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 위씨문중 외연 확장
(1) ‘전국청장년협의회’를 창설하다
송담은 우리 문중의 장래에 대해 고민을 거듭했다. 원로들의 자문도 구하고 다른 성씨의 현실도 감안했다. 그래서 내린 대처방안이 ‘전국청장년발전협의회’를 만드는 것이었다. 먼저 일의 선후를 감안, 서울 수도권 청장년들을 위주로 한 ‘재경청장년회’를 2011.11.20. 신설했다. 근대화의 일환으로 세거지 중심의 종친회가 서서히 약화되고 서울수도권의 종친들의 분포가 전체 종원의 과반에 이르렀기 때문이었다.
송담의 의중은 적중했다. 우리 문중의 젊은이들이 우후죽순으로 대종회에 몰려 들었다. 여기에는 장흥위씨 청장년밴드가 핵심역할을 수행했다. 매일 10여건에 이르는 문중역사자료와 경조사 및 신선한 정보는 젊은이들의 잠재된 욕구를 분출하기에 알맞았고 소통과 협업을 지향했다. 그리하여 2016년 8월을 기점으로 전국으로 조직을 확대하기에 이르렀다. 우리 문중의 미래를 이끌고 가야 할 인재를 찾아 교육, 훈련하여 적재적소에 배치하는 것에 중점을 두었다.
(2) 다양한 동호회를 발족하다
2014년 6월 위씨골프회 결성에 이어 2016년 5월 장원봉산악회가 창설되었고, 2016년 10월에는 문예연합회도 발족되었다. 동호회는 문중에 새로운 종친을 접근시키는 통로이고 여러 종친들에게 설 자리를 만들어 주는 길이기도 하다. 같은 취미를 가진 종친들이 어울리고, 어울리다 보면 문중사(門中事)에도 적극 참여하게 된다. 동호회에 참여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문중의 소식도 듣게 되고 작은 일이라도 자신이 생기면 보람을 갖게 되는 것이다. 1300여 년을 전국에 산재한 세거지 중심으로 문중사가 이루어져 왔지만 세거지와 종파중심은 서서히 약화 추세를 보이고 있다. 이제는 급격한 산업화의 진행으로 수도권을 포함한 재경거주종친들이 과반에 이른다. 다양한 종파와 전국 각처의 종친들이 모여 호흡하고 있다. 이들의 공통주제는 같은 취미를 가진 이들이 모여 함께하는 것이라고 송담은 판단했다.
(3) 중국 위씨와 가교를 마련하다
2011년 4월 송담은 대종회 내 인적자원을 능률적으로 관리하고 문중사업을 활성화 시키며 장흥위씨의 미래발전에 기여함을 목적으로 상설조직인 미발협(약칭)을 발족했다. 국가사회에 공헌하고 있는 현역의 중견 인재 종친을 중심으로 했다. 미래발전협의회는 2011년 10월 7일 서울시청 앞 프레지던트호텔에서 비젼포럼을 개최하는 등 활발한 모습을 보였다.
더 나아가 중국(中國)의 위씨 유래와 흔적을 찾아 중국 위성발원지를 수차례 방문했다. 2015년 9월 11일부터 15일까지 4박5일 간에 걸쳐 중국 하남성 본촌을 다녀왔다. 송담이 추진한 위씨 뿌리 찾기와 국제 교류 활성화 사업의 일환으로 전국의 종친 10명이 함께한 행사였다. 이에 앞서 전국의 종친 21명이 2012년 10월 25일부터 4박5일간 위징 탄생지와 중국 거록현을 방문하였다. 그리하여 중국 위씨와도 긴밀한 교류를 가지게 되었다.
3) 대종회 내연 강화
(1) 정보분야 강화와 위씨소식誌 발행
2004년 개설한 장흥위씨 홈페이지를 새로 리모델링하여 쌍방향 소통을 강화했다. 특히 상설기구란과 동호회란, 문중소식과 열린광장 및 자료실 등을 새로 추가하는 등 발전적인 면모를 갖추게 되었다. 전국 청장년회밴드를 만들어 전국에 흩어진 젊은이들이 서로 정보를 주고받으며 소통하는 기회를 제공했고 합력하여 문중사업을 추진하는 발판을 마련했다. 또한 ‘위씨네 카페’와 함께 서로 보완하여 유, 무선의 인터넷 매체를 적극 활용하는 전기를 마련했다.
