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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자의 마을 #4
마로니크가 만들어 준 불의 길을 뚫고 마지막 기사들이 도착했다.
걸린 시간에 비해 그들이 구한 사람은 적었다.
그들이 간 중앙 광장에는 생존자들이 거의 없었을 뿐더러, 가장 많은 수의 언데드들이 들끓고 있었던 것이다.
기사 전원이 무사히 도착하자 윌리엄은 체르니의 다음 지시를 기다렸다.
어느정도 대열이 정리되자 체르니는 가만히 눈을 감고 마나를 느꼈다.
작고 생기가 없는 검은 마력이 다수 포진해 있었고 그 사이사이에는 커다란 검은 마력도 있었다.
아마 작은 것은 언데드, 큰 것은 흑마법사나 네크로멘서의 것이겠지.
혹시 사람들의 짓인가하는 생각을 품고 있던 체르니는 사실을 확인하고는 마음이 착잡해졌다.
하지만 그것도 잠시, 그녀는 포위망이 약한 곳을 탐색했다.
멀리서 새하얀 신성력이 느껴졌다.
신관일까.
그 곳은 그들의 영향인지 포위망이 허술했다.
마법사만큼이나 보기 드문 신관을, 그것도 이런 시골마을에서 필요한 순간에 보다니, 운이 좋았다.
체르니는 주저하지 않고 그쪽으로 몸을 돌렸다.
...
계속해서 반복되는 지루한 전투.
한걸음 씩 내딛을 때 마다 언데드들이 꾸역꾸역 밀려오고, 다시금 그들을 짓밟고 나아간다.
붕대를 칭칭 감고 있는 머미 하나를 반토막 냈다.
초록의 피가 눈 앞을 가린다.
구역질 할 시간조차 주지 않고 다음 적이 달려든다.
몸에 익은 동작으로 심장에 검을 쑤셔 넣었다.
비명소리에 귀가 먹을 것만 같다.
생명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지만 한때는 분명 사람이였던 존재들.
안식이 필요한 존재들.
그들의 몸을 가를 때 마다 그들의 존엄성 마저도 파괴하는 것만 같다.
강한 혐오감을 느끼지만 수년간 연마해온 검은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다음 적을 향하여 시퍼런 칼날을 뻗는다.
이번엔 피가 얼굴로 튀었다.
토할 것만 같다.
발 아래에서 기척이 느껴진다.
기어오르는 좀비의 팔의 잘랐다.
아마도 뒤에 따로오는 사람들에 의해 처참하게 밟히고 짓이겨지겠지.
애써 시선을 외면한다.
차라리 빠르게 나아가고 있었다면 좀 더 나았을 것이다.
하지만 평민들이 다수인, 심지어 노인이나 어린 아이까지 포함되어 있는 상태에서 낼 수 있는 속력은 지금이 최대다.
지나치고 싶어도 절규하는, 피에 굶주려있는 그들의 모습 하나, 하나가 선명하게 뇌리에 새겨진다.
하지만 멈추지 않는다.
적어도 지금은 공포, 혐오감과 몸을 움직이는 의지는 별개의 문제이다.
울음이 터져 나오려고만 하는 목을 애써 가다듬으며 소리쳤다.
"거의 다 왔습니다!"
두렵고 괴로운 것은 나 뿐만이 아닐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들을 수 있도록 마나를 실어 외쳤다.
사기가 오른 기사들은 우렁찬 함성을 내질렀다.
"와아아아"
...
파지지직!
멀리서 신성 마법, 홀리 볼트가 날아왔다.
신관이였다.
언데드의 수가 워낙 많았기에 마법 시전에 드는 신성력에 비해 비효율적인 공격이였으나 시전자들의 위치를 알려주는 데에는 효과적이였다.
체르니들은 번개가 날아온 방향을 향하여 박차를 가했다.
지금껏 봐온 것과는 달리 제법 큰 규모의 저택이 눈에 들어왔다.
음기가 강하게 내리깔려 있는 이곳과는 달리 층 마다 불빛이 새어나오는 것이 그곳에서는 사람 사는 느낌이 났다.
끼이이익
굳게 닫혀 있던 저택의 대문이 열렸다.
주변을 에워싸고 있던 언데드들의 포위망이 이 전보다 훨씬 느슨해졌다.
