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교에 입학해서 첫 아르바이트를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요즘 시대보다 훨씬 일자리의 선택이
많았던것 같네요. 1985년 3월부터 시작된 돈버는 일상이 시작된거죠. 제가 생각해도 저는 운이 좀 따르는것 같았어요. 처음 시작한 일은 제 전공에 맞는 컴퓨터로 작은 출판사의 회계관리를 해 주는거 였는데
그때만해도 마우스도 없던 시절이니 컴퓨터 자체가 일반인들에겐 두려움에 대상이었죠. 제가 올때까지 실크보자기를 씌여 놓고 그랬으니까요. 재미있는것은 제가 없으면 아무도 기계 망가질까봐 손도 대지 않고 기다렸는데 출판사 대표님은 꼭 식사를 사 주시겠다며 고급 일식집에서 요리를 사주시곤 했습니다.
그렇게 반년쯤 됐을때 제게 어느날 지지리 궁상 공부 못하는 아들이 있는데 과외를 부탁한다고 하시더라구요.
저는 동생을 가르쳐봤는데 힘들더라며 거절을 했었지요.
그랬더니 주말에만 해주면 사무실에서도 벌고 좋지 않겠냐고 몇일 설득하시는 통에 그렇게 선생의 길로 들어섰지요. 과외비는 물론 상당히 놀라운 액수였답니다. 첫주말 흑석동인 대표님댁에 갔지요. 삼십분쯤 수업하고 일어나 나왔습니다 놀라셔서 쫓아 나오셨고 제 성격대로 알려 드렸습니다 나이는 고2인데 실력은 중1이다라고 그러니 무던히 믿고 장시간 하시던지 성적 안오른다고 매번 선생 바꿔봐야 소용없다고 아님 깨끗하게 아들의 공부는 포기하시고 좋아하는게 뭔지 시켜라 ~~무척 당황하신 기색이 역력했습니다. 알바를 가니 대놓고 말하다니 용기가 대단하다며 아들이 공부를 하겠다고 했답니다
제가 그랬죠 내가 바쁘니 우리집으로 와라 헐 요샛말로 쎄게 나갔는데 그 아이는 저를 두려워하기 시작해 과제를 충실히 하면서 알아가는 기쁨을 맛보게 되고 시험성적은 기대 이상이 되어 대학에 입학하게 되었습니다 이 일로 저는 뜨는 과외쌤이 되어 그 옛날 차까지 빼고 서울 시내 곳곳 안가는 곳이 없게 되었고
그 과외수업료는 내 인생의 씨드가 되었지요
참으로 우스운 것은 그때 돈만 생기면 주식을 샀다는 겁니다 내가 산게 얼마나 오르나 관심 갖을 시간도 없었는데 눈덩이처럼 불어 있었고 과외 받던 학생의 아버님이 이선생은 사업가 기질이 있다며 제게 소개한 일이 본업이 되었습니다
삼척,울진을 오가며 큰아이 낳고 한달 작은 아이 낳고 보름 몸조리하고 쉰것이 전부입니다 그렇게 23년을 여름휴가 가는 장소를 일터 삼아 살았으니까요.
요즘 청년들이 말하는 씨드머니가 꼭 필요하지요
하지만 제가 경험한 것에 기준을 두자면 돈과 함께 반드시 성실함이 따라야 하고 절실함이 없으면 안되더라규요. 얼마나 절실한지에 따라 사람은 하게 되있더라구요. 치매로 누운 아버지의 병원비와 줄줄이 달린 생계를 책임져야 양쪽 가족들 또 동생들의 학비 너무나 저에겐 잘실했거든요. 그러나 비굴하지는 않으려 노력했기에 주변에서 도움을 주셔서 살아낼수가 있었습니다 가끔씩 살만해져서 도움을 주신 분들이 기억나지만 이제는 생전에 계시지도 않더라구요.
첫댓글 인복이 많으신가보네요.. 오늘은 아침 기온이 많이 선선했어요~ 늘 건강조심하세요~ 오늘도 글 잘 읽고 갑니다~ 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