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처: 노가다 쉼터 원문보기 글쓴이: 마사이추장
기쁨조-1
["기쁨조"출신 정미경(가명)씨와의 인터뷰]
북한에서 고위층이였던 기쁨조 정미경(24,가명)씨는
지난 년 3월 어머니와 여동생의 손을 잡고 탈북했다.
정미경씨는 기자의 인터뷰에 응할것을 한참을 고민하더니 선선히 인터뷰에 응했다.
정미경은 기쁨조 출신으로 한 몇넷번 무대위에 섰었다고 말하고 있다.
김정일의 애인문제에 대해서는
“알 수 없는 일이지만 예쁜 미인을 좋아했다.
아담하고 체구가 작으며 키가 적당한 미인을 좋아했는데
얼굴이 동그랗고 눈이 동그란 미인을 좋아했다”고 귀띔했다.
남측 연예인으로 따지면
'고현정', '김태희', '심은하', '최진실' 같은 얼굴상이라고 밝혔다.
정미경이 김정일이 선호하는 이상형에 대해 정확하게 설명했다.
“김정일의 이상형은 다음과 같다.
김정일은 동그란 얼굴에 동그란 눈, 자연스러운 코, 도톰한 입술의 미인을 선호하는데
키가 너무 작아서도, 커서도 안된다. 키는 160cm에서 165cm까지를 선호했다.
또 아담하고 체구가 작은 미인을 좋아했다. 말라서도 안되고 살이 적당히 쪄야 했다.
이런 미인이 발견되면 김정일은 바로 자신의 기쁨조로 삼았는데
말도 못할 귀족생활을 누렸다.”며 정확하게 설명했다.
"기쁨조는 김정일의 성교 파트너이다.
김정일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서 기쁨조는 발굴한다.
김정일의 고위층 관리들은 김정일의 기쁨조가 될
16세부터 25세까지의 여자들을 눈여겨보다가 추천했다.
김정일의 마음에 드는 여인이 눈에 들면 그 여인을 추천한 고위층 관리는
김정일이 주는 벼슬을 받았다.
그 추천받은 여자들은 무작정 김정일의 기쁨조가 되어야 했다.
김정일을 사랑하지 않더라도 김정일의 기쁨조가 되면
부모들은 모두 ‘김정일 수령님이 우리에게 주는 상’이라며 좋아했다.”
‘정미경씨는 어떻게 기쁨조가 되었나’
“나는 추천으로 기쁨조가 되었다.
추천 받은 다음 바로 김일성 병원으로 끌려가 처녀성 검사를 받았다.
나는 합격했는데 1주 동안 부모님과 생활한 다음 김정일의 별장으로 들어갔다.
처녀성 검사를 할 때 남자의사와 김정일이 보는 곳에서 검사를 하는데
얼마나 수치스러웠던지 말도 못 한다.
작은 나무막대기를 질에 쑤셔넣고 손가락을 질에 쑤셔넣는 등 고생이 많았다.
내가 아파서 소리를 지르자 ‘오르가즘을 느끼냐’고 말을 했다.”
‘기쁨조 중에서도 탈북한 사람들이 많은지’
“꽤 된다. 내가 알고 있던 '윤순희(가명)'라는 동무도 탈북했었고
'금혜주'라는 가무조 중 한명도 탈북했다.”
“언제는 기쁨조들 열댓명에게 '옷을 벗으라'고 다그친 적이 있다.
기쁨조들이 후다닥 옷을 벗으니 '브래지어와 팬티도 벗으라'고 명령했다.
기쁨조들이 부끄러워하며 벗었다. 그리고 '춤을 추라'고 명령했다.
어쩔 수 없이 춤을 추니 김정일이 춤을 추는 기쁨조 중 귀여운 단원에게 다가가 농락했다.
또 어떤 단원에게는 '너는 가슴이 작다'며 꾸중했다.
