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광역시 ‘입암(立巖 선바위), 입암정(立巖亭)‘ 한시(漢詩)편 11.> 총17편 中
입암(立巖 선바위)은 태화강의 중류에 위치한 선바위이다. 태화강은 경북 청도(淸道)의 억산(億山)에서 시작하여 고헌과 신불산에서 흐르는 물이 언양에서 아울러 동으로 흘러돌아 넓내(泗淵)에서 또 치술령에서 시류하는 대곡천 물을 합쳐 북으로 흐르는 듯 동류하여 울주군 범서 망성(望星)에 이른다. 강물은 또 여기에서 국수봉에서 흐르는 중리천을 합쳐 동남으로 돌아 층암절벽의 높은 벼랑을 받아 남으로 흐르면 여기가 이름 높은 백룡담(白龍潭)이다. 옛날 선인들의 말을 빌면 백룡이 자리잡고 살았다는 곳이다. 그리하여 날이 가물어 천지가 타오를 때 이곳에서 머리 숙여 기우제를 지내면 문득 영검이 있었다. 검은 듯 푸른 수면에 산인가 바위인가 하늘에 솟은 층암, 이것이 시인묵객들이 즐겨 찾던 입암(立巖)이다.
● 울산의 입암정(立巖亭)은 울주군 범서면 입암리 태화강변에 있다. 상북면에서 흘러내려온 태화강 원류와 대곡천이 합류해 몸을 키우는 지점, 입암 (선바위) 뒤에 있다. 입암정은 조선 정조 때인 1796년 울산부사 이정인이 지었다. 2칸 규모이고 이와 접하여 3칸짜리 집이 있었다고 전한다. 이 집은 은암암 (隱巖庵)이다. 입암정이 드러냄이라면 은암암은 숨어있는 형국이다. 암자와 정자 이름에서 기묘한 대조를 이룬다. 입암정을 세운 부사 이정인은 ‘입암정기’에서 이렇게 말했다. ‘정자는 바위 때문에 만든 것이니, 이 바위가 없다면 어찌 정자를 세웠으리요. 못가운데 매우 우뚝한 바위가 있는데, 높이는 수십 길이 되고 돌아 쌓여 기이한 절벽을 이루고 있어서 그것을 쳐다보면 높고 가파르므로 입암이라 한다. 바위 북쪽에는 푸른 벼랑이 들러싸고 있는데 다만 한 줄기 산 기슭이 남쪽으로 뻗어서 작은 터를 이루고 있으므로 마침내 몇 개의 서까래를 걸어놓았다. 이것이 입암정이다’ 지금은 1940년 학성이씨 문중에서 매입해 용암정으로 개조했다. 입암에 대한 또 다른 기록인 ‘학성지’에서 비교적 자세한 기록을 남기고 있다. ‘학성지’는 ‘태화강 상류에 있다. 돌이 쌓여서 만들어졌는데 뿌리는 물 바닥에 박혀 있다. 높이는 수십 길이 되고 길이는 10여 아름쯤 된다. 바위틈에는 한 움큼의 흙도 없는데도 초목이 무성하다. 물 건너 몇 십보 쯤 되는 동쪽언덕에 푸른 벼랑이 가파르게 끊어져 있다’라고 쓰고 있다. 학성지는 입암이 있는 곳을 입암연이라고 했다. ‘입암연은 서쪽 20리에 있다. 우뚝 솟은 바위가 있고 못 속의 물이 검푸르다. 세상에 전해지기로 용이 있어서 비를 빌면 감응이 있다고 한다’라고 썼다. 입암은 오래전부터 울산의 명승으로 이름이 나서인지 시인묵객의 발길이 잦았다.
76) 강 가운데 있는 입암은 울산 범서에 있다.[題江心立巖在蔚山凡西] / 서석린(徐錫麟 1710~1765)
千古銅仙掌 천고의 동선장(銅仙掌)이
飛來碧海東 푸른 바다 동쪽에서 날아 왔구나.
胡塵飛不到 오랑캐 먼지도 날아들지 못하는
面面水晶宮 면면이 수정궁(水晶宮)일세
[주1] 동선장(銅仙掌) : 천상(天上)의 선로(仙露)를 받기 위하여 한 무제(漢武帝)가 구리로 만들어 세웠다는 선인(仙人)의 손바닥이다.
[주2] 수정궁(水晶宮) : 중국의 기서(奇書) 《술이기(述異記)》에 나오는, 수정으로 꾸몄다는 화려한 궁전
77) 입암정 차운[次立巖亭韻] 二首 정자는 울산에 있다. 이정인 부사가 건립했다(亭在蔚山 李府使廷仁所建) / 김용한(金龍翰 1738~1806)
鶴館西南峽 학성관(鶴城館)은 서남쪽 골짜기에 있고
游龍百尺潭 백 척의 연못에 용(龍)이 유영한다.
