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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 앙 도 (鴛 鴦 刀) - 3편 >
그 소녀는 감정진 분안의 객점 한 작은 방에 앉아 있었다. 탁 자 위엔 작은
술동이가 놓여있는데, 그 술동이 안에는 천하에 유명한 분주가 담겨 있었다.
이 감정진은 지남 임분현과 홍동현의 중간지점에 있는 분주의 산지이다. 그러나
그녀에겐 술이 너무 독했던지, 한 모금만 마셔도 입안이 맵고 타는 듯 하여 정말
마 시기 어려웠다. 이런 걸 아버지는 왜 그토록 좋아하셨을까? 아버지께서는
늘 말씀하셨었다.
"여자는 술을 마셔서는 안된다."
집에서는 아버지의 말을 따라야 하므로 이렇게 혼자 몰래 나와 이 분주를 맛볼 수
밖에 없었다. 그러나 이 한 동이를 다 비운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닌 것 같았다.
그녀는 또 한모금을 마셨다.
그러자 금세 얼굴에서 열이 나는 걸 느꼈고 손으로 만져보니 마치 손이 데일 것
처럼 뜨거웠다.
옆방에 묵는 표국의 손님들은 주거니 받거니 건배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그들은
이 독한 술이 그렇게 맛있단 말인가? 목소리가 굵은 한 사내가 소리쳤다.
"이봐, 세 동이 더 가져와!"
소녀는 그 소리를 듣고 설레설레 고개를 저었다.
다른 목소리의 사내가 말했다.
"장형제, 이 길에서는 아직 좀더 조심하는 게 좋을 거요. 북경 에 도착하면,
그때 다시 통쾌하게 한바탕 취해 봅시다." 먼저의 그 사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총표두, 제가 보기엔 너무 지나치게 걱정하시는 것 같읍니다.
그 네명의 태악사협인지 뭔지 하는 도적놈들이 총표두를 놀라게... 헤헤... 이봐,
어서 술 가져오너라!"
그 소녀는 태악사협이라는 이름을 생각하자 또 웃음이 터져 나오려 했다.
생각해 보니 이 한 무리의 표사들도 태악사협과 실랑이를 벌였던 모양이다.
총표두의 목소리가 들렸다.
"내가 두려워한다고? 당신이 내 몸의 천근의 부담을 지고 있다는 걸 어찌 알겠소.
이까짓 십만 냥의 은자가 문제가 아니요.
흥, 지금은 당신과 자세한 이야기를 할 수 없으나, 북경에 도착하면 저절로 알게
될 것이요."
장표사가 웃으며 말했다.
"그렇지, 그래요! 나는 아무것도 몰라요. 아무것도, 헤헤 원앙도야 원앙도!"
소녀는 원앙도라는 세 글자를 듣자 가슴이 철렁했다. 귀를 벽에 바짝 붙이고
자세히 들으려 했지만, 옆방에서는 순식간에 조용해져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소녀는 마음이 음직여 방안에서 나와 살금살금 표사들이 묵고 있는 방의 창문
밑으로 다가 갔다. 주총표두의 말소리가 들렸다.
"어떻게 알았소? 누가 그 비밀을 누설했지? 장형제, 이 일은 그렇게 떠버릴 일이
아니요."
그는 목소리를 깔고 낮은 소리로 말을 했지만 그 말투는 대단히 정중했다.
장표사는 별일 아니라는 듯이 말했다.
"이곳의 형제들 중 누가 그 사실을 모르겠소? 총표두께서 굉장한 비밀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주총표두의 목소리가 떨리며 급히 반문했다.
"누가 말했단 말이요 ?"
장표사가 말했다.
"하하, 누가 있겠소? 총표두 자신이지."
주총표두는 다급해져서 말했다.
"내가 언제 말했단 말이요? 장형제, 오늘 당신이 분명히 밝히지 않는다면 나는
끝낼 수 없소. 내가 평소에 당신을 박대하지 않았거늘..."
그때 다른 표사가 끼어들며 말했다.
"총표두, 서두르지 마십시요. 장형님의 말이 맞습니다. 표두께서 스스로
말씀하셨다구요."
주총표두는 당황했다.
"내... 내가 ... 내가 어떻게 ?"
그 사람이 말했다.
"우리가 서안을 떠난 이후로 매일 밤 총표두와 함께 잠을 자지 않았읍니까?
총표두께서는 항상 잠꼬대로 이렇게 말하셨답니다.
'원앙도, 원앙도! 이번에 북경까지 가는 동안에 아무 사고도 없어야 할텐데.
원앙도를 손에 넣으면 천하에 무적이...' "
주위신은 놀랍고 창피하여 어찌 다시 말을 할 수 있었겠는가? 자신만 간직하고
있던 대비밀을 꿈속에서 말을 해버렸을줄이야 어찌 생각이나 했단 말인가? 그는
많은 표사들에게 읍을 하며 낮은 소리로 당부했다.
"여러분 제발 원앙도라는 세 글자를 다시는 입에 올리지 말아 주시오. 오늘밤부터
나는 천으로 입을 막고 자겠소."
소녀는 창밖에서 이런 말을 듣고 크게 기뻐하며 내심 생각했다.
'그 한쌍의 원앙도는 표사의 몸에 있을 것이 분명해. 내가 그 것을 홈쳐 가지고
돌아가면 아버지께서 뭐라고 하실가?'
이 소녀의 성은 소(蘇)요, 이름은 중혜(中慧)로 진양대협 소반 화의 딸이었다.
소반화는 널리 그 위엄을 떨치고 있었으므로 강호의 어떤 호한 과도 통하지 않는
자가 없었다. 그런데 지난 달에 소식을 듣자 하니 무림에서 없어 졌던 한 쌍의
원앙도가 다시 강호에 나타났는 데, 철섬총독 유어의가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이 보도와 소반화는 깊은 연유가 있었는데, 그는 그 보도를 손에 넣지 않으면
안 되었으므로, 그 방도를 궁리했다. 그런데 생각해 보니, 유어의는 분명
그 원앙도를 북경으로 보내어 황제께 헌상할 것이니, 서안부의 병사가 주둔하고
있는 진영을 쳐들어가 빼앗아오는 것보다 호송하는 도중에 탈취하는 것이 더 용이
할 듯 했다.그러나 유어 의는 교활하고 꾀가 많아 거짓 차사와 거짓 헌상대열을
일차로 보내고 하는 바람에 그동안 적잖은 인명을 살상했었다. 소반화는 자신의
50세 생일이 다가 오는 것을 생각해 내고는 각지에 영웅첩을 보내어 여러 성의
호걸들을 청하였다. 단 몇몇 영웅첩에는 따로 부언을 하여 각기 있는 힘을 다해
그 한쌍의 보도를 탈취해 오기를 부탁하였다.
물론 그가 믿을 수 없는 호한에게는 혹시 소문이 나서 오히려 좋은 친구들을 다치게
할까 두려워 따로 부언을 하지 않았다.
소중혜는 부친으로부터 그 보도에 관해 듣고 나서 얼른 그것을 시험해 보고
싶었다. 소반화가 사방으로 사람을 시켜 영웅첩을 보낼 때도 그녀는 따라가려 했고,
또 섬서에서 사람을 보내 매복 시키려 할때에도 따라가려 했었다. 그러나 소반화는
그때마다 고 개를 저으며 말했다.
"안 된다!"
그래도 그녀는 계속 졸라댔다. 그러면 소반화는 이렇게 말했 다.
"네 큰어머니와 어머니에게 물어 보아라!"
소반화에게는 두 명의 부인이 있었는데, 큰 부인은 성이 원 (袁)이고, 둘째 부인은
양(陽)이었다. 중혜는 둘째 부인 양씨의 소생이었지만, 원씨는 그녀를 친딸과 똑같이
사랑했다. 양부인이 갈 수 없다고 말하자, 중혜는 그래도 계속 어리광을 부르며
종일 토록 졸라댔다. 그러나 원부인은 한번 안된다고 하자 그녀는 다시 조르지를
못했다. 그 원부인은 그녀에게 그지없이 자애로왔지만, 중혜는 어려서부터 한 번도
큰어머니의 위엄 있는 말을 거역 해 본 적이 없었다.
그러나 그 보도를 빼앗는 일을 생각하면, 아슬아슬하고 기묘하고, 얼마나 재미있는
일이겠는가? 소중혜는 결국 참지 못하고 어느 날 한밤 중에 큰어머니, 어머니께
몇 자의 글을 남기고 몰래 말 한 필을 끌어내어 진양을 떠났던 것이다. 그녀는 자 쑥
의 아버지에게 바칠 예물을 도적질한다던 태악사협을 만나고는 천하 의 영웅호걸들
의 무공이 이 정도거니 생각하고, 표사들의 말을 듣자 자신이 그 원앙도를 빼앗는데
는 별 어려움이 없으리라 생각 하는 것이다.
그녀는 몸을 돌이켜 방으로 돌아가 어떻게 표국사람들과 대결 할 것인가를 천천히
따져 볼 작정을 하고 두 걸음을 옮겼는데 맞 은편 방에서 땅!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것은 그녀가 어려서부터 익히 들어왔던, 무기가 부딪히는 소리였다. 그녀는 깜짝
놀라 생각했다.
'이런, 낭패로군! 사람들에게 들킨 모양인데.'
그런데 싸우는 사람의 욕설이 들려 왔다.
"정말 싸우자는 것이냐 ?"
한 여자가 소리치듯 말했다.
"그럼, 아직도 피하겠다는 것이냐 ?"
그러더니 쨍쨍 소리는 그치기는 커녕 점점 격렬해졌고, 게다 가 갓난아기까지 큰 소
리로 울어 댔다. 맞은편 방의 창에 두사람 의 검은 그림자가 비쳤는데, 한 사람은 여
자이고 다른 사람은 남자였다. 그들은 각기 단도 한자루씩을 들고 종횡으로 휘두르
며 목숨을 걸고 서로를 죽이려는 기세였다.
이 싸움으로 인해 객점은 온통 소란스러워졌다. 그때 주총표두 가 소리치는게 들려
왔다.
"모두들 나가지마라! 각자 방비를 해! 마차를 지켜라. 도적들 의 조호이산지계(調虎
離山之計)의 계책일지도 모른다." 소중혜가 그 말을 듣고 생각했다.
'저렇게 죽기를 각오하고 싸우는데, 무슨 조호이산지계의 가짜 싸움으라는 거야? 저
자가 나와서 구경하지 않는 것이 애석하군.
그렇게만 된다면 그 보도를 훔칠 좋은 기회일 텐데.'
다시 두 그림자를 봤더니, 여자는 힘이 달려 계속 밀리고, 그 남자는 한 발 한 발
다가서며 조금도 느슨해짐이 없었다.
소중혜는 순간 협의지심이 발동했다.
'저 도적놈이 무례하기 짝이 없군. 한밤중에 여자의 방에 들어 가 횡포를 부리다가
저렇게 적수도 안되는 여자와 싸우다니!' 그녀는 당장 뛰어 들어가 여자를
도와 주려다가 한편 돌이켜 생각했다.
'아니지. 내가 지금 나타났다가 표사들에게 들키면 다시 보도 를 훔치기는 더욱
어려워 질거야.'
당장은 노기를 참으며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그러자 점차 두 사람의 무기가 맞부딪
히는 소리가 작아지더니, 이제는 서로 욕을 해대기 시작하는데, 그 말투가 노남의 사
투리여서 소중혜는 그 대부분을 알아 들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한참을 듣고 있다가 지루해져서 막 방으로 돌아가려 했다. 홀연, 아! 하는
소리가 들리더니 동쪽의 한 방문이 열리고 그 소년서생이 나왔다. 그는 또렷한
목소리로 말했다.
"두 분은 어째서 그렇게 싸우시오? 할 말이 있으면 서로 얘기를 해서 이치를 따질
것이지 어째서 무기를 들고 다투시오?" 그는 이렇게 말하면서 두 사람의 방 창밑으로
가서 싸움을 말리려 하는 것 같았다. 소중혜는 생각했다.
'저렇게 지독하고 야만인 같은 자들이 너와 이치를 따져 이야기 하겠느냐 ?'
방안에선 다시 무기들이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 오기 시작했고, 어린 아이의 울음소
리는 더욱 커졌다. 그때 팍! 하는 소리가 나면서 탄환 한 알이 창문밖으로 날아와서
서생의 모자를 땅에 떨어 뜨렸다. 서생은 소리쳤다.
"아이고, 이걸 어째!"
그는 계속 중얼거리면서 혼잣말을 해댔다.
"'성문실화 앙급지어(城門失火 殃及池漁)', 즉 성문에서 불이 났는데 그 재앙이 연
못의 물고기까지 미친다는 경우와 똑같군.
군자는 위험한 담장 아래 서지 않는 법이니 나도 어서 몸을 보호 하는게 우선이겠군."
소중혜는 참 재미 있는 사람이라고 여겼지만 다시 그여자가 걱정이 되었다.
저 악독한 도적놈을 그냥 놔두면 저 여자는 곤욕을 치루지 않으면 안될 것같았다.
소중혜는 마음을 다지며 생각했다.
'아버지께서 늘 말씀하셨지. 모든 일을 행함에 있어서 마땅히 경중완급을 따져야 한
다고. 나에게는 보도를 홈치는 일이 급선무 야.'
그녀는 곧 방으로 돌아와 문을 잠그고 누워, 어떻게 보도를 홈칠것인가를 심사숙고
했다.
'저 표국사람들의 숫자가 많으니, 나 혼자서 대적할 수 있을 까? 본래 이 밤으로 진
양으로 돌아가 지원군을 보내시라 청해야 하겠지만, 내 스스로 계략을 써서 두 손으
로 그 보도를 쳐들고 아버지께 갖다 드린다면 그것이 더욱 멋진 일이겠지?' 이렇게
생각하고 나자 저절로 미소가 얼굴에 번져 왼쪽 뺨에 보조개가 파였다. 그런데 어떤
계략을 쓰지? 그녀는 어려서부터 아버지에게 무술을 배워, 무공은 그리 약한 편이
아니지만 계책을 씀에 있어서는 전혀 그럴듯한 생각조차 떠오르지 않았다.
그녀는 방에 누워 머리가 아플정도로 생각해서 겨우 몇가지 계책을 짜내기는 했지
만, 다시 생각해 보니 전혀 쓸만 한 것은 하나도 없었다. 자신도 모르는 사아에 눈꺼
풀은 무거워지기 시작했다. 적막한 밤중인데 홀연 '뚜둑, 뚜둑.' 하는 소리가 멀리서
점점 가깝게 들려왔다. 누군가 쇠지팡이로 땅을 짚으며 가는 소리 인 듯 했는데, 아
마도 맹인인 모양이었다.