한참 감상하던 김정일이 그 귀여운 단원에게 '내 침실로 오라'고 명령했다.
그 여인은 김정일의 침실로 따라갔다.
조금 뒤 김정일이 그 귀여운 단원에게 어떤 심한 짓을 했는지 그 단원이 울고 있었다.
물어보니 김정일이 '브래지어와 팬티를 찢었다'며 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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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쁨조-2
장군님의 특별한 유희 '기쁨조' 실체 해부
[입체해부-김정일의 여자들③] 만수대 예술단 공연조가 핵심
[2005-08-05 15:38]
▲[사진] 만수대예술단 공연조(기쁨조) 캉캉춤 공연
김정일은 1974년경부터 자기의 측근들과 비밀파티를 가졌다.
당 내 주요 자리를 자기 사람들로 채우고 친위 세력을 형성하기 위해
파티를 이용했던 것이다.
김정일이 여는 파티에서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 동원되는 여성들을
국내에서 흔히 '기쁨조'라고 부른다.
국내에서 김정일에 대한 잘못된 오해로 들고 있는 대표적인 것이 '기쁨조는 조작됐다'는 것이다.
이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있게 연구하지 않거나,
이러한 정보에 접근하기 어려운 인사들의 증언을 활용하는 경우가 많다.
김정일의 곁에서 사생활을 지켜볼 수 있었던 탈북자 모두는 '기쁨조'가 실재할 뿐더러
경우에 따라서는 자본주의 퇴폐문화보다 정도가 더한 경우가 많다고 전하고 있다.
기쁨조의 모든 면이 파악되지는 않았지만, 그 존재와 역할에 대해서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기쁨조의 존재에 대해서는 북한주민들도 대체로 알고 있다.
주민들은 김일성 김정일의 건강을 관리했던 '만수무강연구소(現 기초과학원)과 함께
지도자 동지의 기쁨을 위해 존재하는 공연단으로 이해하고 있다.
1997년 북한공작원에 의해 피살된 김정일의 처조카 이한영은
주로 수요일과 토요일에 여는 김정일의 비밀파티에서 기쁨조가 나와 흥을 돋운다고 증언했다.
또 지난 1995년 귀순한 무용수 신영희 씨는 자신이 북한에서 기쁨조였다고 고백했다.
신씨는 자신의 체험을 바탕으로 베일에 가려졌던
기쁨조 선발과정, 구성원, 역할 등을 폭로하기도 했다.
기쁨조, 오스트리아 빈에서 탱고, 왈츠, 서양 춤 배워가
외신에서도 기쁨조에 대해 다룬 바 있는데
1999년 9월 오스트리아 주간지 「포르마트」는 “김정일의 기쁨조 여인들이
오스트리아 빈에서 탱고, 왈츠 등 서양 춤을 배우고 있다”고 보도했다.
이 잡지는 북한의 젊은 여성 6명과 이들을 감독하는 1명의 여인이
빈의 엘마이어 무용학교에서 춤을 배우고 있으며,
이들은 북한의 김정일을 위해 봉사하는 기쁨조 여인들이라고 전했다.
▲[사진]김정일이 기쁨조와 함께 파티를 열었던 8번 연회장 철판구이 코너.
사진 앞에 보이는 희고 평평한 공간이 무대로 활용되는데, 재질 자체가 빛을 발하고 있다.
자세히 보면 무대 양쪽 끝부분에 조명장치가 있다.
천장 중앙에는 디스코테크에서나 볼 수 잇는 사이키 조명시설도 갖춰놓았다.
(후지모토 겐지 김정일의 요리사 中)
기쁨조의 시작은 1970년 초 김정일이 김일성의 비위를 맞추기 위해
북한 전역에서 미모를 갖춘 여성을 선발해 김일성 별장에 배치하면서 부터다.
1983년 12월부터 본격적으로 김정일을 위한 기쁨조가 생겨났는데
공연조, 희극조, 중주조 등으로 구성돼 있다.
