbra 은 영어로는 Old Cathedral 이라고
쓰는 것 같은 데....

성당이 마치 요새 처럼 견고해 보이는 것은..... 예전에 “이슬람과 전쟁 중에 건축”
되었기 때문인가 봅니다?


파사드 라고 불리는 성당 앞면 을 살피다가 정문 테두리 에 말발굽 처럼 두른 돌 기둥을
보는데..... 그 돋올 새김, 양각으로 새긴 모습이 참 환상적 입니다!!!

빼꼼히 문을 열고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데 요새식 으로 건축한 탓인지 내부는 좀
어두워 보이는 데....

그래도 정면 설교대 뒷편 제단 은 참 아름다운 것이 볼만한 데..... 여기 동상들 은
아마도 열두 제자 를 의미하는 것일러나?

성당 벽에 그려진 여성들 의 모습이 보이는데.... 하나는 왕비 인 듯 하고 나머지는
천사인지 아님 성녀 인지 구분하기 힘드네요?


한번 더 둘러보고는 구성당 을 나와 모퉁이를 돌아 올라가노라니..... 바로 코임브라
대학교 인 데, 여긴 분위기로 보아 후문 일러나?


코임브라 대학교 Universidade de Coimbra 는 언덕 위 산의 정상부 에 세워졌는 데,
의과대학 이지 싶은 건물 앞에 여신이 두명의 남자를 거느리고 서 있으니.....


누가 장난 으로 “$” 자 표시 낙서 를 한게 실소를 자아냅니다? 그래 오늘날 대학을
누가 “지성의 전당” 이라고 부르는가요?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대부분은 학문 보다는 돈과 출세를 쫓아 부나비 처럼 날아드는 세태 가 아니던가요?

그러고는 한 블록을 북쪽으로 가니 바로 1,598년에 흰 대리석 으로 건립된 바로 그
신 대성당 Se Nova 입니다.

저 아래 구 대성당 에 대한 대비적인 명칭 인가 본 데.... 문이 닫혀 있어서 성당 내부를
보지 못하는게 아쉽습니다.

그러고는 되돌아서서는 다시 신 대학 을 가로질러 시계탑 을 지나...... 구 대학
으로 향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