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두절미하고 이틀동안 네편 봤습니다. 30일 거미집 스크래퍼 크리에이터 순입니다.(..)
아니 여행까지 가서 무슨 영화를 봐요? 라는 상식적인 딴지에 변을 하자면,
이번에 전주에 일이 있어서 주말에 가게 됐습니다.
여러분 전주가 어떤 도시인지 아십니까? 비빔밥의 도시요? 두 유 노 비빔밥?(..)
전주는 '콩나물국밥과 영화의 도시'입니다. 콩나물 국밥이 정말 감동이예요. 제가 10년전 내일로 하면서 주린 배를 쥐고 대충 동네에서 먹은 콩나물 국밥 맛이 아직도 생각나는 기분입니다. 기분이고 생각은 안나지만(..) 엄청 맛있던 기억은 아직도 나네요. 이번엔 물짜장과 맥주로 배를 채웠지만 아무튼(..)
맛집 기행이야 많기도 하고, 사실 이번엔 진짜 휴양을 목적으로 여행을 했기에, 그간 보고 싶던 영화, 그리고 몰랐던 영화를 몰아 볼 생각으로 영화 관람 위주로 했습니다. 혹시나해서 찾아봤지만 역시 이틀간 네번은 제 영화 기록 중 두번째로 많이 본 기록이더라고요. 역시 취업한 뒤 작정하고 했던 12시간 다섯편 관람은 새벽 관람이 부활하지 않는 이상 깰 수 없을듯(..)
주절주절 말이 많았지만, 아무튼 이틀동안 네편을 봤고, 지금 그 감상을 적는 것이 그때의 감성을 나중에 기억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인것 같아서 적으려고 합니다. 읽어주시는 분들의 감상도 궁금하네요.
스포 있습니다. 스포 스포!
1. 30일
지난 추석 쯤 올라온 핑계고 덕에 꼭 보자고 생각한 영화입니다. 여담이지만 제가 유재석을 정말 좋아한다는 사실을 알게된 컨텐츠가 핑계고인데, 핑계고에 나온 것들은 ppl이든 자연스럽게 나오든 한번쯤 보고, 사더라고요.
아무튼 이번에 30일을 본 감상은 '영리하게 잘만든 로코'였습니다. 물론 명작처럼 시간 가는 줄 모르고 볼 정도는 아니지만, 이런건 좀 관대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영화를 많이는 아니고 수십편 보면서 느낀거지만, 빌드업은 예전 것 기반으로 진부하게 넘어가거나, 신선한데 허술하게 넘어가거나, 꼼꼼하지만 지루하게 쌓아가는 방식이 있습니다. 어쩔 수 없는 현상이라 생각합니다. 클리셰를 사용하면 누구나 이해할 수 있는 상황이지만, 수많은 곳에서 사용했기에 주말영화 정도만 본 세대라도 진부할 수 있으니, 결국 클리셰를 깨면서 빠르게, 아니면 설정을 신선하게 가려고 꾸준히 빌드업을 해야 되는데, 30일은 세번째 상황이었습니다. 이건 30일을 변호하기 위해 쓴거라 다른 영화는 다를 수도 있지만(..) 아무튼 초반에 개그를 좀 넣긴 했지만 좀 루즈했습니다. 하지만 그만큼 빌드업을 잘했고, 왜 이혼 안하냐, 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정소민 쪽 편이 되었습니다.
이 영화가 잘만들었다 생각하는건, 이 빌드업이 끝나서야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한다고 할 수 있는데, 이 이야기를 보고 있으면 얘네가 결혼할 수 밖에 없는 이유가 보이고, 그 정소민이 결혼을 정말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는 것입니다. 사실 냉정하게 봤을 때, 이혼하고 잘 살 사람은 의외로 강하늘 쪽입니다. 오히려 정소민 쪽이 아예 결혼을 안하는 방향이고, 방황을 하면서 술 등으로 몸을 망칠 상황이었습니다. 빌드업의 개그라고 생각했던 것이 알고보니 정소민의 고질적인 문제였었고요.
이런 점을 플롯 하나에 조연들의 개그로 깔끔하게 가는 것이 30일의 장점이었습니다. 플롯도 알기 쉽고, 서로의 관계도 자연스럽고, 어차피 코미디라서 이정도는 이해해주겠지 라는 선을 아주 잘 알았습니다. 굳이 하나 옥의 티라면 좀 선을 넘은 메타적 발언들인데 이건 뭐 관객의 아량으로 넘어갈 수 있었습니다. 로코인만큼 전형적인 면이 많지만, 오히려 로코라서 그런 면이 좋고, 중간중간 깨알같이 클리셰를 비트는게 유쾌했습니다.
