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빛의자녀
2016-09-05 17:15:21
목사를 비롯한 교역자들과 그 모든 가족들의 모든 생활비를 교회가 전적으로 모두 감당하고 있는 현 제도에서는 결코 헌금 강요는 사라지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돈을 긁어 모아야 되기 때문입니다. 사도 바울과 같이 자비량 사역을 하지 않는 현 제도상으로는 헌금 강요는 필연적 현상입니다. 목회자들이 다른 직업은 가지지 않고 교인들이 내는 헌금으로만 생활하려고 하니 이런 현상이 생기는 것입니다.
이렇기에 헌금으로 협박을 일삼고 도둑놈 누명을 씌우고 헌금을 안하고 십일조를 안해서 저주를 받고 저주를 받았다고 하며 헌금을 많이 하고 잘 해야 복을 받고 믿음이 좋다고 하니 교인들은 그 말이 진짜인지 싶어서 겁도 나고 복도 받아야 되고 그래서 생활비를 쪼개어서 교회에다 헌금을 하기에 생활이 쪼들리게 되고 그래서 교인들이 인색하다 구두쇠다 소리를 듣고 부모님과 애들 용돈, 가족외식, 자녀교육, 옷도 마음대로 못 사입고 차도 바꾸어야 되는데 마음대로 못하는 것입니다. 일꾼이 삯을 받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지만 그 삯이 너무 과하고 또한 삯도 형편에 맞게 받아야 합니다.
구약시대와 예수님 시대 아니 1960~1970년대 까지만 해도 생활이라고 해 봐야 비를 피할 공간과 끼니마다 배를 채울 양식과 몸을 가릴 옷가지만 있으면 생활이 되었습니다만, 잘 아시겠지만 현대의 생활은 그 때와는 판이하게 다릅니다. 생활하기 나름이지만 주택, 의복, 식비(외식비 등 포함), 자녀교육비, 차량구입 및 유지비, 의료보험료, 통신요금, 전기요금. 기타 등등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엄청난 돈이 들어갑니다. 몇 백만원에서 천만원 이상 들어갈 수도 있겠죠.
그런데 목사가 1인이 아니라 수명이고 거기에 강도사, 전도사, 관리인, 사무원 등 교회를 직장으로 삼아 급여를 받는 사람이 많은데 그 들의 모든 급여를 소속 교인들이 모두 감당하라고 한다는 것은 너무 과한 것이 아닙니까? 사도바울이 왜 자비량 사역을 했는지 성경에 분명히 밝히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누구보다도 율법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자비량 사역을 했습니다.
당시는 사실 생활비래야 잠자리와 식량, 옷가지만 있으면 되었기에 그리 많은 돈이 들어가지 않았을 텐데도 바울은 교인들에게 폐를 끼치지 않고 짐을 지우지 않기 위해서 그렇게 한다고 했습니다. 바울은 복음을 위해서 복음에 장애가 되는 것은 어떠한 고난과 고생이 있어도 감내했습니다만 지금 목사들은 복음은 어떻게 되든지 교인들은 어떻게 되든지 아랑곳 하지 않고 자기들의 욕심과 편안한 생활과 명예만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시골 개척교회 목사들은 그렇지 않다고 하며 생활이 어렵다고 하겠지만 제 생각에는 그들도 교인이 늘고 헌금이 많아지면 모두 똑 같아질 것이라고 감히 생각합니다(극 소수 정말 복음을 위해서 일생을 바치며 희생할 각오로 목회하시는 분은 예외입니다. 주님께서 나중에 지금의 고난과 고생을 갚아 주시며 눈물을 닦아 주실 것입니다.)
한국 교회도 이제 바뀌어야 합니다. 현재와 같은 제도상으로는 돈 없으면 교회에 못갑니다. 구약의 레위인과 제사장은 다른 직업을 가질 수가 없었기에 백성들이 내는 십일조로 생활했습니다만 지금은 구약이 아니고 신약이며 더구나 우리는 유대인이 아니라 이방인이며 목사는 레위인과 제사장이 절대로 아닙니다. 그런데도 교인들이 십일조를 내서 그들과 그들의 모든 가족의 모든 일체의 생활비를 감당하라고 하는 것은 전혀 성경에 맞지 않습니다.
