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8월 21일 온고을교회 수요예배 설교 – 황의찬 목사
《 8. 영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
창 3:8
〈 한 본체 〉
“하나님은 사람이 파악 할 수 없는 하나의 본질을 가지시며,
사람이 파악할 수 있는 세 가지 표현 형태를 가지신 분이다!”
이 말이 크게 유행한 때가 있었습니다. 서기 4세기입니다.
그때 막 로마가 기독교를 공인하고, 박해시대를 끝낸 직후입니다.
서기 313년 로마 콘스탄틴 황제가 기독교를 공인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박해를 받았습니까?
그러다가 이제, 교회에 꽃길이 활짝 열린 듯했습니다.
☞ 하나님은 로마의 기독교 공인, 어떻게 바라보고 계셨을까요?
로마제국의 기독교 공인으로 예수 믿는다고 핍박하는 이들이 사라졌습니다.
기독교인들이 고개를 쳐들고 당당하게 교회에 다니게 되었습니다.
오히려, 아직 예수 안 믿는 사람들이 부끄러울 지경이었습니다.
☞ 하나님은 이제 잠시 한숨 돌리고 안식하시면 될 듯 싶습니다.
_ 그러나 하나님은 졸지도 않고 일하시는 분입니다. 할렐루야~
_ 이 시기는 “하나님이 삼위일체로 계시는 분”이라는 진리를 계시해야 할 때였습니다.
_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자기를 알리시는 분입니다. 이것을 “하나님의 계시”라 합니다.
_ 그 시대를 대표하는 선언문이 위에 적은 말씀입니다.
☞ 사람은 끝내 알 수 없는 하나님의 본질이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의 한가지 본질” 이것을 헬라어로 “우시아ousia”라 합니다.
“우시아 ousia”는 본질, 본체로 번역되는 말입니다. 우리에게는 “본체”가 낯이 익어요!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우리로서는 끝내 알 수 없는 하나님의 신비로움, 그것이 “우시아”입니다.
기억해 둡시다.
하나님은 인간이 끝내 알지 못하는 “한 본체”를 가지신 분입니다. 할렐루야~
〈 세 위격 〉
“하나님은 사람이 파악 할 수 없는, 하나의 본체를 가지시며,
사람이 파악할 수 있는, 세 가지 표현 형태를 가지신 분이다!”
지금까지 사람이 파악 할 수 없는 하나의 본체를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님의 본체”
우리가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는 하나님에 대해 다 알 수 없다.”
우리가 하나님을 예배하는데, “나는 하나님이 누구신지 다 알아” 이러면 안 됩니다.
☞ 우리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만큼만” 알고, 하나님을 예배합니다. 할렐루야~
하나님은 우리에게 얼마만큼 허락하셨을까요?
“하나님은 사람이 파악 할 수 없는 하나의 본체를 가지시며,
사람이 파악할 수 있는 세 가지 표현 형태를 가지신 분이다!”
여기서 “사람이 파악할 수 있는 세 가지 표현 형태”를 볼 차례입니다.
이 말이 유행했던 시기를 주후 4세기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교회사에서 주후 4세기는 “삼위일체 논쟁의 세기”입니다.
삼위일체를 설득력 있게 전파하기 위한 구호 중 하나가 지금 말씀드린 아포리즘입니다.
파악 할 수 없는 하나의 본체에서 본체는 “우시아”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기억하고 계시지요?
그러면 “사람이 파악할 수 있는 세 가지 표현 형태”에서 “형태”를 알아볼 차례입니다.
역시 “형태”에 해당하는 헬라어가 있습니다. “휘포스타시스 hypostasis”입니다.
휘포스타시스는, 우리에게 하나님이 계시하는 모습입니다. 드러내 보이시는 모습입니다.
우시아는 피조물 인간이 육신으로 사는 한, 알지 못하는 하나님의 본체입니다.
휘포스타시스는, 하나님이 우리에게 허락하신 모습입니다.
이 단어가 쓰인 성경구절을 한 군데 보겠습니다.
히 11:1 “믿음은 바라는 것들의 실상이요 보이지 않는 것들의 증거니”
여기서 “실상”이 “휘포스타시스”입니다.
하나님이 보이셔서 우리가 알 수 있는 “실상”입니다.
그런데 이 “실상”은 서기 4세기, 삼위일체 논란의 시대부터 “위격”으로 번역을 했습니다.
〈 세 위격 한 본체 〉
“하나님은 사람이 파악 할 수 없는 하나의 본체를 가지시며,
사람이 파악할 수 있는 세 가지 표현 형태를 가지신 분이다!”
이 선언문을 여섯 글자로 줄일 수 있습니다. “세 위격, 한 본체”입니다.
