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완 서
그리고 몇 달 후 나는 조금씩 다시 글쓰기를 시작할 수가 있었다. 새로운 소설도 썼고, 중단했던 장편 연재도 다시 시작해 마무리를 지었다. 이국에서 경험한 우리 말에 대한 그리움은 곧 글을 쓰고 싶은 욕구의 다른 표현이었을 뿐임도 이제는 알게 되었다.
다시 글을 쓰게 됐다는 것은 내가 내 아들이 없는 세상이지만 다시 사랑하게 되었다는 증거와 다르지 않다는 것도 안다.
내 아들이 없는 세상도 사랑할 수가 있다니, 부끄럽지만 구태여 숨기지는 않겠다. 그 후 지금까지의 내 홀로서기는 대체로 성공적이었다고 생각한다. 지켜보던 딸들도 엄마가 마침내 해냈다고 일단은 마음을 놓았으리라 역설적인 얘기가 될지도 모르지만 나의 홀로서기는 내가 혼자가 아니었기 때문에 가능했다고 생각한다. 가까이서 멀리서 나를 염려해준 여러 고마운 분들을 비롯해서 착한 딸과 사위들, 사랑스러운 손자들 덕분이다.
나만 알고 느끼는 크나큰 도움이 또있다. 먼저 간 남편과 아들과 서로 깊이 사랑하고 믿었던 그 좋은 추억의 도움이 없었다면 내가 설사 홀로 섰다고 해도 그건 허세에 불과했을 것이다. 나는 요즘 들어 어렴풋하고도 분명하게, 눈에 보이지 않는 사람의 이런 도움이야말로 신의 자비하신 숨결이라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주여,저에게 다시 이 세상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그러나 주여 너무 집착하게하는 마옵소서."
[해설]
통곡과 말씀의 힘 황도경 문학평론가
박완서 개인의 내면적 기록인, 더구나 저주와 분노와 포악으로 일관하는 것처럼 보이는 이 글이 우리에게 감동을 주는 것은 그리고 이글을 박완서 문학의 중요한 일부로서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는 것은, 이처럼 이 글이 단지 아들 잃은 어미로서 비통함을 토로하고 기록한 것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계기로 하여 삶과 죽음, 신의 문제에 대한 성찰로 나아가고 있다는 점에서이다. 이글은 자식 잃은 어미의 슬픔 그 자체로서가 아니라 그 슬픔이 이끌어가는 생명과 존재에 대한 인식의 깊이에 있어서 우리의 주목을 요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