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아프리카 공화국
아프리카 최남단에 위치한 남아공,
남한의 12배에 달하는 면적을 가진 남아공.
행정수도는 프리토리아(Pretoria)이며, 입법수도는 케이프타운(Cape Town), 사법수도는 블룸폰테인(Bloemfontein)이다.
현지인들에게 남아공의 수도를 물으면 대통령이 있는 행정수도인 프리토리아 라고 답한다.
종족은 백인 13.6%, 흑인 75.2%, 아시아계 및 혼혈인 8.6% 등으로 구성되어 있다.
언어는 영어와 아프리칸스(Africans:네덜란드어 계통)가 공용어이며, 줄루어(Zulu) 등 9개 토착어도 쓰인다.
종교는 대부분이 기독교이며, 힌두교·유태교·이슬람교 및 토착신앙이 공존한다.
개방경제체제를 표방하고 있으며,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광물자원 보유국의 하나로
금·망간·크롬·형석의 매장량은 세계 제1위이며,
우라늄·다이아몬드·철광석·동·석탄 등 중요자원을 포함한 42개 종류의 광물을 생산하고 있다.
특히, 현대의 기간산업 및 군수산업에 불가결한 망간·크롬·바나듐 등의 자원이 생산되고 있다.
아프리카에서 공업이 가장 발달되어 있으나 국제적 고립으로 인하여 내수용 산업에 많이 치중되어 있다.
이 나라의 정체는 대통령 중심제의 공화제이며, 국가원수이자 행정수반인 대통령은 하원에서 선출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아프리카 대륙의 남단에 위치하고 있으며, 국토의 대부분이 고원으로 되어 있다.
대서양과 인도양 두 대양에 걸친 2500킬로미터가 넘는 해안선을 가지고 있다.
오렌지 자유주와 나탈 경계에는 드라켄즈버그 산맥(최고봉 타바나 은틀레니아는 표고 3,482미터)이 있다.
케이프 주의 내륙 대지의 남쪽은 해안선과 병행해서 달리는 표고 2,000∼2,700m의 산맥이 있다.
해안 지방과 하천 유역은 농업에 적합하다.
남아프리카 최대의 오렌지강이 국토의 중앙을 횡단하여 대서양으로 흘러들고 있다.
다채로운 지형과 뛰어난 자연경관, 문화적 다양성으로 유명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1994년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인종차별정책)이 법적으로 폐지되자, 관광객들이 방문하고 싶어하는 나라가 되었다.
소수 백인들에 의해 지배되었던 정부는 아파르트헤이트 정책에 따라, 주택·교육
그리고 실질적인 삶의 모든 영역에서 인종에 따른 엄격한 분리 정책을 시행했다.
정부는 주민들을 백인, 유색인, 흑인으로 구분하여 3개 국가로 분리했다.
첫번째는 영국과 네덜란드계(보어인) 조상을 가진 백인 집단이다
이들은 정치적 지배권을 얻기 위해 몇 세대에 걸쳐 싸웠고, 그 투쟁의 폭력적 정점은 보어 전쟁(1899~1902)이었다.
2번째 흑인 집단은 북서쪽 사막지역에서 수렵과 채집으로 살아가는 산족, 동쪽 고원에서 주로 목축업에 종사하는 줄루족, 그리고 남쪽의 케이프 지역에서 농업에 종사하는 코이코이족 등으로 구성된다.
유색인종 집단은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종인 컬러드와 인도·말레이시아·필리핀·중국계 아시아 인종으로 구성된다.
아파르트헤이트 체제는 국제사회로부터 맹렬한 비난을 받았고 거센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1980년대 중반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자국이 세계의 최빈민국에 속해 있으며, 경제·문화적으로 배척의 대상이라는 것을 알았다.
결국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다문화 지역에서 인종적 분리는 지속시키기 어려운 정책이라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 정책의 붕괴는 오랫동안 투옥되었던 반체제 인물 넬슨 만델라의 지도 아래
흑인 다수당이 승리한 1994년 선거에서 정점에 이르렀다.
이러한 변화 속에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짧은 시간 내에 사회적 평등을 이루는 데 괄목할 만한 성장을 거두었다.
오늘날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비옥한 농경지, 풍부한 광산자원, 관광명소, 고도로 발전하는 지적 자본을 바탕으로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혼합경제를 향유하고 있다.