이로 인해 전국의 종친들이 유·무선 환경에서 서로간 괴리감을 없애고 문중의 대소사를 의논하는 여론의 광장이 형성되었다. 또한 인쇄매체를 통해 전국종친들의 소통을 원활히 하고자 위씨 소식誌를 발행했다. 1년에 4회 발간되는 계간지이다. 기존 ‘장흥위씨종보’는 1년에 한번 발행되어 씨족문화 창달에 목적을 두는데 반해 소식지는 전국에 흩어진 종친들을 하나로 묶고 서로간의 소통을 강화하기 위한 목적이었다. 전국 세거지로 단체로 발송하고 서울수도권은 개인별로 발송하는 배부방식을 취했다.
(2) 성자표기 통일과 뿌리동영상을 제작
씨족문화연구소장을 위원장으로 성자표기 통일화 특별위원을 선발하여 2011년부터 2015년까지 종론을 집약하고 자료수집, 조사, 분석, 수차례 회의를 거쳐 표기를 확정했다. 또한 대종회 발전기금조성위원회, 종보편집위원회, 하계수련회 추진위원회 등 각종 위원회를 가동하여 활발한 활동을 보였다. 또한 ‘위씨, 그 2600년 역사 뿌리를 찾아서’란 제목으로 씨족사 동영상을 씨족문화연구소에서 제작했다. 위성의 연원, 장흥위씨 정착과 시승세계, 분파와 집성촌, 문화유적 유물과 씨족사의 발전상을 영상에 담았다.
(3) 명문으로의 도약을 위한 기틀 다져
먼저 재단법인 장흥위씨장학회의 이사진을 개편하여 원본에서 매년 발생한 과실의 부족분을 조달했고 장학금 수여 방식도 변경했다. 장흥하계수련회도 부분별 책임제를 도입하여 기존 학생중심을 유지하면서 일반인 참여, 진행방식에 있어서 훈련부 신설, 씨족문화연구소의 교육 전담, 탐방코스 개발, 프로그램의 다양화 등 일익 번창의 기틀을 마련했다.
5월 회주대제에 많은 종친들이 참여하도록 독려하고 전국에 산재한 지회가 유기적인 활동을 하도록 지도했다. 그 결과 인천지회와 남양주지회 등 많은 지회가 새로이 설립되었다. 또한 씨족문화연구소와 밴드를 통해 존재공을 비롯한 선대의 업적을 연구하는 분위기를 조성하고 장흥위씨 종보를 지속적으로 발간했다.
객관적인 사실을 기반으로 우리종씨의 현황과 이력을 수시로 알려주시는 위신복 종원님께 감사드립니다
이번에 여름 휴가를 맞이하여
부산 부모님댁에 왔다가
우연히 2003년도에 처음 발행된 것으로 보이는 종친회보 장원봉(장흥위씨광주종친회 발행)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이 책자 203페이지 종친회연락처 재부부장공파 대표 연락처에서 부친의 성함(위정량)을 발견하고는 잠깐 감회에 젖었답니다
(지금도 부모님은 연락처로 명기된 아파트에 거주하심)
한가지 궁금한것이 지금의 대종회 발행 종친회보와 장원봉 종친
회보와의 관계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해서 문의를 드립니다
주측건대 지금의 대종회보로 일원화 된것으로 보이는데 맞는지요?
위상환
위상환 님
문중 종보는 세종류입니다
1)장원봉이라는 종보는 광주지회에서 자체발행한 것입니다. 4번 발행한 이후 중단했습니다. 2)장흥위씨종보는 올해 23호로 23년간 매년 발행해오고 있습니다. 그리고 3)관북지회에서 월명송을 격년으로 11집까지 발행했습니다
위상환 碧泉 위윤기 나도 예전에 장원봉이라는 종보를 접한적이 있었는데 2번 발행후 중단 되었군요. 장흥위씨 종보는 올해로 23주년이나 되었군요.덕분에 공부하고 갑니다.고마워요.
碧泉 위윤기
그렇군요
2003년도에 발행된 종보지만
지금의 대종회 위자형 회장님 기고글 그리고 위찬호 당시 대종회 회장님 인터뷰 기사 등이 실려 있는 등 지금 보아도 나름 특색이 엿보였습니다
역시 위씨의 능력과 기개는 송곳과 같아서 어디에 있든
표가 나는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선암 위옥량 (청장년회 회장)안항공 님
몇번에 걸친 글을 자세히 정독해보니 송담회장님께서는 재임기간동안 전임자이신 범곡회장님께 물려받으신 유산을 한가지도 폐기하지 않으시고 수정을 통해 몇배를 배가하셨습니다. 또한 여러 가지를 시대상황에 따라 새로이 창조하셨습니다. 이런 모습이 너무나도 아름답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