십일조가 왜 생겼습니까? 레위인과 제사장이 없어졌는데도 성경에 나와 있다는 것 때문에 시효가 지난 폐기된 규정을 가지고 아직까지 적용하는 것은 사기입니다. 그리고 교회는 절대로 성전이 아닙니다. 그런데도 성전이라며 성전건축을 위해서 교인들의 돈을 우려내는 것도 사기를 치는 것입니다. 교인들은 절대로 속지 마십시오. 십일조를 해야 한다고 하고 성전 건축을 한다며 헌금을 강요하는 것은 사기입니다. 계속하자면 끝이 없을 것 같아 여기에 맺으려고 합니다.
십일조는 성전이 없어졌고 레위인과 제사장이 없어졌기에 신약에서는 폐기되었고 더구나 이방인인 우리에게는 절대 적용될 수 없고 적용되어서는 안되는 율법 조항이기에 지금 우리에게도 유효하다고 강요하는 것은 사기입니다. 그리고 성전은 지금 없습니다. 교회가 성전이라고 성전건축을 해야 한다고 헌금을 강요하는 것도 사기입니다. 목사와 그 가족들의 생활비를 교인들이 모두 부담해야 한다는 제도도 바뀌어야 합니다.
참고로 말씀드리면 제가 다니는 교회는 십일조는 당연히 하지 않고 헌금 바구니도 돌리지 않습니다. 교회 뒤에 헌금 함만 비치하고 헌금을 할 때도 무기명으로 합니다. 기도시간에 그날 헌금한 것을 모두 모아서 읽어주며 기도하는 것도 하지 않습니다. 헌금을 무기명으로 하기에 당연히 주보에 헌금자 명단도 올릴 수 없고요, 단지 매월 수입과 지출에 관한 보고서만 올립니다. 예산은 12월달에 작정헌금을 하는데 이름은 적지 않고 단지 형편에 따라 금액만 기재하여 내면 그걸 수합해서 예산을 편성합니다. 꿈 같은 얘기이지만 사실입니다.
모든 법은 입법 목적이 있습니다. 십일조의 입법 목적이 무엇입니까? 구약시대 성전에서 짐승을 잡아서 제사를 지낼 때 제사와 성전 일을 해야 되기 때문에 토지를 분배받지 못한 제사장과 레위인을 먹여 살리기 위해 십일조가 제정된 것입니다.(다른 목적의 십일조가 있지만 여기서는 거론하지 않겠습니다) 지금은 예수님의 구속사역으로 제사가 없어졌고 성전도 없고 제사장과 레위인도 없습니다. 그런데 어떻게 이 율법이 아직 유효하다고 하십니까? 어디에 누구에게 누구를 위해서 십일조를 내란 말입니까? 교회가 성전입니까? 목사가 제사장입니까? 만약 그렇다고 한다면 정말 성경을 곡해하고 예수님의 구속사역을 부정하는 이단입니다. 그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유대교도 아니고 그저 유대교를 모방한 것이라고 봐야 합니다.
교회는 성전이 아니라 단지 사람들이 모이는 곳이고 목사는 제사장이 아니라 가르치는 자일 뿐입니다. 목사가 제사장이라고 한다면 지금도 성전을 짓고 짐승으로 제사를 드려야 되고 교회 일을 보는 장로, 집사, 교사, 찬양대, 구역장, 식사당번, 차량운행, 꽃꽂이 등 교회에서 일을 하는 사람은 레위인이라고 해야 되고 그들도 다른 직업을 갖지 말고 십일조를 받아서 생활해야 할 것입니다. 지금은 유대인들도 십일조를 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방인인 우리가 십일조를 해야 한다니 이게 무슨 논리입니까? 십일조보다 더 중요한 율법인 할례는 왜 안하는지 안식일은 왜 안지키는지요? 할례를 안하면 어떻게 되고, 안식일에 일을 하는 사람은 어떻게 하라고 했습니까?
십일조와 헌금이 얼마나 복음과 전도에 장애가 되는 지 모르십니까? 전도하면 사람들이 “교회가면 십일조 해야 되잖아”라고 합니다. 십일조가 교회를 바로 세우는 것이 아니라 방해를 하고 있는지 정말 모르십니까? 헌금을 할 수 없어서 교회 안 나가는 사람이 있는지 모르십니까? 말라기를 들먹이면서 도둑놈 취급하고 십일조를 안하거나 못하는 사람을 죄인으로 만들어 버리고 십일조를 해야 복을 받을 수 있고 안하면 복을 못 받는다고 하고 누구는 십일조를 잘해서 어떤 복을 받았다고 말하고 헌금 기도시간에 십일조를 낸 사람들에게 축복을 비는 기도를 하고 직분자 임명을 할 때는 십일조를 안하면 배제시키면서도 십일조를 강요하지 않는다고 하십니까?