하지만 한층 개선된 정치적 평등과 경제적 안정이 사회적 안정까지 보장하는 것은 아니다.
21세기에 들어서 남아프리카 공화국은 여전히 증가하는 범죄율, 인종간 긴장, 주택과 교육 기회에서의 커다란 격차,
유행성 전염병, 에이즈 같은 풀기 어려운 난제들에 직면해 있다.
남아공의 입법수도 케이프타운(Cape Town)
케이프타운은 남아공의 남서쪽 해안가에 위치해 있는 항구 도시로서
금융 중심지인 요하네스버그는 고속도로로 이어져 있다
남아공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이자 제2의 도시며 웨스턴케이프주의 최대도시
네덜란드가 이 지역을 본격적으로 통치하기 전까지 이 지역은 그저 유럽선박들이 아시아로 가던 도중 들리는 기착지에 불과했다
1.에서 네덜란드 동인도회사에서 사람들이 이 지역에 파견되어 요새를 건설한 이후 이곳으로 이주하여 정착촌을 형성하였다
이때 부족했던 노동력을 충원하기 위해 주변 부족들을 노예로 삼거나 동인도와 마다가스카르에서 노예를 수입했으며 정착한 네덜란드인과 노예 사이에서 여러 혼혈아가 탄생하였는데 이들이 바로 케이프 컬러드의 조상이다.
2.프랑스전쟁으로 인해 네덜란드가 멸망하고 바타비아공화국이 세워지자 영국이 케이프타운을 일시 점령했다가
네덜란드에게 다시 케이프타운을 반환했다.
3.하지만 이후 블라우베르그 전투에서 승리한 영국이 다시 케이프타운을 점령하였고
영국과 네덜란드조약에 의해서 케이프타운은 완전히 영국영토가 되었고 케이프 식민지의 수도가 되었다.
3.19세기 후반 남아프리카에 여러 철도가 건설되고 금광이 발견되면서 이민자들이 몰려들었고
케이프타운의 인구는 2배이상 늘어 여러 인종들이 어울려 살고 있었으나
국민당의 집권 이후에는 (아파르트 헤이트/인종차별정책 )인종에 따라 거주지가 정해지게 되었고
이중 케이프타운 교외지역이 백인구역으로 선포된 것으로 인해 이 지역에 살던 유색인종들은 강제로 이주해야만 했다
아프리카 국민회의가 집권하여 아파르트헤이트가 완전히 막을 내린 이후의 케이프타운은 물 부족 문제,
웨스턴케이프 독립운동 등 여러 사건들과 직면하여 현재에 이른다.
운전할때 절대로 창문을 열어놓지 말아야하며
밖에서 보이는곳에 가방이나 지갑을 두지 말라고
남아공 환율 1란드= 80원이고
남부 아프리카 전역의 관광지에는 카드가 통용된다.
치안이 좋다고 말하기는 어렵다.
주로 가난한 흑인 인구가 거주하는 지역이 생계형 범죄 발생율이 높다
하지만 선교사들도 많고 한국인들이 많이 살고 있는 도시이다.
한인식당은 기본이고, 한인슈퍼마켓과 한인미용실 등도 있다.
전철 메트로레일 웨스턴 케이프는 타 대도시의 전철보다는 안전한 걸로 알려져있지만
역시 치안상의 문제로 백인이나 아시아계, 흑인들 가운데서도 돈이 있는 계층은 잘 이용하지 않고
주로 돈이 없는 빈민층 이이용한다.
케이프타운과 인근 지역은 단수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흑인보다 컬러드라 불리는 흑백 또는 백인+인도인 아니면 또 다른 조합의 혼혈인종이 대다수인 편이다
영어는 공용어고 남아공에서 다 통하긴 하지만 모국어 인구는 현저하게 낮다.
보다 정확한 이유는 흑인을 비롯한 남아공 내 타 지역에서 온 이주자들이 엄청 늘어났고
또 외국에서도 케이프타운의 명성을 듣고 옮긴 인구가 많았기 때문이다
중산층 이상의 계층은 은퇴 후안전하고 기후, 풍광 좋은 케이프타운에서 살려고 오고
하층 같은 경우는 일자리를 위해 케이프타운으로 많이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