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교과서의 기원은 구한말로 거슬러 올라간다. 1895년 학부에서 출판한 《국민소학독본》이 우리나라 최초 교과서로 알려져 있다. 이 책은 「소학교령」에 의해 제도적으로 편찬한 것이어서 최초 국정교과서인 셈이다. 이 때는 검정교과서 역시 사용할 수 있었으나 민간인의 출판능력의 한계로 활성화되지 못했다. 대신 일본인에 의해 주로 검정교과서가 출판되었다. 반면 민족자본에 의해 출판된 검정교과서는 그리 많은 편이 아니었다. 1906년 휘문학교 교재로 사용했던 것으로 알려진 민족사학자 황의돈이 저술한 《중등조선역사》가 대표적이다. 당시 국정교과서든, 일본인에 의해 만들어진 검정교과서든 편찬목적은 일치했다. 바로 친일정부의 정책적 목적에 따라 식민지교육 기본방침에 충실한 교과서 발행이다. 그러나 민간주도로 제작된 검정교과서는 자주독립, 반일사상의 고취, 자주성 확립을 위한 민족적 성격이 짙은 것들이었다.
“국정교과서, 규격화된 인간 양성 도구”
이와 같이 국정교과서는 당대의 지배층과 시대가 요구하는 인간성을 만드는 데 충실한 도구였던 셈이다. 이 같은 의도는 해방 후 친일정부나 군사정부에 이르기까지 여전히 답습되었다. 대표적인 예가 박정희 정권시절 국민교육헌장에 충실한 교과서 편집방침이나, 전두환 정권시절 도덕교육에 맞춰진 편집방침이다. 이들 모두는 자발적으로 권력에 복종하는 ‘착한 인간’을 기르는 데 목적이 있었다. 자연 이러한 의도에 맞는 국정교과서는 정형화되고 획일화될 수밖에 없었다.
최근 교육인적자원부는 현행 국정교과서 제도를 폐지하기로 했다. 올해 검정 기준을 마련하고 내년부터 교과서를 개발해 2010년부터 전면 검․인정교과서로 대체하겠다는 방침이다. 이는 100년만에 시도하는 교육 대혁신방안이나 다름없는 일이다.
국정교과서 폐지는 편찬에 있어 경쟁체제 도입을 의미한다. 곧 교과서 내용의 질을 높이는 동시에 학교의 교과서 선택권을 확대하는 효과를 가져온다. 이는 그동안 획일적이던 교육에서 창의성과 다양성 교육으로 전환을 의미한다. 마침 정부가 내년부터 시범 운영키로 한 공영형 혁신학교의 시도와 궤를 같이한다. 더욱이 2010년부터 시행할 계획인 교사의 ‘교과서 선택권’과, 같은 과목이라도 교사별로 다른 문제를 출제해 평가하는 ‘교사별 학생평가제’의 성패를 가름하는 시도이기도 하다.
그러나 무엇보다 정치․사회적 상황에 따라 춤추던 교과서 개정 폐단을 막을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최근 황우석 파동에서 보듯, 의도된 목적에 의해 검증되지 않은 사실까지 교과서에 수록하고 뒤늦게 삭제해야하는 해프닝이 그것이다. 이 같은 폐단은 4~5년 주기의 정기 검정제가 도입되면 예방할 수 있는 일이다. 미리 계획을 세우고 제작 준비를 하기 때문에 검증되지 않은 자료가 취급될 여지가 거의 없다.
“교육전반의 혁신과 혁명적 변화 예고”
그런 점에서 교과서검정제도가 제대로 정착되기 위해서는 필진의 집필제한 범위를 최소화하는 입장에서 ‘최소한의 엄격하고 필수적인 검정기준’ 마련이 선행돼야 한다. 우리라고 해서 일본 후쇼사(扶桑社) 역사교과서와 같이 왜곡 기술된 교과서가 나오지 말란 법이 없기 때문이다. 또 교사에게 ‘교과서 선택권’과 ‘교사별 학생평가제’를 실시하면서 현행 수능제도와 같은 획일적인 평가제의 지속은 오히려 교사의 창의적 수업을 가로막기 마련이다. 따라서 과거의 본고사과 같이 대학의 ‘학생선택권’ 부활도 검토해 볼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선 학생들에게 ‘교사선택권’이나 ‘학교선택권’을 갖게 하면 궁극적으로 ‘교원평가제’ 실시와 고교평준화 제도의 개선을 꾀할 수 있다. 문제는 과거 예처럼 사교육비 증가나 명문학군 형성과 같은 부작용을 어떻게 해소하느냐다. 이는 다양한 검정교과서의 등장으로 공교육이 활성화되면 해결될 수 있는 사안이다. 결과적으로 국정교과서 폐지는 우리 교육의 전반적인 혁신과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올 것이라는 데 이론의 여지가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