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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광주대교구 꾸르실리스따 원문보기 글쓴이: 이선정스테파노
2026년 8월 21일 금요일
[(백) 성 비오 10세 교황 기념일]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오늘 전례
성 비오 10세 교황은 1835년 이탈리아 베네토 지방 리에세의 가난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그는 1858년 사제품을 받고 20년 가까이 본당 사목자로 활동하다가 만토바의 주교와 베네치아의 총대주교를 거쳐 1903년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교황은 모든 것을 그리스도 안에서 재정립하고자 노력하였으며, 특히 광대한 교회법을 현대화하여 새 법전을 편찬하고, 성무일도서도 개정하였다. 또한 참된 그리스도인의 생활을 해치며 교회를 위협하는 오류들에 맞서 싸웠다. 비오 10세 교황은 1914년 선종하였고, 1954년에 비오 12세 교황이 시성하였다.
말씀의 초대
주님께서는 에제키엘 예언자를 뼈로 가득 찬 계곡으로 데리고 가시어 마른 뼈들을 살리시며, 이스라엘을 무덤에서 자기 땅으로 데려가시겠다고 예언하게 하신다(제1독서). 예수님께서는 율법 학자의 물음에 하느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하는 것이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라고 하신다(복음).
제1독서
<너희 마른 뼈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온 이스라엘 집안인 너희를 무덤에서 끌어내겠다.>
▥ 에제키엘 예언서의 말씀입니다. 37,1-14
그 무렵 1 주님의 손이 나에게 내리셨다.
그분께서 주님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나가시어,
넓은 계곡 한가운데에 내려놓으셨다. 그곳은 뼈로 가득 차 있었다.
2 그분께서는 나를 그 뼈들 사이로 두루 돌아다니게 하셨다.
그 넓은 계곡 바닥에는 뼈가 대단히 많았는데, 그것들은 바싹 말라 있었다.
3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이 살아날 수 있겠느냐?”
내가 “주 하느님, 당신께서 아십니다.” 하고 대답하자,
4 그분께서 또 나에게 말씀하셨다. “이 뼈들에게 예언하여라.
이렇게 말하여라. ‘너희 마른 뼈들아, 주님의 말을 들어라.
5 주 하느님이 뼈들에게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에게 숨을 불어넣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겠다.
6 너희에게 힘줄을 놓고 살이 오르게 하며 너희를 살갗으로 씌운 다음,
너희에게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게 하겠다.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7 그래서 나는 분부받은 대로 예언하였다.
그런데 내가 예언할 때, 무슨 소리가 나고 진동이 일더니,
뼈들이, 뼈와 뼈가 서로 다가가는 것이었다.
8 내가 바라보고 있으니, 힘줄이 생기고 살이 올라오며
그 위로 살갗이 덮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숨은 아직 없었다.
9 그분께서 다시 나에게 말씀하셨다.
“숨에게 예언하여라. 사람의 아들아, 예언하여라.
숨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너 숨아, 사방에서 와 이 학살된 이들 위로 불어서, 그들이 살아나게 하여라.’”
10 그분께서 분부하신 대로 내가 예언하니, 숨이 그들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자 그들이 살아나서 제 발로 일어서는데, 엄청나게 큰 군대였다.
11 그때에 그분께서 나에게 말씀하셨다.
“사람의 아들아, 이 뼈들은 온 이스라엘 집안이다.
그들은 ‘우리 뼈들은 마르고 우리 희망은 사라졌으니,
우리는 끝났다.’고 말한다.
12 그러므로 예언하여라. 그들에게 말하여라.
‘주 하느님이 이렇게 말한다. 나 이제 너희 무덤을 열겠다.
그리고 내 백성아, 너희를 그 무덤에서 끌어내어 이스라엘 땅으로 데려가겠다.
13 내 백성아, 내가 이렇게 너희 무덤을 열고, 그 무덤에서 너희를 끌어 올리면,
그제야 너희는 내가 주님임을 알게 될 것이다.
14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
그제야 너희는,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주님의 말이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하느님, 감사합니다.
복 음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 마태오가 전한 거룩한 복음입니다. 22,34-40
그때에 34 예수님께서 사두가이들의 말문을 막아 버리셨다는 소식을 듣고
바리사이들이 한데 모였다.
35 그들 가운데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물었다.
36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37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38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39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40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주님의 말씀입니다.
◎ 그리스도님, 찬미합니다.
