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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의 언약을 지키는 가정이 되십시오
20: 14
14. 간음하지 말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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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라기 2:14-16
14. 너희는 이르기를 어찜이니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너의 어려서 취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일찌기 증거하셨음을 인함이니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맹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궤사를 행하도다
15. 여호와는 영이 유여하실찌라도 오직 하나를 짓지 아니하셨느냐 어찌하여 하나만 지으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 심령을 삼가 지켜 어려서 취한 아내에게 궤사를 행치 말찌니라
16.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가 이르노니 나는 이혼하는 것과 학대로 옷을 가리우는 자를 미워하노라 만군의 여호와의 말이니라 그러므로 너희 심령을 삼가 지켜 궤사를 행치 말찌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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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다 켄이라는 사람이 쓴 책가운데 "부자가 되려면 부자에게 점심을 사라"는 책이 있습니다. 그는 일본에서 연간 세금 1000만엔이상의 납부자 1만 2천명을 대상으로 설문지를 보내고 그중 약 1천명을 직접 인터뷰하여 부자의 의식세계를 연구하여 발표하였습니다. 그는 이 연구의 객관성을 확보하기 위하여 이들과 비교가 되는 평범한 사람들 2천명을 다시 인터뷰하여 무엇이 부자의 인생을 평범한 사람과 다르게 만드는 가를 비교하였습니다. 저에게 관심을 끈 것은 그들의 가정생활이었습니다. 흥미로운 사실은 한국에서의 일반적인 부자에 대한 인식과 다르게 그들 대부분이 배우자와의 가정생활의 가치(37%가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가치를 지니는 것이 가정생활이다고 대답)를 중시하는 사람들이며 그들 가운데 이혼자는 2%미만이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저자는 이런 통계가 일본이외의 다른 선진국에서도 같은 통계로 나타나 있다고 서술하면서 건강한 부부관계는 인생성공의 기초이며 행복의 가장 중요한 열쇠라고 역설합니다.
우리가 읽은 성경 본문에서 말라기 선지자는 결혼이란 한 남자와 한 여인이 하나님을 사이에 두고 하나님앞에서 서약(언약, 맹약)하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말2:14) 잠언 기자는 간음은 이 언약을 망각하고 깨트리는 범죄라고 가르칩니다.(잠2:17) 말라기 선지자는 또한 간음으로 초래되는 이혼과 학대를 하나님이 미워하신다(말2:16)고 가르칩니다. 간음은 일체의 성적 범죄에 광범하게 사용될수 있는 단어이지만 특히 기혼자의 성적 일탈을 의미하는 단어로 대부분 사용됩니다. 구약 성경에는 다른 어떤 범죄보다도 이 간음의 범죄에 대하여 엄중한 형벌이 시행되었습니다. 많은 경우 사형으로 다스려 졌습니다.
신22:22에 보면 "어떤 남자가 유부녀와 동침한 것이 드러나거든 그 동침한 남자와 여자를 둘다 죽여 이스라엘중에서 악을 제할 지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시대가 구약시대가 아니라는 사실이 얼마나 천만다행한 일입니까? 이 계명이 만일 오늘 우리 시대에 그대로 적용된다면 얼마나 많은 사형수들이 줄지어 날마다 사형대로 나아가겠습니까? 그런데 왜 하나님은 이 간음을 이렇게 심각한 죄로 다루셨을까요? 그 이유는 이 범죄는 자신을 파괴하고, 가정을 파괴하고, 사회를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우리는 간음으로 깨어지는 가정들이 급증하는 시대를 살고 있습니다. 이런 시대에서 우리는 어떻게 십계명중 이 7계명-"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을 잘 지켜 우리의 가정을 보호 할수 있을까요?
1. 하나님 앞에서의 언약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미 말씀드린 것처럼 결혼은 언약입니다. 그러나 성경적인 결혼의 독특성은 결혼이 단순히 한 남자와 한 여인사이의 언약이 아니라 하나님을 사이에 두고 하나님 앞에서의 한 남자와 한 여인의 약속이라는 것입니다.
말2:14을 다시 읽어보십시오. "너희는 이르기를 어찌 됨이니이까 하는도다. 이는 너와 네가 어려서부터 맞이한 아내 사이에 여호와께서 증인이 되시기 때문이라. 그는 네 짝이요 너와 서약한 아내로되 네가 그에게 거짓을 행하였도다."
여기 여호와께서 증인되신다는 표현을 주목해 보십시오. 당신의 결혼식에 증인으로 참여한 모든 하객들은 시간이 지나가면 그 결혼식의 약속을 잊을 것입니다. 심지어 당사자 본인들의 의식도 희미해져 갈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기 한분 이 결혼의 제도를 만드시고 우리를 결혼의 자리로 인도하셨던 그분만은 우리의 결혼의 약속을 결코 잊지 않고 우리를 주목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분 앞에서의 이 약속을 잊지 말고 지켜야 합니다.