그 소리는 객점 앞에까지 와서 멈추었고 이어서 그 쇠지팡이로 문을 두드리는 소
리, 객점에서 일하는 소이가 문을 여는소리, 투털거리는 소리가 차례로 들려왔다. 한
늙은이가 방을 달라고 애걸했고, 소이는 돈을 먼저 내라고 한다. 그 장님이 돈을 주
었지만 두푼이 모라자라는지 노인을 밀어내는 소리, 애걸하는 소리, 하인이 욕하는
소리 등등이 한마디 한마디 소중혜의 귓속으로 파고 들었다.
그녀는 들을수록 그 맹인이 불쌍하게 느껴져 얼른 몸을 일으켜 품안에서 은자 하나
를 꺼내 문을 열고 나갔는데, 그 서생이 이미 소이를 붙들고 설교를 해대고 있는 것
이 아닌가?
"소이형, 노인을 공경하고 가난한 사람을 돕는 것은 미덕이지요. 그것은 어려운 일
도 아닙니다. 소이형께서 두 푼을 덜 받고 노인의 재워주면 유세나는 것이지요."
소이가 화를 내며 말했다.
"상공의 말씀, 참 좋은 말씀이시오. 당신이 그렇게 착한 마음을 가졌으면, 당신이
그 노인을 재워 주시구려."
서생이 말했다.
"형의 그 말씀은 틀리오. 나 같은 여행객은 가진 돈이 많지 않지만, 이곳 객점은 하
룻밤 사이에도 돈이 쌓일 텐데 형께서 두 푼만 손해보시구려."
소중혜는 웃음을 참으면서 말했다.
"이봐요, 소이형. 그 돈은 내가 물겠어요. 받아요!"
소이가 고개를 드니 백광이 번쩍하면서 은자 하나가 날아왔다.
그는 급히 손을 뻗어 그것을 받으려 했다. 그의 두 손은 은자에 잘 길들어져 있었으
니 백개중의 하나 정도나 놓칠까? 그러나 이 번에 날아오는 은자는 활이 날아오는 듯
이 팍! 하는 소리를 내면 서 그의 가슴에 꽂혀 소이는 참지 못하고 '아이고' 하는 소
리를 질렀다.
그 서생이 말했다.
"그것 보세요. 이렇게 나이 어린 아가씨도 이런 착한 마음을 가지고 있는데, 소이형
께서는 사내 대장부로써 부끄러워하셔야 합니다. "
소중혜는 그를 한번 훑어 보았다. 갸름한 얼굴에 잘생긴 눈썹 하며, 칼 같은 눈썹이
비스듬이 나 있어 그 얼굴에서 풍기는 영웅다운 기질때문에 그녀는 가슴이 철렁하여
얼른 고개를 숙였다.
장님노인의 말소리가 들릴 뿐이었다.
"상공어른의 선량한 마음 정말 감사합니다. 어른이 저를 위해 방값, 밥값을 내 주시
니 정말 감사합니다. 그러나 은혜를 베푸신 은인의 존함을 모릅니다. 이 장님 놈이
마음에 새겨 두었다가 후 일에 보답할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요."
"저의 성은 원(袁)이고 이름은 관남(冠南)이오만, 이만 일로 어찌 다시 입에 올리겠
소? 노인장의 존성대명은 어떻게 되시오?" 장님 노인이 말했다.
"이 장님놈의 이름은 탁천웅(卓天雄)이라고 합니다." 소중혜는 내심 생각했다.
'이 장님 노인은 눈만 먼 것이 아니고 마음까지 멀으셨군. 분명히 내가 은자를 주었
는데 다른 사람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하다니.'
라고 생각하고 있다가 갑자기 탁천웅이라는 이름을 듣고 퍼뜩 떠오르는 생각이 있
었다.
'이 이름은 언젠가 들어 본 듯한 걸. 맞아, 그날 아버지와 큰 어머니가 소리를 낮춰
말할때, 그때 이 이름을 말했었어. 그때 내가 막 큰어머니의 방문을 들어서려 하니
까, 아버지와 큰어머니 가 나를 보자 곧 입을 다무셨지.그렇지만 동명이인이겠지.
아버지가 저런 장님 노인을 어떻게 알겠어 ?'
원관남은 그 노인을 데리고 따라 들어갔다. 소중혜의 곁을 지날때, 그는 돌연 몸을
굽혀 절을 하면서 말했다.
"아가씨, 많은 은자를 가지고 나오셨나요 ?"
소중혜는 그가 자신에게 말을 걸리라고 생각하지 않았으므로 얼굴을 붉히며 예를
차리면서 띄엄 띄엄 말했다.
"뭐, 뭐라고요 ?"
원관남이 말했다.
"제가 보기에 아가씨께서 이처럼 호탕하고 활발하시니 약간의 돈을 빌려 주십사 하
고 말하는 것입니다."
소중혜는 그가 이렇게 단도직입적으로 돈을 빌려 달라는 말을 하리라고는 더욱 생
각을 하지 못해서 온통 얼굴이 시뻘개지고 무슨말을 해야 좋을지 알수가 없어서 멍
하니 있다가, 고개를 돌려 버리고 말았다. 서생은 말했다.
"좋아요, 내키지 않으면 빌려 주지 않아도 상관이 없읍니다.
다른 사람에게 부탁해 보지요."
서생은 이렇게 말하며 다시 한 번 몸을 숙여 보이고 몸을 돌려 방으로 들어갔다.
소중혜는 가슴이 두근거려 잠시동안 마음을 진정할 수 없었는데 또 순식간에 방안
에서 무기소리와 욕하는 소리가 커지기 시작 하는 것이었다. '펑' 하며 방문이 열리더
니, 건장한 사내 하나가 손에 단도를 들고 뛰어 나왔는데 왼손에는 아기를 안고 있
었다.
이어 한 젊은 부인이 따라 나왔는데, 머리는 산발을 하고 칼을 휘두르며 소리쳤다.
"어서 내 아기를 돌려 줘! 그 아기를 안고 어디로 가겠다는 거 야 ?"
두 사람은 앞서거니 뒤서거니 하면서 방을 나섰다. 소중혜는 그 젊은 부인의 황급
한 기색을 보고 화가 치미는 것을 더 이상 참기가 어려웠다.
'저 흉도가 부인의 아이까지 빼앗아 가다니, 저런 천리를 어기는 놈은 그냥 놔둘수
가 없다.'
그녀는 급히 방으로 돌아가 쌍도를 들고 나와서는 그를 쫓아갔다. 멀리서 그 젊은
부인의 끊임없이 욕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빨리 아이를 내려 놓아라! 한밤중인데 아이가 놀라면 어떻게 할테냐? 이 천반 번
찔러 죽일 놈아. 아기가 놀란다니까! 나, 나 는..."
소중혜는 소리 나는 쪽을 향해 급히 쫓아갔다만, 그들 두사람 은 경신술을 써서 몇
리 밖에서 악투를 벌이고 있었다. 그 흉도 는 아기를 안고 있다가 형세가 불리해지자
아기를 바위 위에 내려 놓고는 칼을 휘둘러 베어 죽이려 했다. 소중혜는 걸음을 멈
추 고 우선 그흉도의 무공의 정도를 살폈다. 그는 팔의 힘이 강하고 도법이 날쌔어
젊은 부인이 일진일퇴를 하고 있었지만 금방이라 도 그의 칼 아래 당하고야 말 것 같
았다. 수중혜는 칼을 들고 펄쩍 뛰어 앞으로 나서며 소리쳤다.
"나쁜 도적놈! 손을 멈추지 못해!"
오른손의 단도로 허초를 날리고, 왼손의 장도로 그 흉도의 가슴을 겨냥했다.
그 젊은 부인은 소중혜가 달려 드는 것을 보고 어안이 벙벙해 있다가 얼른 아기에
게 달려가 급히 껴안았다.
그 흉도는 단도로 소중혜의 칼을 막으며 물었다.
"너는 누구냐 ?"
소중혜는 냉소를 하며 말했다.
"약자를 도와주는 아가씨이다."
그녀는 칼을 휘둘렀다. 그녀가 아버지나 사형들과 대결해 본 것을 제외하고는 태악
사협과의 대결이 첫번째였고, 두번째가 바로 이 흉도와의 대결이었다. 그 흉도의 무
공은 태악사협에 비해 훨씬 강했고 초수도 변화가 심하여 단도가 공중에서 춤을 추
는가 하더니 왼손이 불시에 일장을 가했다.
소중혜가 소리쳤다.
"지독한 놈!"
그녀는 왼손의 칼로 공격해 들어가면서 순식간에 '분화불유식 (分花拂柳式)'을 펼쳐
서 장도로는 급히 원을 그렸다. 그 흉도는 깜짝 놀라 옆으로 몸을 돌려 피했다. 소중
혜가 소리쳤다.
"받아라!"
그녀의 오른쪽 단도가 그 흉도의 왼쪽 허벅지를 찔렀다. 그는 비명을 지르며 한 발
을 꿇었지만 다시 칼을 들어 환초했다. 소중혜가 쌍도를 한꺼번에 내려치자 그는 한
다리를 끌며 바닥에 꺼꾸러졌다. 그녀는 단도로 다시 그의 오른쪽 다리를 찔렀다.
잠시 후 바람을 일으키며 등 뒤로 일도가 날아왔다. 소중혜는 깜짝 놀라서 그 흉도
를 내버려 두고 급히 칼을 돌려 막아냈다.
이 일초는 '사자회수(獅子回首)'라는 초식이었다. 땅! 하는 소리가 나더니 소중혜의
칼과 어둠속에서 뛰어 나온 칼이 불꽃을 내며 부딪혔다. 소중혜는 상대방을 보고 더
욱더 깜짝 놀랐다. 등 뒤에서 숨어 기습한 사람은 바로 아기를 안고 있던 젊은 부인
이었다. 그 젊은 부인의 일도가 그녀에게 차단 당하자 잇달아 일도 가 날아들었다. '
야차심해(夜叉沈海)'라는 일초는 적을 상하게 하려는 의도가 분명한 초식으로 자신의
안위는 생각지 않고 목숨을 걸고 펼치는 도법이었다. 그녀는 단도로써 막아내며 소
리쳤 다.
"이봐, 미친 것이 아냐 ?"
젊은 부인은 말했다.
"미친 것은 너 아니냐 ?"
그녀는 단도를 피하고, 소중혜의 장도와 교차시켜 서로 힘으로 밀어 붙였다. 소중혜
는 다시금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그녀의 도법은 흉도에 비할 바는 못 됐지만, 힘에
있어서는 그에 못지 않았던 것이다.
이때 흉도는 상처를 싸매고 칼을 들고서 두 사람 사아에 끼어 들어, 이번에는 두 남
녀가 한꺼번에 소중혜를 공격해 왔다. 그녀 는 생각했다.
'이 두사람은 계획적으로 나를 끌어 들였구나.'
그녀는 도법이 정묘하다고는 하나 적을 맞이하여 직접 싸워 본 경험은 거의 없었
다. 게다가 이런 깜깜 한 밤중에 어디서 매복이 뛰어 나올지 모르니, 슬슬 겁이 나기
시작했다. 그녀는 싸우면서 한편으로 그들에게 말했다.
"나는 너희와 아무런 원한이 없거늘 어째서 나를 해치려는 계략을 꾸몄느냐 ?"
그 흉도가 말했다.
"누가 너를 알기나 한다더냐? 아무 연고도 없이 나를 찌른 것이 누구인데 딴소리
냐 ?"
젊은 부인또한 사납게 대들었다.
"너는 대체 어디서 나타나 다짜고짜로 사람을 해치려 드느냐?" 그리고는 또 그 흉도
에게 물었다.
"용 오라버니, 다리의 상처는 어때요 ?"
그 말투가 친밀하기 그지 없었다. 흉도가 말했다.
"제길헐! 통증이 심해!"
소중혜는 기가 막혀 물었다.
"당신네들은 나를 해치려던 게 아니었소 ?"
젊은 부인이 말했다.
"너는 대체 누구냐? 그따위로 함부로 사납게 구는 것이 무예의 고강함을 뽐내는 일
이라더냐? 부끄러운줄 알아라."
소중혜는 화가나서 소리쳤다.
"나는 당신이 저 흉도에게 곤육을 치르고 있길래 도와주려 했던 것이지, 당신들이
거짓으로 싸우고 있는 줄은 알지도 못했어요."
젊은 부인이 말했다.
"누가 가짜 싸움을 벌인단 말이냐? 우리는 부부싸움을 하면 보통 그렇게 싸운단 말
이예요. 당신이 무슨 상관이예요?" 소중혜는 부부싸움이라는 말을 듣자 기가 막혀 말
을 잇지 못했 다.
"당신들...당신들이 부부예요 ?"
그녀는 뒤로 넘어질 듯이 머리가 혼란해지는 걸 느꼈다. 그 흉도가 말했다.
"뭐라고? 한 남자와 한 여자가 한 방에 살면서 아이까지 낳았는데, 부부가 아니란
말이요 ?"
소중혜는 기가 차서 말했다.
"그럼 저 아이도 당신들의 아기란 말이예요 ?"
젊은 부인이 말했다.
"저 사람은 아기의 아버지이고 나는 아기의 엄마예요. 뭐 잘못 됐어요? 저사람은 임
옥룡이라고 하고, 나는 임비연이예요. 또 뭐 물어 볼 것이 있어요 ?"
그녀는 기세등등하게 말하며 칼을 번쩍 들어올려 내리칠 참이 었다. 소중혜가 말했
다.
"당신들이 부부라면 어째서 그렇게 싸우고, 욕하고, 칼부림까지 하는 거예요 ?"
임비연이 웃으면서 말했다.
"하하, 아가씨. 아가씨도 남자에게 시집가 보면 자연히 알게 되요. 부부가 싸우지도
않는다면 그것을 어찌 부부라 하겠어요? 침대 머리맡에서 싸우다가 침대 끝에서 화
해하고 그러는게 부부 예요. 아가씨는 이렇게 싸우는 부부를 보지 못했나요 ?" 소중혜
는 말했다.
"저의 어머니, 아버지는 한번도 싸우신적이 없어요..." 임옥룡은 상처난 다리를 어루
만지며 거칠게 말했다.
"제길헐, 틀렸어! 그런 것이 무슨 부부야! 아야..."
