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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축제 · 기념일 백과 - 녀피
hanjy9713
2023.11.16. 19:26조회 8
녀피
요약 인도네시아 발리(Bali) 섬에서 따르는 힌두교 사카 달력(Saka calendar)의 새해 첫날
1. 기념일 정의
녀피(Nyepi)는 인도네시아 발리섬의 가장 큰 명절이자 국경일로 힌두교 사카 달력의 새해 첫날이다. 서기 78년 인도에서 반포되어 동남아시아 등지로 널리 퍼진 사카 달력은 태음력을 기본으로 하며, 사카 달력의 1월 1일은 양력 3월경에 돌아온다. 인도네시아어로 고요와 평온을 의미하는 ‘스피’(sepi)에서 파생된 녀피는 ‘침묵’이라는 뜻이다. 떠들썩하게 새해를 여는 다른 문화권과 달리 인도네시아 발리에서는 차분히 명상하고 힌두교 최고의 신 상 향 위디(Sang Hyang Widhi)에게 기도하며 고요하게 새해 첫날을 맞이한다.
발리 사람들은 녀피 당일에 외부 활동을 하지 않고 집 안에 머물며 침묵 속에서 스스로를 되돌아보는 참회의 시간을 갖는다. 학교와 기업, 관공서는 물론 발리의 공항까지 문을 닫고,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전기를 사용하지 않으며, 구급차를 제외하고는 자동차도 운행하지 않는다. 녀피는 기본적으로 힌두교의 명절이지만 발리에서는 비힌두교인들은 물론 관광객들까지도 침묵으로 새해를 시작하는 데 동참한다.
인도네시아 발리 섬의 새해 첫날인 녀피
발리인들은 새해 첫날 차분히 명상하고 힌두교 최고의 신인 상 향 위디에게 기도하며 고요하게 지낸다.
한편 녀피 3~4일 전부터 녀피 바로 전날까지 발리 전역에서는 한 해를 마무리하고 새해를 맞이하기 위한 크고 작은 의식이 행해진다. 가장 큰 볼거리는 ‘오고오고’(ogoh ogoh)라 불리는 커다란 악령 인형을 만들어 거리 곳곳을 행진한 후 인형을 불태우는 의식이다. 전통 의상을 차려 입고 인형 태우기 행사에 참여하거나 구경하는 사람들로 발리 거리는 밤을 지나 새벽 동이 틀 때까지 북적인다. 흥겨운 축제 같은 의식이 끝나고 녀피의 침묵은 새벽 6시부터 다음 날 새벽 6시까지 이어진다.
오고오고 행렬
한 해의 마지막 날, 오고오고라 불리는 커다란 악령 인형을 만들어 거리를 행진하고 불태운 뒤 새로운 마음으로 새해를 맞이한다.
2. 기념일 어원
녀피(Nyepi)는 인도네시아어로 고요와 평온을 의미하는 ‘스피’(sepi)에서 파생된 단어로, ‘침묵’이라는 뜻이다. 모든 활동을 멈추고 집에서 조용히 24시간을 보내는 녀피를 흔히 ‘침묵의 날’(Day of Silence)이라고 부른다.
3. 기념일 유래
새해 첫날 하루 동안 침묵하고 기도하는 것에 대해, 발리인들은 신과 악령이 존재하는 신화에서 그 근거를 찾는다. 녀피와 관련해 가장 널리 알려진 이야기는, 힌두교에서 저승세계를 관장하며 ‘지옥의 왕’이라 일컬어지는 야마(Yama) 왕에 대한 것이다.
야마 왕은 매년 한 해가 끝나는 날 지옥의 악마들을 모두 세상으로 쓸어낸다. 발리인들은 이때 세상에 풀려난 악마들이 자신들의 생활에 끼어들지 않고 지옥으로 잘 돌아갈 수 있도록 정성껏 의식을 치러야 한다고 믿는다. 그래서 녀피 전날에 각종 음식과 과일, 공물을 바쳐 악마들을 달래고, 녀피의 아침이 밝으면 악마들이 발리에 사람이 없다고 믿게끔 침묵하며 하루를 보낸다. 지옥에서 나와 새로 머물 곳을 찾던 악마들은 발리인들이 모두 떠난 것으로 생각해 발리를 건드리지 않고 다른 곳으로 간다고 여기는 것이다.
