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심 생활 입문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지음
제1부 신심 생활에 대한 동경
제1장 참된 신심
필로테아님, 그대는 하느님을 진정한 마음으로 섬기려는 사람입니다.
하느님께서 신심 생활에 몰두하는 사람들을 보시고
기뻐하시리라 믿으며 신심의 덕을 쌓으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처음에 착오가 있으면 그 오류가 점점 커져
바로잡기가 어려워지므로 먼저 신심의 덕이
무엇인지 제대로 알아 둘 필요가 있습니다.
오류와 허무한 것들은 수없이 많으나
참된 신심은 오직 하나뿐이며,
그러므로 무엇이 참된 신심인지 분별하지 못하면
그릇된 길로 나아가 미신에 빠질 위험에 놓이게 됩니다.
아렐리우스라는 화가는 그림을 그릴 때
자기가 사랑하는 여인들의 생김새와 모습을 따라 그렸다고 합니다.
이처럼 사람들은 자신의 취향에 맞게 신심을 그리려 합니다.
금식을 중시하는 사람들 중에는 자기 마음이
미움으로 가득 차 있으면서도 금식만 하면
신심이 깊어진다고 생각하는 사람도 있습니다.
음식 절제를 중시하는 사람들 중에는
목이 말라도 포도주나 물을 마시지 않고 참으면서
남을 비방하거나 모함하는 말로 이웃 사람의 피를
송두리째 마르게 하는 일을 서슴치 않는 사람도 있습니다.
또 어떤 사람들은 매일 여러 가지 기도를 바치는 것이
참된 신심이라고 떠벌리면서도 같은 혀로 가족이나
이웃 사람들에게 독설을 퍼부으며 타인을 무시하는
교만과 멸시의 언사를 서슴지 않습니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에게 기꺼이 자신의 돈주머니를 풀어
선심을 쓰지만 원수를 용서하는 선량한 마음이 없는 사람도 있고,
원수를 용서한다고 하면서도 빚을 갚을 형편이 못 되는
채무자에게서 악착같이 빚을 받아 내는사람도 있습니다.
세상에서는 이런 사람들이 신심 깊은 사람으로
통할지 모르겠지만 사실은 그렇지 않습니다.
사울 임금의 병사들이 다윗을 잡으려고
그의 집을 수색했을 때 그의 아내 미칼은 인형에게
다윗의 옷을 입혀 이불 속에 넣은 다음 남편이 병으로
누워 있는 것처럼 꾸며서 병사들을 속였습니다(1사무19,8-17참조).
이와 마찬가지로 많은 사람들이 거룩한 경건과
관련된 일정한 외적 행위들을 통해서 자신을 가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세상 사람들은 그들을 참으로 경건하고 영적인
사람들이라고 생각하지만 사실 그들의
신심 생활은 경건을 가장한 허상에 불과합니다.
필로테아님, 진실하고 살아 있는 신심은
하느님의 사랑을 기초로 하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말해 신심은 하느님의 참된 사랑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그러나 사랑 자체를 신심이라고 하지는 않습니다.
하느님께서 주신 사랑으로 우리 영혼이
기쁨으로 충만해질 때 이를 '은총'이라 하고,
그 사랑으로 우리가 덕을 행하려고 노력할 때
이를 '애덕'이라고 합니다.
그리고 그 애덕으로 우리가 일상을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자주 선을 행할 때 이를 '신심'이라고 합니다.
타조는 아예 날지 못하고, 닭은 가끔 날갯짓을
하지만 잘 날지는 못합니다.
그러나 독수리나 비둘기 또는 제비 같은 날짐승들은
매우 높고 빠르게 날아다닐 수 있습니다.
이처럼 죄인은 결코 하느님께 날아갈 수 없고,
그가 시도한다 해도 고작해야 지상에 머물거나
늘 지상 것들을 추구할 뿐입니다.
아직 신심의 경지에 이르지 못한 사람이 간혹 선을 행함으로
써 하느님께로 날아가기도 하지만, 그것은 매우 드문 경우입니다.
대개는 가볍게 날지 못하고 매우 둔하게 납니다.
그러나 신심이 있는 사람은 하느님께로
빠르고 높게 날아갈 수 있습니다.
곧 하느님의 사랑이 우리 안에서 활동함으로써 우리가
그 사랑을 통해 열성적으로 행하는 선행이 일상적인 것이 될때,
이 자연스러운 행위를 가리켜 신심이라고 합니다.
우리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킬 마음이
들게 하는 것이 애덕이라면,
기쁜 마음으로 지키게 하는 것은 신심입니다.
그러므로 하느님의 계명을 다 지키지 않는 사람은
선량한 사람도 아니고 신심이있는 사람도 아닙니다.
신심 깊은 사람으로 인정받으려면 애덕을 지녀야 할 뿐만 아니라
선을 행할 때에도 기꺼이 그리고 신속하게 해야 합니다.
또한 신심이란 어떤 면에서 완전한 사랑을 뜻하므로
우리가 하느님의 모든 계명을 기쁜 마음으로
열심히 지키게 할 뿐 아니라, 될 수 있는 대로 많은 선을 행하게,
곧 계명준수와 의무 이행에 그치지 않고 한 걸음 더 나아가
성령의 감도感導에 힘입어 사랑으로
복음의 가르침을 실천에 옮기게 만듭니다.
병에서 간신히 회복된 사람이 길을 갈 때
숨을 헐떡이면서 천천히 걷듯이,
참회한 뒤 이제 막 죄에서 벗어나 신심의 경지에 오르려는 사람은
하느님의 계명의 길을 헐떡이며 천천히 걸어갑니다.
그러나 일단 신심의 경지에 도달하면 그의 걸음걸이는
마치 건강한 사람과 똑같아 질 뿐 아니라 뛰어갈 수도 있게 됩니다.
비록 험난한 길이지만 영적 가르침과 성령의 감도에 힘입어
그 길을 헤치면서 달려가게 됩니다.
결국 사랑과 신심이란 불과 불꽃 같은 관계입니다.
사랑은 영적인 불이고, 신심은 이 불에서 타오르는 불꽃입니다.
신심은 하느님의 계명을 지키고 나아가
영적인 가르침과 성령의 감도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여
실천하는 불꽃과 같은 것입니다.
첫댓글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