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작불을 때며 술을 내리는 고소리술의 제조과정을 지켜보며 어느 시인은 이렇게 읊었다. 매캐한 장작불 연기에 눈물을 줄줄 흘려야만 고소리에서 흘러나오는 술 한 방울을 맛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고소리술은 제주의 토종 좁쌀과 지하수로 빚어낸 증류식 소주로, 토기로 된 증류기인 고소리에서 술을 내린다 하여 고소리술이란 이름이 붙었다.
#제주를 대표하는 민속소주
화산토양 제주도는 쌀이 매우 귀했다. 따라서 제주에서는 쌀보다 잡곡 등을 원료로 술이 빚어졌다. 그 대표적인 술이 좁쌀을 원료로 한 고소리술이다.
1520년 조선 중종때 김정이 쓴 ‘제주풍토록’에는 ‘쌀이 매우 적어 청주는 귀하고 소주를 쓴다’고 적혀 있다. 1653년 탐라지에도 ‘소주를 많이 마신다’고 적혀 있듯이 제주에서는 증류식 소주가 일반화되었음을 알 수 있다.
고소리술은 이처럼 과거 제주선인의 삶과 혼이 깃든 전통주이다. 그러나 최근들어 전통적인 제조방법에 의한 고소리술은 명맥을 잃어가고 있다.
소주는 600년전 중국 원나라때 처음 생산됐다. 한반도에 들어온 소주는 지역마다 명칭을 달리했다. 특히 몽골의 전초기지가 있었던 제주, 안동, 개성에서 소주가 많이 빚어짐에 따라 제주소주, 안동소주, 개성소주가 유명해졌다.
고소리술은 우리나라 3대 소주의 하나인 셈이다.
#힘든 제조과정만큼 귀한 술
고소리술은 오메기술을 만든 뒤 재증류과정을 거쳐 나오는 술로 전통적인 제조과정이 복잡하다. 우선 좁쌀을 갈아 가루로 만든 뒤 물에 반죽해 오메기떡을 만든다. 오메기떡을 물에 넣어 끓인 뒤 맥보리로 만든 재래누룩과 섞어 술독에서 발효시킨다. 숙성기간은 겨울은 15일, 여름은 7일 정도다. 이 과정에서 누룩을 다시 첨가, 술기운이 떨어지는 것을 막는다. 이를 술을 일으켜 세운다고 한다. 2차 숙성이 끝나면 달콤한 향기를 풍기며 구수한 맛이 배어나오는 오메기술이 된다.
고소리술을 만들려면 오메기술이 익었다고 판단된 상태에서 무쇠솥에 넣고 30분 정도 끓여줘야 한다. 이어 고소리를 무쇠솥 위에 올려놓고 장작불로 계속 끓인다. 이때 고소리와 솥사이는 띠로 친친 감아 증기가 새나가지 못하도록 하고 고소리 위에는 알코올 증기의 냉각이 잘 되도록 찬물을 채워넣는다. 고소리 안에서 알코올 증기가 이슬로 변하면서 주둥이를 통해 맑고 투명한 술이 한 방울씩, 한 방울씩 떨어지게 된다.
고소리 한솥에서 떨어지는 술방울을 다 모아야 겨우 1병을 채울 수 있다. 이처럼 전통적인 고소리술 제조방법은 최소한 한달 이상 걸려 상당한 고역이 따른다.
경조사나 제사에 대비해 고소리술을 빚는 어머니의 몸에서는 항상 술냄새가 배어있게 마련이다. 이 때문에 고소리술은 어머니 향내를 갖고 있다는 의미에서 모향주, 또는 사모주라는 이름으로 불리기도 한다.
#독특한 맛과 향, 해산물 안주 일품
고소리술은 알코올 농도가 약 40도로서 무색이고 향취는 약간 탄듯하면서도 고소하다. 목에서 깨끗이 넘어가며, 원료에서 오는 독특한 맛과 향이 일품이다. 많이 마셔도 몸을 괴롭히지 않고 뒤끝이 없다. 누룩의 종류에 따라 알코올 농도가 다르다. 고소리술 전수자의 한 사람인 고(故) 고익만씨는 70도까지 나가는 고소리술을 만들었다고 한다. 1960년대 후반까지도 제주 중산간 마을에서 고소리술을 제조, 주둥이가 좁은 술항아리인 옹기에 담아 팔기도 했다.
고소리술과 유사한 술로 허벅술을 들 수 있다. 허벅술은 1996년 제주 신라호텔에서 개최된 한·일정상회담 당시 일본 하시모토 총리가 무척 좋아했다는 사실이 알려지면서 ‘하시모토 술’이라는 별명과 함께 유명세를 탔다.
