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황인찬
너는 멀리 떠나기로 결심했다 한 번도 가본 적 없는 곳으로 그러나 주말이 끝나기 전에 돌아올 수 있을 정도로만 먼 곳으로
가서는 제철 음식을 먹기로 했다 초봄에 어울리는 여리고 어린 쑥과 향기로운 더덕 살이 오른 어류들, 평소에 좋아한다고 생각하지만 사실은 많이 먹어 본 적 없는 것들을 너는 떠올렸다
너는 인적 없는 바다의 아름다움에 감탄할 마음을 먹고 있었다 한국에도 이런 곳이 있다는 데 놀라며 자연이 만들어내는 아름다움에 새삼 감탄하며 기뻐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기쁨은 이렇게
사건이 일어나기 전에도 찾아온다
멀리 떠난 너는 죽음을 생각하며 눈을 감았다 눈을 감은 너는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깨달으며 숨을 쉬었다 여전히 두 사람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너는 주말이 끝나기 전에 집으로 돌아갔다
슬픔은 바닥을 뒹구는 깨진 유리병 사이에 앉아 돌아올 너를 상상하고 있었다
캐치볼
황인찬
던진 공이 돌아오지 않는다
파울
선언하는 새들
잔디가 자꾸 죽으려 한다
죽은 것은 투수
나는 그 자세가 마음에 든다
공의 속도로
지면과 새가 부딪치듯이
손이 자꾸 헛나가니까
내가 자꾸 누우려 한다
원근법에 의거하여
글러브는 펜스 위에, 잔디밭은 구름 위에
아니 조금 더
던진 공이 날아간다
글러브와 잔디밭을 통과하며
포물선을 그리며
떨어진 적 없으니까
새들은 침묵한다
― 『구관조 씻기기』, 민음사, 2012.
황인찬
경기도 안양에서 태어났다.
중앙대학교 문예창작학과를 졸업했다.
2010년 《현대문학》 신인추천으로 등단했다.
시집 《구관조 씻기기》로 제31회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했다.
현재 '는' 동인으로 활동 중이다. 시집으로 《구관조 씻기기》《희지의 세계》《사랑을 위한 되풀이》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