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미영 시인의 시집 『당목에 실어내는 봄』
약력
김미영
2019년 《시조시학》 신인작품상 등단
2019년, 2020년 중앙일보 시조백일장 당선
2019년 서귀포 문학작품 전국 공모전 당선
오늘의시조시인회의 회원
제주문인협회 회원
바람집사람들 회원
kmy7430010@daum.net
시인의 말
가을
내 안의 그리움을 불러내어
꼭
껴안아 주고 싶다
2024년 가을
김미영
두륜산에 걸린 봄
나는 왜 땅끝에 와도 북쪽만 보는 걸까
굽이굽이 두륜산 둘러앉은 봉우리들
그 속에 땅나리 같은 대흥사도 피었다
그래서 내 발길도 예까지 왔었나 보다
누군들 연리근 앞에 약속 한번 없었을까
물소리 굽이쳐가도 여태 남은 저 낮달
때마침 장삼 자락 어느 청춘 걸어 나와
종 한 번 고백 한 번 당목에 실어낸다
내 가슴
그리움 실어
그리움에 메아리 실어
곶자왈 이야기
솔랑솔랑 작은 바람
수윙수윙 큰바람
태풍에 들린 뿌리 바위를 에워 감아
기어이 살아내려고 온 힘으로 버틴다
물숨으로 꽃을 틔워 얽히고 설키어서
우람한 연리목에 돋아나는 겨우살이
곶자왈 영겁의 시간 볕뉘를 쫓아간다
맨드라미 피다
동해바다 명태는 다 어디로 떠났을까
그러거나 말거나 자갈치 어느 청춘
동강 난 동태 대가리 동냥하듯 손 내민다
결국 버린 것이 저렇듯 꽃이 되나니
아가리 쫙 벌려도 저렇듯 꽃 피나니
탕탕탕 두들겨 맞아 맨드라미꽃 되나니
티브이 화면 따라 초량시장 찾아들면
서너 평 가건물도 삼십 년째 피고 진다
갈매기 부산갈매기 가락 따라 들락날락
한 접시 만 원짜리 어느 바다 동태일까
싸락눈발 몇 송이도 창밖에 데리고 와
가난한 어느 밥상에 꽃으로 피고 싶다
바람집
땅에서 솟아났나 하늘에서 떨어졌나
멀쩡한 내 집 마당 삭정이 두서너 개
치우면 치운 그 자리 다시 거기 놓인다.
무심히 올려보니 하늘에 집이 있다
세상에 떠밀렸나 전봇대 끝에 앉아
온몸의 침을 토하여 엮어내는 까치 한 쌍
나뭇가지 천육백 개 들어간 집이라고?
얼기설기 엮어낸 하늘 아래 첫 동네
저 허공 무사하기를
화살기도 날려본다
축포
몇 해가 지나도록 꽃 한 송이 안 주던 너
하필 어머니 가던 날 마당엔 축포 터졌다
올봄도 소지 태우듯 다녀가는 하얀 목련
해설
서사적 생태주의ecologism, 그 생명성과 치유성
이지엽 시인 · 경기대 명예교수
김미영 시인의 작품에는 서사성과 동시에 생태주의적 사고가 깃들어 있다. 이 두 가지 특성으로 인하여 시인은 팽팽하게 현실을 견인하면서도 미래시학의 한 패러다임을 보여주고 있어 의미가 있다. 생태주의ecologism는 환경 문제를 제도적 차원에서만 접근했던 과거의 환경주의를 거부하고 사회 전체의 근본적인 변화를 촉구한 사상이라고 볼 수 있다. 환경 문제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전반의 문제로 확대하여 생태 위기가 인간의 자연 지배와 착취 때문으로 보았는데 요즈음 겪고 있는 지구 온난화 등도 여기에서 그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자연 억압의 원인을 무엇으로 보는지에 따라 생태주의는 분파가 나뉘었다. 심층생태주의는 인간중심적 사고를, 사회생태주의는 국가의 권위주의 구조를, 생태사회주의는 자본주의 경제체제를 문제 삼았는데 김미영 시인 경우는 심층 생태주의에 속한다고 볼 수 있다. 이와 달리 에코 페미니스트들은 자연과 여성성의 연관 있음을 주목하여 자연 억압도 남성이 여성을 억압하는 가부장제에서 비롯되었다고 보고 자연 해방과 여성 해방을 같은 맥락에서 파악하기도 했다. 만약 그러지 못할 경우 여성은 언제까지 사회적으로 남성보다 권위가 아래 일 수밖에 없으며 환경 운동 또한 단순한 오염물질 폐기시설 설치, 고액의 친환경설비 건설로만으로 만족하는 본질 없는 환경 운동이 될 수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김미영 시인은 그러나 에코 페미니스트와는 다르게 생태문제를 접근하는데 인간중심주의 사고에서 벗어나 자연의 생명성과 치유성에 밀도 있는 접근을 보여준다.
「메밀국수」, 「군산 고모」, 「그리운 전당포」 등의 작품에서 보여준 서사성은 한국 시조시단에 많은 것을 시사하고 있다고 판단된다. 작금의 현대시조는 독자들이 떠난 저들만의 리그로 전락하고 있다. 가뜩이나 관념적인데 소재나 내용까지도 구태의연하다. 그나마 조금 나은 이름 있는 문학상을 받은 작품도 시조의 자연스러운 운율을 쥐어짜 비틀어서 답답하기 그지없는 작품이 태반이다. 그런 작품들에 비하면 김미영의 작품은 하나의 해답을 제시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21세기 거대담론 중 가장 뚜렷한 에코이즘 사유를 삶의 아픈 줄기인 서사적 구체성을 간명하게 실어내면서도 동시에 생명성과 치유성을 담아내고 있는 점은 분명 우리 시조시단에 의미 있는 작업이라고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