頹波元有柱 본디 있던 기둥이 무너져버려
怪石自成巖 괴석들이 절로 바위를 이루었다.
水檻控平陸 물가 난간에서 평지를 당겨 살펴보고
苔磯數遠岑 이끼 낀 물가에서 먼 봉우리를 헤아려본다.
新亭太守樂 새 정자에서 태수가 즐기었는데
琴曲和詩吟 거문고 곡조에 시를 읊으며 화응(和應)했다네.
巖巖氣得化工神 험준한 바위는 화공(化工)의 조화신(造化神) 기운이 넘치고
可朘其高不可親 그 높이에 위축되어 가까이 할 수 없구나.
立似秦驅經浩刼 진시황이 바위를 몰아가다 크게 깎이어 서있는 듯하고
痕如媧鍊出煙塵 여와씨가 먼지 속에서 나와 돌반죽으로 만든 듯하네.
天寒白鶴應歸柱 차가운 하늘에는 두루미가 돌아가며 응하고
境僻長魚故近人 외진 곳에는 장어가 사람 가까이 찾아온다.
樂意靜觀山水外 즐거운 마음으로 산수 너머를 조용히 바라보는데
這間誰識小亭新 얼마 전부터 작은 정자가 새로워졌음을 누가 알리오.
[주1] 학성관(鶴城館) : 학성관은 울산 객사의 정청(正廳)으로 임진왜란 때 불탔는데, 현종(顯宗, 1659∼1674)대인 1667년(현종8)
울산부사 류지립(柳志立)이 중창했다. 이휴정(二休亭)은 본래 울산도호부의 객관인 학성관의 남문루였다.
[주2] 진구(秦驅) : 진시황이 돌다리〔石橋〕를 놓아 바다를 건너가서 해가 뜨는 곳을 보려고 하자, 신인(神人)이 바위를 바다로 몰고 가면서 채찍질을 하니 바윗돌이 모두 피를 흘리며 붉게 변했다는 전설이 진(晉) 복심(伏深)의 《삼제약기(三齊略記)》에 나온다.
[주3] 와련(媧鍊) : 옛날에 여와씨(女媧氏)가 오색돌을 반죽하여 허물어진 하늘을 때웠다 한다.
78) 입암촌[立巖村] / 장현광(張顯光 1554∼1637)
孤村巖底在 외로운 마을 바위 밑에 있으니
小齋性足頤 작은 집이지만 본성 기를 수 있네
老矣無可往 늙어서 갈 만한 곳 없으니
從今學不移 이제부터 변함 없는 저 바위 배우리라
79) 팔월 십오일에 절도사를 모시고 입암에서 노닐다[八月十五日陪節度使遊立巖] / 김종직(金宗直 1431~1492)
‘입암은 울산(蔚山)의 서북쪽으로 20리쯤에 있다. 물이 재악(載岳)에서 나와 동쪽으로 언양(彦陽)을 경유하여 해구(海口)에 이르러 황룡연(黃龍淵)으로 들어가는데, 입암이 그 굽어 돌아흐르는 곳에 있는바, 물 가운데 우뚝하게 서있어 바라보면 마치 부도(浮屠 탑을 말함)와 같이 보인다. 그 밑에는 물의 깊이를 헤아릴 수가 없는데, 세속에 전하기를 그 곳에 용이 있다고 한다. 해가 가물 적에는 호랑이의 머리를 그 곳에 넣으면 반드시 비가 온다.’