2시간 좀 넘는 러닝타임을 가지는데 초반엔 좀 지루한 감이 있었지만 갈수록 즐겁게 본 영화였습니다. 다시 봐도 재밌게 볼 것 같은데, 다시 본다면 오프닝부터 볼 정도는 아닌 것 같긴 합니다(..)
2. 거미집
거미집을 보기전.. 아마 천박사?오펜하이머?를 볼 때였을 겁니다. 그때 나온 티저를 보면서 생각한 느낌은 '예전 헤일 시저처럼 50~60년대 막장 할리우드를 추억하는, 그런 오마주적인 면이 있지 않을까'였는데, 반은 맞고 반은 틀렸습니다.
거미집은 그 시대, 심의는 엄격하고, 정부 입김이 강하며, 그럼에도 접대와 화술로 넘어갈 수 있는 건덕지가 있었던, 그런 시대를 반은 추억하고 반은 코미디로 만들며 이야기를 이끌어 갑니다. 김감독이 일어나서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장면에서 바로 머지 않던 시절의 그리운 느낌을 자아냈는데, 극이 진행하면서도 화면 밑에 깔리던 배우와 감독 이름이 예전 kbs1tv 드라마를 보면 나오던 롤 느낌이 나서 그 시절을 아는 사람이라면 소소한 재미를 주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거기에 블랙코미디라고는 하지만 70년대라면 왠지 정말 있었을 것 같은, 마치 헤일 시저의 스칼렛 요한슨처럼 그시절 특유의 퇴폐적인 느낌을 잘 살렸더라고요. 헤일 시저가 '조지 클루니를 바보로 만들고 싶어서 만든 영화'라면 거미집은 '전수정을 70년대 최고의 요부로 만들고 싶어서 만든 영화'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전수정 크리스탈 예뻐요(?)
다만 거미집 자체는 상당히 슴슴하게 지나갑니다. 소소한 개그가 계속 있긴 하지만 블랙 코미디라서 마냥 웃기는 어렵고, 중반부터 조금씩 드러나는 감독의 심리상태, 성정, 그리고 초반 묘사에 대한 의심은 이 영화를 그저 그시절을 추억하는 영화로 보기 어렵게 만듭니다.
그리고 엔딩. 아이러니하게도 액자형 구성의 영화가 정말 명작처럼 나왔습니다. 솔직히 밖에서 보는 사람 입장에선 좀 많이 막장에 산으로 가는게 아닌가(..) 싶기도 하지만, 초반 그 엔딩보다는 훨씬 나아보이더라고요. 그리고 그렇게 성공하면서 마지막에 보이는 감독의 표정이, 글쎄요. 참 미묘했습니다. 영화를 본 사람이라면 느낄 감독의 심리상태? 라기보단 제 개인적으로 봤을 때의 심리상태일테지만, 이제 그는 이청준 선생님의 '병신과 머저리'와 그럼에도 결국 끝까지 밝히지 못할 그런 것을 하나 가지고 간다는 느낌이 들더라고요.
송강호 선생님은 정말 연기를 잘하십니다. 다시한번 느꼈습니다. 대사 하나하나가 1970년대 느낌이 나는게, 감독의 역량도 역시 뛰어나지만 배우의 연기도 굉장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엔 크리스탈과 감독 얘기만 했지만, 주연인줄 알았는데 조연이었던(..) 오정세, 임수정, 박정수 배우님, 여기에 정우성 배우님의 막간 연기도 뛰어났고요.
2회차?를 하면 더 많은게 보일지 궁금하지만 다시 보고 싶은 마음이 드는 영화였습니다. 안봐도 아쉽진 않을 것 같긴 한데(..)
3. 스크래퍼
스크래퍼...는 사실 제목이 맘에 안듭니다. 단어 하나니까 바꾸기 쉬워보이거든요. 그런데 문제는 딱 맞는 것이 없다는건데, 넝마주이?는 너무 옛날 느낌이고, 이명인 양아치는 너무 세보이고요. 양아치가 맞긴 한거 같지만(..)
아무튼 이번 스크래퍼는 예상외로 즐겁게 본 영화였습니다. 원래 보려던 독립영화를 물짜장 먹는다고 놓치고(..) 거미집 시간에 맞춰서 예약한 영화였는데, 사실 이번에 본 영화중 가장 맘에 들었습니다.