한편 발리의 문화와 언어에 정통했던 학자 프레드 B. 아이즈먼(Fred B. Eiseman)은 저서 『발리, 세칼라와 니스칼라』(Bali: Sekala and Niskala)에서 녀피의 침묵에 대해 다른 해석을 내놓기도 했다. 그는 녀피 전날 왁자지껄 소란스럽게 하는 것은 악마를 쫓기 위한 것이 아니라 그들을 깨워 사람들이 차려놓은 공물을 보게 하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리고 녀피 당일의 고요함은 공물을 받고 기분이 좋아진 악마가 더 이상 인간을 방해하지 않을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의 만족감을 나타내는 행위라고 했다.
펭루푸칸
녀피 전날 발리인들은 횃불을 들고 길거리에 나와 대나무 종을 치며 소란스러운 소리를 내 악령들을 깨운다.
4. 기념일 역사
인도네시아 자바 섬 동쪽에 위치한 발리 섬은 인도네시아에서도 특별한 곳이다. 발리는 오늘날 이슬람교를 믿는 나라들 중 신자 수가 최대인 인도네시아에서 유일하게 힌두교를 믿는 섬이다. 힌두교의 수많은 신들이 섬의 토속신과 결합해 셀 수 없이 늘어난 데서 발리는 ‘신들의 섬’이라는 별명까지 얻었다.
힌두교는 서기 5세기에 인도에서 인도네시아로 전파됐다. 이후 인도네시아의 힌두교는 자바와 수마트라를 중심으로 발전한 불교와 접목돼갔다. 13세기에 자바 섬 동부에 자리 잡고 세력을 키운 마자파힛 왕조(Madjaphahit, 1293~1520)는 발리 섬을 비롯한 인도네시아 전역과 말레이 일부를 지배하는 강력한 힌두-불교 왕국을 건설했다. 16세기 초 마자파힛 왕조가 이슬람 세력에 멸망하면서 힌두교도들이 발리로 대거 이주해온 이후 발리는 인도네시아의 다른 지역과 달리 힌두교 전통을 많이 간직하게 됐다. 발리 섬 전체에 힌두교 사원 4,600여 개가 있으며, 수시로 각자의 신에게 공양을 바치는 모습을 거리에서 매우 흔하게 볼 수 있다.
힌두 전통과 신앙으로서, 발리 섬 사람들의 생활에 깊숙이 자리 잡고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바로 발리의 달력 체계다. 발리의 힌두교인들은 전 세계 사람들이 일반적으로 사용하는 그레고리력과는 다른 두 가지 달력을 사용한다. 하나는 파우콘(Pawukon)이라는 역법으로, 이에 따르면 1년은 210일, 10주로 구분된다. 다른 하나는 사카(Saka) 달력이다. 사카 달력은 달의 운행 주기에 맞춰 1년을 12개월로 나누고 새로운 달이 뜨는 시점에 한 달이 끝난다. 사카력은 서기전 3세기 말부터 데칸고원 일대를 지배한 사타바하나 왕조의 사타카르니 왕이 서기 78년에 사카족(Sakas, 인도스키타이족)을 물리친 것을 기념해 반포한 역법으로 알려져 있다. 즉 사카력은 부족들 간의 싸움이 이어져 혼란스럽던 시기가 막을 내리고, 서로 통합해 함께 살아가는 새로운 원년이 시작됐다는 의미를 담고 있는 것이다.
따라서 사카력의 새해 첫날은 평화의 날, 통합의 날, 다시 시작하는 날, 국가적인 화합의 날 등의 역사적인 의미를 지닌다. 이날은 사람들 간의 유대를 강화하고 서로의 차이를 자연스러운 요소로 받아들이며 명상하는 날로서 이어져 내려왔다. 사카력은 인도 전역을 넘어 주변 국가들로 퍼져나갔는데, 인도네시아에는 서기 465년경 힌두교가 전파될 때 함께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오늘날 인도네시아에는 이슬람교도가 다수를 차지하나, 발리 섬만큼은 힌두교의 전통이 지배적이다. 발리인들은 사카력의 새해 첫날을 녀피라고 부른다. 이는 ‘침묵’이라는 의미로, 발리인들은 새해 첫날 일하지 않고 철저하게 침묵하며 지낸다. 언제부터 이러한 전통이 시작됐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지만, 오늘날 녀피는 힌두교를 믿으며 살아가는 발리인들의 최대 명절이 됐다.
5. 기념일 주요 행사
녀피를 맞이하는 행사는 녀피 3일 전부터 시작돼 녀피 다음날까지 5일에 걸쳐 진행된다. 녀피 당일은 공휴일로 지정돼 상점과 회사는 물론 공항까지도 문을 닫는다.