<또는, 기념일 독서(1테살 2,2ㄴ-8)와 복음(요한 21,15-17)을 봉독할 수 있다.>
오늘의 묵상
비 오는 날 저녁 미사가 끝나고 집으로 돌아가려 할 때 성당 입구에서 한바탕 큰 소리가 들립니다. “이거 제 우산인데 왜 가져가세요?” “아니예요. 이 우산은 제 것이 맞아요.” “제가 여기에 두었는데요?” “거참, 제 것이 맞다니까요!” 소리는 점점 더 커집니다. 결국 한 사람이 자기는 우산에 표시해 두었다며 문제의 우산을 들고서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 버립니다. 알고 보니 그 우산 옆에 같은 우산이 하나 더 있었습니다. 두 사람 다 본당의 날 기념 우산을 가지고 와서 헷갈렸던 모양입니다. 충분히 일어날 수 있는 일이지만 서로 이해하고 배려할 수도 있었을 텐데, 조금 전까지 거룩한 미사에 참례한 사람들의 모습이 이래도 되나 싶은 생각이 슬며시 듭니다.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마태 22,36)라는 율법 교사의 물음에 예수님께서는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을 말씀하십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구약 성경에 나오는데(신명 6,5; 레위 19,18 참조), 예수님께서는 이를 하나로 연결하여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고 하십니다.
“너희가 내 형제들인 이 가장 작은 이들 가운데 한 사람에게 해 준 것이 바로 나에게 해 준 것이다”(마태 25,40).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은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우리에게 베푸신 그 사랑으로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기에 서로 밀접합니다. 보이지 않는 하느님께서 보이는 이웃을 통해서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이라는 기준에 따라서 모든 것을 바라보며 말하고 행동한다면, 작고 사소한 일에 목숨 걸고 잘잘못을 따지는 일은 크게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유청 안셀모 신부)
조재형 가브리엘 신부님
‘배보다 배꼽이 더 크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후배 신부님과 싼타페 여행을 다녀오면서 이 말을 실감했습니다. 음식은 미리 준비해 갔고, 아침과 저녁은 숙소에서 해결했기에 여행경비를 많이 절약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예상하지 못한 비용이 생겼습니다. 가는 길에는 과속으로, 오는 길에는 갓길에 정차한 경찰차를 지나갈 때 차선을 바꾸거나 속도를 크게 줄여야 한다는 법을 몰라서 티켓을 받았습니다. 나중에 확인해 보니 티켓 비용이 전체 여행경비보다 더 많이 나왔습니다. 그야말로 배보다 배꼽이 더 큰 여행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 안에서도 작은 은총을 보았습니다. 저는 함께한 기쁨이 있었기에 그 비용을 반씩 나누어 내자고 했고, 신부님도 고마운 마음으로 받아들였습니다. 생각해 보면 이것이 신앙의 길입니다. 우리가 모든 법을 다 알고, 모든 상황을 다 예측하며 살 수는 없습니다. 때로는 실수하고, 때로는 몰라서 손해를 보기도 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책임을 서로에게 미루지 않고 함께 짊어지는 마음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의 무거운 짐을 대신 짊어지셨듯이, 우리도 형제의 짐을 함께 나눌 때 그곳에 복음의 정신이 드러납니다. 여행의 비용은 예상보다 컸지만, 서로를 배려하고 함께 책임지는 마음은 그 비용보다 더 큰 은총이었습니다.
신부님은 제게 두 가지의 질문을 하였습니다. 첫 번째는 ‘노후’에 대한 질문입니다. 미국에서 사제들은 알아서 노후를 준비해야 한다고 합니다. 미국 본당에서 사목하는 신부님은 아직은 젊지만, 노후에 대해서 어찌해야 할지 궁금했다고 합니다. 저는 35년 사제 생활을 하였고, 달라스 사목을 마치면 원로사목자가 될 것입니다. 제가 속한 교구에서는 원로 사목자들에게 공동숙소를 제공해 주고 있습니다. 미사예물도 지원해 주고, 국가에서 연금이 나오기 때문에 경제적인 면에서 노후를 크게 걱정할 것은 없습니다. 시간 관리와 건강관리 그리고 영적인 생활이 중요할 것 같습니다. 사목의 현장에서 떠나면 개인의 시간이 많아질 것입니다. 악기를 배우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책을 읽거나 적당한 취미와 봉사의 시간을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나이를 먹으면 건강관리를 잘 해야 합니다. 적당한 운동, 규칙적인 식사, 긍정적인 생각이 건강관리에 좋을 것 같습니다. 매일 미사를 봉헌하고, 기도로 하루를 열고 기도로 하루를 마감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두 번째는 ‘강론’에 대한 질문입니다. 매일 저의 강론을 인터넷으로 읽고 있다고 합니다. 미국 성당에서 영어로 강론하는 것도 부담이지만 강론 준비가 늘 숙제라고 하였습니다. 저는 신학교에서 ‘설교학’을 가르쳤습니다. 저는 신학생들에게 했던 이야기를 해 주었습니다. 강론의 주된 재료는 ‘말씀’입니다. 그러기에 말씀을 눈으로 읽고, 마음으로 읽으면 좋습니다. 말씀에 소홀한 강론은 좋은 이야기는 될 수 있지만 참된 강론은 될 수 없습니다. ‘시대의 표징’입니다. 말씀은 변함이 없지만 우리가 사는 시간과 공간은 변하기 마련입니다. 그 시간과 공간을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민과 아픔에 공감하는 것이 좋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책을 가까이하고, 사람들의 이야기를 경청해야 합니다. 좋은 의사는 환자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치료를 시작합니다. ‘삶’입니다. 말씀을 강론한 대로 살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기도하라고 하면서 기도하지 않으면, 남을 도우라고 하면서 욕심을 채우려 한다면 예수님께서 책망했던 바리사이와 율법 학자가 될 것입니다. 삶이 함께하지 않는 강론은 속 빈 강정이 될 것입니다. ‘기도’입니다. 기도는 샘이 깊은 물과 같고, 뿌리 깊은 나무와 같습니다. 기도는 좋은 강론의 이정표가 될 것입니다.