奇巖削鐵十尋餘 삭철 같은 열 길도 넘는 기이한 바위가
倒揷潭心畫不如 못 가운데 거꾸로 꽂힌 모양 그림도 그만 못하리
日暮煙橫層半露 저녁 연기 가로질러 반층쯤 드러난 곳에
駕鵝飛上落銜魚 물새들이 날아앉았다 고기를 물어올리네
洄洄巖底是龍湫 돌아 흐르는 바위 밑이 바로 용추라 하니
應訝騷人隔歲遊 문사들이 해 걸러 노는 걸 응당 의아해하리
却恐風雷起平地 풍뢰가 평지에서 일어날까 두려우니
須催歌吹下芳洲 노래 풍악 재촉하여 방주로 내려가야지
元戎談笑翫游鯈 원수와 담소하며 피라미를 완상하고
乘興歸來露滿洲 흥겨워 돌아오니 이슬이 물가에 가득한데
醉看馬頭端正月 취한 눈으로 말 머리의 둥근 달을 쳐다보니
忽驚佳節已中秋 중추 가절이 되었음을 갑자기 놀라네
80) 입암에 이르러 놀며 구경하다[到立巖遊翫] / 기대승(奇大升 1527∼1572)
奇巖天試削 기이한 바위 하늘이 깎아 세워
釖立鋒差差 칼날처럼 삐죽삐죽 날카롭게 솟았네
抉眥仰其巓 눈을 들어 그 꼭대기 우러러보니
翕翕玄雲垂 뭉게뭉게 검은 구름 드리웠네
鴻濛昔未剖 홍몽한 옛날 천지 생기기 전에
獻笑調羣妃 웃음을 드리는 뭇 왕비 조화 이뤘지
相承輒層累 서로 이어 층층으로 보태니
截壁而連璣 절벽에 구슬을 연이은 듯
瑰瑋儘難狀 뛰어남 참으로 다 형상 못하니
詭特誰能知 괴이하고 특출함을 그 누가 알까
蒼榧托幽根 푸른 비자나무 깊이 뿌리 내려
歲久枝葉低 해묵어 가지도 늘어졌고
亦有數叢花 두어 떨기의 꽃들도
媚日初含姿 햇볕 받아 처음으로 자태를 머금었네
宕魄笑余陋 호탕한 기백으로 고루함 비웃고
探始窮遐思 시초를 탐색하며 먼 생각 해 보았네
冥冥造化權 현묘한 조화의 권위는
此豈爲神奇 이를 어찌 신기하다 하리
剛柔一闔闢 강하고 유함 열리고 닫히면서
融結機自隨 융합하고 응결되는 기틀 절로 따르네
把酒臨長風 술잔 잡고 먼 바람에 임하여
揮筆題新詩 붓을 뽑아 새로운 시 쓰노라
安求不死藥 어찌하면 불사약을 구해서
看盡消磨時 모두 소멸될 때까지 볼 수 있을까
<울산광역시 ‘울산(蔚山) 도중에‘ 한시(漢詩)편 12.>
울산시는 신석기시대의 유물들이 장현동 등지에서 발견되어 일찍부터 인간의 거주가 있었음을 보여준다. 삼국시대에는 신라의 굴아화촌(屈阿火村)인데, 파사왕(婆娑王) 때에 비로소 지변현(知邊縣:戒邊城·神鶴城·火城郡)을 설치했다. 신라의 삼국통일 후 757년에 하곡현(河曲縣)으로 고쳐 임관군(臨關郡)의 영현을 삼았다.
고려초에 이 고장 사람인 박윤웅이 태조를 도운 공으로 우풍현(虞風縣)과 동진현(東津縣)을 병합해 흥려부(興麗府)로 승격되었다가 후에 공화현(恭化縣)으로 강등되었다. 1018년에 울주군(蔚州郡)이 되어 속현으로 동래현(東萊縣)과 헌양현(陽縣)을 관할했다가 방어사로 고쳤다. 조선초인 1397년에 진(鎭)을 설치하고 병마사 겸 지주사(知州事)를 두었다가, 1413년에 진을 혁파하고 울산군으로 고쳤다. 1417년에는 경상좌도병마도절제사영(慶尙左道兵馬都節制使營)이 이곳에 설치되어 약간의 변동은 있었으나, 1895년까지 울산은 경상좌도의 육군의 중심지로 기능했다. 1418년에는 염포(鹽浦)를 개항해 일본에 대한 문호를 열었으나, 1510년 삼포왜란으로 왜관이 폐지되었다. 임진왜란중인 1598년에 울산도호부로 승격되어 병마절도사가 부사를 겸하게 되었다가 1616년부터 다시 별도로 부사를 파견했다. 지방제도 개편으로 1895년에 동래부 울산군, 1896년에 경상남도 울산군이 되었다. 1931년에 울산읍으로 승격되었고 1962년에 일부지역을 병합해 울산시로 승격하고, 이 지역에 울산공업단지를 건설함에 따라 한국의 대표적인 공업도시로 성장했다. 1997년 울산시가 울산광역시로 승격되면서, 각각 10개동·9개동으로 분할하고 중구의 7개동과 통합하여 북구를 신설했다. 또 울주구를 울주군으로 고쳐 1개군 4개구가 되었다.
80) 울산[蔚山] / 조위(曺偉 1454∼1503)
邑守須良吏 고을읍의 수령은 좋은 관리이고
元戎要將才 군 우두머리는 능력 있는 장군감이다.
地征鹽課重 토지세 염세(鹽稅)가 무거우니
蠻貨海賝來 오랑캐 재물은 바다의 보배가 되었다.
迢遞神州遠 아득한 서울 길은 멀고
凄涼畫角哀 처량한 화각소리 애처롭네.
當年雪谷老 당년에 설곡(雪谷)의 노인,
賦鵩此徘徊 복조(鵩鳥)가 여기서 배회하누나.
[주1] 설곡(雪谷) : 고려 후기의 문신 정포(鄭誧 1309~1345)의 호(號)이다. 울주(蔚州)[지금의 울산]로 유배 와 수많은 작품을 남겼다.