임비연은 남편이 아파서 소리지르는 것을 보고 얼른 아기를 내려 놓고 그의 상처를
살펴 보았다. 그 표정에는 전혀 가장됨이 없었다. 분명한 아름다운 한 쌍의 부부였
다. 암옥룡은 계속 입속 으로 중얼거렸다.
"제길헐, 입씨름도 안하고 싸우지도 않는데 어떻게 부부라고 할수 있담..."
소중혜는 생각했다.
'이것 봐라. 이 자가 우리 부모를 욕하고 있군.'
그녀는 화가 치밀어 올라 그에게 본때를 보이려 하다가 생각해 보니 혼자서 둘을 대
적하는 것은 그녀로서는 역부족일 듯하였다.
그녀는 땅바닥에 누워 끊임없이울고 있는 아기를 보고 얼른 아기를 안고 달아나 버
렸다.
임비연이 남편의 상처를 보살펴 주고 있다가 고개를 돌려 보니 아이가 보이지 않
자, 깜짝 놀라 말했다.
"아기가 어디 갔지 ?"
임옥룡은 아야! 하고 소리치면서 벌떡 뛰어 일어나서 말했다.
"그 여자가 데려갔구나!"
임비연이 말했다.
"왜 일찍 말하지 않았어요 ?"
임옥룡이 말했다.
"네가 안고 있을 것이지, 왜 내려 놨어!"
임비연이 화가 나서 그에게로 달려 들며 철썩! 하고는 그의 뺨 을 후려치더니, 잡아
먹을 듯이 말했다.
"나는 당신의 상처를 돌봐주고 있었잖아요! 이런 죽일..." 임옥룡도 그녀에게 욕을 하
며 마주 일격을 가했다.
"아기도 제대로 못 보면서 뭘 잘했다는거야 ?"
임비연이 말했다.
"짐승같으니라고... 얼른 가서 아기를 되찾은 후에는 당신과 끝장이야!"
임옥룡이 말했다.
"아기를 찾는 것이 급하지. 더러운 것. 자기가 낳은 아기도 제 대로 간수하지 못하는
데, 어디다 써!"
두 사람은 소중혜를 따라 쫓아갔다.
소중혜는 커다란 나무 뒤에서 아기의 울음소리를 들리지 않도록 하고 있었다. 그녀
는 나무 뒤에 숨어 있었는데 두 사람이 점점 멀리 자기를 찾으려 달려가는 것을 보
고는 속으로 웃었다. 그런데 그 순간 갑자기 몸이 뜨근하더니 그녀의 옷이 잔뜩 젖
어 버렸다. 아기가 오줌을 쌌던 것이다. 그녀는 신경질적으로 가볍게 아기를 때리며
말했다.
"오줌을 싸려면 말을 해야 할 것 아니냐 ?"
그 아기는 아직 돐도 되지 않았는데 어찌 말을 하겠느가. 그녀 에게 얻어 맞은 아이
는 큰 소리로 울어 대기 시작했다. 소중혜는 화가 나서 아기를 내팽개치고 싶었지만
어쩔 수 없이, "착한 아가, 오오 귀엽기도 하지."
하고 말하며 천천히 아기를 달래수 밖에 없었다. 한참을 그렇게 달래다 보니 아기
는 잠이 들어 있었다. 소중혜는 아기의 포동 포동하고 발그레한 얼굴을 들여다 보았
다. 그 아기는 귀엽기 그지 없었다. 그녀는 생각했다.
'아기를 돌려줘야겠구나. 이제 충분히 놀랐겠지?'
그 부부가 북쪽을 향해서 달려가는 것을 보고 그녀 또한 객점 으로 돌아가지 않고
그들을 쫓아 북쪽으로 향했다.
십여리를 가다보니 날이 밝으려 하는데 그 부부는 보이지를 않았다. 날이 훤히 밝
았을 때는 커다란 나무들이 빽빽한 숲속에 다 다랐고 새들의 지저귀는 소리가 들려왔
다. 들꽃의 향기가 코를 찔렀다.
소중혜는 숲속의 풍경이 아름답고 조용한데다 하룻밤을 자지 못해 피곤을 느꼈으므
로 부드럽고 아늑한 풀밭을 골라 나무에 기대고 편안히 앉았다.아기는 달콤한 잠에
빠져 있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녀 자신도 잠이 들었다.
< 원 앙 도 (鴛 鴦 刀) - 4 편 > 햇볕은 점점 뜨겁게 내려쬐고 꽃향기는 점점 짙게 다가왔다. 홀연 꿈결처럼, "위무--- 신의, 위무---신의."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표국의 대열인듯 싶었다. 소중혜는 하품을 하며 아직 눈을 뜨지 못하고 있었다. 그 소리는 점점 가까워져 왔다. 다가오는 대열은 위신표국 사람들이었다. 철편진팔방 주위신은 표국 사람들을 인도하 여 숲속으로 들어서고 있었다. 이 숲을 지나면 곧장 홍도현에 이르는 대로가 나타날 것이다. 붉은 해는 하늘 한가운데 걸려있고, 정말 좋은 날씨였다. 오늘은 무슨 일이 있어도 아무런 말썽을 일으키지 않으리라 생각하고 있었지만 내심 두려운 마음은 어쩔수가 없었다. 표국의 대열 가장 끝에 따라오는 장님노인의 지팡이가 땅바닥을 두드리는 소리가 들릴 때마다 그 의 가슴은 철렁 내려 앉았다. 처음에 그 장님노인은 표국대열을 따라올 때에 아무도 눈여겨 보지를 않았다. 그러 나 말과 마차의 속도가 빨라져도 여전히 따라오고 있는 것을 보고 신기하게 여기지 않을 수 없었다. 주위신 은 뭔가 계교가 있다고 생각하고 장표사와 첨표사에게 눈짓 을 하여 찰나에 장님노인을 따돌렸다. 그는 마음이 놓였다. 그러나 마차가 무거워 속도가 느려지면서 한동안 천천히 나아갔다. 그러자 얼마 오래지 않아 '툭툭, 투툭' 하는 소리가 들려왔고 장님노인은 어느새 행렬의 뒤를 따라오고 있는 것이 아닌가? 이처럼 노인의 무공이 드러나자 표국의 중인들은 모두 아연실색해졌다. 그 노인의 이러한 경신술은 실로 놀라운 것이었다. 열의 진행이 느려지자 그 장님도 속도를 늦 추어 대열의 수장뒤에서 더 이상 앞으로 나오지 않았다. 눈앞에 어두컴컴한 숲이 나오자 주위신이 소리를 낮춰 말했다. "장형제, 모두들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소. 아무래도 저 장님노인이 수상해!" 장표사는 어제 태악사협을 쫓아버린 이후 계속 우쭐해 하며 스스로 영웅인 척 으쓱 대고 있다가 그의 말을 듣고 생각했다. '그의 경신술이 꽤 쓸만 한 것 같기는 하지만 까짓 눈 먼 노인 을 두려워하다니. 쥐 새끼를 보고도 독사라고 하겠군.' 그는 곧 허리를 굽혀 땅바닥에서 작은 돌맹이 하나 를 주워 노인을 향해 힘껏 던졌다. 돌맹이는 하늘을 가르며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그러나 그 노인은 고개를 들지도 않은 채 쇠지팡이를 살짝 들어 오히려 날아오는 돌 맹이를 되돌려 쳐서 보냈다. "아이고!" 곧이어 장표사의 비명소리가 들렸고 그의 이마에선 선혈이 흘러 내렸다. 대열은 순 식간에 혼란스러워졌다. 장표사가 소리쳤다. "이 장님 늙은이, 어디 두고 보자!" 그가 말을 탄채 노인에게 다가가 칼을 공중으로 들어올려 노인의 어깨를 후려칠 찰나였다. 노인이 쇠지팡이로 그의 칼을 한 차례 후려패니, 오히려 장표사의 칼이 뒤 집혀 날아가고 그는 팔과 손이 아파 쩔쩔 맬 뿐이었다. 첨표사가 소리쳤다. "이 자는 보통이 아니다. 모두 한꺼번에 덤벼라!" 중인은 그 장님의 무공이 고강하기는 하지만 그는 혼자인데다 눈도 멀었으니, 여럿 을 대적할 수는 없을 것이라 생각했다. 칠팔 명의 표사와 위사들이 그를 가운데 두고 포위해서 공격할 태세를 갖추었다. 그 장님노인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가볍게 지팡 이를 휘둘러 동편을 한번 치고 서편을 한번 베니, 단 수합만에 이미 한 위사가 땅 에 꺼구러졌다. 주위신은 멀찌기서 이 광경을 지켜 보았다. 그 장님노인의 출수가 심원(沈遠)하여 누구도 마음을 놓을 수 없는 적수라는 걸 알았다. 그리고 그는 찰나의 순간 그의 눈 꺼풀안의 눈동자가 번쩍 빛을 발하는 것을 보았다. 틀림없이 장님이 아닌 듯 했다. 그 노인은 몸을 돌려 정확히 첨표사를 발로 차서 고꾸라뜨렸다. 주 위신은 크게 놀 랐다. 이 장님은 태악사협 따위와는 비교도 안되는 진정 절예를 펼치는 고수임이 분명했 다. 주위신은 자신이 짊어진 무거운 임무를 생각하고 장사표를 향해 소리쳤다. "장형제, 그 장님을 놓아 주시오. 그의 목숨을 다치지 마시오. 나는 한 발 먼저 갈테니, 우리 홍동현에서 만납시다." 그는 마음속으로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강호에 이런 말이있지. 길에서 험한 일을 만나면 피해감이 마땅하고, 재인이 아니 면 시를 읊지 말라 라고 말이야." 그는 두 다리로 말의 배를 쳐서 숲을 향해 말을 몰 았다. 그가 숲속으로 말을 몰아 들어가니 한 그루의 커다란 나무 뒤에서 도광이 번 쩍이는 것이 보였다. 강호에서 늙은 그는 곧 사태를 짐작 하고 생각했다. '그 장님은 혼자서 도적질을 하려던 것이 아니었군. 여기에 다른 한 패가 숨어 있는 거야.' 그는 더욱 더 채찍을 바삐 휘둘러 급히 말을 몰았다. 그러나 4,5장을 못 가서 나무 뒤에 언뜻 보이는 어떤 사람의 그림자를 발견했다. 주위신은 이 사람이 손에 단도를 들고 있으며, 표정이 흉악스러운 것을 보고 말을 떼어 보지도 못한 채 그에게 활을 당기며, 동시에 앞으로 달려 나갔다. 그 사람은 칼 을 휘둘러 그 수전을 막아 내고 사납게 말했다. "누구냐? 이따위 무기를 쓰는 것이 ?" 또 다른 한 사람이 잇달아 말했다. "네가 그런 것을 쓰면 우리는 없을줄 아느냐 ?" 그러더니 탄궁을 당겨 연달아 여덟 아홉 개의 연탄주를 쏘아 댔는데, 그 중 두알이 말의 앞다리에 맞았다. 말이 놀라 앞다리 를 펄쩍 올렸고 주위신은 말에서 떨어졌다. 주위신은 벌써부터 왼손에 채찍을 들고 있었는데 바닥을 한번 구르고 나서 벌떡 몸 을 일으키지 마자 재빨리 '팍!' 하며 날아온 탄환이 또 그의 손목에 맞아 채찍조차 손에 쥐고 있지 못하고 땅 에 떨어뜨렸다. 그 두사람은 좌우에서 동시에 달려 들어 그의 목 에 쌍도를 들이대었다. 한사람이 물었다. "넌 뭐 하는 사람이냐 ?" 다른 한 사람도 물었다. "왜 그렇게 함부로 무기를 쓰느냐 ?" 먼저의 사람이 말했다. "우리 아기 못 보셨어요 ?" 다른 사람이 말했다. " 젊은 아가씨가 지나가는 것을 보셨소 ?" "그 아가씨가 아기를 안고 있지 않았나요 ?" 잠시 동안 그들이 이렇게 질문을 퍼붓자, 주위신은 멍하니 입만 벌리고 있을 뿐 그 많은 물음에 대답할 수가 없었다. 그들은 바로 임옥룡과 임비연 부부 였던 것이 다. 임옥룡은 부인을 향해 사납게 말했다. "입 닥쳐! 내가 물어 보겠어." 임비연이 말했다. "내가 왜 입을 다물고 있어? 당신이 입을 닫아! 내가 물어 볼 테니까." 두 사람은 네가 한마디 하면 내가 한마디 하고 서로 다투기 시작했다. 주위신은 두 무기가 목에 얹혀져 있으나 혹시 두 사람중 누군가 화가 뻗쳐 손을 한 번 잘못 놀려 자신의 머리와 몸이 완전히 두동강이 나 버릴까 겁이 났다. 그는 온통 얼굴에 웃음 을 띠며 말했다. "두분은 걱정하지 마십시요. 저를 놓아 주신 후에 이야기를 들어도 늦지 않습니다." 임옥룡이 사납게 말했다. "너를 놔 달란 말이냐 ?" 임비연은 주위신이 오른손을 등 뒤로 돌려 등의 보자기를 움켜 잡는 것을 보고 그 속에 대단히 귀중한 물건이 감춰져 있으리라 생각하고 위협하듯 말했다. "그것은 뭐냐 ?" 주위신이 총독으로부터 원앙도를 건네 받은 뒤로 한시라도 원앙도라는 세글자를 잊 은 적이없었다. 그 부담감때문에 밤마다 꿈을 꾸며 잠꼬대를 할 지경인데, 이런 급박 한 상황에서 다시 이렇게 다그침을 받자 그는 저도 모르게 대답해 버리지 않을수 없 었다. "원앙도!" 두사람은 그의 대답을 듣고는 놀라서 두 사람이 다 그의 등에 짊어진 보따리를 움 켜 잡으려 하였다. 주위신은 금방 자신이 발설한 것을 후회했다. 그러나 그 와중에서 도 그는 생각했다. "옛말에 이르기를 ' 한 사람이 목숨을 걸고 싸우면 만명의 사람도 당할 수가 있다' 라는 말이 있거늘, 상대는 사실 두명뿐인 데야..." 그는 섬득한 칼날이 그의 목에 닿아 있는것도 아랑곳 않고 앞으로 구르려 했다. 그러나 두사람은 힘을 합쳐 보따리를 움켜쥐었고 주위신마저도 들어올렸다. 주위신 은 그 보물을 싼 보따리를 등에 붙여 놨던 것이다. 주위신은 재빨리 임옥룡의 얼굴 에 일격 을 가했다. 그러자 임비연이 칼을 돌려잡고 손잡이 쪽으로 주위 신의 뒷목을 한차례 치고는 물었다. "오라버니, 아파요 ?" 