급하게 철문을 열어제낀 여인이 체르니들을 보고 소리쳤다.
"이쪽이예요!"
...
그 곳은 죽은 로이스트 세이단 백작의 별장이였다.
신관들이 친 결계 덕분에 별장 안에는 언데드들이 접근하지 못했다.
게다가 별장의 규모가 제법 컸기에 기사들과 구출된 마을 사람들 모두를 수용할 수 있었다.
하지만 평민들은 평소 때라면 꿈에도 못 꿀 화려한 저택에 들어왔음에도 누구 하나 기뻐하지 않았다.
오히려 침울해하고 있었다.
그 중 몇몇이 목을 놓아 대성통곡 하는 통에 그렇잖아도 어수선한 분위기에 혼란을 가중시켰지만 아무도 그들을 제지하지는 않았다.
가족과 친구들을 마을에 두고 온 그들이였기에, 살기 위해서 좀비가 된 그들을 밟고 지나쳐 올 수 밖에 없었던 그들이였기에 그들의 슬픔은 클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모두들 그들에게 강한 연민을 느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들을 위로해주고, 수습하지도 못한 시체의 장례를 치뤄주지는 못 했다.
신관들은 부상자들을 치료하느라 바빴고 기사들은 저택 주변을 정리해야 했다.
그리고 체르니들과 신관들은 현 상황을 타개해나갈 방법을 찾아야 했다.
"휴우- 다행입니다. 이렇게 기사분들이 계셨군요."
"우리도 덕분에 좀 쉴 수 있게 되었군."
다이엔이라 불린 여신관과 체르니들을 대표해서 마로니크와 윌리엄이 회의를 시작하였다.
"아닙니다. 당연히 해야할 일을 했을 뿐인걸요. 그나저나 이 상황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시죠?"
다이엔이 수상하다는 듯이 마로니크를 보았다.
큰 도시도 아니고 건질 것도 하나 없는 작은 시골 마을에 호위기사를 줄줄이 끌고 온 고위 귀족으로 보이는 남매와 언데드들이 같은 시점에 나타났기 때문이다.
"우리를 의심하는 건가?"
"해둘 것은 확실하게 해놓는 것이 좋겠죠."
"언데드와 우리가 나타난 시점이 일치했기 때문에?"
"우연이라고 하기엔 석연찮은 부분이 많이 있죠."
마로니크의 얼굴에서 심기가 상당히 불편하다는 것이 묻어났다.
"그건 그쪽도 마찬가지인거 같은데?"
"뭐라구요?!"
다이엔은 상대가 귀족이라는 것도 잊고 큰소리를 내고 말았다.
언데드들과 신관을 연관 짓는다는 것은 그들에겐 더 없이 큰 모욕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이에 질세라 마로니크도 다이엔을 날카롭게 노려보았다.
"서로 의심하는 상황에서 협력이란 있을 수 없겠죠."
"동감이군."
"언제 뒤통수를 노릴지도 모르는 일이구요."
"그럴 수도 있겠군."
"잠시만요!"
마로니크와 다이엔 사이의 대화가 이상한 곳으로 흘러가자 윌리엄이 방긋 웃으며 두 사람 사이에 끼어들었다.
한창 화가 치밀어 오르던 차에 베실베실 웃으며 끼어든 이상한 놈 덕분에 화를 낼 타이밍을 놓치고 만 다이엔은 이어지는 윌리엄을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마로니크님께서 기분이 조금 상하셔서 그렇지, 저얼-대로 신관님들께서 언데드들을 부릴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으실겁니다. 그렇죠?"
"..."
마로니크는 고개를 휙 돌렸으며 다이엔은 자신들이 신관이라는 것을 입증하려는 듯이 그녀의 목에 새겨진 스티그마*를 드러내 보였다.
(스티그마* : 스티그마는 신관이나 성기사가 신의 사자라는 것을 입증하는 일종의 증표, 문양이다. 섬기는 신에 따라 새겨지는 문양이 다르며 각 개인에 따라 스티그마가 새겨지는 위치도 다르다.)
"고귀하신 신을 모시는 신관 분들이 마계의 힘을 빌리는 언데드를 부릴리가 없죠. 그쵸? 다이엔님."
"물론이죠. 저희는 단순히 순례 여행을 온 것일 뿐. 유레스 여신님의 이름을 걸고 맹세할 수 있습니다."