어느 목사님이 십일조를 안했다고 도둑놈이라고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십일조를 해야 믿음이 있다고 하셨는데 십일조는 오히려 복음을 전도를 방해합니다. 교인들이 얼마나 세뇌가 되었는지 제가 다니는 직장 선교회에서 십일조 얘기가 나왔는데 어느 교회 장로님 되시는 분이 십일조를 하지 않는 사람은 구원도 의심스럽다고 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이게 무슨 해괴망측한 말입니까? 목사들이 얼마나 세뇌를 시켜놓았으면 그런 생각까지 하고 있는지 모르겠습니다. 예수님이 십일조 얘기를 했다고 하셨는데 그 이유를 정말 몰라서 그런 말씀을 하십니까? 만약 그렇다면 정말 성경과 복음을 이해하지 못하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그 때는 십자가 사건과 부활 이전이기에 성전도 있고 제사장과 레위인이 모두 존재했던 시절이기에 십일조를 해야 되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십일조가 믿음의 척도라면 그렇게 중요한 것을 사도 바울은 왜 단 한 마디도 언급하지 않고 연보만 말했을까요? 자비량 사역을 하지 않고 십일조를 거두어서 편하게 사역을 하면 더 많은 전도를 하고 교회를 세울 수 있었을 것인데도 하지 않은 것은 왜 일까요? 제사가 폐지되었기에 성전도 필요없고 제사장과 레위인도 있을 수 없기에 당연히 십일조도 없어졌기에 그런 것입니다. 바울은 돈이 필요했을 때는 십일조를 거두지 않고 연보를 거두어 다른 교회와 구제에 사용했습니다. 십일조도 아니고 헌금도 아니고 연보입니다. 자발적으로 하는 연보요. 오늘 교회는 연보라는 말을 하지 않습니다. 제가 어릴 때는 연보라고 분명히 들었는데 언제부터인가 연보라는 말은 아예 사라지고 헌금이라고 만 하더라고요. 자발적 헌금이라고 하시는데 정말 자발적이 맞습니까?
목사가 누가 무슨 헌금을 얼마나 하는지 다 파악하고 안하면 왜 안하느냐고 하고 중직에 임명을 하지도 않는데, 말라기 설교를 하며 도둑놈으로 만들어 버리는데 그게 강요가 아니고 자발적입니까? 안하면 믿음이 없는 사람이라고 낙인찍히는데요. 성전 건축을 제직회에서 합의하고 모든 성도들이 공개합의하에 이루어 진다고 하셨는데(교회를 성전이라고 하지 마십시오. 교회는 그저 건물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집도 아니고 성전도 아닙니다.) 교회 건축을 반대했다가는 믿음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찍히고 하나님의 일을 방해하고 주의 종을 거역한다고 협박하고 건축헌금을 내면 몇 배의 복을 받는다고 하며 안하면 무슨 죄인이 되는 분위기로 그렇게 몰아가는데 누가 감히 반대를 하겠으며 빚을 내서라도 건축 헌금을 합니다.
이게 정상적인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묻고 싶습니다. 교회가 교인들의 피땀을 짜내서 크게 잘 지어야 전도도 잘 되고 하나님께 영광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교회를 정말 하나님이 기뻐하신다고 생각하십니까? 그런 교회를 보면 그렇지 못한 목사들은 부럽게 여기겠지만 사람들은 얼마나 욕하는지 모르시는 군요? 그건 단지 목사 자기의 영광일 뿐입니다. 정말 건축이 필요해서 모두가 공감하는 상황에서 하는 건축이면 대부분 자원하는 마음으로 힘에 닿는 대로 돈을 낼 사람은 낼 것이며 또한 교회건축은 많은 돈을 들여서 잘 지어야 되는 것이 아니라 소박하게 최소한의 경비로 지어야 하고 형편이 어려우면 꼭 자기 건물이 아니라 임대 건물이나 천막도 아무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교회는 교인들이 모여서 예배하고 교제할 수만 있으면 어느 곳 어떤 건물도 상관이 없다고 생각합니다. 목사님 말씀에 “믿음과 정성이 없는 형식적인 성도들이나 믿음이 약한 사람들은...”, “성도들은 (헌금을)강요하면 교회가 많은데, 떠나갑니다”라고 하셨는데 누가 헌금과 십일조를 믿음의 척도로 규정하였습니까? 헌금을 적게 하고 십일조를 안하면 믿음이 없고 약하다고 누가 규정했는가요? 떠난다고 하셨는데 어디 그걸 강요 안하는 교회가 있어야 말이지요? 99% 이상이 다 그런데 어딜 찾아갑니까? 교회에는 나가야겠는데 헌금 강요하지 않는 교회가 없으니 억지로 다니기도 하고 더러는 가나안 교인이 되기도 합니다.