이 중에서도 ‘김정일의 여자들’로 불리는 핵심 기쁨조가 공연조이다.
공연조는 만수대예술단에 소속된 무용수들로 구성돼 있다.
북한에서 가장 무용에 능하고 얼굴과 몸매가 예쁜 여자들이다.
희극조는 만담이나 코미디를 하는 그룹이고, 중주조는 파티를 할 때
배경음악을 넣거나 참석자들이 노래를 부를 때 반주를 담당한다.
이름은 ‘백두산7중주단’이다.
중주단은 평양 음악무용대학에서 재능 있는 20대 초반의 여자들을 뽑아 구성한다.
기쁨조는 김정일의 지시에 의해 그때그때 충원된다.
충원 대상은 평양을 포함한 전국의 예술전문학교 학생들로 나이는 대개 18세 정도이다.
김정일의 충원지시가 있으면 조직지도부 서기실을 통해
평양시와 도당 간부부로 지시가 하달된다.
이른바 ‘5과 대상자 선발지시’다. 중앙당 5과에서 이 일을 맡아하기 때문에 붙여진 이름이다.
북한당국은 <위대한 수령님과 친애하는 지도자동지의 만수무강사업은
전체 당원과 당 위원회의 신성한 의무이다>라는 제목의 극비책자를 각 당 간부들에게 지급하고
그 책자의 기준에 의거하여 기쁨조를 물색하여 추천하도록 강요하고 있다.
기쁨조 선발은 중앙당 조직지도부 제5과 담당
5과 대상자는 얼굴이 예쁘고 용모가 단정해야 한다.
각 도에서는 선발지시에 대비해서 미리 예쁘고 건강한 여학생들을
예술전문학교에 뽑아 놓는다.
예술적 소질이 있든 없든 크게 상관없다.
지시가 내려오면 이 학생들 중 골라서 위로 올린다.
대략 200~300명 정도가 1차 선발되면 이중에서 100명 정도를 추려낸다.
이들은 평양 남산병원에서 정밀 신체검사를 받는데,
이 중에는 산부인과 검진도 포함되어 있다.
이런 과정을 거친 후 50명 정도가 최종 선발된다.
김정일의 결재를 받은 50명의 여성들은 선발 후 6개월 정도의 교육을 받게 된다.
‘만족조’는 주연 시중과 성적 봉사에 필요한 예절과 기교를 익히고,
‘행복조’는 물리치료전문의로부터 안마, 마사지, 지압 등의
피로회복 전문기술을 연마한다.
또 ‘가무조’는 주연 시 발휘할 수 있는 노래와 춤 등을 익히게 된다.
특히 ‘만족조’와 ‘가무조’의 경우에는 김정일의 정기주연일인 매주 토요일 밤에
‘자유의 밤’이라는 미명 하에 펼쳐지는 ‘인도의 밤', ‘뉴욕의 밤', ‘도쿄의 밤',
‘페르샤의 밤', ‘파리의 밤' 등에서 의상이나 음악 등 현지 풍습대로
연출이 가능하도록 철저하게 교육받고 있다.
마지막 교육과정인 보름간의 해외견학교육이 끝나면 이들은 호위총국 소위계급이 주어져
만 25세까지 명목상 인민군 군관으로 복무하게 된다.
김정일의 기쁨조 파티는 그들이 비판하는 소위 자본주의적인 유흥적 분위기를 능가하는
퇴폐적& #8228;환락적 분위기를 연출케 한다.
무용수는 팬티가 보일 정도로 다리를 들어올리고 가슴이 보이도록 하여 춤을 춘다.
김정일은 남한노래 ‘나는 못난이’, ‘어제는 비가 내렸네’ 등의 노래를 잘한다고 하는데
춤과 노래가 끝나면 기쁨조는 거의 전라로 김정일에게 술을 권하고,
참석한 간부들은 열광한다고 한다.