임옥룡은 화가 나서 말했다. "물어서 뭐해? 당연히 아프지." 임비연은 화를 냈다. "흥, 나는 걱정스러워서 물어 보았는데 뭐가 틀렸다는거야 ?" 두 사람은 다시 싸우면 서 한편으로 그 보따리를 빼앗으랴, 입을 쉴 시간이 없었다. 그때 갑자기 풀밭에서 누군가 뛰어 나오며 소리쳤다. "아기를 원하세요 ?" 두 사람이 일제히 고개를 들어 말소리가 들리는 쪽을 바라보니 그것은 바로 소중혜 였다. 그들은 두 손을 높이 들고 자신의 아기를 받으며 크게 기뻐했다. 소중혜는 오 른손으로 아기를 건네주고 왼손에 들었던 단도로 주위신이 메고 있던 보따리를 뜯어 살펴 보다가 보따리 안에서 칼 한 자루를 끄집어 냈다. 푸른 빛이 번쩍 하며, 그 섬 뜩한 기운이 사람을 압도하였다. 손이 닿는대로 한 번 휘두르니, 과연 진정한 보도라 쇠사슬도 끊어 버렸다. 소중혜는 보따리를 빼앗은 후 몸을 돌려 주위신의 말에 올랐 다. 그 녀의 이러한 동작들은 토끼가 새를 쫓는 듯 신속하게 이루어졌다. 그녀는 말 고삐를 잡아 당기며 소리쳤다. "가자!" 그러나 그 말은 네발이 땅에 박힌 듯 꼼작도 하지 않았다. 소중혜는 발을 뻗쳐 말 의 복부를 걷어 찼지만 발과 무릎이 아플뿐 이었다. 그는 아무에게도 들리지 않는 소리 로 말했다. "낭패로군!" 그녀는 하는 수 없이 말에서 내려야 했다. 그러나 그녀가 말에서 내리려 하기도 전 에 누구에겐가 혈도를 잡히게 될 줄이야 어떻게 알았으랴. 그녀는 말에 올라탄 채 꼼작도 할 수 없게 되었다. 말의 배 밑에서는 누군가 기어 나오는 것이 보였다. 그 사람은 바로 장님노인이였 다. 그가 언제 표국의 대열에서 벗어나 몰래 여기에 숨어들었는지 아무도 몰랐다. 그 는 얼른 손을 뻗어 소중혜의 손에 있던 원앙도를 빼앗아 들었다. 임비연이 아기를 내려 놓고 그에게서 칼을 빼들고 찌르려 했다. 임옥룡도 뒤따라가 옆에서 공격을 거들었다. 그 장님은 칼날이 긴 원도를 꺼내어 막아 냈다. '땡강!' 하는 소리와 함께 부부의 쌍도는 동강이 나고 말았다. 두 사람은 얼떨떨하여 한동안 멍하니 서 있다가, 돌연 허리에 혈도를 잡혀 그 자리에 선채 다시는 꼼작을 못 하였다. 주위신이 잡아 먹을듯이 험학한 기세로 말했다. "이 도적 장님놈! 네가 무사할 듯 싶으냐 ?" 그는 땅바닥에서 철채찍을 주워들고 '호현십팔편(呼延十八鞭)' 의 횡소천군을 써서 그 장님을 향해 후려쳤다. 그 장님은 피하지 도 않고 원앙장도를 휘둘러서 앞을 향해 찔렀다. 그러나 정말 신기하게도 그 한번의 찌름은 철채찍을 향한 것도, 주위신의 가 슴 을 향한 것도 아니고 그 보자기안의 칼집을 찌른 것으로 그 칼이 칼집과 함께 공 중에서 주위신의 채찍을 막았다. 주위신의 16근이 나 되는 이 철채찍은 공중에서 저 지된채 음직이지 않았다. 칼과 채찍이 서로 버티고 있을때 '휙' 하는 소리가 나더니 장님 노인 이 내공으로 주위신의 철채찍을 날려 보냈다. 주위신의 손아귀는 찌어졌 고 손은 온통 피투성이가 되었다. 장님이 흰 눈자위를 뒤집으며 냉랭하게 말했다. "호현십팔편의 제일 마지막 일초는 배우지 않으셨군." 주위신은 이 말을 듣고 이만 저만 놀란 것이 아니었다. 호연십팔편을 비록 십팔편이라고는 하지만 전해져 내려오 는 것은 단지 십칠초뿐이었다. 그의 사부가 예전에 말씀하시길 마지막 일초는 일편 단십창(一鞭斷十創)이라 불리우는 것인데, 그것은 옛날 북송 의 대장 호연이 적의 포 위공격을 풀기위해서 채찍 하나로 열 자루의 장창을 부러뜨려 버렸다는 것이다. 이 러한 편법은 초수와는 상관없이 내공에 의한 것이었으므로 당시에는 사백만이 그 신 공 을 할수 있다고 들었었다. 주위신은 그 사백을 본적은 없었고, 그는 청나라 조정 의 시위인 대내칠대고수중의 우두머리로 궁궐 깊은 곳에 살면서 밖으로 나오지 않는 다는 것만을 알고 있었을뿐 이다. 그래서 시종 상면할 기회조차 없었던것이다. 그는가 슴을 두근거리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당신... 어르신의 성이 탁(卓)입니까 ?" 장님이 말했다. "그렇다." 주위신은 기쁨과 놀라움이 범범이 된 표정으로 얼른 땅에 엎드려 절을 하며 말했 다. "제자 주위신, 탁사백님께 문안드립니다." 장님 노인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세상에 아직 탁천웅이 있다는 것을 아는군." 주위신이 말했다. "사부께서 생전에 사백의 신기한 위엄에 대해 항상 말씀하셨지 요. 소인이 사백을 몰 라 뵙고 큰 무례를 범했습니다. 사백께서는 언제 북경을 떠나 이리로 오셨나요 ?" 탁천웅이 미소하며 말했다. "황제께서 나를 보내어 당신을 맞이하라 하셨다." 주위신은 황공하고도 기뻐서 말했다. "만일 사백께서 도와주시지 않으셨다면 이 한쌍의 원앙도는 비적의 수중에 들어가 고 말았을 것입니다." 탁천웅이 말했다. "황제께선 앞일을 훤히 내다보시고 이 원앙도가 북경까지 호송 되어 오는데 있어 많 은 말썽이 있으리라는 걸 예상하셨지. 네가 서안을 떠난 이후로 나는 줄곧 표국 대 열의 뒤를 따라오고 있었다. 너는 밤에 잠자면서 뭐라고 잠꼬대를 했었다고 ?" 주위 신은 얼굴이 귀까지 빨개지면서 우물쭈물 대답하지 못했다. 그는 생각했다. '사백께서는 줄곧 우리들의 뒤를 따라오고 계셨구나. 밤중에 내가 잠꼬대 한것까지 모두 들으셨는데 나는 전혀 눈치를 못챘어. 만일 그가 사백이 아니고 보도를 노린 도적이었다면 나의 이 생명이 붙어 있지 못했겠지.' 탁천웅이 말했다. "부하들은 모두 간이 콩알만하구나. 이러한 때에 어디에 숨어야 좋을지 몰라 안절부 절하다니..., 어서 모두들 불러모아 서둘러 길을 가자." 주위신은 목청을 돋구어 명령을 내렸다. 탁천웅은 그 원앙도를 들어 한번 만져 보 았다. 섬뜩한 한기가 미간에까지 이르르자 그는 감탄을 금치 못했다. "과연 보도로군!" 주위신이 숲을 나가려 할때 왼편에서 누군가 말했다. "이봐요! 탁가! 어서 어서 내 혈도를 풀어다오. 그런 다음 다시 한번 겨루어 보자 고." 다른 여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무방비상태에 있는 사람에게 공격하여 혈도를 짚는 것은 영웅 호걸다운 짓이 아니 다!" 탁천웅이 고개를 돌려 보니 임옥룡과 임비연 부부가 동강난 칼 을 들고 당장이라도 덤벼들 기세였지만 손끝 하나 꼼짝할 수 없는 처지라 얼굴만 새파래져 있었다. 탁천 웅은 손가락으로 칼끝을 튕겨 웅웅 소리를 내면서 비웃듯이 말했다. "네가 얼마나 많은 도적들을 데리고 오는지 상관없다. 한 명이 오면 하나를 잡고, 둘이 오면 둘을 잡을 것이다." 그는 고개를 돌려 소중혜를 바라보며 말했다. "어린 아가씨! 아가씨는 나와 함께 북경으로 들어가 재미있는 구경이나 많이 합시 다." 소중혜는 다급하게 소리쳤다. "빨리 나를 풀어줘요. 나를 놔 주지 않으면 끝없이 후회하도록 해주겠어요." 탁천웅은 호탕하게 웃으며 말했다. "그렇다면 더욱 아가씨를 놔줄수 없군. 아가씨가 어떻게 나를 끝없이 후회하도록 만 다는지 보고 싶으니까 말이야." 소중혜는 내공으로 다리에 짚혀 있는 혈도를 풀어 보 려 안간힘 을 썼다. 그러나 내기(內氣)는 허리까지만 내려갔다가 다시 올라와 마음은 점점 급해지고 온몸은 점점 쑤셔 왔다. 그녀는 반푼의 힘도 쓸수가 없어 얼굴이 온 통 시뻘개 진채 눈에는 눈물이 그렁 그렁하여 금방이라도 흘러 내릴 것 같았다. 그때 홀연 숲 밖에서 시를 읊는 소리가 들려왔다. 그 목소리가 점점 높아지면서 한 사람이 숲속으로 들어섰다. 소중혜가 힐끗 보니 그 사람은 어젯밤 객점에서 보았던 소년 서생 원관남이었 다. 그녀는 자신의 이러한 몰골을 다시 다른 사람에게 보여야 한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방울방울 흘렀다. 탁천웅은 원앙쌍도를 무섭게 움켜쥐고 말했다. "원가야! 그 원앙도가 여기 있다. 가져갈수 있으면 가져가 봐 라! 네가 엉뚱하게 무 공을 모르는척 다른 사람들을 속였지만 나 탁천웅의 눈은 못 속인다." 이렇게 말하며 원앙쌍도를 부딪치니 쨍! 하는 소리가 숲속에 울려 퍼졌다. 원관남은 한손에 붓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묵합(墨盒)을 든 채 말했다. "저는 홀연 시흥이 나서 나무에 시 한수를 적으려 할 뿐인데 어른께서는 어찌 저의 맑은 흥취를 가시게 하려는 것입니까 ?" 그는 태연히 사방을 둘러보면서 시를 쓸 곳 을 찾는 눈치였다. 탁천웅은 그가 무공이 있음을 알아차렸고 그가 이토록 감쪽같이 가장하고 있는 것으 로 보아 가벼이 볼 상대가 아니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쌍도를 칼집에 넣어 주 위신에게 건네 주고, 철봉을 짚으며 사납게 말했다. "시를 쓰려거든, 이 장님의 장삼위에 써보아라!" 그러면서 그는 철봉을 휘둘러 원관남의 뒤통수를 후려치려 하 였다. "안돼요!" 소중혜는 자신도 모르게 소리쳤다. 소중혜가 보기에는 원관남 은 닭의 목을 비틀힘 도 없는 것 같았으므로 이 일격을 맞는다면 그는 머리통이 부서지고 말 것이라고 생 각했다. 그러나 원관남은 재빨리 고개를 낮추어 철봉을 피하면서 외쳤다. "아이고! 아가씨가 때리지 말라고 한 말도 못 들었소 ?" 탁천웅은 철봉을 돌려 이번 에는 옆으로 후려쳤다. 원관남은 한 발을 풀쩍 꺽더니 땅바닥에 엎드렸고 철봉은 그 의 머리 꼭대기를 스치고 지나갔다. 탁천웅은 소리쳤다. "이번엔 훌륭했다." 원관남은 붓을 먹에 적시어 그의 손목에 점을 찍었다. 두 사람 의 수합을 보면서 소 중혜는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저 서생도 무공을 익히고 있구나. 이번에는 잘 지켜봐야지.' 그의 몸은 마치 바람에 날리듯 동쪽에 나타났다 서쪽으로 피하곤 했는데 그 몸놀림이 하도 날렵하여 탁천웅은 철봉으로 그를 맞출수가 없었다. 소중혜는 자신도 모르게 속으로 이렇게 기원하 고 있었다. '하늘이 보살피사, 저 서생이 이기게 해 주소서. 그가 나를 구할 수 있게 해주소서.' |
< 원 앙 도 (鴛 鴦 刀) - 5 편 >
임옥룡은 목소리가 갈라져라 소리쳤다.
"상공, 당신의 무공은 보통이 아닌 듯한데 어서 저 장님을 죽이고 우리의 혈도를 좀
풀어 주시요."
그러자 임비연이 말했다.
"그건 바램일뿐이예요. 저 서생은 장님의 적수도 못되요." 임옥룡이 다시 화를 내며
말했다.
"이런 더러운 년! 재수없는 소리만 하고 있네. 네가 뭘 알아." 임비연이 말했다.
"내가 그들의 동작을 잘 볼수 있지, 당신은 잘 보여요 ?"
사실 임비연은 그들을 바로 보고 있었고, 임옥룡은 등을 대고 있었던 것이다.
임옥룡이 말했다.
"잘 보이는게 무슨 소용이야? 저 장님이 철봉을 헛 치는 소리만 들으면 다 알 만한
일이지."
임비연이 입을 삐죽이며 말했다.
"알긴 뭘 알아. 저 장님이 당신을 꼼짝 못하게 만들었는데..." 임옥룡도 말했다.
"그럼 너는 ? 한번 움직여 보시지!"
두 사람의 말다툼은 점점 치열해져 갔는데 그들은 몸을 음직일 수만 있다면 벌써 주
먹과 발길질이 오고 갔을 것이다. 임비연은 드디어 분을 참지 못하고 임옥룡에게 침
을 뱉었다. 임옥룡은 피할 방법이 없었으므로 눈을 멀뚱이 뜨고 그녀의 침이 코에
적중 하는 것을 보고 있다가는 '퉤!' 하며 그 역시 임비연에게 침을 뱉았다. 그들 두
사람은 서로의 얼굴이 침투성이가 될때까지도 그렇게 침뱉기를 계속하고 있었다. 소
중혜는 그들 부부가 이렇게 위급한 지경에서도 저렇게 심하게 싸우는 것을 보고는
신기하기 도 하고 우습기도 하였다.