일말의 지체함도 없이 대답하는 다이엔을 보고는 윌리엄의 미소가 짙어졌다.
"그렇다면 저희 중에도 신관이 있다면요?"
"그.. 그건.."
윌리엄은 다른 말이 나오기 전에 재빨리 그녀의 말을 가로막았다.
"따라오시죠. 체르니님도 아라엘 여신님의 스티그마를 지니고 계시니까요. 그럼 이제 서로 믿을 수 있겠죠?"
...
언데드들과 격돌 이후에도 체르니는 쉴 수 없었다.
신관들의 결계 덕분에 언데드들이 들어오지 못 한 덕분에 다른 기사들은 쉴 수 있었지만, 체르니는 신관이기도 했기에 부상자들을 치료해야했다.
좀비에 물어뜯기고 스켈레톤의 뼈가 박히는 등의 처참한 부상자들이였다.
이미 일전을 치룬 뒤라 피곤함이 밀려왔지만 체르니는 혼신의 힘을 다했다.
이렇게나마 해야지 울부짖던 언데드들의 모습을 잊을 수 있을 것만 같았다.
죽어있는 존재들이였지만 사람의 형상을 한 그들을 벤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도 죄책감과 혐오감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그들은 시체가 흉하게 망가진 상태로 장례를 치루겠지.
그들이 땅에 묻힌 후에도 안식조차 제대로 취하지 못 할 것 같아 미안해졌다.
체르니가 치료에 그토록 몰입했던 것은 다친 사람들을 치료하면서 그 감정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었고 죄책감을 덜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체르니에게 심적 부담감을 덜어주던 부상자 치료는 얼마가지 못 했다.
신성력이 얼마 지나지 않아 바닥 난 것이다.
"힐! 히일! 힐 하란 말이야!"
정신이 혼미해졌다.
"흐윽.. 으아아아앙!!"
마로니크가 본다면 분명히 울보라고 놀려댈 터였지만, 모르는 사람이 본다면 힐 한방 안나가는게 그렇게 서럽냐고 물어볼 터였지만 체르니는 울음을 터뜨리고 말았다.
달려드는 시체들을 향해 무자비하게 검을 휘두르긴 했지만 그래도 역시 체르니는 11살, 어린 소녀였다.
그녀는 수년간 훈련한 동작을 그대로 따라한 것에 불과했다.
결코 두려움과 죄책감을 떨쳐낸 것이 아니였다.
토닥토닥.
어느새 다가온 마로니크가 체르니를 안아주었다.
씻지도 못 하고 온 몸이 피 범벅이였지만 마로니크는 체르니를 꼭 껴안고는 놓아주지 않았다.
제일 먼저 울보라고 놀릴 것만 같던 오빠가 가장 먼저 달려와 다독여주었다.
"저렇게 마음이 여린 아이라면.. 확실히 제 의심은 너무나도 터무니 없는 것이겠군요."
마로니크와는 달리 체르니가 우는 것을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다이엔이 말했다.
윌리엄은 다이엔의 시선이 자기에게로 돌아오자 미소로 응하며(항상 웃는 얼굴이지만) 한쪽 눈을 찡긋했다.
그 작은 눈으로 하는 윙크가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마는 어쨋든 윌리엄은 그리한 것 같다.
"그리고, 그런 분을 모시고 있는 저희들도요."
"푸웁. 그건 좀 봐야겠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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짧습니다.
어째 갈 수록 길이가 짧아지는 것만 같네요.. =_=;;
요새는 소설 쓰는 것도 너무 힘드네요 ㅠㅠ
과제에 파묻혀서..
3일동안 밤새 주구장창 술퍼먹었더니..
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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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합니다.. 쿨럭..
어찌된게.. 이번 편은
서술과 묘사로만 꽉 차있다는 느낌이네요.. ㄷㄷ
그럼 앞으로도 지켜봐주세요~
첫댓글 담편이 기대되요
아앗~ 감사합니다 ㅎㅎ
어랏, 소설 안쓰시고 술드셨어요?
뜨끔!!
기다리고있는 우리는 상관도 안하고? 어허, 이거 맞아야되요, 안맞아요되요?
죄.. 죄송합니다.. 술 안먹는건 조금 곤란하구요.. 그럼 다음부터는 음주 소설을 +_+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