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드유(with you)"
[레위기 19:17~18] 너는 네 형제를 마음으로 미워하지 말며 네 이웃을 반드시 견책하라
그러면 네가 그에 대하여 죄를 담당하지 아니하리라 원수를 갚지 말며 동포를 원망하지 말며
네 이웃 사랑하기를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나는 여호와이니라
♥️몇달 전 <어쩌다 어른>이란 TV프로에서 본 어느 강사의 이야기입니다.
초등학교 5학년 남학생의 반에 가서 강의를 할 때였습니다.
강연 중 잠깐 쉬는 시간에 한 명의 남자 아이가 찾아왔습니다.
“선생님, 수학여행 때 누군가 제 바지를 벗겼어요.
사과는 받았지만 이건 잘못된 것 같아요.”
그러면서 힘들지만 자기가 용기를 내서 다음시간에 자신의 말을 해도 되냐고 물었습니다.
“그래.. 몇분 주면 될까?”
“10분정도면 될 것 같아요.”
강사 선생님은 그 아이에게 10분을 주었습니다.
아이는 조심스럽게 그 날의 아픈 기억을 얘기하기 시작했습니다.
“한달 전 수학 여행에서 너희들이 내 바지를 벗기고는 사진을 찎었지.“
남자 아이들은 숙소 방에서 배게 싸움을 하다가 한 아이가 장난으로 그 아이의 바지를 벗겼고
그 찰나에 한 친구가 핸드폰을 꺼내어 촬영까지 한 것입니다.
담임 선생님은 아이들의 소리를 듣고 사과하라고 시켰고 핸드폰 사진도 지우라고 했기에
그 사건은 그렇게 일단락되었고 아이들은 까맣게 잊어버리고 있었습니다.
그 아이가 그 때 이야기를 꺼내자 한달 전 지나간 에피소드를 왜 끄집어내는지 반 아이들은 의아해했습니다.
그러나 그 아이는 말했습니다.
“내 바지를 벗긴 아이는 사과를 했지만 사과란 주는 게 아니라 받는 거야.
난 받은 적 없어.
담임 선생님도 나빠요 제 얘기는 듣지도 않고 제 마음도 헤아리지 않고..
제 고통도 모르고 제가 무었때문에 힘들어하는지 모른 채 그냥 사과를 시키니까 억지로 사과했어요.
진심이 아닌 사과는 사과가 아니예요.
사과는 받아야 되요.
내가 풀릴 때까지 용서를 구하는 거예요”
아이의 얘기에 담임선생님도 눈물을 흘렸습니다.
그 아이는 자신이 어떤 후유증이 있는지 계속해서 얘기했습니다.
밤에 잠을 잘 때 잠옷을 잡고 잔다고 했습니다.
누군가 벗길 것 같아서..
다음 날이면 팔이 아프다고 했습니다.
결국 마음의 상처가 깊은 트라우마로 작용한 것입니다 .
반 아이들은 그냥 장난으로 바지를 벗겼고 재미를 위해서 한 행동이었는데 그렇게까지 힘들어 한 줄 꿈에도
몰랐습니다.
그 아이의 솔직한 고백에 반 아이들은 자신들이 큰 잘못을 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때 가해자였던 아이가 앞에 나와 무릎을 꿇고 “미안해” 작은 소리로 말했습니다.
그러자 아이는 반 아이들에게 울면서 말했습니다.
“너희들 전부 다 가해자야.
너희들 다 손뼉치며 '야야 몰아몰아 찍어찍어 도망 못가게 다리 잡아..
문잠궈' 그랬잖아. 너희들은 왜 나한테 사과 안해?”
그러자 아이들은 “미안해 미안해” 하며 진심으로 우러나온 사과를 했습니다.
아이는 “내가 꿈을 꾸지 않게 되면 그때 사과 받을게.
아직은 매일 악몽을 꿔.
아직도 나에게는 생생해. 그런데 말야..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학교에 오는 이유가 있어.
그 와중에 딱 두 명의 목소리가 들렸건든.
‘야 찍지마 그러면 안돼잖아 핸드폰 꺼’ 누군가 분명히 그랬어 그 목소리의 주인공을 찾고 싶어”
그러자 남학생 두 명이 쑥쓰러워하며 “나야 나” 라고 말했습니다.