허벅술은 오크통에 1년동안 저장, 숙성시킨 후 출하한다. 알코올 농도 35도의 독주이지만 맛이 부드러워 부담없이 마실 수 있다.
고소리술과 궁합이 맞는 안주는 육류보다 나물종류나 해산물이라 할 수 있다. 술 자체가 담백하기 때문이다. 산나물이나 제주 바다에서 갓 잡아올린 해산물로 만든 전, 옥돔구이 등을 안주로 곁들이면 술맛은 더욱 일품이다.
고소리술의 유일한 기능보유자인 김을정 할머니(81)는 제주 남제주군 표선면 성읍민속마을에 ‘술익는 집’을 갖고 있다. 고소리술을 고아내는 작은 초가 이름이다. 이곳에서 고소리술을 빚어 오가는 관광객에게 팔기도 하고 찾아오는 손님에게 마시라고 건네주기도 한다.
김할머니는 프로답게 술을 빚을 때면 고운 한복으로 갈아입는다. 매운 연기에 눈물을 흘리면서도 정성을 다해 술을 빚어내는 할머니의 모습이 고즈넉하다.
김할머니는 1990년 오메기술 기능보유자로 지정됐다. 이어 95년에는 고소리술 기능보유자까지 겸하게 됐다. 김할머니는 고소리술을 “노인들이 아침에 한 사발씩 먹고 일하러 나가던 술”이라고 표현했다. 김할머니는 고소리술을 빚기 위해 직접 800평 밭에 조를 재배한다.
제주 좁쌀은 현재 쌀의 2배 이상 가격. 김할머니는 이 때문에 한때 중국 좁쌀로 고소리술 제조를 시도했으나 ‘술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김할머니는 20세에 시집오면서 술을 빚기 시작했다. 특히 누룩을 잘 만들었다. 김할머니는 “고소리술은 좁쌀, 그 중에서도 차좁쌀로 빚어야 최고 맛이 난다”며 “최근에는 지리산에서 왔다는 스님도 향기와 맛이 좋다며 두병이나 사갔다”고 말했다.
고소리술의 장점으로는 무엇보다 고소한 맛을 꼽았다. 한 잔을 마시면 온몸이 훈훈해지며 기운이 난다는 것이다. 김할머니는 “고소리술은 취해도 금방 깬다”며 “술이 담백하기 때문에 몸에 무리를 주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양조산업은 그 역사가 가장 오랜 전통산업이면서, 또 한편으로 미래에도 계속되는 첨단산업이라고 할 정도로 우리의 생활속에 늘 함께 하는 산업이다. 바람과 돌이 많고, 화산토양으로 이뤄진 제주의 농업환경이 매우 척박함에 따라 잡곡과 감자류의 생산으로 이어져 쌀은 매우 귀하였다.
1960년대까지 제주의 민속주는 관혼상제나 부유한 일부 계층의 소비를 위한 제한된 범위에서 이용됐다. 90년대에 이르러 사회변화와 더불어 정부시책의 변화로 비로소 제주의 민속주를 재현하고자 하는 노력으로 좁쌀주가 상업화됐다.
제주민속주에는 잡곡이나 감자류를 사용하여 가양주 형태로 빚어진 양조주, 약용가향곡주, 증류주, 약용가향증류주, 약용가향소주가 있었다. 제주민속주로 전해오는 술은 많으나 어느 하나 정확히 제조하는 방법도 전해오지 않고 기록도 거의 없다.
예전에는 좁쌀의 당화력을 높이기 위하여 오메기(좁쌀떡)술의 형태로 빚었으며, 원나라에서 증류기술이 전해짐에 따라 양조주를 증류한 고소리술이 내려오고 있다.
대표적인 술로서 오름의 샘, 고소리술을 비롯해 오메기술·좁쌀막걸리·허벅술 등이 빚어지고 있다.
술맛을 고려한다면 감자류보다는 쌀과 좁쌀을 원료로 술을 빚어 단식증류해야 좁쌀에서 우려낸 독특한 향이 배인다. 또한 상업화를 위해서는 원료에 들어있는 녹말을 제대로 당화시킬 수 있고 좁쌀술에 알맞은 효모를 선발하여 발효시켜야 한다.
그리고 일정하게 품질을 유지하기 위한 제조공정의 과학화가 이뤄져야 소비자들이 다시 찾는다. 여기에 양조주를 증류한 다음 저온에서 충분한 숙성기간을 거쳐야 술맛이 순하고 부드러워진다.
이런 조건에서 본다면 우리농산물영농조합법인에서 생산하는 고소리술이 예부터 전해오는 제주도의 민속주에 가장 가까운 술이면서, 현재의 소비자에게 친숙해질 수 있는 술이 아닌가 여겨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