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떻게 평등은 혐오와 우울로 귀결되는가?
평등의 두 얼굴을 해부하다 - 평등에 대한 집착은 어떻게 혐오와 우울을 불러오는가?
모두가 평등하다는 조건이 신분 차이와 같은 가장 큰 차이를 없애기 때문에 이제 사람들은 아주 작은 차이들에 대해 첨예한 의식을 갖게 된다는 것이 토크빌의 관찰이다. 이 지점에서 토크빌은 이미 현대의 신자유주의적인 '평등' 사회의 병리를 앞서 진단하고 있다. '평등이 크게 증가하면 할수록 그에 대한 소망은 더욱더 충족될 줄 모른다. 이로부터 현대의 고유한 질병이라 불리는 우울이 민주주의 국가 주민들 사이에 확산되고 있음을 토크빌은 본다. 고립 속의 무한경쟁은 중요한 측면에서 민주주의적 평등 원칙에 내재한 요소의 병리적 발현이다. 우리는 어떻게 이를 극복할 것인가? 평등이 포기할 수 없는 민주주의의 가치라면 우리는 어떤 평등을 추구해야 하는가?
바로 이 마지막 질문, 즉 '어떤 평등이어야 하는가'에 대해 '한국문학과 공통적인 것'이라는 주제 아래에 집약되어 있다. 모두의 공통 자원인 언어를 매개로 한다는 기본 성격 때문에 문학이 '공통적인 것'이라는 데에는 이견의 여지가 없다. 하지만 현실에서 문학, 그리고 예술 일반이 이러한 공통성을 온전히 체현한 적은 드물다. 이제까지 문학의 공통성을 제한해온 것으로 우리는 크게 두 가지를 꼽을 수 있다. 하나는 전통적으로 문학을 정의하는 기능을 수행해온 비평이 제도화되면서 경직되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모든 가치를 양적인 교환가치로 측정하려는 시장이 보편성을 얻었다는 것이다.
토크빌은 신자유주의적 세계 속의 시민들은 경쟁 속에서 타인에 대한 우위를 확보하고자 작은 차이에 집착하는 '평등'한 개인들일 것임을 이미 예견했지만, 공통적 감음에 의해 기존의 문학장 안팎이 직접 연결되면서 나타나는 것은 새로운 종류의 '평등'이다. 이 속에서 전통적 의미의 노동, 예술과 대립적으로 파악되는 노동을 넘어, '공통적인 것'을 생산하는 노동, 시장가치와 같은 외부의 척도를 뛰어넘는 자생적 원천을 공동으로 생산하는 노동의 형태를 독려하고 표현하는 새로운 노동 문학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