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로 듣는 인천, 백령도 ‘차르륵차르륵’ 백령도의 소리 라디오 일을 오래 하다 보니 직업병이 생겼다. 아름다운 소리를 흠모하게 되었다. 목소리가 좋은 사람이나 특별한 소리가 나는 것에 자주 마음을 빼앗긴다. 라디오는 소리로 세상을 만나고 전하기 때문이다. 예전처럼 라디오를 많이 듣지 않는 세상이지만 과도한 영상으로 피로한 시대, 경청이 필요한 시대에 없어서는 안 될 매체가 또 라디오이다. 한동안 아름다운 소리를 녹음해 전파로 전하는 일을 했다. 공간과 사람, 자연과 사물 등 내가 살고 있는 도시의 매력을 소리로 전하기 위해 인천 곳곳을 돌아다녔다. 글에 맛이 있듯, 소리에도 맛이 있다. 내가 만난 매혹적인 도시, 인천의 소리를 전해드리려고 하는 이유다.
▲ 백령도 두무진 서해 최북단, 인천 옹진군 백령도의 이색적인 소리라면 아마도 포 사격 소리일 것이다. 쿵. 쿵. 쿵. 뜬금없이 낮은 소리가 이곳이 북한 접경 지역이라는 것을 알려준다. 여행자에게는 가슴이 쿵 내려앉는 소리겠지만 백령도 사람들에게 일상이 된 소리다. 백령도 인구의 절반은 군인과 그 가족이다. 아침을 여는 소리도 군인들의 뜀박질 소리다. 절도 있는 아침 구보(驅步). 리듬감 있는 발소리와 우렁찬 군가 소리가 쩌렁쩌렁 섬을 흔들어 깨운다. 조용하고 평화로운 논밭에 젊은 군인들의 활기찬 소리가 퍼진다.
▲ 백령도 콩돌해변 백령도에서 만난 아름다운 소리는 남포리 콩돌해안의 파도 소리이다. 콩돌해안에는 모래 대신 공깃돌처럼 매끄럽고 동글동글한 돌들이 해변에 그득하다. 그 모습이 진귀해 천연기념물 392호로 지정되었다. 천연기념물 해안이 들려주는 소리 역시, 천연기념물 급이다. 콩알만 한 야무진 돌멩이들이 파도에 나뒹구는 소리가 음악처럼 아름답다. 이 소리를 어떻게 문자로 적어야 할까. 높은 파도에 철썩철썩? 찰싹찰싹? 낮은 파도에 스르륵 스르륵? 아니다. 돌이 구르는 소리가 빠져있다. 마을 어르신께 여쭤보니 ‘기 차르륵차르륵 아이야?’ 하신다. 그렇네. 차르륵차르륵. 파도에 콩들이 굴러, 흘러내리는 소리. 차르륵차르륵. 콩돌 해변에 앉아 가만히 그 소리를 들어본다. 백령도 냉면을 들이켠 것처럼 시원하다. 전역을 한 모양인지 신이 난 해병대 군인 한 무리가 해변에서 기념 촬영을 한다. 활짝 웃는 미소가 콩돌처럼 밝고 희다.
▲ 백령도 장촌해변 까나리 신기한 일이다. 진촌의 사곶해변(천연기념물 391호)은 모래가 몹시 곱고 작아 해변이 딱딱한 반면, 콩돌해변은 작은 자갈이다. 또 중화동 포구나 장촌 해변에는 콩돌보다는 크고 작은 자갈들이 모래를 대신하고 있다. 해변마다 돌의 크기가 다르고 당연히 소리도 다르다. 바닷물이 모래에 스미는 소리, ‘저걱저걱’ 큰 자갈을 흔드는 소리. 백령도 해변에는 다양한 소리가 살아있다. 백령·대청이 국가지질공원이니 이에 소리의 섬 소청도와 함께 백령·대청·소청 국가소리공원이라고 명명하면 어떨까.
▲ 백령 중화동 해변 자갈
▲ 중화동 해변 연안부두에서 출발하는 백령도 행 쾌속선은 차례로 소청·대청·백령에 닿는다. 서너 시간이 걸리지만 꼭 한번 가볼 만하다. 올여름 자연이 들려주는 내밀한 소리를 찾아 떠나보면 어떨까? 글·사진 90.7MHz 경인방송 라디오 PD 안병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