그녀는 다시 원, 탁 두사람이 대결하는 것을 보고 가슴을 졸이지 않을 수 없었다.
그러나 원관남은 계속 후퇴만 할 뿐 공격도 해보지 못 하였는데 정말 그 장님의 적
수가 되지 않는 것 같았다.
그러나 그녀는 생각했다.
'저 서생이 무공을 모르는채 가장하느라고 일부러 장님을 희롱 하는 것이지 진짜 지
고 있는 것은 아닐거야.'
그러나 사실과 희망은 어긋남이 있어 탁천웅의 무공은 원관남 에 비해서 훨씬 우세
하였다. 원관남은 이처럼 무서운 적수를 만나리라고는 생각지도 못했었고 수중에는
무기또한 없었으므로 시종 좌충우돌 궁지에 몰리면서 내심 비명을 지르고 있었다.
'내가 사실 저 가짜 장님을 얕잡아 보았는데 이토록 어려운 상대일 줄은 몰랐는
걸.'
탁천웅이 소리쳤다.
"받아라!"
철봉이 원관남의 허벅지를 후려쳤다. 소중혜는 가슴이 덜컹 내려 앉으며 저도 모르
게 소리를 질렀다.
"아이고!"
원관남은 억지로 지탱하고 서 있었지만 걸음걸이가 불안하기 짝이 없었다. 그는 뒤
로 세 걸음을 물러났지만 넘어지지는 않았다. 그는 자신의 무공으로 장님을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고 꾀를 내었다. 그는 계속 뒷걸음질을 치다가 소리쳤다.
"좋다. 내가 절대로 이 '부골천심고(腐骨穿心膏)'만은 쓰지 않으려 했는데 당신이
이토록 무례하니 맛을 좀 보여 줘야겠소." 그는 묵합속의 먹을 붓에 잔뜩 묻혀 서는
탁천웅의 얼굴에 문지르려 대들었다. 탁천웅은 부골천심고라는 말을 듣자 기겁을 하
여 소리쳤다.
"너는 오독성고와 어떤 사이냐 ?"
본시 오독성고는 귀주지방의 유명한 여마두로 사용하는 독약 중에 이 부골천심고가
가장 유명한데 이 독약을 피부에 약간만 묻혀도 열 두 시간안에 살이 썩어 뼈가 드
러나고 스무시간이 지나면 독혈이 심장까지 퍼진다는 천하에 다시 없는 독약이었다.
원관남은 수년 전에 누구에겐가 이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당신에는 별로 마음
에 두고 있지 않았지만 지금 탁천웅에 의해서 궁지에 몰리게 되자 그 생각이 떠 올
랐던 것이다. 그는 이 말에 탁천웅의 얼굴색이 새파랗게 질리는 것을 보고 내심 기
뻐하며 말 했다.
"오독성고는 나의 고모가 되시오."
탁천웅은 반신반의 하며 말했다.
"그렇다면 내가 더이상 너를 괴롭히지 않겠다. 어서 내 앞에서 꺼져."
원관남이 냉소하며 말했다.
"내가 너의 철봉에 상처를 입었는데 이것으로 싸움을 끝내려는 게 말이 되느냐 ?"
그리고는 그에게 성큼 다가섰다. 탁천웅은 그가 왼손에 들고 있는 묵합을 마치 독
사라도 보듯 하였다. 그는 내심 이렇게 생각 하고 있었다.
'붓과 묵합은 원래 병기로 사용할 수 없는 것인데 그가 나와 싸울때 저것을 들고
나온 걸 보면 뭔가 괴이한 물건이 들어있음 에 틀림없다.'
그가 자기앞으로 성큼 다가서는 것을 보고는 뒤로 물러서지 않을수 없었다. 원관남
은 다시 두어걸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우리 고모님은 독약을 좀 쓸뿐 무공은 별로 대단할 것도 없는데 당신은 어찌 이렇
게 겁을 내시오 ?"
탁천웅이 슬슴슬금 뒤로 물러서는 것을 보고 있다가 갑자기 몸을 휙 둘려 왼쪽으로
보니 바로 주위신이 그곳에 있었다. 그는 붓을 휙 돌려 그의 두눈에 먹을 칠하려 하
였다. 주위신은 기절할 듯 놀라 팔을 들어 막았다. 원관남은 팔꿈치로 주위신을 부딪
친 후 묵합을 오른손에 옮기고 왼손으로 주위신이 가지고 있던 원앙도를 빼앗아 들
었다. 탁천웅은 대경실색했다. 황제께서 친히 자신을 보내어 원앙도를 북경까지 호송
하라는 임무를 맡겼는데 이 까짓 좀도둑에게 빼앗긴다면 그 얼마나 큰 죄를 짓는 것
이 되겠 는가?
그는 오독성고를 얕잡자 볼 수도 없었지만 그렇다고 원앙도를 빼앗길 수는 없었으
므로 당장에 몸을 날려 원관남의 어깨에 일장 을 내리치고는 왼손의 손가락을 세워
원앙도를 움켜 쥐었다.
원관남은 벌써부터 이런 상황을 예상하고 있었고 자신이 이대로 있으면 원앙도를
빼앗길수 밖에 없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었으므로 그의 왼손을 향해 붓을 들어 먹
을 묻혀 주고는 '하하' 큰소리로 웃었다. 탁천웅은 손끝에 뭔가 스치는 느낌이 들어
쳐다보니 이미 진한 먹물이 묻어있었다. 오독성고의 독이 얼마나 끔직한지에 대해
서 익히 들어온 그는 그 참혹한 모습이 머리를 스치자 온몸이 부들부들 떨리기 시작
했다. 원앙도의 손잡이를 움켜 잡고 있던 왼손에도 더 이상 힘을 주지 못하고 잠시
멍하니 서 있다가 미친 듯이 숲 밖으로 뛰어나가 버렸다. 주위신이 사백 의 이러한
모습을 보고 어찌 그대로 가만히 있을수 있었겠는가? 탁천웅의 뒤를 쫓아 뛰어갔다.
원관남은 탁천웅이 진상을 알고 다시 쫓아 올 것이 두려워 그 숲속에서 잠시도 지
체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원앙도를 집어들고 그 자리를 떠나려 했다. 임옥룡이 소리
쳤다.
"이봐, 젊은 수재. 어째서 우리들의 혈도를 풀어주지 않는거야?"
원관남이 말했다.
"여섯 시간만 있으면 자연히 풀릴거요."
소중혜가 다급하게 소리쳤다.
"다시 여섯시간이 지나면 사람도 죽고 말아요."
원관남이 웃으며 말했다.
"걱정할 것 없어요. 아직 죽지 않아요."
소중혜가 화가 나서 말했다.
"좋다, 나쁜 서생 같으니. 다음에 나에게 걸리지 않게 조심해 라!"
원관남은 탁천웅이 철봉으로 자신을 공격하려 했을 때 그녀가 만류하는 말을 했던
것이 생각났다. 그는 이들 세 사람이 모두 원앙도를 탐내고 있는 것이 분명했으므로
그들의 혈도를 풀어주면 또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알 수 없는 일이므로 잠시 숙고하
는 듯하더니 허리를 굽혀 조그만 돌맹이 두개를 던져 각각 임옥룡과 임비연의 혈도
를 맞추었다. 거리가 수장이나 떨어져 있었지만 추호의 착오도 없이 정확했다.
임옥룡과 임비연 부부는 서로 치미는 울화통을 어쩔수 없이 참고 있던 터였으므로
혈도가 풀려 몸을 음직일 수 있게 되자 다시 서로 달려 들어 싸워댔다. 원관남은 또
하나의 돌맹이를 던져 소중혜의 혈도를 맞추었다. 소중혜는 '아' 하는 소리를 내며
말에서 떨어져 내려 옆으로 누운채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녀는 두 눈 을 꼭 감은채
미동도 하지 않았다.
원관남은 순간 깜짝 놀랐다. 자신이 던진 돌이 빗나가 다른 혈도를 잘못 건드린 것
이 아닐까? 그는 급히 그녀의 몸 가까이로 다가가서 허리를 굽히고 살펴 보았다. 그
녀의 얼굴색은 이상하였고 호흡도 끊어 진것 같았다. 원관남은 다급히 손을 뻗쳐
그녀 의 코에 대고 호흡을 확인하려 하였다. 그때 소중혜가 갑자기 '꽥' 하는 소리를
지르며 몸을 한 바퀴 돌려 뛰어오르면서 그의 수중에서 칼날의 원앙도(鴛鴦刀)를
빼앗았다. 원관남은 전혜 예 상치 못한 일이라 기절할 듯 놀라며 소리를 질렀지만 칼
은 이미 그녀의 손에 빼앗기고 말았다.
소중혜는 그의 무공이 자신보다 한수 높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므로 이렇게 기습적
인 방법으로 원앙도를 빼앗었던 것이다. 그래서 다시 원앙도를 홈칠 염두는 내지 못하고
그대로 도망쳤다.
임옥룡이 소리쳤다.
"아차, 원앙도!"
임비연이 땅에서 아기를 안아 들며 소리쳤다.
"빨리 쫓아요!"
두 사람은 소중혜를 쫓아 갔다.
원관남은 소중혜를 향해 욕을 했다.
"나쁜 계집, 은혜를 원수로 갚다니!"
그는 힘을 내서 쫓아가려 했지만 탁천웅에게 당한 왼쪽다리의 상처가 가볍지 않아
서 다리가 자유스럽지 못하니 경신술도 반밖에는 쓸수가 없어서 소중혜와 임가부부
가 멀리 서북쪽의 황량한 산쪽으로 달려가는 것을 보고도 따라잡을 수가 없었다. 그
러나 원앙도 가운데 한 자루를 잃어 완전히 원앙을 이루지 못한 걸 생 각하면 다리
의 통증이 아무리 심해도 놓치고 싶지 않았다.
이십여리를 달려 나오자 지세는 갈수록 황량해져갔다. 원관남 은 이 높은 산에 올라
가 사방을 내려다 보니 서북쪽 사오 리 밖 에 작은 사당이 보였다. 그는 그들 세사람
이 몸을 숨긴 곳은 바 로 이 사당밖에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고 단단한 나무를 꺾어
지팡이를 삼아 그 사당을 향해 나아갔다.
그 사당 앞에 이르니 '자죽암(紫竹庵)'이라고 적힌 현판이 보 였다. 이곳은 비구니들
의 암자였던 것이다. 원관남이 그 암자로 들어서자 대웅전 앞에 서 있는 한 늙은 여
승이 시야에 들어왔다.
그 여승의 복장이 정결했고 자상한 인상을 뿌렸다.
원관남은 합장을 하며 말했다.
"대사께 여쭙겠습니다. 남색 옷을 입은 아가씨 한분이 이곳에 오지 않았나요 ?"
그 여승은 말했다.
"저희 암자는 황량하고 궁벽한 곳에 있어서 찾아오는 시주가 없으십니다."
원관남은 믿지 못하고 말했다.
"대사께서 감추실 필요가..."
그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밖에서 '뚜둑 뚜둑' 하는소리가 들려 왔다. 바로 탁
천웅이 따라 온 것이다.
원관남은 기겁을 하여 말했다.
"대사, 제발 좋은 일을 좀 해 주십시요. 저를 찾는 원수가 따라온 것 같습니다.
제발 제가 여기에 왔다는 것을 말하지 말아 주십시요."
그는 여승의 대답을 기다리지도 않고 재빨리 후원으로 숨어 들어갔다. 동쪽에 작은
불당이 보였는데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백의 관음보살이 모셔져 있었다. 그는 생각할
겨를도 없이 불상 위로 올라가 장막을 걷고 그 관음보살상 뒤에 숨었다.
그러나 그 불상 뒤에는 먼저 와 있는 사람이 있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정신을
차리고 제대로 보니 그 사람은 바로 소중혜 였다. 그녀는 웃는 듯 마는 듯 원관남을
한번 쳐다보더니 말했다.
"좋아요. 당신은 대단한 무공을 가지고 있어서 내가 여기 숨어 있는 것을 찾아 내었
으니 이 칼을 가져요."
그러면서 그 원앙도를 건네 주었다. 그러자 그의 등뒤에서 누군 가의 말소리가 또 들
려왔다.
임옥룡, 임비연 부부 또한 아기를 안고 그곳에 숨어 있었던 것 이다.
원관남은 이때 목숨을 보존하는 일이 급하였으므로 칼을 가지고 다툴 겨를이 없었
다. 그는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소리내지 말아요. 장님이 뒤쫓아 왔다고요."
소중혜가 깜짝 놀라서 말했다.
"그는 당신의 독약에 중독되었잖아요 ?"
원관남은 미소지으며 말했다.
"독약은 가짜였어요."
소중혜가 다시 물으로 할 때 탁천웅의 굵은 목소리가 들려 왔 다.
"사방을 찾아봐도 사람이 안 보이는데 이곳이 아니면 또 어디 에 있단 말입니까 ?"
그 여승이 말했다.
"시주께서 다시 잘 찾아 보십시요. 제 생각에는 이미 벌써 도망친듯 합니다만..."
탁천웅이 말했다.
"좋아요, 사방에 내 부하들을 매복시켜 놓았으니 빠져나갈 구멍은 없을거요. 만일
찾지 못하면 다시 돌아와 당신과 결판을 내겠소. 이 냄새 나는 암자가 잿더미가 되
지 않으려면 조심하시요."
임옥룡과 임비연은 불 같은 성미가 준동해 또 서로 다투려 들자 그들이 입을 벌
리기 전에 원관남과 소중혜가 각기 그들의 혈도를 짚어 놓았다. 탁천웅은 후원으로
나갔다. 잠시후 사방을 둘러보고는 뭐라고 중얼거리면서 욕을 하는 듯 하더니 그 쇠
지팡 이 소리가 점차 멀리 가는 소리가 들렸다. 그는 암자를 나갔다.
탁천웅은 손에 시커먼 먹물이 묻자 그것이 진짜 독약인줄 알고 겁에 질려 벌벌 떨
면서 급히 시냇물로 씻어 내였다. 그랬더니 먹물은 흔적도 없이 사라졌고 그래도 못
미더워 열심히 그 먹이 묻었던 부분을 문질러 닦았더니 그 부분에 상처가 나서 더욱
아파 지는 것이었다.
그는 너무 놀라서 이제는 죽나 보다 하고 넋을 읽고 앉아 있었는데 한참이 지나도
아무런 이상이 없자 그제사 자기가 속았다는 것을 깨닫고 그 길로 쫓아 온 것이다.