여기서 “세 위격”이 누구누구입니까? “성부, 성자, 성령”입니다.
이 선언문이 주후 4세기, 삼위일체 논쟁의 세기를 대표하는 캐치프레이즈입니다.
이때부터 하나님을 설명하는 선언문이 되었습니다. “세 위격, 한 본체”
우리가 알 수 있는 하나님은 성부, 성자, 성령 하나님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진정한 모습은 피조물 인간으로서는 다 알지 못합니다.
하나님은 진짜 한 분이십니다. 그러나 우리에게 성부, 성자, 성령으로 계시하셨습니다.
주후 4세기에 설득력을 가진 선언문을 몇 가지 더 보겠습니다.
“신은 세 개의 휘포스타시스 안에 거하는 하나의 우시아이다!”
주후 4세기 삼위일체 논쟁의 시기에 삼위일체를 설명하는 표어입니다.
삼위일체 하나님을 매우 적절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세 위격 한 본체!”
“우리는 신의 본질을 알 수 없으나 신의 행위를 통해 신을 알 수 있다”
바실리우스라는 인물이 한 말입니다. 그는 튀르키예 주교였습니다.
“인간은 성령의 임재없이 성자를 알 수 없고, 성자의 계시없이 성부를 알 수 없다”
성령 하나님이 내 안에 임재하실 때,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이 보입니다.
예수님 보혈의 공로로 죄사함 받고 구원받은 이들이 성부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릅니다!
주후 4세기, 삼위일체 논쟁의 세기, 그 시대의 아포리즘으로 우리가 은혜를 누립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시대에 따라 적절하게 계시하시는 분입니다.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도 하나님은 충만하게 은총을 허락하십니다! 할렐루야~
오늘 설교 제목을 봅니다. 《 8. 영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
〈 영이신 하나님 〉
요 4:24 “하나님은 영이시니 예배하는 자가 영과 진리로 예배할지니라”
우리가 예수 믿는다면, 오늘 설교하는 이 말씀들은 기본으로 알고 있어야 합니다.
막연히 “하나님은 영이시다” 하는 것과 기독교 역사를 통하여 아는 것은 차원이 다릅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다녀가시고, 300년쯤 지나서 삼위일체 논쟁이 촉발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부인하고, 예수님을 안 믿고, 성령의 임재가 없는 불신자들!
그들은 삼위일체 논쟁 자체까지도 폄하합니다.
“밥 먹고 할일 없는 사람들의 쓰잘데 없는 짓거리다!” 합니다.
그러나 믿고 구원받은 우리에게 삼위일체 논쟁은 매우 귀중한 자산입니다.
_ 논쟁의 시종이 하나님의 섭리와 경륜입니다.
_ 영이신 하나님은 이 논쟁을 통하여 계시합니다.
_ 성경으로 완결된 계시를 추가적으로 풀어서 이해시킵니다.
_ 정통과 이단의 시금석으로 삼으십니다.
삼위일체 교리를 받아들이지 않는 유명한 이단이 있습니다. 여호와의 증인입니다.
그들은 아직도 예수님은 하나님에게서 태어난 피조물로 보고 있습니다.
빌 2:6을 다시 봅니다.
빌 2:6 “그는 근본 하나님의 본체시나 하나님과 동등됨을 취할 것으로 여기지 아니하시고”
이 구절을 위반하고 있습니다.
세상에는 이렇게 성경을 자의적으로 해석하는 이단도 있습니다.
〈 삼위일체 논쟁의 깊은 뜻, 무에서 유의 창조 〉
삼위일체 논쟁이 함의하는 매우 중요한 뜻이 있습니다.
삼위일체 논쟁의 결말은 성자 하나님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과 근본 본체라는 선언입니다.
이는 빌립보서 2장 6절의 승리입니다.
성자 하나님 예수는 성부 하나님과 “동등된 본체이시다!” 이 선언의 중요성이 있습니다.
이는 놀랍게도 “무에서 유의 창조 선언”입니다.
삼위일체 논쟁이 “무에서 유의 창조”를 뜻한다니 “이게 무슨 말인가?” 하게 됩니다.
삼위일체 논쟁은 성자 하나님 예수께서 “무에서 유로 계신 분인가?” 하는 논쟁입니다.
성자는 성부로부터 태어났으니 “유에서 유로 피조 된 분”이라는 주장이 팽배했습니다.
사실 삼위일체 논쟁에서 “세 위격 한 본체”는 소수설이었습니다.
무에서 유로 계신 분은 성부 하나님 한 분뿐이라는 것이 당시의 대세였습니다.
성부 하나님만이 “스스로 계신 분” “무에서 유로 계신 분”이라는 주장입니다.