그 두 친구의 목소리가 삶의 이유가 되어주었고 그를 지탱해 주었던 것입니다.
“재네 둘만 친구예요 다른 아이들은 그냥 같은 반 아이들이예요”
[누가복음 10: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친구란 어려울 때 도와주는 동료입니다.
피해자의 비명을 외면하지 않고 함께 싸워주는 게 진정한 동료요 이웃입니다.
동료는 동료를 도와주고 인간은 인간을 도와줘야 합니다.
이것이 ‘위드유’입니다.
피해자를 지지하고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운동.. 용기있게 나서 주는 양심의 목소리가 '위드유'입니다.
직접 현장에서 악한 행동을 못하도록 개입하고, 위기에 처한 이웃을 도와주는 작은 용기들이 모여서 살 맛나는 세상을 우리가 만들어야 합니다.
며칠 전(10월 9일) 이태원에서 한 남성이 늦은 밤 편의점에 갔다가 쳐다봤다는 이유로 무차별 폭행을
당했습니다.
한 시간 동안 코뼈가 부러지고 광대가 함몰될 정도로 폭행을 당했고 그 당시 이태원에는 많은 사람들이
그 장면을 지켜봤지만 아무도 말리지 않았습니다.
한 시간이 지나서야 한 외국인의 신고와 도움으로 인근 병원으로 이송되었다고 뉴스는 전합니다.
그 당시 장면이 CCTV에 찍혔지만 방관한 사람들의 개인정보와 인격 보호를 위해 공개하지 못하고 있다고
합니다.
이렇게 삭막한 사회.. 폭행을 당하고 있는데도 보복이 두려워 경찰에 신고조차 안하는 이웃들…
무엇이 우리 사회를 이렇게 만들었을까요?
사랑의 출발은 관심입니다.
또한 사랑은 상대방을 진심으로 배려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명하신 새 계명은 ‘사랑의 계명’입니다.
[누가복음 10:27] 대답하여 이르되 네 마음을 다하며 목숨을 다하며 힘을 다하며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고 또한 네 이웃을 네 자신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
누가복음 10:29~35에 나오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비유’는 많이들 아시는 유명한 비유입니다.
[누가복음 10:36~37] 네 생각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이르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우리는 예수님 안에서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원수까지도 사랑해야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인과 같은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요한일서 3: 18]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오직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
그리스도의 명령에 순종하여 사랑을 실천할 때, 원수가 변하여 친구가 되는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사랑에는 노여움과 불만을 녹이는 강력한 힘이 있습니다.
[잠언 16:7] 사람의 행위가 여호와를 기쁘시게 하면 그 사람의 원수라도 그와 더불어 화목하게 하시느니라
서로 바쁘다는 핑계로 무관심하고 삭막한 요즘 크리스천들의 사랑실천이야말로 이 시대에 매우 중요한 역할이 아닐 수 없습니다.
다른 사람 욕하고 본이 되지 못하는 목사님들을 비난하기 전에 나부터 바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랑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모두 하나님을 전심으로 사랑하고,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며 예수님이 원하시는 이웃
사랑의 모습을 내 삶에서 실천하길 기도합니다.
♣사랑의 하나님 아버지!!
나를 먼저 사랑하시고 나를 위해 아들까지도 내어주신 주님의 그 크신 사랑에 감사드립니다.
주님이 주신 명령대로 이웃을 사랑하며 실천해야 하지만 그렇게 살지 못하고 이기적으로 살았던 때가 많았습니다. 이웃의 고통을 외면하고 무시한 적도 많았습니다.
이 시간 회개하오니 용서하여 주옵소서.
말만이 아니라 저부터 먼저 사랑을 실천하게 하시고, 세상을 탓하기 전에 세상을 좀더 살만한 가치가 있고
의미있는 밝고 따뜻한 세상으로 만들어가게 하소서.
제가 뱉은 작은 말 한마디와 행동으로 상처받은 자가 없도록 늘 제 입술과 마음과 행동에 파수꾼이 되어
주소서.
형식적인 마음이나 행위가 아닌 예수님의 사랑으로 함께 슬퍼하고 함께 즐거워하는
선한 사마리아인의 마음을 제 안에 부어주옵소서.
하나님이 저를 용납하고 품으시며 사랑하시듯 이웃을 더욱 섬기고 실수와 허물을 품어주는
사랑의 관계를 세워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