둘이라서 단출했지만 둘이라서 영적인 대화를 더 많이 했던 시간이었습니다. 언젠가 후배 신부님도 시간이 흐르면 또 다른 후배의 질문에 저보다 더 현명한 대답을 하리라 생각합니다. 오늘 율법 교사는 예수님께 이렇게 질문하였습니다.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대답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라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려 있다.” 그리고 착한 사마리아 사람의 이야기를 들려주셨습니다. 사랑은 관념이 아니고 사랑은 실천이며, 사랑은 삶입니다. “내가 너희 안에 내 영을 넣어 주어 너희를 살린 다음, 너희 땅으로 데려다 놓겠다. 그제야 너희는 나, 주님은 말하고 그대로 실천한다는 사실을 알게 될 것이다.”
<사랑 닮은 사랑>
상지종 베르나르도 신부님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마태 22,37.39)
나를
낳는
당신의 사랑
닮은
당신을
낳는
나의 사랑
나를
이루는
당신의 사랑
닮은
당신을
이루는
나의 사랑
나를
살리는
당신의 사랑
닮은
당신을
살리는
나의 사랑
내가
되는
당신의 사랑
닮은
당신이
되는
나의 사랑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
이용현 알베르토 신부님
오늘 복음에서 율법 교사 한 사람이 예수님을 시험하려고 “스승님, 율법에서 가장 큰 계명은 무엇입니까?”하고 묻자 예수님께서 그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 마음을 다하고 네 목숨을 다하고 네 정신을 다하여 주 너의 하느님을 사랑해야 한다.’ 이것이 가장 크고 첫째가는 계명이다. 둘째도 이와 같다. ‘네 이웃을 너 자신처럼 사랑해야 한다.’는 것이다. 온 율법과 예언서의 정신이 이 두 계명에 달 려 있다.”
우리가 하느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대한 복음 말씀을 대하면서 종종 부담스럽게 생각이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과연 우리가 진정 마음과 목숨과 정신과 온 힘을 다해 하느님을 사랑할 수 있을 지에 대한 의구심이 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먼저 기억해야하고 잊지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하느님께서 지난 시간 우리를 마음과 목숨과 정신을 다해 사랑하셨고, 지금도 사랑하시고, 앞으로도 사랑하실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어쩌면 우리가 하느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 하느님의 사랑을 가슴 깊이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우리가 그 하느님의 사랑을 받아들이고 진정 기뻐하고 감사드리는 순간 나에게 다가온 그 하느님의 사랑이 싹이트고 자라나기 시작하고 나무가 되고 열매를 맺고 그 결실이 다른 이들에게 또 나뉘어지게 될 것입니다.
영광이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오늘의 성인
성 비오 10세(Pius X)
신분 : 교황
활동연도 : 1835-1914년
같은이름 : 비우스, 피오, 피우스
1835년 6월 2일 이탈리아 북부 베네치아(Venezia)의 리에세(Riese)에서 우체부인 아버지와 재봉사인 어머니 사이의 10남매 중 둘째로 태어난 주세페 멜키오레 사르토(Giuseppe Melchiorre Sarto)는 어머니의 신앙에 많은 영향을 받아 1850년에 파도바(Padova)에 있는 신학교에 들어갔다. 1858년 9월 18일 사제가 된 그는 향후 17년 동안 본당 사목자로서 활동하다가 1884년 9월 쇠락한 교구인 만토바(Nantova)의 주교로 임명되어 교구 활성화에 전념했다.
1893년 6월 교황 레오 13세(Leo XIII)는 그를 베네치아의 총대주교 겸 사제급 추기경으로 임명하였다. 베네치아 정부와의 문제로 인하여 18개월 간 부임이 늦춰지기는 했지만 10년 동안 지혜롭게 정부와 협력하며 사회주의에 대항하고 신자들에게 헌신했다.