1) 멜라스티(Melasti)
멜라스티는 녀피 3~4일 전에 모든 힌두교 사원에 있는 신성한 조상(彫像)을 물로 씻는 의식이다. 이렇게 조상을 닦아내는 것은 최고의 신 상 향 위디에게 바치는 의식으로, 이를 위해 발리인들은 모든 마을의 힌두교 사원에서 신의 조상을 꺼내 들고 바다, 강, 호수로 이동한다. 바다의 신 바루나(Varuna)의 영험한 기운이 깃든 물의 기원을 향해 순례하는 것이다. 먼저 신의 조상을 받쳐 든 이들이 앞장을 서고 다른 이들은 전통 의상을 입고 민속음악을 연주하며 뒤를 따라 행진한다. 그렇게 물가에 도착한 발리인들은 조상을 깨끗이 닦고 바다의 신에게 공물을 바친 후 사원으로 되돌아온다. 멜라스티 의식은 우주 모든 만물의 영혼을 정화하는 것이 목적이며, 바다와 강 같은 물의 기원에게서 아메르타(Amerta)라는 영원한 생명의 근원을 얻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발리인들에게 바다는 행복과 슬픔을 함께 포함하는 생명 그 자체를 상징한다.
멜라스티
녀피 삼사일 전, 마을의 힌두교 사원에서 신상(神像)을 꺼내 들고 바다, 강, 호수로 이동한다.
멜라스티
바다, 강, 호수로 이동하는 신상(神像)을 따라가며 전통 의상을 입고 민속음악을 연주하는 발리인들
멜라스티
신이 깃들어 있다고 믿는 신상(神像)을 강이나 바다로 옮겨 정성스럽게 물로 씻어준다.
2) 타우르 케상아(Tawur Kesanga)
녀피 하루 전날, 발리의 모든 마을에서는 악령을 퇴치하여 섬을 정화시키는 대규모 의식이 진행된다. 이를 타우르 케상아라고 하는데, ‘지불한다’는 의미의 타우르는 조화로움을 되찾기 위해 부정적인 힘에 공물을 바치는 것을 말한다. 케상아는 사카 달력의 9번째 달을 말하며, 안 좋은 날씨가 이어지는 이때를 발리 사람들은 가장 나쁜 달이라고 인식한다. 녀피 전날 정오에 발리 사람들은 각자의 집 문 앞부터 크고 작은 마을의 입구, 주요 교차로, 사원 등에 악령에게 바치는 닭이나 오리, 개, 염소부터 황소까지 다양한 제물을 놓아둔다. 이 의식은 모든 부정을 없애고 인간과 신,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의 균형을 맞춘다는 의미를 담고 있다. 동물과 식물을 의식에 사용하는 것은 발리 사람들에게 자연을 더 소중히 대하는 계기를 마련해준다고 한다. 동식물을 소중하게 기르지 않으면 의식을 치를 수 없고, 결과적으로 생명의 근원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타우르 케상아
녀피 전날 악령들을 달래기 위해 집, 교차로, 사원 등에 다양한 제물을 놓아둔다.
3) 오고오고(ogoh ogoh) 행렬과 오고오고 불태우기
녀피 전날 해가 지기 시작하면 사람들은 횃불을 들고 대나무 종 쿨쿨(kulkul)로 소란스러운 소리를 내면서 마을 주위를 돌아다닌다. 잠들어 있는 악령을 깨우기 위한 이 의식을 펭루푸칸(Pengrupukan)이라고 한다. 그리고 오고오고라 불리는 커다란 악령 인형들을 들고 행진하며 카오스 상황을 재현한다. 이를 부타 야즈나 의식(Bhuta Yajna Ritual) 또는 응루푹(Ngrupuk)이라고 한다. 오고오고는 대나무와 종이로 만든 거대한 괴물 형상으로, 인간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악령(bhuta: 부타)을 상징한다. 인형 가운데 일부는 발리의 전통 설화에 등장하는 괴물을 형상화한 것이며 모두 이빨이 날카롭고 눈이 부리부리하고 성난 듯 사나운 모양새를 하고 있다.
