過恭非禮는 '지나치게 공손한 것은 예가 아니다'라는 뜻이다. 지나친 공손은 도리어 失禮(실례)가 된다는 말. 孔子(공자) 가라사대, '교묘한 말, 꾸민 듯한 낯빛, 지나친 공손은 좌구명이 부끄러워했는데 나도 부끄럽게 생각한다'[巧言·令色·足恭 左丘明恥之 丘亦恥之]. 論語(논어)의 말이다. 여기서 '지나친 공손'을 過恭이라 하지 않고 足恭(족공)이라 했지만 뜻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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尹拯(윤증)이 그린 조선 예학의 대가 金長生(김장생) 초상화. 찌푸린 미간에 엄격함이 묻어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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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여기에 非禮라는 말은 없다. 過恭을 예의범절과 당장 연결시키지 않은 것이다. 위진시대 이후 足恭이 過恭으로 바뀐 듯하다. 가장 이른 용례는 晉(진)나라 역사책인 晉書(진서)에 나오고 宋(송)나라 때부터 부쩍 많이 쓰였다.
非禮는 孟子(맹자) 離婁(이루) 편에서 나온 말이다. '예가 아닌 예와 의가 아닌 의를 대인은 하지 않는다[非禮之禮 非義之義 大人弗爲]'라고 말한 사람은 孟子. 非禮之禮(비례지례)와 非義之義(비의지의)란 말이 여기서 나왔다. 非禮之禮는 얼핏 보기에 예에 어긋나지 않은 듯 보이지만 실제로 예에 어긋나는 일을 가리킨다.
過恭과 非禮를 연결시킨 사람은 宋나라 때의 伊川(이천) 程頤(정이)다. 누군가 非禮之禮의 뜻을 묻자 程頤는 '공손은 본래 예지만 지나친 공손은 예가 아닌 예다(恭本爲禮 過恭是非禮之禮也)'라고 대답했다.
宋나라 때 흔히 쓰이던 말인 過恭을 程頤는 예와 연결시켰다. 공부가 깊었기 때문이다. 性理學(성리학)이 득세한 조선에서만 유달리 이 말을 즐겨 썼다. 중국과 일본에선 쓰지 않는다. 조선이 다른 나라보다 禮를 따졌기 때문이다.
출처:국제신문 글 임형석 경성대 중어중문학과 외래초빙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