그의 경신술이 놀랄 만한 경지라고는 해도 이렇게 잠깐동안에 그들이 숨어있는 이
암자를 찾아냈다는 것은 정말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원관남과 소중혜는 그가 멀리 가기를 기다려 두 사람의 혈도를 풀어 주고 관음보살
상에서 바닥으로 뛰어내려 왔다. 네 사람은 모두 탁천웅의 말을 상기하고 이마를 찌
푸렸다. 그 사람의 경신술로 보아 수십리를 가다가 종적이 보이지 않으면 다시 돌
아올 것이 분명한데 그렇다면 이렇게 속수무책으로 죽기만을 기다려야 한단 말인
가? 원, 소 두사람은 아무 말 없이 도망칠 계략을 생각 하고 있었다.
임옥룡이 욕을 해댔다.
"모두가 이 더러운 년 때문이야. 우리가 열심히 부부도법을 연마했다면 그 까짓 장
님쯤 두려워 할 필요는 없었을 것 아니야?" 임비연이 말했다.
"부부도법을 연마하지 못한게 당신의 잘못이지 내 잘못이야? 그중이 뭐라고 했어?
당신이 나를 보호해야 한다고 했잖아? 어째서 자기 생각만 하는거야 ?"
두 사람은 또 끊이지 않는 다툼을 시작했다. 원관남은 그들이 계속 외쳐대는 부부
도법이란 말을 듣고 물었다.
"우리 네 사람, 당신들의 저 아기와 이 암자의 여승까지 포함한 우리들은 매우 위기
에 직면해 있습니다. 그 장님 노인이 돌아 오기만하면 아무도 살아 남지 못합니다. 이
런 지경에서도 두분은 싸우기만 하시겠어요 ? 대체 부부도법이 뭐가 어떻게 됐다는
것 입니다."
임가부부는 그래도 여전히 한참을 다툰후에야 자세한이야기를 들려 주었다.
삼년 전이었다. 임가부부가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서 크게 싸움을 벌이고 있었는
데 마침 한 고승을 만나게 되었다. 그 고승 은 그들에게 부부가 둘이서 이루는 부부
도법을 전수해 주었다.
이 도법은 임옥룡이 배운 도법과 임비연이 배운 도법이 완전히 다른 것이어서 두 사
람이 완숙하게 수련을 해야만 적을 공동으로 대적하는 도법의 음양조화가 이루어져
천의무봉한 도법을 이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그 고승이 말했다.
"강호에서 이 도법으로 행세하면 어떤 고수라도 당신들 부부를 당하지 못할 것이요.
그러나 단독으로 이 도법을 쓰면 전혀 무용 할 것이요."
그 고승은 이 부부의 반목이 결국에는 두 사람을 헤어지게 할 까 두려워 이 도법을
전수하여 두 사람이 영원히 헤어지지 않게 하려던것이었다. 이러한 부부도법은 고대
에 대단히 금술 좋은 부부가 창안한 것이라 했다. 임가 부부같은 꼴사나운 부부가
이 도법을 배우리라고 생각이나 했겠는가? 두 사람이 각각 자기의 도법을 완전히
익히고 있다고 해도 서로를 돕지 않으면 일체를 이 룰 수 없는 것인데 이 임가 부부
는 단 삼초만 연습을 하다보면 곧 다툼이 생겨 두 사람 모두 서로를 공격하곤 하였
던 것이였다.
원관남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다 들은후 마음에 뭔가를 생각한 듯 소중혜에게
말했다.
"아가씨, 내가 이런 말을 해야 할 지 말아야 할 지 모르겠지만 일이 이렇게 다급하
고 게다가 이곳에 있는 사람들의 생명이..." 소중혜가 말을 받았다.
"알았어요. 당신은 나와 함께 부부... 부부..."
그녀는 말을 잇지 못하고 얼굴을 붉혔다.
원관남이 말했다.
"제가 감히 이렇게 무례를 범하는 것은 사실은... 제 말은.."
소중혜는 더 이상 그와 말하지 않고 임비연에게 말했다.
"아주머니, 저에게 그 도법을 좀 가르쳐주세요. 제가 만일 그 와... 그와 도법을
모두 배울수 있다면 그 장님을 물리칠수 있을 거예요. 그렇게 되면 사람들의
목숨을 구할수 있을거예요."
임비연이 말했다.
"이 도법을 배우자면 아주 어려워요. 하루 이틀에 되는 것이 아니예요."
소중혜가 말했다.
"그건 당연히 그렇겠지요. 하지만 이곳에서 멍청히 죽기만을 기다리는 것 보다는 나
아요."
임비연이 말했다.
"좋아야. 가르쳐 주겠어요."
임가 부부는 각기 행동으로 일초일식을 원, 소 두사람에게 펴 보였다. 원, 소 두사
람은 각각 자신의 검법을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다.
원, 소 두사람의 무공은 그다지 보잘 것 없는 것은 아니었지만 이 부부도법의 초식
은 복잡하기 그지 없어 한순간에 기억한다는 것은 실로 어려운 일이었다. 두 사람은
가르치고 두사람은 배웠다. 그러나 채 십이초까지밖에 배우지 못 했는데 홀연 문밖
에서 고함소리가 들렸다.
"이 쥐새끼 같은 놈, 어디에 숨었느냐?"
탁천웅이 손에 철봉을 들고 뛰어 들어왔다.
임옥룡은 그가 다시 온 것을 보고는 침착하지만 화난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의 도법 전수가 아직 끝나지 않았으니 한시간만 좀늦게 나타나면 안되냐 ?"
그는 칼을 들고 그를 베려 했다. 탁천웅이 철봉으로 막아내자 임비연도 함께 그를
공격했다. 임옥룡이 소리쳤다.
"부부도법이다."
그는 원, 소 두사람에 앞서 시간을 좀 끌어볼 심산이었다. 이 때에는 임비연도 남편
을 호위하여 여느 때 없이 훌륭한 초식을 펼쳐갔다. 그러나 탁천웅은 상대방의 도법
에 커다란 헛점이 있음 을 알고는 쌍도를 막고는 철봉의 끝을 재빨리 음직여 또 임가
부 부의 혈도를 눌러 버리고 말았다.
임옥룡이 크게 노하여 외쳤다.
"이 더러운 년아! 그 제 일초에서는 내 옆구리 쪽을 보호해야 될 것 아니냐 ?"
그들은 다시 다투기 시작했고 그 소리는 그치지 않고 계속되었다.
원관남은 사태가 이 지경에 이르자 이미 요행을 바랄수는 없다 고 짐작했다.
그는 낮은 소리로 말을 했다.
"소 아가씨, 아가씨는 어서 도망쳐요. 내가 그를 붙잡고 있을 테니까."
소중혜는 그가 이 같은 혈기를 가지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녀 는 돌연 가슴이 뜨거
워져 잠시 멍하니 있다가 말했다.
"안돼요, 우리 함께 저자와 싸워요."
원관남이 다급하게 말했다.
"내 말을 들어요. 어서 가요! 우리가 만이 오늘 목숨을 부지한 다면 후에 다시 만날
수 있을 것입니다."
소중혜가 말했다.
"안, 안돼요!"
말을 맺기도 전에 탁천웅의 철봉이 날아왔다. 원관남은 칼을 뽑았다. 소중혜는 그의
왼쪽 어깨가 탁천웅의 공격을 받기 전에 칼을 휘둘러 그의 왼쪽 어깨를 보호했다.
두 사람이 사전에 연습 을 했던 대로 마침 상대가 공격해 온 데다가 서로의 협의지심
이 정신을 강하게 하여 상호회호(相互廻護)가 잘 이루어지고 있었 다. 임옥룡이 자세
히 지켜보며 소리쳤다.
"좋아요. '여모랑재주만곡(女貌郞才朱萬斛)' 이 일초는 부부도 법의 제 일초로써 기
묘하기 그지 없다오."
원, 소 드사람은 모두 얼굴이 붉어 졌으나 상황이 급박하여 사 사로이 부끄러움을
따질 계제가 아니었다. 두 사람은 새로 배운 신 검법을 천의무봉의 조화로 펼쳐냈다.
탁천웅이 옆으로 철봉을 갈기려 하자 임비연이 소리쳤다.
"제 이초, 천교눙질위권속(天敎농質爲拳屬)!"
소중혜는 그 말에 따라 공격을 하였고 원관남은 칼을 가로질러 수비하였다. 탁천웅
의 기세가 이공위수(以攻爲守)를 이루지 못하고 뒤로 주춤했다.
그때 다시 임옥룡이 소리쳤다.
"제 삼초, 청풍인패하요대(淸風引패下瑤대)"
원, 소 두사람의 쌍도가 한꺼번에 나르며 바람소리를 냈다.
임비연이 말했다.
"명월장성금옥(明月狀成金屋)"
원, 소 두사람이 서로 마주보며 한번 웃으니 칼빛이 달과 같이 서로의 얼굴에 비쳤
다. 탁천웅이 또다시 한걸음을 물러섰다. 계 속해서 임가부부가 번갈아 가며 초수를
지시하는 구령이 들려올 뿐이었다.
"도광암영공작병(刀光암映孔작屛)!"
"점단인간천상복(占斷人間天上福)!"
"......."
이렇게 부부도법이 십이초까지 왔을때 그들은 더 이상 계속할 초식이 없었다. 본래
는 아직 육십여초가 더 남아 있었으나 원, 소 두사람은 아직 배우지 못한 것이었다.
원관남이 소리쳤다.
"처음부터 다시 합시다."
그러고서 다시 여모랑재주만곡의 일초를 썼다. 두 사람이 처음 에는그 십이초를 쓸
때에는 다소 조화가 미숙한 점도 있었으나 탁 천웅은 정신없이 막아 내느라 쩔쩔맸
다. 이번에 처음부터 그 십 이초를 다시 쓰자 두 사람은 그 일초 일초를 기억하고 익
숙해졌 다는 것을 알고 놀랍고 기쁜 마음을 금할 수 없었다. 거기다 원앙쌍도의 배
합은 더욱 더 견고하여 제 구초인 벽소성리쌍명봉(壁 蕭聲裏雙鳴鳳)에서 쌍도는 마치
봉황이 춤추듯 날아들었으니 탁 천웅인들 어찌 그 절초를 막아 낼 수 있었겠는가?
악! 하는 비명 소리와 함께 어깨에 칼을 맞고 선혈을 흘렸다. 그는 그들이 난적 임을
알아차렸다. 그는 이 암자에서 늙은 목숨을 버릴수는 없다 고 생각하고 철봉을 거두
어 담장을 넘어 도망쳤다.
원, 소 두사람은 서로의 눈을 바라보면서 무슨 말을 해야할지 몰랐다. 홀연 임옥룡
의 벽력같은 목소리가 들려왔다.
"절묘했어! 절묘했다고! 여모랑재주만곡!"
사실 그는 자신의 부부도법을 스스로 칭찬하는 것이었다. 소중혜는 얼굴이 붉어져
서 고개를 숙인채 그 암자를 뛰쳐나와 멀리가 버렸다.
원관남은 암자의 문밖까지 쫓아 나갔지만 소중혜의 뒷모습은 버드나무가 있는 길
쪽에 잠시 나타났다가 다시 사라져 버렸다.