1980년부터 녀피 전날 의식으로 행해지고 있는 오고오고 행렬은 인형 안으로 떠돌이 악령들을 불러들이는 것으로 시작한다. 이후 오고오고 인형을 들고 마을 곳곳을 도는 행진이 끝나면 마을 중심 광장이나 교차로에 모여 오고오고를 불태워 그 안에 담긴 악령을 제거함으로써 의식은 절정에 달한다. 응루푹 의식은 다음날 해가 뜰 때까지 계속되고, 의식이 이어지는 내내 인도네시아 민속음악인 가믈란(gamelan)이 울려 퍼진다. 발리 사람들은 악령이 인간과 우주의 관계를 혼란스럽게 만드는 존재라고 생각하며, 이러한 의식을 통해 악한 힘이 중화되어 인간과 자연의 조화로운 관계가 방해 받지 않게 된다고 믿는다.
오고오고 행렬
오고오고 행렬과 불태우기 행사는 1980년부터 녀피 전날 의식으로 행해지고 있다.
오고오고 행렬
오고오고는 대나무와 종이로 만든 거대한 괴물 형상으로, 인간 세계를 둘러싸고 있는 악령을 상징한다.
오고오고 불태우기
오고오고 인형을 불태움으로써 인형 안으로 불러들인 악령들을 제거하는 의식이다.
4) 녀피
녀피 당일이 되면 발리의 모든 거리가 고요해진다. 일상생활의 소음조차 잦아들고 사람을 찾아보기도 어렵다. 거리에는 오직 페칼랑(Pecalang)이라 불리는 사람들만 눈에 띄는데, 검은 제복과 우등(Udeng: 발리의 전통 의례용 모자)을 착용한 페칼랑은 거리의 안전을 지킬 뿐 아니라 녀피의 침묵을 방해하는 행동을 막는 역할을 한다.
녀피가 시작되는 오전 6시부터 24시간 동안은 차량 운행이 정지되고 전등이나 라디오, 텔레비전을 켜지 않으며 아무도 일을 하지 않는다. 관광객도 호텔 안에 머물도록 장려된다. 이는 전설에 따르면, 발리에 온 악마들이 고요한 섬을 보며 사람들이 없다고 믿어 발리를 떠나게 하려는 의미를 지닌다. 또 녀피는 세상이 새로 시작되는 날, 인간이 침묵으로 자신과 세상의 힘을 스스로 통제할 수 있음을 보여주는 상징적 의미를 갖는다고도 한다. 힌두교인들에게 의미가 큰 날이지만 발리에서는 힌두교를 믿지 않는 사람들도 사회의 일원으로서 조용히 의식에 참여한다.
녀피 당일 발리 시내
검은 제복을 입은 페칼랑만이 거리에서 보일 뿐, 발리 섬 전체는 하루 동안 고요한 침묵으로 빠져든다.
녀피에는 카투르 브라타(Catur Brata)라는 다음의 네 가지 의례를 따라야 한다.
① 아마티 그니(amati geni): 불빛이 없을 것. 전기나 불을 사용하지 말 것.
② 아마티 카르야(amati karya): 일 · 생업을 하지 말 것.
③ 아마티 를룽안(amati lelungan): 아무 데도 가지 말 것. 집 밖 출입을 하지 말 것.
④ 아마티 를랑우안(amati lelanguan): 오락과 유흥을 하지 말 것. 흥청망청 놀지 말고 금식, 금욕할 것.
5) 응엠박 그니(Ngembak Geni)
녀피 다음날은 응엠박 그니라고 한다. 응엠박은 ‘자유롭다’, 그니는 ‘불’이라는 뜻으로 불을 새롭게 지피듯 다시 활동할 수 있는 날을 의미한다. 녀피를 침묵하며 지낸 힌두교인들은 다음날 모두 함께 최고의 신 상 향 위디에게 새해에는 과거의 모든 죄가 정화된 새로운 인간이 되게 해달라는 기도를 올린다. 그런 후 친지와 친구를 방문해 용서를 구한다. 구체적인 잘못부터 확인되지 않은 잘못까지, 미처 알지 못했더라도 뜻밖에 상처를 준 일까지 모두 용서를 주고받는다. 이는 원망과 미움을 잊고 서로 용서함으로써 새로운 해에 힘을 합쳐 살아가자는 의미다. 서로 용서를 구한 후에는 힌두교 경전을 함께 읽는 다르마 찬티(Dharma Canthi) 의식을 행한다.
응엠박 그니
녀피 다음 날 친지, 이웃들과 명절 음식을 나누고 서로에 대한 미움이나 원망을 모두 용서하는 자리를 마련한다.
[네이버 지식백과] 녀피 (세계의 축제 · 기념일 백과, 류정아, 오애리, 김홍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