퇴폐 향락 분위기 자본주의 능가해
김정일은 기쁨조에 대해 ‘제자리서 뒤로 돌아봐’ 등 갖가지 포즈를 취하게 하면서
이를 즐기는 등 변태적인 행동을 벌인다고 한다.
다음은 김정일 전속 요리사였던 후지모토 겐지가 밝힌 기쁨조에 대한 목격담이다.
신천 초대소에서 열린 연회에서 있었던 일이다.
디스코 춤을 추고 있는 다섯 명의 기쁨조에게 김정일이 다가가더니 느닷없이 명령을 내렸다.
“옷을 벗어!”
무희들이 천천히 옷을 벗고 있는데, 김정일이 다시 명령했다.
“브래지어와 팬티도 벗어!”
이번에는 무희들도 놀라고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하지만 장군님의 명령을 거역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그들은 쑥스러워하면서도 마지막 옷까지 전부 벗고서 알몰으로 춤을 추었다.
그러자 김정일이 간부들에게 지시했다.
“너희들도 같이 춰”
그는 내게도 함께 춤을 추라고 명령했다. 김정일이 또다시 명령했다.
“춤을 추는 건 좋지만 만져서는 안 돼. 만지면 도둑이야.”
후지모토 겐지는 김정일의 도움으로 기쁨조 여성과 재혼했다.
그녀는 왕재산 경음악단의 가수이던 엄정녀였다.
▲[사진] 평양의 8번 연회장에서 기쁨조 출신 엄정년와 결혼식을 진행하고 있는 후지모토 겐지.
이 자리에는 김정일도 참석했다.
기쁨조 여성들은 25세가 넘으면 대개 김정일 주변에서 근무하는
호위군관 및 고위인사들과 결혼시켜 철저히 비밀을 유지하도록 한다.
김정일과 가장 오랫동안 동거하며 ‘정실’ 역할을 해온 고영희도 기쁨조 출신이다.
남한에서는 이들이 불쌍한 여자로 비쳐질지 모르지만 북한에서는 사정이 그렇지 않다.
선택받은 여성들인 것이다.
북한 사람들은 주위 사람이 기쁨조로 선발되면 누구는 팔자를 고쳤다고 말하기까지 한다.
기쁨조는 평양시 보통강 구역 대타령동의 초호화 아파트에 살면서
일본제품 등의 일용품을 무상 지급 받고 있다.
특히 김정일 동침 여성에게는 오메가 시계 등이 제공되고 부장급 이상의 대우가 제공된다.
이들은 몸이 아프면 부부장급 이상이 치료받는 남산병원을 이용한다.
김정일은 해외여행을 시켜주는 등 기쁨조에게 신경을 많이 써주기 때문에
이들의 ‘콧대’도 높아진다. 이에 대한 다음과 같은 일화가 있다.
▲[사진] 만수대예술단 공연조에서 무용수였던 고영희
1990년 초 기쁨조를 태운 고려민항 특별기가 모스크바에 착륙했다.
이들을 맞이한 사람은 권희경 소련주재 대사를 미롯한
대사관 당비서과 참사관 이상의 고위관리들.
권 대사는 이들이 오기 전에 평양의 조직지도부 서기실에서 보낸
한 통의 친전을 받아놓고 있었다.
“여성 동무들을 외국에 구경 보내니, 소련 구경도 잘 시켜주고 대우도 잘해주시오. 김정일.”
지도자 동지가 보낸 친전이었다.
이 아가씨들은 대사관에서 제공한 벤츠를 타고 시내로 향했다.
이튿날 저녁 ‘지도자 동지’의 지시가 있었기 때문에 북한대사관에서는
최고급의 연회를 준비했다.
그러나 이 날 대사관 직원들은 적잖게 심사가 뒤틀렸다.
한 인간으로서의 삶은 애처롭기 그지 없어
이들이 음식을 먹으며 “촌스럽다”, “이것도 먹으라고 차린 것이냐”며
대놓고 면박을 주었던 것이다.