그들이 정말 신앙심이 부족하다고 단정하십니까? 누가 그걸 믿음의 척도라고 하던가요? (목회자가 헌금에 대한 강요를 안해서)“믿음은 날로 약해지는 어린아이 믿음으로 살게 하는 부분도 있습니다”.라고 하셨는데 헌금을 많이 하고 십일조를 잘 해야 믿음이 좋고 장성한 믿음이라고 생각하시는 군요. 목사님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니 어떻게 교인들이 진실된 믿음을 가질 수 있겠습니까? 천국심판대에서 양과 염소를 구분하는 기준이 무엇입니까? 양은 누구며 염소는 누구입니까? 교회에 헌금하느라고 양이 되는 길인 이웃을 돌보는 일은 등한시하는데 그게 믿음이 좋고 장성한 사람입니까? 천국가는 열쇠인 줄 알고 열심히 교회에 갖다 바치다 보니 이웃을 돌 볼 여력이 없어 염소로 분류된다면 누구 책임입니까?
목사가 교인들은 양이 되든지 염소가 되든지 관심도 없고 그저 헌금만 많이 거두면 된다고 생각하는 것 같습니다. 목사들은 교인들에게 양이 되는 길은 가르쳐 주지 않고 천국 문 앞에 앉아서 자기도 들어가지 않고 다른 사람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는다고 생각지 않으십니까? 양으로 분류하는 기준에 헌금은 전혀 관계없습니다. 헌금과 십일조 많이 한다고 양이 되지 않습니다. 교회에 십일조, 건축헌금, 감사헌금, 절기헌금, 선교헌금, 구제헌금, 주일헌금 등 수입의 20% 이상을 교회에다 갖다 바치기 때문에 생활하기도 힘든데 어떻게 이웃을 돌아볼 수 있습니까? 교인들은 양이 되고 싶어도 교회에 많이 바치기 때문에 양이 되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이웃은 돌아보던 안 돌아보던 상관하지 않고 교회에 헌금 많이하고 십일조 많이 내는 그런 사람을 목사들은 믿음이 좋다고 하고 신실한 크리스쳔이라고 하며 좋아하겠지만 그런 사람은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능력은 부인하는 자입니다. 어떻게 사는 것이 양이 되는 것이고 어떤 것이 경건입니까? “하나님 아버지 앞에서 정결하고 더러움이 없는 경건은 곧 고아와 과부를 그 환난 중에 돌보고...” 아닙니까? 헌금과 십일조 잘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끝으로 목사님들께 부탁드리고 싶은 것은 유효기간이 지나 폐지된 십일조로 더 이상 교인들에게 사기치지 말고 교회를 성전이라고 하면서 사기치지 마십시오. 자기 욕심과 영광을 위해서 교인들의 피땀을 짜내서 교회를 잘 지으려고 하지 마십시오.
교회는 임대건물이라도 상관없을 것이고 꼭 교회를 지어야 한다면 최소한의 경비로 교인들이 부담이 덜 되게 지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양이 되는 길이 어떤 것인지 경건한 삶은 어떤 것인지 빛과 소금의 삶, 빛의 자녀로서 삶, 복음에 합당한 삶이 어떤 것인지 바로 가르치십시오. 복음 때문에 고난과 고생을 감내할 마음이 없으면 목회하지 마십시오. 목회가 교인들 많이 모아서 헌금 많이 거두어 편하게 명예를 누리려고 하는 것이 아니지 않습니까? 만약 그렇게 생각하고 목회를 하신다면 지금이라도 당장 그만 두십시오. 그런 생각으로 목회를 한다는 것은 당장은 편하게 명예를 누리며 살 수 있을지 몰라도 결국은 자신과 교인 모두를 망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주보 게재 문제는 궁금한 사람은 재정부에 확인해 보라고 하면 되지 몇 사람 때문에 전부 공개하는 것은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쓰다보니 너무 길어져 죄송합니다. 글 중에 기분 상하게 한 부분이 있다면 용서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