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강천석 주필
제도가 아니라 절대 권력자가 움직이는 북한
제때 분노하고 인내하려면 北권력자 바로 알아야
김정일의 아들이 인민군 대장 칭호를 받고 노동당 중앙군사위원회 부위원장으로 등장한 지 벌써 열흘이 지났다. 아버지가 과거에 걸어왔던 길과 아버지의 현재 건강 상태로 보면 이 젊은이가 내년 아니면 내후년 또 한 계급이 껑충 뛰어 북한 권력의 핵심인 군(軍)을 실질적으로 장악하는 자리에 오른다 해서 이상할 게 없다. 선군(先軍)정치의 나라에서 군을 지휘하려면 원수(元帥) 정도는 돼야 한다. 김정일은 1992년 4월 25일 인민군 창설 60주년 때 아버지 김일성의 빨치산 부하 오진우와 함께 원수 칭호를 받았다. 아버지의 다른 동료 8명은 원수 아래 차수(次帥)가 됐다. 인민군 총사령관직은 그 전해에 아버지에게서 물려받았다. 국가 주석이 인민군 총사령관을 맡도록 돼 있던 당시 북한 헌법을 위반한 조치였다. 북한은 훗날 헌법을 여기에 맞춰 바꿨다. 지금 김정일의 건강은 그때 김일성의 건강보다 못하다. 나이 서른의 김정일 아들이 북한 정규군 115만명을 비롯한 총 770만명의 무장 병력을 거느린 모습과 마주할 날이 그리 멀지 않다.
김일성 시대의 북한 헌법은 국가 주석과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우리 국회의원에 해당) 임기를 4년으로 규정했다. 그러나 김일성이 살아있을 적에 이 임기 규정이 지켜진 적이 없다. 어떤 때는 3년이 채 안 됐는데 선거를 치르고, 어떤 때는 8년이 흘러도 감감무소식이었다. 김일성이 정식 집권한 1948년부터 사망한 1994년까지 46년 동안 선거가 9번밖에 실시되지 않았다. 북한식 정치 구구법으론 '4×9=36'이 아니라 '4×9=46'이라는 말이다. 노동당 사정은 더 심하다. 당 규약엔 5년마다 당 대회를 갖게 돼 있지만 1980년 이후 30년 동안 당 대회가 열린 적이 없다. 그래도 김일성은 당 중앙위원회를 1년에 한두 차례 꾸준히 열고, 비밀회의를 개최해도 제 몇 차 무슨 회의가 열렸다고 짐작할 수 있는 단서는 남겨 놓았다. 김정일 시대 들어 북한은 한층 예측하기 힘든 나라가 됐다. 북한을 바로 보려면 북한 절대 권력자가 어떤 인간인가를 아는 수밖에 없다.
김일성의 미국 공포증은 대단했다. 김일성은 무장공비를 내려 보내 대한민국 대통령이 사는 청와대는 습격했지만 상대적으로 경비가 허술한 한국 내 미군기지를 공격한 적이 없다. 김일성은 언젠가 7·4 남북 공동성명의 참뜻은 어떻게 해서든 주한 미군을 철수시켜 보려는 데 있었다고 털어놓았다. 김일성을 이렇게 만든 것은 6·25의 기억이다. 부산을 향해 밀려가던 인민군은 낙동강 전선에서 미국 공군의 융단폭격을 받아 궤멸했다. 불행인지 다행인지 그때 김일성은 그곳에 있지 않았다. 김일성이 미군 폭격을 만나 그 위력에 혼비백산(魂飛魄散)한 곳은 평양을 탈출해 피신해 있던 평안북도 고산진에서다. 회의 도중 폭격을 당한 김일성은 몇 차례나 근처 광산의 갱도(坑道) 안으로 허둥지둥 몸을 피해야 했다. 북한 공식 기록은 '미제(美帝)의 공중비적(空中匪賊)들이 하루도 쉼 없이 연속 폭격을 가했다'고 그때 고산진의 일을 기록하고 있다.
김정일은 권력을 물려받고 나서 '이번에는 경제 개혁에 나설 수밖에 없을 것'이라는 밖의 예측을 번번이 빗나가게 만들었다. 엄격히 말하면 이건 예측한 사람들의 잘못이다. 김정일은 후계자 수업 중이던 70년대 중반 무렵 경제에 새 기술, 새 방법을 도입해 생산성을 높이겠다고 3대 혁명 운동을 이끌다 오히려 경제를 후퇴시키고 말았다. 아버지가 나서서 사태를 수습해주지 않았더라면 후계자 지위가 흔들릴 뻔한 위기였다. 그 후 김정일은 아버지의 70회 생일을 축하하는 주체탑이나 개선문 같은 거대 건축물을 세우는 쪽으로 방향을 돌렸다. 경제문제에 섣불리 손을 대려 하지 않았다. 김일성의 미국 공포증과 김정일의 '경제 문제 피해가기'라는 금기(禁忌)는 이렇게 해서 생겨났다.
북한이 김정일 아들의 나라로 바뀌어 갈 것이라는 지금, 우리는 김정일의 아들에 대해 아는 게 없다. 그가 언제 태어났는지,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 무슨 경력을 쌓아왔는지조차 모른다. 김정일 집에서 오래 일했다는 일본인 요리사가 전하는 '백두산에서 소변을 봤다' '어린 시절부터 담배를 피웠다'라는 잡담 같은 이야기가 전부다. 낯이 뜨거울 정도다. 분노해야 할 때 분노하고 인내해야 할 때 인내해야 북한이 대한민국을 허투루 대하지 못한다. 이렇게 상대에 깜깜해서야 어떻게 분노해야 할 때를 알고 인내해야 할 때를 알 수 있겠는가.
첫댓글 김정일의 아들에 대한 정보를 그의 집에서 일 했다는 일본의 요리사가 전하는 말에 의존 한다
이것이 우리나라의 정보망인가
귀가 찰 일이로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