대사관 직원들은 한마디도 할 수 없었다.
나중에 이들이 돌아가서 ‘지도자 동지’에게 무슨 말을 할지 알수 없기 때문이다.
북한 여성만 기쁨조가 되는 것은 아니다.
백계 러시아 여자, 북구 미인 등도 김정일이 요구하면
일정 기간 ‘수입’한 뒤 미혼인 호위군관에게 하사하거나, 달러를 쥐어 주고 돌려보낸다.
김정일은 지난 30년 동안 자신의 지도체제 강화와 쾌락을 위해
북한 전국에서 미모와 춤, 노래를 겸비한 재능있는 여성을 뽑아
개인의 노리개로 전락시켰다.
물론 그들에게는 북한 주민이 가질 수 없는 특권과 혜택이 부여됐지만
한 인간으로서 삶은 애처롭기 그지 없다.
기쁨조의 존재는 김정일에 대한 역사의 평가에서 가장 치욕적이며
부도덕한 행위로 치부될 것이다.
인간 김정일이 그 어떤 독재자보다 더 비난 받을 소지가 높은 것은
바로 이러한 변태적인 엽색행각 때문이다.
사실 스크롤의 압박이 없잖아있지만, 대충 요약하자면 김정일의 성욕을 채워줄 '기쁨조'가 실제로 북한에 존재한다는 겁니다.
20대 전반의 꽃다운 여인들을 마음대로 제 욕구 아래서 휘둘리게 하고는, 이것이 다 수령님을 위한, 나라를 위한 일이라고 말도 안되는 소릴 지껄입니다.
어찌보면 그 역시 역사의 약육강식의 희생양인지도 모르지만, 더 억울한 희생양들은 북한주민들을 비롯한 우리국민 모두라고 생각합니다.
수만명의 사람들을 아사 상태로 만들고, 자신이 위태해질까 두려워 국민들에게 알려줘야 할 것을 알려주지 않고, 젊은 처녀들을 억지로 자신의 성노리개로 삼고,(그건 엄연한 강.간.이오) 몇십년동안 남북한 사람들에게 고통을 안겨주고, 국민들은 고통속에 죽어가는데 정작 자신은 부족함 없이 살고 있고, 그것도 모잘라 이번엔 핵문제까지 일으켜 놓고, 당신은 도대체 무슨 생각을 하고 살고 있는지요.
"김정일의 마지막 여자"
저자 장진성은 북한에서 주요직책을 맡고 있었으며 고위관직의 사람들로부터 들었던
절대권력자 김정일의 사생활에 대한 이야기를 과감히 그려놓고 있다.
사생활을 안다는 것은 중대 범죄이며 일가족 3대 멸족죄에 해당된다하니
큰 부담감을 안고 이 글을 썼으리라 생각된다.
오직 김정일을 위해 공연하는 보천보전자악단의 새로운 가수인 22살 윤혜영.
그녀에겐 함께 공연하는 피아니스트 김성진이라는 애인이 있다.
멀리서는 김정일을 가까이서 보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었던 윤혜영은 김정일의 선택을 받은 이후에
상상도 못할 일들이 일어나면서 최고 권력자에 대한 두려움에 떨게 된다.
가난으로 굶어죽는 아이들이 너무도 많다는 그 곳에서 어찌 저렇게도 호화스런 생활을 하는지
정말 이해가 가질 않았고 실로 충격적이었다.
20만 달러나 하는 코냑에 한여자를 위해 100만 달러나 하는 다이아몬드를 선물한다는 것이
말이나 되는 일인가. 그와 더불어 그의 괴기적이고 속물적인 성적 피력도 책을 보는 내내
참을 수가 없는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김정일도 어쩔수 없는 남자인가?~여자를 위해 한 여자를 위해!!~
굶어 죽어가는 지네 국민들 생각도 안하고~100만달러 다이아몬드를 선물하다니!!!