성자 예수님도, 성령 하나님도, 성부로부터 발출된 분이라는 주장입니다.
이 주장이 다수설이 되었던 이유는 성부 하나님만이 스스로 계신 분이라는 이해 때문입니다.
성부 하나님을 제외한 성자 예수 그리스도, 성령 하나님, 모두 발출하신 분이라 여겼습니다.
삼위일체를 반대하는 이들의 논지입니다.
당시는 ‘성자, 성령이 무에서 유로 계신 성부와 본체일 수 없다’가 대세였습니다.
무에서 유로 계신 분은 오직 성부 하나님뿐이고,
성자, 성령을 비롯한 모든 존재는 피조물이라는 주장입니다.
당시 이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힘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주후 325년 니케아 공의회가 소집되었습니다.
회의가 열리자, 뜻밖으로 콘스탄틴 황제가 “세 위격 한 본체”에 동조합니다.
교회의 지도자가 아닌 세속 정치 지도자가 동조했다 하여 삼위일체를 폄하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이방의 왕을 통하여 섭리하시고, 경륜을 펴십니다.
이스라엘의 포로기, 하나님은 이방의 왕 고레스를 통하여 포로를 귀환토록 하십니다.
하나님이 왜 이렇게 섭리하실까요?
_ 삼위일체 하나님은 한 본체로서 스스로 계신 분이다!
_ 삼위일체 하나님은 살아계신 영이시다!
_ 삼위일체 하나님이 무에서 유로 세상을 창조하셨다!
삼위일체 논쟁을 통하여 선포되었습니다.
“성자 하나님 예수도 성부 하나님처럼 ‘무에서 유로 계신 분’이시다!”
이 선언이 니케아 신경입니다.
<니케아 신경 앞 부분> 우리는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는다. 그분은 전능하신 아버지이시며, 유형무형한 만물의 창조주이시다. 그리고 우리는 한 분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다. 그분은 하느님의 외아들이시며, 아버지에게서 나셨으며, 곧 아버지의 본질에서 나셨다. 하나님에게서 나신 하나님이시며, 아버지와 본질에서 같으시다. 그분으로 말미암아 만물이, 하늘에 있는 것들이나 땅에 있는 것들이 생겨났다. |
이 선언문, 니케아 신경은 성경을 포함한 기독교 역사에서,
최초로 무에서 유의 창조를 선언한 문서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주후 325년까지,
성경을 해석하는 우리의 신앙 선배들 개념 속에 ‘무에서 유의 창조’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도 ‘무에서 유의 창조’가 없다고 종교학자들은 폄훼합니다.
앞서 설교했지만, 창세기 1장 2절, 창세기 2장 4~6절을 잘못 해석해왔기 때문입니다.
니케아 신경 이전까지, 성경의 하나님의 창조 역시, 유에서 유의 창조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창조도 ‘절대 진공 상태’로부터의 창조가 아니라는 것입니다.
‘절대 진공’이 뭘까요?
시간도 흐르지 않고, 공간도 없고, 아무런 물질이 없는 상태를 이르는 말입니다.
인류가 창조를 이해할 때, “‘절대 진공’에서의 창조 개념”이 없습니다.
‘절대 진공’이 아닌 ‘원시 상태’의 혼돈(caos)에서 질서(cosmos)로의 이행을 창조라 합니다.
성경까지도 이렇게 해석하고자 하면, 거기에 꿰어맞출 수가 있습니다.
“세 위격 한 본체”를 선언하기까지, 성경 해석도 이 범주를 뛰어넘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 해석도 진정한 ‘무에서 유의 창조’가 아니었습니다.
〈 니케아 신경 이후에도 〉
니케아 신경으로 기독교 역사에서 ‘무에서 유의 창조’ 그 개념의 지평이 열렸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21세기에 이르도록 ‘무에서 유의 창조’ 개념 확산은 미미합니다.
시간도 흐르지 않고, 공간도 없고, 아무 물질도 없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시간, 공간, 물질이 없는 상황에서의 창조에 대한 ‘그림’을 인류가 잘 그려내지 못합니다.
어떻게 보면, 전체 인류의 ‘뇌 구조’의 문제일 수도 있습니다.
“원시적 혼돈”(창 1:2, 창 2:4~6)을 바탕으로 창조가 시작되었을 거라는 오류 때문입니다.
이 오류를 바로잡을 수 있도록 하나님은 325년 니케아 신경을 허락하셨습니다.
‘무에서 유의 창조’ 섭리를 하나님이 인간에게 허락하고 보이셨습니다.
그럼에도 무지 몽매한 우리가 하나님의 전능성을 온전히 보지 못합니다.
“영이신 하나님을 믿습니다”
이 말씀은 삼위일체 하나님, 무에서 유를 창조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