초반엔 12살짜리 아이의 나홀로 집에 느낌에서 갑자기 30살짜리 이방인이 들어온 느낌이라면, 갈수록 그들이 서서히 가까워지고 그러면서도 오해가 풀리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서, 그러면서 아이에게는 현실적으로 버거운 상황이 계속 이어지며 보는 내내 몰입하며 봤네요. 사실 애가 자전거 훔치는 모습을 보니 한국에서 제 자전거 안장을 훔쳐간 양아치 ㅅ...가 생각나듯 현실감이 있기도 했고요. 스스로 괜찮다고 되뇌이지만 사실 힘든 아이와, 그동안 아이로 살아왔지만 이제라도 노력해보려는 어설픈 어른의 이야기가 맘에 들었습니다. 굳이 완벽할 필요 있을까요? 서로 노력하는 것이 중요할테죠.
그리고 이 영화를 보면서 전주 영화제작소를 말하지 않을 수가 없습니다. 일단 마음씨가 혜자입니다. 부끄럽지만 롯데나 cgv에서 영화를 본다면 보통 확인하는 부분이 이벤트입니다. 혹시 이벤트 상품을 받을 수 있으면 추억도 할 수 있고 기분도 좋거든요. 생각해보니 거미집을 확인 안해봤는데 이제 보니 이벤트대상이었네요. 이런 세상에(..) 아무튼 이런 상품이 은근히 영화 보는 맛을 주는데, 독립영화관은 가서 예약하니까 떡 포스터를 줍니다. 스크래퍼 포스터요. 애가 12살입니다. 엄청 귀여워요! 일단 여기서 점수를 먹고 들어갔습니다(..)
게다가 관객분들도 수준이 좋았습니다. 되새겨보면 씁쓸한 이야기지만, 오늘 영화를 네편 보면서 대부분 쾌적한 관람을 했습니다. 사실 그러면 안돼요. 영화가 잘 돼야 영화 관련 산업들도 계속 발전하고, 새로운 소재의 재밌는 영화들이 계속 나올테니까요. 그런데 좀 시기가 지났다고는 해도, 제가 본 영화 중 가장 사람이 많았던게 30일이었습니다. 밤이었는데 제 자리가 있는 줄까지 사람이 좀 있길래 그냥 앞줄로 이동해서 봤을 정도입니다(..) 나머지는 5명도 없었던 것 같아요.
스크래퍼를 제외하고 말이죠. 스크래퍼는 들어가서 대충 봐도 뒤에 사람들이 꽤 앉아계셨습니다. 독립영화라 별로 없을거라 생각했는데 제 착각이었습니다. 오히려 영화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 영화관에 많이 오시는듯 하더라고요. 가격도 성인 7000원으로 저렴하기도 하고요.
게다가 관크도 하나도 없었습니다. 진입장벽이 있는 영화관, 독립영화를 전문적으로 하는 영화라서 그런지 영화 내내 조용히 잘 봤고, 스태프롤에선 감동했습니다. 사실 전 핸드폰을 좀 보더라도 스태프롤 내내 계속 앉아서 영화 음악과 같이 보는걸 좋아하는데, 놀랍게도 관객들 모두가 그랬습니다. 스태프롤이 끝날때까지 아무도 일어나지 않았고, 제가 맨 앞에 있었는데 제일 먼저 일어났습니다. 조금 민망했습니다(..)
이런 영화관이라면... 매주 오고 싶습니다! 왜 전주에 있는건데!(...)
4. 크리에이터
보면서 테넷이 생각난다 생각했는데, 테넷 주인공이더라고요. 못알아봤습니다. 민망했음(..)
크리에이터는 크게 할말 없었습니다. 잘만들었습니다. 맨 오브 차일드도 생각나고... 묘하게 전형적인 느낌이 사는데, 그건 전개가 좀 전형적인 거지, 내용 자체는 탄탄하게 만들었다 생각했습니다. 아닌가? 왜이렇게 ai가 인간과 비슷한가 고민해봐야 될것 같긴 한데, 아무튼 재밌게 봤습니다. 다만 제가 헐리우드에 익숙해져인진 몰라도, 결말까지 헐리우드적이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아.. 그게 맞긴 한데... 나이를 먹은건가(?)
체력 이슈(..)로 막판에 엄청 적게 썼지만, 상당히 괜찮았던 여행이었다 생각합니다. 술한잔하면서 생각해도 그게 맞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