그날 결혼식에서 당신은 어떤 약속을 하셨습니까? 전통적으로 가장 오랜 기독교적 결혼예식에서의 결혼 서약문은 다음과 같은 것이었습니다. "당신은 당신 곁에 서있는 여인(남자)을 그대의 아내(남편)로 삼아 부하든지 가난하든지, 건강하든지 병들든지, 순경에 처하든지 역경에 처하든지 변함없이 사랑하며 부부로서의 일정한 대의와 정절을 굳게 지킬 것을 서약하십니까?" 그때 우리는 분명히 '예'라고 대답하지 않았습니까? 과연 그 약속을 지켜 오셨습니까? 그렇지 못하셨다구요? 그렇다면 당신은 간음하신 것입니다. 간음은 오늘 날 더 이상 구약시대처럼 사형으로 다스려지는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간음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당신의 배우자와의 약속은 물론 하나님과의 약속을 깨트린 심각한 범죄입니다. 1:1의 부부관계를 통한 경건한 가정의 기대-이것은 변할수 없는 창조주 하나님의 경륜이었습니다.
말2:15의 말씀이 그것입니다. "--어찌하여 하나만(언약의 상대)만드셨느냐. 이는 경건한 자손을 얻고자 하심이라"
간음의 범죄는 부부의 하나됨의 관계를 깨트린 것입니다. 간음은 물론 용서받지 못할 죄는 아닙니다. 그러나 진정한 용서를 원하신다면 간음한 여인을 용서하시며 들려 주셨던 주님의 당부가 지금 당신의 삶속에서 회복되고 있어야 합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치 말라" 죄를 회개한다고 하면서도 아직도 죄가 계속되고 있다면 당신은 아직 용서받으신 것이 아닙니다. 진정 죄를 회개하고 용서받기를 원하신다면 주님과 배우자에게 죄를 자백하고 죄를 끊고 이제 이후로는 나를 넘어뜨린 그 죄로부터 떠나셔야 합니다.
2. 시험받을 수 있는 기회들을 피해야 합니다.
7계명을 지키고 가정을 지키는 두 번째 원칙은 시험받을 수 있는 기회들을 피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성적 유혹에서의 경계를 가르치는 상황마다 어김없이 "피하라"는 단어를 일관성있게 사용합니다. "음행을 피하라" "청년의 정욕을 피하라"고 가르칩니다.
아마도 이런 말씀을 잘 지킨 가장 모범적인 사례는 요셉일 것입니다. 성경은 보디발의 아내가 요셉을 줄기차게 유혹하는 상황에서 요셉의 태도를 창39:10에서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인이 날마다 요셉에게 청하였으나 요셉이 듣지 아니하여 동침하지도 아니할뿐더러 함께 있지도 아니하니라"
중요한 행동이 무엇이었습니까? "함께 있지 아니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여인이 포기하지 아니하고 집요한 유혹을 계속하자 어떻게 했습니까? 성경은 요셉이 옷을 버려두고 "도망했다"고 기록합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는 불건강하게 우리의 성적 욕망을 자극할수 있는 기회들로 가득차 있습니다. 인터넷 포르노, 불건강한 채팅, 케이블 TV의 부도덕한 영화들, 심지어는 이-메일이나 핸드폰의 유혹성 광고들, 비 정상적인 술자리, 사교춤의 기회들 이 모든 것들을 조심하고 할수 있으면 피해야 합니다. 잠언기자의 경고를 들어보십시오. 잠6:27-28의 말씀입니다."사람이 불을 품에 품고서야 어찌 그의 옷이 타지 아니하겠으며 사람이 숯불을 밟고서야 어찌 그의 발이 데지 아니하겠느냐"고 했습니다. 저는 CNN뉴스와 기독교 TV를 시청하고 싶은 생각에서 한때 케이블 TV를 신청했다가 가만 보니까 밤12시만 넘으면 이상한 영화가 나오더라구요. 그런데 이상하게 보고 싶은 생각이 나는 것이에요. 그래서 안되겠다 싶어 취소해 버렸습니다. 이제 저희 집 TV에는 SBS, KBS1,2, MBC, EBS 채널밖에 나오지 않습니다. 제가 어떤 우리 교회 성도의 가정에 가보니까 응접실에 다 컴퓨터가 나와 있어요. 아이들에게 되도록 유혹의 기회를 주지 아니하려고 그랬다는 것입니다. 칭찬하고 싶었습니다.
제가 미국에 있을 때 한 부부를 상담하게 되었는데 자기 아들이 딸을 성적으로 범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아이들 남매를 만났습니다. 어떻게 그런 유혹을 받았느냐고 물었더니 자기 부모가 보는 성에 대한 비디오 시청하다가 우발적으로 남매가 성을 실험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누구 책임입니까? 부모 책임 아닙니까? 피해야 합니다. 할수 있는 한 피해야 합니다.
시편기자는 어떻게 가르칩니까?
"복있는 자는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며 죄인의 길에 서지도 아니하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도 아니한다"고 하지 않았습니까?
성의 유혹에 관한 한 순간도 틈새를 제공하면 안됩니다. 방심하면 안됩니다.
3. 부부의 사랑을 성실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우리가 유혹의 기회를 피해야 한다든지 간음의 죄를 경계하라는 말이 부부도 성적으로 접근을 피해야 한다는 의미는 아닙니다. 아니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부부가 성적인 만족을 깊이 경험할수록 외도의 유혹에서 가정을 지켜낼 가능성이 큽니다.