[주2] 복조(鵩鳥) 시 : 한나라 가의(賈誼)는 올빼미를 닮은 불길한 새 복조가 날아와 울자 〈복조부(鵩鳥賦)〉를 짓고 불길한 앞날을 예측했는데, 과연 얼마 후에 귀양을 가게 되었다. 그 후 복조 시는 불길한 징조를 예측하는 시 또는 불길한 징조 자체를 가리키는 말로 쓰였다. 여기서는 설곡(雪谷) 정포(鄭誧)가 유배와서 노닐던 옛일을 생각하며 회포에 젖은 화자의 심정을 표현하였다.
81) 울산 도중에 회포가 있어[蔚山途中有懷] 부사 한유천이 장난삼아 대구체(對句體)로 짓다(副使韓柳川戲成對句體) / 이덕형(李德馨 1561~1613)
春風共過場門浦 봄바람과 함께 장문포를 지나왔는데
海島花開映客舡 바다 섬에 꽃이 피어 여객선 선객을 비추네.
夏日獨來旰谷驛 여름날에 홀로 간곡역(웅촌)에 도착하니
山蹊草滿斷人煙 산골짜기에 풀은 무성하고 사람 자취 끊어졌네.
心頭謬算猶千種 이런저런 수천 가지 잡념 속에
馬上流光已半年 말을 타고 떠돈지도 어언 반년 세월
忽憶柳川今底處 홀연히 유천이 생각나니 지금 어디에 있을까?
計程遙望劇悠然 남은 여정 아득해도 맘은 그저 유연하여라.
[주1] 유천(柳川) : 한준겸(韓浚謙 1557~1627)의 호(號)이다. 조선 선조부터 인조 때까지의 문신이다. 임난 후에 경상도관찰사를 역임했다.
[주2] 간곡역(肝谷驛) 고을 서쪽 39리에 있다. 굴화역(堀火驛) 고을 서쪽 15리에 있으며, 옛날 하곡현(河曲縣) 옛터이다. 부평역(富平驛) 병영 성 서쪽에 있다.<신증동국여지승람>
82) 울산 도중에[蔚山道中] / 김홍욱(金弘郁 1602~1654)
行役仍愁瘴癘鄕 여행에 풍토병있는 고장은 꺼리는데
南來風土異炎涼 남쪽에 오니 풍토가 덥고 추운 것이 다르구나
天晴海島常看雨 자주 비가 내리는 섬에 맑게 갠 하늘
秋盡江關尙未霜 가을 지난 강가에 아직 서리는 내리지 않네
十里脩篁連郡郭 십리 대숲은 군의 성곽을 이루었고
千林紅柹映村莊 숲속의 홍시는 시골 마을을 단장했네
前程此去何時已 이제 가면 앞으로 가야 할길은 언제 다할런지
屈指歸期更渺茫 돌아갈 날 헤아려보니 아득하기만 하네
83) 울산 연회석에서 입으로 읊다[蔚山席上口號] / 고경명(高敬命 1533~1592)
九日今雖過 구일 날 오늘 아무리 지나치더라도
黃花尙數枝 황국화 몇 가지를 자랑하고프네.
對花如不飮 맨 정신으로 꽃을 바라보매
花亦笑吾衰 꽃 또한 쇠한 몰골 우스워라
84) 울산에서 게를 먹다가 갑자기 지난해 전관의 흥취가 생각나서 짓다[蔚山食蟹忽憶去歲箭串之興有作] / 김종직(金宗直 1431~1492)
訓狐聲裏宿中洲 부엉이 우는 소리 들으며 모래톱에 자면서
乘醉談鋒曉未休 술에 취해 힘찬 담론이 새벽까지 쉬질 않네
今日草泥無勝客 오늘 이 진펄에 훌륭한 손은 없거니와
樽前幸値內黃侯 술동이 앞에 다행히 내황후를 만났네그려
[주] 내황후 : 게를 말함. 게는 농짝 속에 노란 살이 들어 있기 때문에 붙여진 말이다.
85) 울주 잡제(蔚州雜題) / 이첨(李詹 1345∼1405)
雲雨紛紛作晦明 분분한 구름비 흐릴락 맑을락
鴻毛直似太山輕 태산은 홍모같이 가벼워라
天涯孤枕故鄕夢 하늘 가 외로운 베개는 고향 가는 꿈 뿐인데
月下誰家長笛聲 달 아래 뉘 집에서 저 부는 소리
骨肉百年三遠別 한평생에 골육은 세 번 먼 이별하였구나
波瀾萬丈一浮生 만길 파란에 한 부생이로세
莫嫌席地南來盡 돗자리 만한 땅이 남쪽으로 끝났다 탓하지 마소
還有滄溟眼底平 눈 앞에 다시 질펀한 바다 있지 않나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