< 원 앙 도 (鴛鴦刀) - 6편 > 3월 초열흘, 이 날은 진양대협 소반화의 오십 회 생일이였다. 소가에는 하객들이 가득했고 많은 영웅들이 다투어 들어갔다. 소 반화는 대청에서 많은 하객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백도협사(白道 俠士), 흑도호객(黑道豪客), 선배명수들, 소년 신진들... 그외에 소반화와 안면이 없는 그러나 그의 명성을 흠모하는 많은 손님들 이 바로 그들이었다. 후당에는 원부인, 양부인, 소중혜가 새 옷을 입고서 희색이 만면하여 앉아 있었다. 두 분 부인은 끊임없이 들려오는 각양각색 의 예물들을 수습하고 있었다. 소중혜는 거울을 보고 앉아 있다가 공연히 얼굴을 붉히며 나지막한 소리로 읊조렸다. "청풍인패하요대, 명월장송금옥" 원부인과 양부인은 서로 마주보며 생각했다. '저 아이가 밖에서 그 원앙도를 가지고 들어온 후로 문득 기뻐 하다가 문득 수심에 잠기곤 하니 심사가 복잡한 모양이야. 저 아이가 올해 스물이니 틀림없이 밖에서 마음에 드는 낭군이라도 만난 모양이야.' 양부인은 평소에 그녀의 비녀에 신경을 쓰지 않다가 갑자기 그녀의 머리에서 뭔가 가 없어졌다고 느끼고는 물었다. "혜야, 큰어머니가 주신 그 금비녀는 어떻게 했느냐 ?" 중혜는 웃으며 말했다. "다른 사람에게 주었어요." 원부인과 양부인은 다시 눈을 마주보며 생각했다. '과연 예상대로군, 정표가 되는 물건까지 주었군.' 양부인이 물었다. "누구에게 주었지 ?" 중혜는 마치 꽃가지가 떨리듯이 웃어 젖히며 말했다. "그... 그 사람이요? 오늘 오신 손님중에 있어요. 그 사람은 세상에 이름을 떨치는 인물이죠. 굉장한 사람이예요." 양부인이 다시 더 물어 보려 할때 하녀가 은합을 받쳐 들고 와 서 말했다. "이 선물을 참으로 괴상합니다. 어떻게 금비녀를 나리께 드린단 말입니까 ?" 두 부인이 일제히 다가가서 그 합안에 담겨있는 비녀를 살펴보니 놀랍게도 그것은 중혜의 비녀였다. 양부인은 고개를 돌려 딸의 싱글거리는 얼굴을 보고 다그쳐 물었다. "이 예물을 바치러 온 사람은 어디에 있지 ?" 하녀가 말했다. "주인어른과 이야기하고 계십니다." 두 부인은 대체 어떤 인물이 딸아이를 저렇게 정신 빠지게 만들었는지 보고 싶어 나란히 대청으로 나가 병풍 뒤에 숨어 엿들었다. "소인의 이름은 개일명이고, 별명은 팔보간선 새전데 답설무흔 독각수상비 쌍자개칠 성 이라 합니다. 오늘 이렇게 저의 삼형제는 소노영웅의 생신을 축하드립니다." 두 부인은 살짝 홈쳐보니 이자는 왜소하고 마른 체격이었고 그 곁에 앉은 세명도 모두 괴상해 보이는 인물들이였다. 소반화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웃으며 말했다. "태악사협께서 이렇게 왕림하시어 분에 넘치는 후한 선물을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개일명이 말했다. "별 말씀을 다 하십니다." 두 부인은 의혹을 품지 않을 수 없었다. 설마 딸아이가 저런 왜소한 사람을 마음에 두었단 말인가? 두 부인은 사람들을 많이 알고 있었는데 용모를 따져서는 안된다고 생각했다. 그 사람의 별명으로 보아 무공이 뛰어난 듯하고 또한 협 자를 붙여 불리우는 것으로 보아 인품또한 훌륭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문밖에서 또 세사람이 들어와 소반화에게 예를 갖추었다. 그 중 잘생긴 서생 이 우렁한 목소리로 말했다 "후배 임옥룡, 임비연, 원관남이 노선배님의 동해같은 복과 남산같은 장수를 누리시 기를 축수합니다. 보잘것 없는 예물 하나를 바치오니 부디 기뻐해 주십시요." 그러고는 뚜껑이 열린 기다란 합을 바쳤다. 소반화는 그 합을 받아 보고는 멍하니 세글자를 입 밖으로 뱉을 뿐이었다. "원앙도!" 소반화의 집 후원에서는 임가 부부가 원관남과 소중혜에게 부부도법을 가르치고 있 었다. 거의 한나절이 걸려서 임가부부는 60 가지의 부부도법을 모두 가르쳐 주었다. 원관남과 소중혜는 온힘을 다하여 기억하였다. 소반화는 그 원앙도를 손에 넣게 된 경로에 대해 자세히 듣고 난 후 두 부인과 상의하여 그의 딸을 원관남에게 시집보내 것을 허락하고 그 잔치 연회석상에서 두사람은 혼인을 약속하였다. 만이 이 도법의 무력이 무궁함을 몰랐다면 무예를 익히는 일에 이토록 열중하지 않 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서 한 무학지사가 세 속의 관습에 얽매였다면 당연히 미혼의 부부 노릇도 하려 들지 않았을 것이다. "도광암영공장병.... 금조유여안여옥...." 임가 부부는 모두 다 가르치고 나서 그들 한쌍의 미혼부부에게 스스로 연습하도록 시켰다. 이들은 그들이 한쌍의 제자를 거느리게 되었다는 것에 대해 무척 흐뭇하게 생각하고 있었다. 태악사협은 옆에서 줄곧 그들의 연도를 지켜보며 이것저것 지적하고 있었다. 저 초 식은 빈틈이 있다느니 이 초식은 어디가 헛점이라느니... 임옥룡이 말했다. "개형, 우리 부부가 한가지 도법을 보여드림으로써 원부부의 신혼 예물을 대신했소. 당신들 태악사협은 어떤 예물을 주시겠소?" 태악사협은 이말을 듣고 할말이 없었다. 사실 그들에게 선물을 보내는 일은 가장 꺼리는 일중의 하나였다. 임비연은 일부러 그들을 놀려줄 생각으로 말했다. "저쪽 흙탕 냇물에서 나는 흰피 개구리를 무학지사가 한마리만 먹으면 십년의 공력 이 생긴다는데 잡기가 여간 어렵지 않답니다. 개형의 별명은 팔보간섬 새전제 답설무흔 독각수상비 쌍장개비이시니 가셔서 몇 마 리 잡아다가 신혼예물로 드린다면 그 또한 값진 예물이 아니겠습니까 ?" 개일명이 기뻐 말했다. "정말이요 ?" 임옥룡이 말했다. "저희가 어찌 감히 서로를 속이겠소? 다만 저희 부부는 경신술 이 서툴러 물에서는 맥을 못추니..." 개일명이 말했다. "물에서의 경신술은 나 개일명을 당할 자가 없지요. 형님들, 어서 가서 잡아 옵시 다!" 임비연이 웃으며 말했다. "하하, 개형께서는 개구리에대해서 문외한 이시군요. 그 벽혈 금섬(碧血金蟾)은 달밤 에 나오지 대낮에는 없답니다." 개일명이 말했따. "아아, 맞아요. 나도 알고 있었는데 잠시 잊었어요. 대낮에 쉽게 잡을수 있다면 무슨 희소가치가 있겠소." 대청에는 홍촉이 밝게 빛나고 중당의 정가운데에는 수(壽)자가 적힌 비단이 걸려 있었다. 이 시간에는 이미 손님들의 축하를 받는 일이 끝이 났고 소반 화가 수염을 쓰다듬으 며 미소가 만면한 채 기쁜 소식을 알리고 있었다. 그의 무남독녀 소중혜가 소년협사 원관남과 혼인을 하기로 정했다는 소식이었다. 많은 손님들의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원관남이 붉은 융단 위에서 장인 장모에게 절을 올리고 있었다. 소반화가 만면의 웃음을 띄우고 향선 하나를 꺼내 상 견례의 예물로 삼는다고 하자 그가 감사하며 받았다. 또한 원부인은 그에게 옥반지 하나를 주었다. 원관남이 감사하며 받으려 할때 "쨍그랑!" 하는 소리와 함께 옥반지 가 바닥에 떨어졌다. 원관남은 얼굴색이 변하여 원부인의 오른손을 바라보았다. 원부 인의 오른손은 육손이었던 것이다. 그는 원부인의 손을 끌어다 자세히 보았다. 왼손 또한 새끼 손가락 옆에 작은 손가락이 하나 더 있었다. 원관남이 떨리는 소리로 말했다. "장, 장모님 이 물건을 아시겠습니까 ?" 그러고는 그의 목에 걸고 있던 가느다란 금줄에 달린 비취사자 상을 꺼냈다. 원부인은 그 비취사자상을 움켜쥐고 온몸을 떨며 소리쳤다. "네... 네가 사관이냐 ?" 원관남이 말했다. "어머니, 아들입니다." 두 사람은 서로 부둥켜 안고 방성통곡을 했다. 그 광경을 지켜 보던 사람들 가운데 어떤 사람은 괴로웠고 어떤 사람은 기뻐했다. 좌중은 놀라움과 신기함으로 뒤섞였다. 원부인의 울먹이는 소리가 들려왔다. "사관, 사관, 지난 18년 동안 어디에 있었느냐? 나는 한시도 너를 잊은 적이 없었단 다." 원관남이 말했다. "어머니, 저도 18성을 두루 돌아다니며 도처에서 어머니의 소식을 수소문 했습니다. 저는 제 평생 어머니를 다시 못 볼까 두려웠습니다." 소중혜는 원관남의 입에서 어머니라는 소리가 나오자 몸을 비틀거리며 쓰러져 버렸 다. 그녀는 머리속에 이런 소리만이 들려 올뿐이었다. "그는 내 오라버니였어, 나의 오라버니, 오라버니!" 임옥룡이 소근대는 소리로 그의 처에게 물었다. "뭐라고? 원상공이 원부인의 아들이라고? 말도 안되는 소리야!" 임비연이 말했다. "원상공이 어머니를 찾는다는 말을 한 적이 있어요. 우리게도 찾는 것을 도와달라고 했었고요. 그의 어머니는 양손 모두 손가락이 여섯이라고 했었어요. 저 원부인도 아 들을 알아 보았잖아요." 임옥룡이 머리를 긁적이며 말했다. "어째서 그의 성이 원이지? 그의 아버지는 성이 소인데..." 임비연이 말했다. "바보같으니라고? 원상공이 어머니와 헤어진 것은 세살때라고 했잖아요. 세 살 때 자기의 성씨를 어떻게 기억하겠어요? 적당히 붙인 성인데 맞을리가 없잖아요." 임옥룡이 말했다. "그렇다면 소 아가씨는 그의 여동생이로군. 남매간에 어떻게 혼인을 한담?" 임비연이 말했다. "남매간이 확실하다면 어떻게 혼인을 해요? 그걸 말이라고 해요!" 소중혜는 마음이 뻥 뚫린 듯 허전하고 눈앞이 캄캄하기만 하였 다. 그녀는 급히 대 문을 나서다가 퍽! 하며 누군가와 어깨를 부딪쳤다. 그녀는 얼른 그녀와 부딪쳐 넘어 진 사람을 부축하려 했는데 홀연 손목을 붙잡혔고 왼쪽 팔 전체가 쑤셔왔다. 맥문을 잡힌 것이다. 그녀는 깜짝놀라 고개를 들고 오른손으로 그를 밀쳐 냈다. 그 사람은 손목을 비틀어 오른쪽 손목의 맥문을 움켜 쥐었다. 이때 그녀는 분명히 보았다. 그 사람은 바로 탁천웅이었다. 탁천웅은 큰 소리로 웃으며 소리쳤다. "위신, 우선 하나를 거두어라." 주위신은 그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소중혜의 허리에 매달려 있던 단도 앙도를 풀어 갔다. 탁천웅이 말했다. "소반화가 명성이 높아 오늘 그의 50회 생일에 부중에 고수들이 구름같이 모여 있 다. 위신, 너는 그 장도 원도를 가져올 담력이 있느냐?" 주위신이 말했다. "소인은 사백께서 지켜봐 주시기만 한다면 용담호열이라도 가지 못할 곳이 없습니다." 탁천웅은 원, 소 두사람의 부부도법에 패한 후에는 자신도 모르는 사이게 겁을 먹 게 되었다. 지금도 소중혜와 예상치 못하게 부딪치니 그 남녀의 대단한 무공이 떠올 라 다시 두려운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이제 한 사람을 잡았으니 남은 한 사람은 두 려워 할 필요가 없을 것이라 여겼다. 게다가 소중혜만 잘 붙잡고 있으면 장도인 원 도와 교환을 할 수 있을 지도 모를 일이었다. 그는 소중혜를 앞세워 소반화의 집으로 들어갈 수 있었다. 그 탁천웅이란 이름을 전하자마자 소반화는 놀라서 소리쳤다. "어서 모셔라!" 오래 지나지 않아 탁천웅이 고개를 쳐들고 활보하며 대청으로 올라오는 것이 보였 다. 소반화는 그의 딸이 필이 뒤로 꺽인채 한 명의 대한이 손에 앙도를 들고 딸의 등 에 대고 있는 것을 보았다. 소반화는 내심 당황하였지만 전혀 동요하는 기색을 보이지 않으며 웃음지으며 말했다. "촌부의 미천한 생일에 감히 시위대인을 모시게 되니 한없는 영광이올시다." 탁천웅도 북경에서 소반화의 명성을 익히 들어 알고 있었지만 그의 건강한 신체와 수염에 뒤덮힌 얼굴을 보니 과연 위무가 당당하였다. 그는 오른손을 내밀며 말했다. "소대협, 천수를 누리시오. 형제의 인사가 이렇게 늦었으니 용서해주시기 바라오." 소반화가 웃으며 말했다. "좋습니다." 그는 손을 벋어 서로 악수를 하였다. 두 사람은 서로의 손아귀에 힘을 가하였는데 두 사람 모두 반신이 쑤셔옴을 느꼈다. 이로써 일차 서로의 기량을 겨루어 본 것이다. 두 사람중에 오히려 탁천웅이 더 놀랐다. 그는 무림에서 진천 삼십장(震天三十掌) 혹 은 호연십팔편이라 불리었는데 그 진천삼 십장은 단지 혼원기(混元氣)만이 상대할수 있는데 마침 소반화가 쓰는 무공이 혼원기였다. 그러나 혼원기는 동자공으로 남녀를 불문하고 결혼후에는 없어져 버린다고 했다. 그것은 연마하는 것은 매우 힘들지만 너무나 쉽게 잃어 버리니 무림에서 혼원기를 연마한 사람은 매우 드물었다. 소반화 는 이미 일처일첩을 거느리고 있는 것이 분명하고 딸도 이미 성혼할 나이가 되었는 데 어떻 게 아직도 동자공인 혼원기를 보존할 수 있었을까? 무학의 일대 불가사의가 아닐수 없었다. 원관남은 소중혜가 붙잡혀 있는 것을 보고 사람들 틈에서 몰래 빠져나와 표사의 뒤 에 숨어 구해낼 기회만을 노리고 있었다. 그러나 일찌감치 탁천웅에게 들켜버리고 말았다. 그가 소리쳤다. "원가놈,거기 섯거라!" 그리고는 주위신에게 말했다. "누구라도 손 하나만 까닥하면 그 아가씨의 몸에 구멍을 내 주어라!" 원관남은 주위신이 진짜로 소중혜를 찌를까봐 다시는 한 발자국도 음직이지 못했다. 탁천웅이 말했다. "소대협, 우리 터놓고 얘기 합시다. 내가 오늘 귀댁에 방문한 것은 첫째는 대협을 생신을 축하하기 위함이고 둘때는 하나의 가치 없는 물건을 소대협의 귀중한 물건을 바꾸려는 것이요." 소반화가 말했다. "소인 워낙 둔해서 탁대인께서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모르겠습 니다." 탁천웅은 흰자위를 한번 뒤집더니 웃으며 말했다. "그 가치없는 물건이란 당신의 천금같은 따님이시고 귀중한 물건이란 그 장도인 원도일시다. 저는 소대협과 아무런 원한도 없으니, 다만 황제에게 그 물건을 헌상하여 저의 수많은 가족들을 죽이지 않게 해주시길 바랄뿐입니다." 그의 목소리는 낮기는 했지만 오만함이 서려 있었다. 