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소한 날 포항을 갔습니다.
우린 영덕 삼사(三思) 해상공원에 올랐습니다.
바다가 그리도 조용하였습니다.
소한 절기에 이렇게도 포근한 날이 100년 만에 처음이라고 하드니
푸른 바다에 유유 자적 나는 갈메기도 한가롭습니다.
고요한 바다 위에 어선 한 척이 졸고 있습니다.
바다가 보이는 전망이 좋은 "그대 그리고 나" 찻집에서
예쁜 마담이 지어주는 '진토닉과 올가즘'
그리고 원두와 아메리카노 한 잔을 나누고
잘 손 질된 공원을 한 바퀴돌았습니다.
때로는 방가로 문 앞에서 예쁜 이가 손짓하는 영상을 보며
42회 동기들의 축제장으로 이 곳이 안성마춤이겠다 싶어
포항 부자 문 부자에게 그 자리에서 바로 계약서를 쓰라고도 하고
흥해 들의 반이 문 부자 땅이라며 농을 걸고는
어디 옛 날 섬씽이 있었던 그 술집을 찾으니 사람은 간 곳도 없고
휘적 휘적 발길 닿는대로 내려 오다가
흥해 '덕실 마을' 대통령 당선자 생가를 방문하였습니다.
큰 길에서 산골 길로 족히 7킬로는 됩니다.
지금은 그 댁에 재종 형수 님이 살고 있었고
우선 집 앞 논을 주차장으로 개조하여 주차장으로 쓰고 있고
수 많은 방문객을 맞이 하고 있었습니다.
마당에는 당선자의 어릴 적 사진과 현대 건설 시절,
모두가 다 어려운 시절의 사진을 게시해 두었습니다.
사진을 자세히 보자니 방문객에 밀려 볼 수가 없었습니다.
나는 우리 동기들의 고려대학 시절 사진을 유심히 보았습니다.
당선자와 우리 동기들은 고등학교가 같은 동기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당선자와 고려대 동기들이 많습니다.
젊은 시절의 사진이라 그런지 침침한 내 눈에는
많은 인파 속에서 분별이 얼른 오지 않는데
동기 윤의융, 이동대..등을 찾는데 날까지 저물어 잘 볼 수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먼데 물러서서 명당 집의 풍수를 보았습니다.
앞의 안산이 조용하고 좌청룡 우백호도 기세가 괜찮았습니다.
동네 앞 들도 그런대로 넓었습니다.
벌써 땅거미가 찾아오고 산 그림자가 마을을 찾아 와
산 골 오지 길을 재촉했습니다.
마을 길이 그리 넓지 않아 교행 차량이 자유롭지 못한 곳도 있었습니다.
포항에 돌아와 갈치 조림과 해물탕으로 저녁을 하고는 ,
문 부자는 집 앞에 내리고..."밤 길 조심해서 가거래이.."
하루 종일 좋고 즐거운 생각에 해 가는 줄 몰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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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i ~강교수 나, 재철, 의융,세사람이 꼭같은날 간발의 차이로 비켜지났네, 대구 포항 고속도,울진행 국도에 강구 순양호 대게잡이배 선장집에서 진짜 배터지게 게판 이었소 한보따리씩 들고 덕실 마을 입구를 놋처버려 형들과 조우가 안됫네 시간적 으론 딱인거 같은데, 아쉽다 윤의융 걸죽한 입담 다음에 함붙자.
하이구랴 원평재는 한국에 돌아왔습니까? 전 세계가 원평재에게는 촌음으로 오고 가니 시공에 대한 감각이 느린 사람은 균형감각을 다 잊겠어요. 선배 한 분이 비행기 기다리는 시각에 그 곳의 관광 엽서를 사서 고국의 친구에게 한 두마디 쓰고는 부칠 때는 한국에 와서 부쳐도 받는 사람에게는 현장의 긴장감이 그대로 전달된다고 하던데...원평재의 북미대륙리포트가 소제에게는 감정이 꼭그러하더이다. 감사했어요.
첫댓글 여기 어깨 힘들어간 고대출신들 많습니다. ㅎㅎㅎ
어깨 힘들어간 분이 뉘신데... 요새 그 힘 좀 빌립시다. 문지방도 넘기 힘드는 친구들도 많은데.. 히히히
Hi ~강교수 나, 재철, 의융,세사람이 꼭같은날 간발의 차이로 비켜지났네, 대구 포항 고속도,울진행 국도에 강구 순양호 대게잡이배 선장집에서 진짜 배터지게 게판 이었소 한보따리씩 들고 덕실 마을 입구를 놋처버려 형들과 조우가 안됫네 시간적 으론 딱인거 같은데, 아쉽다 윤의융 걸죽한 입담 다음에 함붙자.
아 그렇구나 내가 그래서 뒤가 자꾸 돌아보이드라니깐... 아 재철 형도 보고 싶었는데 객지에서 만나면 더욱 반가울 텐데..
부자中의 부자.[문 부호]가 뉘댁 어르신인 지요 ?...(태산 그늘이 강동 삼백리) 인지라 문부호 부랄만 잡고 다니시면 모든 사항은 완결되겠읍네다.----그러나 저러나 명퇴즉후 몸조리도 못하시고---- 계속 강행군 할량교 ?---ㅋㅋㅋ
문 부호는 누구신지 비밀인데... 그라고 소제 아직 퇴임은 한 달 조금 남았소이다. 히히히
溪山- 새해 복많이 받기를 기원합니다ㅡㅡㅡ지난해와 달리 올해는 따로이 신년인사장을 보내지 않음을- 赦하여 주시기를ㅡㅡㅡ포항의 문시언 학형은 이비인후과 병원이 번창했고 또 번창 하고 있는지
아 해마다 형의 안부 편지와 더불어 새해 축하 연하장을 받았지만 그 걸 뭐 오히려 형이 "사(赦)하길"바란다니 받은 사람이 용서해야 하는 세상이 되었습니다. 하하. 문 형은 지금은 소나무 아래서 풀륫이나 불고 지난 답니다. 수년 전부터 쉬고 있습니다.
유유자적하는 동절의 어느 하루가 눈에 선하구랴~~~.
하이구랴 원평재는 한국에 돌아왔습니까? 전 세계가 원평재에게는 촌음으로 오고 가니 시공에 대한 감각이 느린 사람은 균형감각을 다 잊겠어요. 선배 한 분이 비행기 기다리는 시각에 그 곳의 관광 엽서를 사서 고국의 친구에게 한 두마디 쓰고는 부칠 때는 한국에 와서 부쳐도 받는 사람에게는 현장의 긴장감이 그대로 전달된다고 하던데...원평재의 북미대륙리포트가 소제에게는 감정이 꼭그러하더이다. 감사했어요.
부지런하기는 대구에서는 제일이요 ,계속 좋은일 많이 벌려 친구들을 움직이게 하시오. 복많이 받으길빕니다.
원래 저지레는 혼자 다 하고는 뒷 감당도 못하는 사람이요. 과찬입니다. 아픈 다리 치료나 얼른 하시소. 그래야 같이 좀 다니제.. 이번 제주행 나드리도 빠지고.. 섭섭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