고린도 전서 7:2-3을 읽어보십시오.
"음행을 피하기 위하여 남자마다 자기 아내를 두고 여자마다 자기 남편을 두라. 남편은 그 아내에 대한 의무를 다하고 아내도 그 남편에게 그렇게 할지라"
여기서 의무란 말할것도 없이 성적인 의무를 말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 부부들은 서로에 대한 성적인 의무를 다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아내 여러분, 잘 기억하십시오.
당신은 당신의 남편의 성적인 욕구를 충족시킬 수 있는 유일하게 합법적인 대상이십니다. 당신의 남편이 당신에게서 만족을 누리지 못하고 시선을 밖으로 돌리기 시작한다면 과연 남편의 외도에 아내는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까?
입장을 바꾸어도 마찬가지입니다.
남편 여러분, 잘 들으십시오.
당신은 당신의 아내의 성적인 욕구를 충족시킬수 있는 유일하게 합법적인 대상이십니다. 만일 당신의 아내가 당신에게서 만족을 취하지 못하고 그래서 당신의 아내가 시선을 밖으로 돌리기 시작한다면 당신은 과연 아내의 외도에 책임이 없다 할수 있겠습니까?
성경은 부부의 적극적인 사랑의 누림을 놀라울 정도로 대담하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잠5:15-16을 읽어보십시오. "너는 네 우물에서 물을 마시며 네 샘에서 흐르는 물을 마시라. 어찌하여 네 샘물을 집 밖으로 넘치게 하며 네 도랑물을 거리로 흘러가게 하겠느냐." 도랑물이 집밖으로 흘러나가는 것을 조심해야 하겠지요.
자, 계속되는 17절의 경고입니다.
"그 물이 네게만 있고 타인으로 더불어 그것을 나누지 말라"
부부의 성은 부부외에는 아무와 그 누구와도 나눌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소극적인 경고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18-19절을 보십시오. "네 샘으로 복되게 하라. 네가 젊었을 때 취한 아내를 즐거워하라. 그는 사랑스러운 암사슴같고 아름다운 암노루 같으니 너는 그의 품을 항상 족하게 여기며 그의 사랑을 연모하라"
이보다 더 적극적인 로맨스의 관리를 요청하는 말씀이 또 어디에 있겠습니까? 수년전 타임지에서 미국에서 가장 성적인 만족도가 높은 집단을 연구한 결과 복음주의적 교회에 나가는 부부집단으로 나왔을 때 미국 사회는 의외라는 반응을 보였습니다만 저는 놀라지 않았습니다. 당연한 결과일 뿐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는 부부가 행복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그러나 로맨스를 결코 성으로만 국한시키지 마십시오.
부부는 따뜻한 사랑의 말 몇 마디로도 얼마든지 충분히 행복할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느 경상도 사나이가 첫날밤에 신부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나는- I love you-그런 것 간지러워서 잘 말못하니까 내 오늘밤 한마디하면 평생 유효한거다, 니 알겠나, I love you다- 했답니다. 그때 지혜로운 신부가 이렇게 말했답니다. "그런데 여보, 실은 제게 병이 좀 있는데요, 저는 지금 하신 그런 중요한 말은 날마다 반복 안하시면 저는 절대로 기억을 못하는걸 이해해 주셔요"했답니다.
그렇습니다, 부부의 로맨스는 날마다 성실하게 관리되어야 합니다. 날마다 식사가 필요한 것처럼 사랑의 연료도 날마다 공급되어야 합니다.
여러 해전 책에서 이런 이야기를 읽은 기억이 있습니다.
날마다 아내에게 전화해서 I love you하는 그리스도인 남편이 있었는데 한번은 해외 출장을 갔습니다. 핸드폰이 없는 시절이어서 국제 공중전화를 해서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고 있는데 중간에 동전이 떨어지더랍니다. 그래서 황급하게 여보, I-하는데 전화가 끊어지더랍니다. 너무 안타까워서 얼결에 "주님, 아내에게 I love you 못했어요, 주님이 전해 주셔요"했답니다.
전화는 끊어졌는데 바로 잠시후 집에 있는 아내에게 전화 벨이 울리더랍니다. 아내는 남편이 동전을 바로 구하여 전화했나보다 해서 전화를 받았더니 남편이 아니라 국제 전화 교환수였다고 합니다.
"방금 전화한 댁의 남편께서 동전이 떨어진 전화에 주님-I love you를 전해 주셔요-해서 제가 대신 전해드리고자 전화를 드렸습니다. 저도 그리스도인이거든요."
이 부부는 너무 놀라서 주님은 이런 부부의 작은 사랑의 표현까지도 간섭하시고 도와주시는 분이라고 간증하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런 주님께 우리 가정의 행복을 지키기 위하여 도움을 구할 우리 가정의 기도제목은 무엇인지요?
정말 건강한 가정,웰빙 가정의 행복을 사모하십니까? 그러면 무엇보다 결혼의 언약을 지키는 가정이 되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