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긍정의 힘-
어릴적 운둥회 날, 가슴 설레이며 엄마가 싸준 김밥과 삶은 고구마, 지금으로 생각하면 허접하기 짝이없는 탄산음료, 그리고 군부대에서 흘러나온 건빵 한 봉지 그것으로 부자가 되는 날이다. 깨끗이 씻어준 엄마표 검정 고무신에 검정 팬츠, 반소매 흰 런닝셔츠(이 스타일의 옷은 교복이자 운동복 그리고 평상복과 잠옷을 겸한다.)를 입고 보따리에 정성스레 싸준 보물같은 음식을 들고 의기양양하게 학교로 걸어가던 생각이 난다. 학교 운동장에는 선생님과 학부모님들의 수고로움으로 하늘 높이 만국기가 펄럭이고 본부석은 크다란 차양막이 위엄을 자랑하고 운동장은 하얀 횟가루로 트랙을 표시하였고 새끼줄로 관중석이자 부모님들의 자리를 구분 해 놓았었다. 그냥 맨땅이다. 깔고 앉을 자리는 각자의 몫이다. 가마때기나 헌 돗자리, 그것도 준비하지 못했으면 같은 동네 부모들의 돗자리를 같이쓴다.
그때는 그것을 당연하다고 생각했다. 내 것과 네 것의 구분이 없었다. 서로 같이 공유함으로 서로의 관계도 따뜻해지고 자식들의 우정도 돈독해 지는 것이다. 아이들은 머리에 흰띠와 푸른 띠로 청군과 백군으로 구분하여 열심히 운동장에서 힘을 겨룬다. 점심 때 땀과 먼지로 얼룩진 아이들이 열심히 응원하던 부모의 자리를 찾아오면 푸짐한? 음식이 기다리고 있다. 몇 집의 음식이 한 자리에 모였기에 풍성하다. 좋고 더 좋은 것의 의미는 없다. 분위기와 배고픔은 그냥 맛있고 행복하기만 할 뿐이다. 부모들은 그 모습을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흐뭇할 뿐이다. 참으로 아름다운 시절이었다고 생각 해보는 것은 추억이라는 묘한 마술 피리 덕분 일 것이다. 그러나 그시절 그러한 분위기를 만들어 주셨던 우리 부모님들은 전쟁으로 모든것이 망가지고 사는곳 마저 사라진 험난했던 시절이었다, 먹을 것을 구하기 위해 이집저집을 기웃 거려야 했고 하루 품팔이로 무거운 짐을 등짝으로 날라야 했었다. 그나마 재수 좋은 날이 그렇다는 것이다. 역전이나 시장바닥을 종일헤매보지만 짊어질 짐꺼리조차 없어 허기진 배로 자식들을 걱정하며 바싹 마른 체격으로 내일을 기대 해야 했던 시절, 그래도 살았고 살아왔다. 우리도 이미 그때의 아버지 할아버지 나이가 되어있다. 하지만 온갖 생활의 편리한 도구들이 넘쳐나는 시대에 살면서도 예전엔 듣도보도 못한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수많은 병명이 생겨나고 있다. 물론 의학의 발달로 옛날엔 알수 없던 병이 밝혀지면서 이름을 얻는 병도 많을 것이다. 병의 종류에 따라 개발되는 약들도 부지기수다. 그래서 나이가 들수록 먹어야 하는약의 가지 수도 늘어만 간다.
그렇다고 어느 누가 지금 당신은 행복 합니까? 하고 묻는다면 과연 당신의 대답은 어떻게 나올까요. 물론 그때그때의 사정에 따라 천차만별의 대답이 나오겠지만 그래도 전반적인 분위기와 생활의 흐름속에서 우리가 느끼는 감정은 있을 것이다. 뼈빠지게 일하여 받는 임금으로 식구들의 배고픔을 겨우 면하게 하였어도 굶지 않는것 만으로 만족하며 살아야 했던 시절에 비해 모든 것이 풍족한 지금 세대의 행복지수가 더 나아졌다고 말 할수는 없을 것이다.
만족하며 산다. 만족? 어떤 순간에 주어진 환경에서 잠시 맛 볼수있는 행복감이 아닐까 라는 생각을 해 보는 것이다.
만족 이라는 단어, 정말 신기하기만 하다. 만족을 모르는 놈, 욕심이 너무 많아 늘 불만을 터뜨리는 사람을 일컫는다. 만족은 끝이 없는 욕심을 채우는 일이다. 그러나 만족 할줄 아는 사람도 많다. 생활에서 모든 것에 긍정적인 사고로 접하다 보면 자신도 모르게 만족 이라는 단어의 의미를 알게 된다. 만족은 긍정적인 사고속에서 싹이 트는 것은 아닐까 하고 생각한다.
그 옛날 어렵게 살았던 그 시절, 불만 만을 토로하고 신세 한탄만 하고 있었다면 지금의 세월은 결코 오지 않았으리라.
옛날 우리 부모님들이 그 고된 삶속에서도 막걸리 한잔에 콧노래를 흥얼거릴수 있었던 것은 포기가 아닌 긍정의 힘이 아니었을까.
긍정의 힘은 곧 미래를 보는 눈이다.
2024년 5월 11일 토요일 "無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