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정원_ 달팽이
도서관
김종미
여기를 바다라 하면 안될까
수영을 못하는 내가 마지막 숨을 못 쉬고 그만
죽었다가 열심히 수영을 배워 부활하는
여기를 바다라고 하면 안될까
아무리 수영을 잘 해도 물고기는 될 수 없어
눈으로 물고기를 읽고 마음으로 물고기를 토해낼 수밖에 없어
죽음과 탄생사이
질문과 대답사이
사랑과 이별사이
물결과 불꽃사이
왕자와 거지사이
사이라는 물고기가 되는 사이
그러면 사람들은 다른 물고기는 읽지 않고
우리는 늘 사이 때문에 아프니까
그래서 여기를 병원이라고 하면 안 될까
심해로 갈수록 기이하게 생긴 물고기들을
아름다운 문장이라고 밑줄을 긋는
정신병동이라고 하면 안될까
같이 병들어 병을 고치는 작가와 독자가
한 테이블에 앉아
서로에게 담뱃불을 붙여주며
죽읍시다, 깨끗이 죽읍시다 서로의 허벅지에
문신처럼 사인(死因)을 지지고 다시
탄생하는 산부인과 병동이라고 부르면 안될까
여자의 음부라고 하면 안될까
하얀 시트에서 풍기는 락스 냄새 쥐어뜯는
러브호텔이라고 하면 안될까
고독을 달래는 솜씨
어두워져가는 창가에 고양이가 앉아 있다
제 몸속으로 자라는 손톱의 깊이를 가늠하느라
내가 다가가도 꼼짝도 않는다
우리는 서로의 영혼을 흥정하듯
오래 바라보았다
어두워져가는 창가에 푸들이 앉아있다
제 몸속에 떨어지는 바늘소리를 찾는 듯
커튼처럼 귀를 축 늘어뜨리고 앉아있다
살며시 다가가는 나는 바늘이었어
찔리기도 전에 아픈 바늘이었어
어둠을 찢어 발겨 나를
쫓아내고 나서야 조용해지는 조울증 환자
외롭지 않으려고 사람이 키우는 짐승의
외로움을 사람이라는 짐승은 모른다
성대를 제거시키고
불임수술을 시키고
거세를 시킨
사람보다 빨리 늙어가는 짐승의 눈빛을
좀 아는 척
자식처럼 사랑한다고 한다
도플갱어
녀석은 내 어항 속에 잠복 중이네
길지도 않은 어항 속을 물고기는 끝까지 가본 적이 없네
항상 가다가 돌아서네
녀석은 나를 감시하는 것 같아
누구의 스파이일까 의심할까 봐
얼굴을 정면으로 보지 못하고 다시 방향을 트네
제발 벗어버려 꼬리지느러미
녀석은 내 어항 속에 잠복 중이고
나는 내 고독 속에 잠복 중이네
죽도록 질투하고
죽도록 보고 싶고
죽도록 미워해서
나는 얼마나 고독한가
참았던 어항을 쏟아버리네
녀석은 본색을 드러내지 않으려고
마른 어항 속에서 퍼덕거리네
쏟아진 물이 내 얼굴을 따뜻하게 덮네
오늘은 제발 들키고 싶네
얼굴의 정체를!
이 환장할 질서를 잡아 간다면
나도 내 직업을 가볍게 버리겠네
- 『시산맥』2011년 겨울호
* 김종미 : 1957년 부산에서 출생. 1997년 《현대시학》으로 등단. 『시와 사상』 편집장을 역임. 시집으로 『새로운 취미』』(서정시학, 2006)가 있음. 제1회 시산맥 작품상 수상.
출처: 함께하는 시인들 The Poet`s Garden 원문보기 글쓴이: 박정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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