소반화가 손을 뻗어 의자의 등받이를 누르자 우지끈 하면서 의자 등받이가 부서졌다. 그가 웃으며 말했다. "탁대인은 오늘 어찌 그렇게 이치에 닿지 않는 말씀만 하시요? 원앙도는 저의 수중 에 없고 이 아가씨 또한 나의 딸이 아니오. 동자공을 연마한 사람이 아이를 낳을수 있다는거요?" 그는 옷소매를 털어 한 줄기 질풍을 그에게로 보냈다. 탁천웅은 몸을 피하며 내심 생각했다. "거짓말이 아니야. 이것은 과연 동장공, 혼원기야!" 이때 바깥 쪽에서 아우성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반적 소의(蘇義)는 꼼작 마라!" 사람들이 와글대는 소리로 보아 문 밖에 들이닥친 사람들이 몇 이나 될지 알 수도 없었다. 소반화의 집 하인들이 달려들어와 소 리쳤다. "나리... 큰일 났습니다! 무수한 관병이... 관병들이 대문을 포위했습니다." 탁천웅은 반적 소의라는 말을 듣자 깨달았다는 듯이 말했다. "오라, 소반화는 무슨 소반화? 네가 바로 황제께서 16년간 찾으시던 반적 소의로구나." 대문에 사람의 그림자가 지나가는가 싶더니 네명의 시위가 다투어 들어서며 소리쳐 말했다. "탁형님, 이자는 바로 반적 소의입니다. 어째서 싸우지 않으시나요?" 소반화가 큰 소리로 웃으며 말했다. "16년간 분장을 하고 살아왔는데 오늘에야 나의 진면목을 보이게 되었구나." 그는 손을 뻗쳐 얼굴을 한번 문질렀다. 중인들은 모두 그를 지켜보며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 대청은 한참 소란스러웠으나 지금은 소반화의 얼굴을 보느라 쥐죽은 듯이 고요해졌다. 원래 수염투성이인 소반화의 얼굴은 순식간에 변해 그가 얼굴을 문지르던 손을 치우자 매끈한 턱이 드러났다. 한가닥의 수염도 없었다. 이때 원관남의 하인이 책을 담는 바구니를 두개 가져와 내당에서 밖으로 내주며 말했다. "도련님, 빨리 가세요!" 원관남은 문득 좋은 생각이 떠 올랐다. 그는 바구니에서 한 권의 책을 꺼내 들고 바깥쪽으로 향해 한 번 뿌렸다. 황금빛이 번쩍이면서 수십장의 얇은 금엽(金葉)이 날 렸다. 많은 표사와 관병 들이 황금을 보고 마음이 어찌 동하지 않겠는가? 사람들은 금엽 을 움켜쥐기 위해 혈안이 되었다. 원관남은 낡은 책들을 들고 쉬지 않고 주위신을 내리쳤다. 그 책들에서 떨어지는 금엽으로 대청안은 많은 나비가 날아든 듯 하였다. 주위신은 원앙도는 절대 잃을 수 없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그는 금엽이 날아가는 것이 보여도 잡으려 하지 않았다. 원관남은 있는 힘을 다해 몇근이나 나가는 금이 끼여져 있는 책을 그의 얼굴에 던졌다. 주위신은 아이고! 하며 소리를 지르며 쓰러졌다. 원관남이 왼발로 그를 차려고 하자 탁천웅이 장으로 막는데 겨드랑이에서 바람소리가 났다. 소반화는 혼원기로 대응하 였다. 이렇게 혼란한 틈을 타서 원관남은 왼손으로 칼을 써서 주위신을 기절시키고 오른손으로 이미 소중혜의 혈도를 풀어주었다. 하객들 몇몇은 무서워서 멀리 숨었지만 소반화의 지교호우(知 交好友)들 대부분은 병기를 들고, 혹은 맨손으로 침입해온 청궁의 위사들과 표사들, 관병들과 악투를 벌 였다. 소중혜는 놀라 주위신의 몸 뒤에 숨어 있다가 그의 수중에 있던 단도인 앙도를 되찾았다. 원관남은 크게 소리쳤다. "혜누이! 청풍인패하요대." 소중혜의 눈가가 붉으지면서 내심 생각했다. '제가 아직도 당신과 함께 그 부부도법인지를 연마할수 있나요?' 사방을 둘러보니 아버지와 탁천웅은 한치의 양보없이 치열하게 싸우고 있는 것이 보였다. 다른 사람들도 각기 자신의 적수와 겨루고 있었는데 두명의 청궁위사가 원, 양 두 부인이 도망치지 못하게 막고 있었다. 원관남이 소리쳤다. "혜누이! 어서 어머니를 구하자." 두 사람의 쌍도는 '벽소성리쌍명봉' 일초를 펼처 한 위사를 처치하고 또 다시 '금소유인안여옥' 일초로 다른 한명을 해치웠다. 원앙도를 쓴 부부도법은 과연 당할자가 없었다. 두 사람이 나란히 이곳을 치면 이 곳의 시위나 표사가 다치고, 저쪽을 치면 저쪽이 조용해졌다. 60가지 도법을 반도 펼 치지 않아서 습격해온 적들은 이미 흩어져 도망갔다. 마지막에는 결국 남은 적이라곤 탁천웅밖에 없었다. 원관남과 소중혜의 쌍도가 끊 임없이 날아가자 그는 허리에서 강편을 꺼내 막았다. '쨍!' 하는 소리가 나면서 소중 혜의 단도 끝이 떨어져 나갔다. 부부도법의 '희결사라재교목(喜結絲蘿在喬木)' 일초는 어찌나 오묘한지 원관남의 장 도가 번쩍하는 곳에서 땅! 하는 소리가 났지만 탁천웅의 종아리를 찔러 그 상처가 무척 심하여 철철 피가 흘렀다. 탁천웅의 상처가 가벼운 것이 아니었으나 그는 싸움 을 포기하지 않고 소중혜에게 다시 일장을 휘둘렀다. 그녀가 옆으로 피하자 두 발 로 동시에 공격하고 천정으로 피하였다. 본래 원, 소 두사람이 '영웅무쌍풍류서(英雄 無雙風流壻)'라는 일초로 능히 탁천웅을 처치할수 있었지만 소중혜의 칼끝이 이미 부러졌으므로 이 일초는 쓸 수가 없었다. 소반화는 다행히 각지에서 온 손님들이 7, 8 명밖에 다치지 않았고 목숨을 잃은 사 람들이 없는 걸 보고 큰 소리로 말했다. "여러 친구분들, 관병이 잠시 후퇴하기는 했지만 금방 다시 올 것이 분명합니다. 이 곳은 안전하지 못하니 우리는 속히 중조산으로 물러가 다시 계획을 세웁시다." 뭇사람들은 모두 응락하였다. 소반화는 곧 집안사람들을 거느리고 세세한 것까지 모두 수습한 후 집에 불을 질렀 다. 화염이 치솟는 동안 성중에는 난장판이 벌어졌고 그 틈을 이용해 사람들은 동쪽 문으로 빠져나가 중조산 으로 갔다. 커다란 동굴 앞 바위 위에 소반화, 원, 양 두부인, 원관남, 소 중혜, 임옥룡부부, 그리고 이십여 명의 집안 식솔들, 삼백여명의 빈객들이 모닥불을 피워 놓고 둘러앉아 있었다. 불에다 노루 와 사슴의 고기를 굽고 있었는데 그 냄새가 사람들의 코를 찔렀 다. 소반화가 한차례 기침을 하고 수염을 어루만졌다. 이것은 그의 오랜 습관이었는데 뭔가 중대한 이야기를 할 때면 항상 먼주 수염을 만졌다. 그러나 이번에는 만질 수 염이 없었다. 그의 턱엔 한가닥의 수염도 없었던 것이다. 그는 부드러운 미소를 지으면 말했다. "강호의 친구들이 봐 준 덕분에 나는 무림 제일의 인물로 행세 했지만, 사실 나 소의는 태감이요." 중인들은 모두 뛸뜻이 놀라 '나 소의는 태감이요.'라는 말을 듣고는 모두들 잘 못 들은 줄 알았다. 그러나 소반화의 얼굴색이 정중한 것을 보니 결코 장난이 아닌 것 같았다. 원, 양 두 부인 은 서로 얼굴을 마주 보다가 고개를 떨구었다. 소반화가 물었다. "사실이오. 나 소의는 태감이요. 내가 열 여섯 살에 궁에 들어 가 황제를 모신 것은 사실은 만청황제를 살해하고 선친의 원수를 갚기 위해서였소. 나의 선친은 평생을 만청의 채찍 아래 시달리 다가 결국 참혹하게 돌아가셨지요. 나의 아버지의 7명의 결 의형 제께서는 선친의 원한을 갚기로 피로써 맹세하였답니다. 그러나 만청의 세력이 커져 저의 7명의 숙부, 백부님들은 아무도 곱게 돌아가신 분이 없습니다. 격투 중에 청병 위사의 손에 죽지 않았 으면 잡혀서 능지처참을 당하니 그 원한은 점점 깊어만 갔습니 다. 나는 아무리 생각해 봐도 나의 선친과 일곱 분의 백숙부의 무공과 똑같 은 무공을 연마해서는 평생 애써도 원한을 갚지 못할 것 같았지요. 그래서 나는 사 람들이 업신여기는 태감이 되어 긍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의 말을 듣고 그의 고심을 상기하며 감복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소반 화가 계속 말을 이었다. "그러나 궁궐안은 경호가 어찌나 삼엄한지 처음에 상상했던 것과는 달랐습니다. 황 제 가까이 가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얼굴을 한번 보는 것도 쉬운일이 아니었지요. 십여 년 동안을 매일 밤낮 으로 기회를 기다렸지만 시종 기회를 잡을 수가 없었습니 다. 십 육년전 어느날 밤, 저는 궁중에서 두명의 위사들이 이야기 하는 소리를 들었 습니다. 세상에 한 쌍밖에 없다는 원앙보도에 대한 이야기 즉, 그것을 얻은 사람은 천하무적이 된다고 하여 그 한쌍 의 보돌르 성이 원씨이고, 양씨인 두영웅이 가지고 있다는 것을 듣고는 황제는 두 집안 사람들을 모조리 잡아들여 그 두 사람으로 하 여금 보도를 바치게 하도록 했다고 하였다더군요.그런 후 두사람을 죽이고 두 부인 도 감옥에 넣어졌다는 것이었죠." 그는 여기까지 말하자 원, 양 두 부인은 하염없이 눈물을 흘리 기시작했다. 원관남과 소중혜는 서로를 마주 보며 기쁘기도 하고 슬프기도 하였다. 그들은 다시 소반화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였다. "그때 죽은 사람의 원수를 갚는 것 보다 살아 있는 사람을 구해 내는 것이 더 급하 다고 생각하여 감옥으로 들어가 역졸 몇몇을 죽이고 이 두 분 부인을 감옥에서 구출 해 내었지요. 다만 그 때 적의 세력이 너무 커서 워낙 급히 도망치다가 원부인의 아 들은 도중에 잃고 말았지요. 중혜, 네가 올해 18세로구나. 내가 너를 처음 보았을때 는 두 살밖에 안되었었다. 네 아버지의 성은 양이고 당세에 이름을 떨치던 삼상대협 (三湘大俠) 양백중(陽伯中), 양대협이시다." 원관남과 소중혜(양중혜라고 써야 하겠지만)는 각기 자신의 어머니를 껴안았다. 소 반화가 계속 말을 이었다. "나는 북경을 도망쳤고 황제는 나를 찾기 위해서 온갖 수단을 다 썼지요. 나는 청나 라 조정을 속이기 위해 가짜 수염을 붙이고 원, 양 두 부인을 부인으로 삼았지요." 소반화가 무릎을 탁 치며 말했다. "이 몸은 늙은 태감이요. 대명삼보(大明三寶) 태감 정화(鄭和)가 먼 이역으로 원정 가서 중화의 덕을 떨치는 것을 선모하여 이 름을 반화(半和)라 고쳤는데 그 뜻은 정 화의 반만큼이라도 쫑고 싶다는 것이지요. 이 몇년 사이에 태평무사하게 지내다가 원앙도 가 세상에 나타나자 늙은이의 마음이 동하여 그 원앙도를 빼앗아 원, 양 두 영웅의 원혼을 위로 하려 했습니다. 그러나 일이 이렇게 되었으니 아무것도 아니구 려. 원앙도는 원도 하나만 남았고, 중혜가 가진 그 단도인 앙도는 가짜임이 틀림없 소. 그렇지 않고 서야 어찌 부러질 수가 있겠소이까? 탁천웅 그 간적이 바꿔친 것 이 틀림없소. 우리가 다시 그 자를 만날 수 없음이 애석할 뿐이 오." 이때 노루고기를 굽는 냄새가 더 진하게 풍겨왔다. 임비연이 칼을 꺼내 한덩어리, 한덩어리 잘랐다. 임옥룡이 갑자기 양중혜(소중혜)를 향해 큰 소리로 말했다. "내 말이 맞았지요? 당신은 당신의 부모님들이 싸우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했었고 나는 싸우지도 않는 사람들이 무슨 부부냐고 했었지요? 내말이 정확하지 않소?" 임비연이 칼끝에 노루고기 한점을 꿰어서 그의 입속에 처박으 며 말했다. "노루고기나 드시지. 엉터리 같은 소리만 하지 말고..." 임옥룡은 뭐라고 반박하려 했지만 입안에 고기가 가득하여 말 이 나오지 않았따. 사람들이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다. 그때 숲 바깥쪽으로 지키고 있던 한 제자가 사 납게 소리쳤다. "누구냐 ?" 누군가 대꾸했다. "태악사협이다." 양중혜는 픽!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태악사협은 온통 진흙 투성이가 되어 기다란 막대기에 커다란 고기 그물을 둘러메고 있는 데 그물 속에는 시커먼 괴물이 들어있어 지만 무엇인지 알아 볼 수가 없었다. 양중혜가 웃으면서 말했다. "태아사협, 당신들이 메고 온 것이 대체 무슨 보물이죠?" 개일명이 득의양양하게 말했다. "원공자, 소아가씨. 우리 형제들은 진흙탕 냇가에서 흰피 개구리를 잡아 두분께 선 물로 바치려 했습니다. 그런데 개구리는 잡 히지 않고 어떤 사람이 하나 기어들었는 데 그 사람은 다리에 상처를 입고 신음하고 있었습니다. 저희들 태악사협도 그 사람 을 알아보고 깜작 놀랐습니다. 그 사람은 바로 탁천웅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는 몰 래 그에게 그물을 씌우고 이렇게 여러분께 드립니 다." 사람들은 놀라움과 기쁨이 교차하였다. 원관남은 손을 뻗쳐 탁천웅의 허리를 더듬 어 단도 하나를 찾아 냈다. 광채가 눈부신 것이 진흙속에서도 전혀 변함이 없었다. 그것이 바로 진짜 앙도였다. 원부인이 원앙도를 집어들고 탄식하듯 말했다. "만청황제는 이 쌍도중에 천하 무적수가 되는 굉장한 비밀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 것을 차지하려 혈안이 되었었죠. 그것은 맞는 말이지요. 그러나 그가 이 비밀을 알아 냈더라도 그에 따라 행동을 할수 있었을까요? 여러분 한번 보십시요." 사람들이 가까이 몰려들어 그 쌍도를 살피니 원도의 칼날위에 '인자(仁者)'라는 글 자가 새겨져 있었다. 그리고 앙도위에는 '무적(無敵)'이라 새겨져 있었다. "인자무적(仁者無敵)" 이것이 바로 천하 무적수가 되는 대비밀이었다. < 원앙도(鴛鴦刀) 끝 > |
제목도 그럴사하고 재미도 있을것 같았는데
결말이 허무 하네요
다음에 더 좋은 작품으로 만나겠습니다
끝까지 함께해주신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첫댓글 수고 하셨습니다.
ㅈㄷㄱ~~~~~````````
즐독
잘 보고 갑니다. 감사 합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