그는 1903년 8월 4일 교황 레오 13세를 계승하여 교황으로 선출되었다. 그는 교회법 개정에 착수했고, 불가타 성경 개역위원회를 만들었으며, 시편과 성무일도서 개정을 명하였다. 특히 그는 매일 영성체할 것을 명하고, 첫영성체 연령을 낮추고, 병자들의 영성체를 완화해주는 교령을 발표했다.
그의 재임기간은 '근대주의'(Modernism)와의 투쟁이 많았고, 1910년에는 프랑스 좌파 정치 이념에 가톨릭시즘을 조화시키려던 마크 상니에르(Marc Sangier)의 '르 시용'(Le Sillon) 운동을 단죄하였다. 교황 성 비오 10세는 제1차 세계대전이 발발한 지 22일 후인 1914년 8월 20일, 전쟁으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생명을 잃는 것을 개탄하면서 숨을 거두었다.
생전에 이미 성인으로까지 불렸던 그는 1951년 6월 3일 복자품에 올랐고, 1954년 5월 29일 교황 비오 12세에 의해 시성되었다. 그럼으로써 1712년 비오 5세가 시성된 후 처음으로 시성된 교황이 되었다.
성녀 그라시아 (Gratia,Gracia)
활동년도 : 1180년경
신분 : 동정, 순교
지역 : 알키라, 발렌시아, 스페인
같은 이름 :
알시라의 성 베르나르도의 여동생인 성녀 그라시아와 성녀 마리아에 대한 기록은 거의 없다.
여러 차례 개정 작업을 거친 현 “로마 순교록”에서는 그들에 대한 언급을 찾아볼 수 없지만, 옛 “로마 순교록”에서 그들에 대해 간략한 설명을 볼 수 있다.
그에 따르면 에스파냐 발렌시아 지방 알시라에서 시토회 수도자로 아흐메드라고 불리던 성 베르나르도와 그의 여동생으로 자이다로 불리던 성녀 마리아와 조라이다로 불리던 성녀 그라시아가 순교하였다.
그들은 이슬람교를 믿다가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이들이다.
전승에 따르면 성 베르나르도의 본래 이름은 아흐메드로 발렌시아 지방에 있었던 사라센 왕국의 카렛 지방 족장인 알만소르의 아들이었다.
그에게는 형과 두 명의 여동생이 있었는데, 어려서부터 형과 함께 궁정에서 지내며 교육을 받았다.
아버지로부터 능력을 인정받은 그는 1156년 아라곤 왕국과의 전쟁에서 사로잡힌 포로들의 석방을 위한 외교적 임무를 띠고 카탈루냐 지방의 바르셀로나에 갔다.
외교적 협상에 실패한 그는 돌아오던 중에 길을 잃고 밤새 숲속을 헤매다가 어디선가 천사가 부르는 듯한 노랫소리를 듣고 타라고나(의 포블레트에 있는 시토회의 왕립 수도원을 찾게 되었다.
이곳에서 그는 수도원장의 친절한 환대를 받고 흰색 수도복을 입은 수도자들의 겸손과 기도 생활에 크게 감동하였다.
그래서 그는 그리스도교 교리와 신앙에 대해 배우고 나서 이슬람교에서 그리스도교로 개종한 후 시토회에 입회하였다.
그러면서 베르나르도라는 새로운 이름을 수도명으로 정했다.
1181년에 성 베르나르도는 가족들에게 복음을 전하려고 발렌시아로 돌아왔다.
그리고 카렛으로 가서 여동생인 자이다와 조라이다 그리고 아버지를 이어 족장에 오른 형을 만났다.
여동생들은 그의 말을 듣고 그리스도교로 개종하면서 자이다는 마리아로, 조라이다는 그라시아라는 이름으로 세례를 받았다.
이 소식을 들은 형이 격분하자 성 베르나르도는 성녀 그라시아와 성녀 마리아와 함께 피신했다가 그해 8월 21일 알시라에서 체포되어 무참히 살해되었다.
그들의 시신은 이슬람교의 지배하에서도 개종하지 않은 에스파냐의 그리스도인들에 의해 알시라에 묻혔다.
1242년 그 지역을 정복해 무슬림의 손에서 해방한 아라곤의 왕 하우메 1세는 그들의 유해를 찾은 후 순교 장소에 성당을 지어 봉헌하며 삼위일체 수도회에 관리를 위임했다.
1603년 그들의 유해는 시토회의 포블레트 수도원으로 이장되었고, 1643년 이들 세 순교자는 알시라의 수호성인으로 선포되어 공경을 받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