이게 바로 미칀거 아닌가?!!
김정밀 벌써 4번이나 결혼한걸로 알고있는데!!~
근데 또 다른 여자가 있었다고 하던거 같은데.
김정일 부인들 참 대단한 사람이데~~
김정일의 첫부인은 홍일천(洪一꼭두서니 천)이라고 한다.
김일성대학 러시아학부를 나온 혁명가 유자녀라고 알려져 있으며
1966년에 혜경이라는 딸을 하나 낳았고 김정일이 성혜림과 가까워지면서 이혼을 하였다.
1980년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어
정무원 보통교육부 부부장(문교부 차관)을 거쳐서 지금은 김형직 사범대학 학장이다.
배우 성혜림은 김정일과 정식 결혼은 하지 않았으나 부인으로 대우 받으며 살았다.
그녀는 김정일보다 6살이나 많았고 또한 李平과 결혼 해 자식도 있는 여성이었으나
69년 부터 김정일과 정식으로 동거하고 남편 이평과는 이혼 하였다.
당시에 성혜림은 33세이고 김정일은 28살 이었다.
1971년에 김정일의 장남인 김정남을 출산하였으나 김정일은 아들의 출산을 숨겨왔다고 한다.
고영희!!
재일교포 출신의, 만수대예술단 소속 무용수로 활동하다 김정일의 눈에 띄며 총애를 받았다.
1975년부터 사망한 2004년까지 김정일과 동거, 사실상 정부인인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을 해왔으며, 김정은의 후계자 낙점 역시 김정일의 고영희에 대한 총애가 뒷받침됐다고. 고씨의 부친 고태문씨는 제주도 출신으로 일본에서 유명 전직 유도선수. 2004년 지병인 유선암으로 파리에서 사망했다는 후문.
고영희의 경우 북한이 강조하는 백두의 혈통,
김정일의 네번째 부인 김 옥..!!
김정일의 비서출신,
"김정일의 특명을 받은 운구단이 평양에서 왔는데 놀랍게도 단장이 여자였다"며
"확인 결과, 그 여성은 김정일의 또 다른 여인인 김옥이었다"고.....
현재 후계자로 거론되고 있는 김정일 위원장의 아들은 고(故) 성혜림씨가 낳은 장남인 정남(35), 고(故) 고영희씨가 낳은 차남 정철(25)과 삼남 정운(22) 등이다. 김 위원장과 김 옥씨 사이에 자녀가 있는지 확인되지는 않았지만, 자녀가 없을 가능성이 상당히 높은 가운데, 김 위원장과 사이에 설사 아들이 있다고 해도, 나이가 너무 어려 당장 후계자로 낙점되기 어려운 상황! 김정일 5번째 부인 사진 공개!!~~ ‘김정일 미모의 5번째 아내 옥희’ 김정일의 5번째 부인 사진을 통해 알게 된 중국과 평양시민들은 "장시간 여행을 데리고 간 것으로 봐 신혼여행일지 모른다"라는 소문까지 있었다네요!! 또 이미 평양의 어느정도 간부급 정도는 눈치를 챘다고 하네요.ㅋㅋㅋ 또한 옥희라고 하는 사람은 김정인 전 부인은 고영희씨가 인정했던 사람이라고 하네요. 오래전부터 측근 사이였다는 소문이 들리다고합니다!!
이건 바로 2008년 10월 대북 삐라~~!! 김정일의 여인들인데 완전 화려하죠?~~ 저렇게 이상한데에 힘을 빼니???정신이 오락가락한가봅니다!!! 김정일 여자밝히는 것으로 잘 알고있지만 이렇게 아주 대놓고 볼줄이야~~ 저 여자들이 무슨 죄가 있길래..ㅠㅠ 저런 므흣한!!>>??표정을 하고 어딜보고있는건지!!~~ 저 뒤에있는 넘들은 아주 대놓고 웃고잇네.ㅋㅋㅋ쯧쯧~~